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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8일

1. 사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왜 살까? 어떻게 살까? 요새 유독 사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이유는 대학원에 떨어지고, 졸업이 미뤄진 것도 있겠다. 그리고 성적 때문에, 공부를 안해서 이렇게 된 건데 전혀 반성을 하지 못해서 이번 학기에 기말 레포트 하나를 못 제출했고 (선생님께서 딜레이를 안 받아주셨다) 시험도 못 본 것도 있다. D+라는 성적을 대학 와서 처음 받아보는데, 다음부턴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후회를 엄청 하고 나서 이런 성적을 받게 되어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징징대고 싶지가 않아서, 최대한 말을 아끼고 요새는 내가 살아왔고 내가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혼자서 많이 생각하는 중이다. 2. 공무원 시험에 대해서 꽤 자주 생각해보고 있다. 진지하게 고려하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앞으로도 게으르고 산만하게 살 것 같아서, 진짜로 9급 공무원으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다니는 독서실은 수능 준비하는 학생도 다니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어른들도 다닌다. 독서실 유리문에 붙은 공무원 영어 스터디 공고를 보면서 자주 공무원 시험에 대해 생각한다. 3. 정말로 인생이 망할 수 있고, 인생이 망한다면 내 탓일 수도 있고 내 탓이 아니라 재수가 더럽게 없는 탓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선택해서 벌어진 일의 결과는 온전히 내가 뒤집어쓴다. 이게 2017년의 나를 붙잡은 문제였고, 2018년에도 계속 나를 붙잡을 것 같다. 4. 일기를 쓰면서 산만함을 느낀다. 의사선생님은 약 탓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몇 년 전부터 쭉 쉽게 지치고 산만함을 느껴서 내가 좀 체력이 좋아지고 집중이 잘 되었음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2017년 12월 8일

1. 잘 모르는 이에게 호의를 받을 때 기묘한 기분이 든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굳이 좋고 나쁨으로 따지자면 좋음에 가까울 텐데 이상한 기분이다. 예를 들어 저번달에 나는 얼굴 본 적 없는 분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커피 기프티콘을 받았으며, 별로 재미 없을 것 같은 내 일기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이해 못 할 호의는 아니다. 나 또한 얼굴 모르는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고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이 덜 불행했으면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관심과 호의가 나를 향했을 때의 느낌은 생경한 것이다. 생경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2. 돈이 없다.. 정말로 없진 않은데 이렇게 돈이 없어본 적은 휴학 직전 빼고 처음이다. 곧 3월부터 학업지원금이 끊기기 때문에 정말로 돈을 벌지 않으면 부모님 집에서 한 발 짝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인터넷에서 과외 문의 글을 볼 때마다 족족 나에게 물어다 주었지만, 성사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께 받은 과외는 시범수업 약속까지 잡았으나 오늘 취소됐다. 그리고 나는 저녁으로 (이틀 전에 먹었던) 짬뽕을 먹으러 갔다. 걸어 가면서 걱정을 했다. 최근 겪은 일들을 생각하고,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일을 생각하면서 걱정을 했다. 그래도 걱정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애씀은 생각보다 잘 되었는데, 왜냐하면 최근 내가 겪었던 것이, 지금 겪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이해는 자괴감, 자책감, 기타 등등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의 자기반성에서 내가 너무 쫄보이기 때문에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인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근 겪은 일로 의기소침했고, 지금도 의기소침하나 전보다는 더 초연해진 것 같다. 요새 절실히 느낀 것은, 경험이 많아지면 사람이 초연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숙해지기도 할 뿐더러, 앞으로 겪을 더 큰 위기를 생각하면 매번 일희일비하여 걱정하고 흔들리면 삶을 ...

2017년 10월 29일

이 개같고 좆같고 진짜 이 너무할 정도로 가혹한 시기가 지나면 꼭 일기를 써야지, 이 좆같은 시기에 강제적으로 '사유'하고 강제적으로 느낀 감정들을 까먹기 전에 