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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나라 1기 감상

라프텔이라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앱에 가입할 때 받은 5일 월정액 체험권으로 <보석의 나라>라는 애니메이션 1기를 봤다. 다 본 건 일주일 전 즈음이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든 단상을 (심심해서) 기록하고자 한다. 당연하게도 1기의 내용이 서술될 것이니 보석의 나라를 조만간 보려는데 스포일러가 싫은 분은 주의를 부탁드린다. ~이하 감상~ 1. 처음 든 생각은 몸이 딱딱한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째서 사지를 구부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아함이었다. 후반부에 포스포필라이트가 팔 두 짝을 잃어버려서 합금 팔로 바꾼 것은 뭐, 합금 소재가 유동체이기 때문에 구부러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런 유동성이 없는 보석으로 이루어진 사지가 어떻게 살덩이처럼 접힐 수가 있지... 이런 것만 신경 쓰면 안 되겠지만... (신경 써도 되지만...) 뭐 보석 내부에 관절이 있다거나 뭐 아무튼 그런 설정이 있겠지... 2. 작가가 밀로의 비너스 같은 조각상을 보고 인간의 육신이 마치 조각상처럼 깨지면 어떨까 라는 기괴한 망상을 실현하려고 <보석의 나라>를 그리고, 그것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잘 구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화에서 머리가 똑 부러지거나 팔과 다리가 깨지는 보석인형이 꼭 하나씩은 등장한다. 덕분에 보석으로 된 토르소 조각상이 주는 미적 자극을 실컷 맛보았다. 예쁘기는 하다. (약간 "예쁘게 죽어요" 같다) 3. 보석인형들은 (물론 생명체로 묘사되지만 나는 보석인간보다는 보석인형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21세기의 일본 여고생과 남고생(학원물 애니메이션에서 재현되는)처럼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도 웃기다. 4. 또 보석인형이 쓰는 1인칭 대명사가 대부분 남성의 그것(오레, 보쿠)이라는 것도 웃기다. 여자 목소리를 내는데 자기를 남성형으로 일컫는 건 보석인형들의 무성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같은데, 그러면 왜 남자 목소리로 자신을 여성형으로 칭하는 보...

2013년 11월 11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감상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표정. 금세 사랑에 빠진다. 촌스러울만치 화려하고 과장된 화면 속에서 그녀는 노래하고 춤을 춘다. 결 좋은 머리카락은 부시시해진다. 깨끗한 옷은 결국 더럽고 보풀이 인 스웨터가 된다. 마츠코는 혐오스럽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은 점점 멍청해 보인다. 우리는 그녀가 절망하기 전 흘러나오는 음악과 율동에 깔깔 웃는다. 그러나 그렇게 웃기만 할 것인가. 혐오스러운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릴 것인가. 과외하는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한 리뷰를 찾았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그녀에 대한 연민이 깃든 평이 많았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 파고들면, 그녀의 삶은 눈물겹다. 그저 마츠코는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았는데 번번이 좌절되고, 그녀는 점점 잊혀져 간다. 아무리 지옥 같아도 혼자인 것보다 낫다는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생생했다. 하지만 석연찮았다. 그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는 정도로 끝내야 할까. 매 맞는 여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여자에 대해 말하는 페미니즘을 조롱하듯, 수동적이고 어쩔 때에는 참으로 멍청한 여자가 나오는 작품. 이것을 어찌해야 할까. 교수님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이거 어떡할까요. 그러게요, 어떡할까요. 그렇다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는 틀려먹었어, 이런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뜯어 고쳐야 해, 라고 시원하게 말할 수도 없는데 말이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다시끔 물컹거리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더 있다. 그녀를 그녀 자체의 개인적인 삶에 한정하여 말하기엔 부족하다. 오히려 개인적인 삶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참으로 힘 빠지는, 어이 없게 죽은 그녀에 대한 애도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으므로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초월한 맥락에서 그녀를 이야기할 수 없다...

2015년 2월 16일: <미지의 세계> 감상

<미지의 세계> 감상 현재 연재되고 있는 웹툰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미지의 세계>를 꼽을 것이다. 그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평생 내가 한 비평이라곤 “이거 좋다, 이거 지루하다” 정도인 나는 “그냥 웃기고 재미있어” 라고 대답하겠지만 친구랑 같이 미지의 세계 비평을 쓰기로 약속했으므로 조금 더 자세하게 말하고자 한다. 일단 미지의 세계 작가인 이자혜씨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고, 만화에서 묻어 나오는 독특한 유머러스함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지의 일상이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즉 공감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어떤 대상에 나를 투영할 수 있는 경우 그 대상을 내가 많이 아끼게 된다. 이 만화를 좋아하는 나의 많은 친구들 중 이 만화에 전혀 공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는 트위터를 한다. 이자혜씨 또한 트위터를 하기 때문에 나는 이자혜씨의 트위터 계정을 구독하고 있다. 이자혜씨는 몇 개의 키워드를 트위터에 검색하고 그 트윗들을 리트윗함으로써 자신의 만화에 대한 반응을 살펴보는 듯 하다. 이자혜씨의 리트윗으로 나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접하게 된다. 당연히 호의적인 반응만 보게 되지는 않는다. 불호에 가까운 반응 중 전형적으로 보게 되는 것은, ‘만화가 기괴하고 불편하다'와 '미지는 노답이다’ 등이다. (이것은 나의 기억에 의거하여 구성된 반응이므로 어느 정도 왜곡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반응은 호의적인 반응에서도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똑같은 말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와 불호의 반응을 나눌 수 있는 척도는, 미지를 '가까이’ 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의 여부인 것 같다. 그러니까 미지의 세계를 싫어하는 사람은 미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한다. 또는 어느 정도 미지를 이해할 수 있으나, 미지의 저런 태도는 피곤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미지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왜냐하면 미지가 그렇게 특이한 ...

2013년 2월 24일: 애니메이션 <요르문간드> 감상

의식의 흐름같은 요르문간드 감상문. 애니메이션 요르문간드 스토리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요르문간드를 감상 중이거나 감상할 예정이면 주의해 주세요. 요르문간드 1기를 전부 보게 된 건 가을 즈음. 그때는 이미 요르문간드 2기가 나오던 때였다. 완결이 다 나고 나서 보고 싶었기 때문에 2기는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우연히 요르문간드를 검색해 보았고, 그때서야 2기가 이미 완결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날 당장 요르문간드 토렌트를 검색하여 2기를 전부 받았다. 다 받고 난 다음 어제 오늘 요르문간드 2기 총 12화를 다 감상하였다. 열린 결말이었다. 보통 난 열린 결말에 ‘아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는 거냐고!’ 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열린 결말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시덥잖은 열린 결말보다 시덥잖은 닫힌 결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은 열린 결말은 여운을 길게 남긴다. 좋은 열린 결말로 맺은 작품은 한동안 그 작품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그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열린 결말로 작품을 마무리하려는 걸까. 요르문간드의 결말이 좋은 열린 결말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덥잖은 것도 아니다. 그냥 요르문간드 보고 기분이 꽁기하니 요르문간드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다. 요르문간드는 내가 밀리터리물에 흥미를 느끼게 만든 인상깊은 작품이다. 액션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내가 요르문간드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사실 애니메이션이었기에 재미있게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친화적이기 때문에ㅋㅋ;; 인물들이 좋다. 소년병 요나와 무기상인 코코 헥마티아르. 여기에 추가하면 소피아 발메까지. 음, 코코에 대한 발메의 사랑이 좋았다ㅋㅋㅋ 배캅을 팔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작품이다, 요르문간드는. 하지만 그렇게 케미돋는 작품은 아님. 제목 '요르문간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이라고 한다. 세계를 휘감고 있는 뱀… 이라고 한다. (자세한 건 검색을) 1기 1화와 2기 1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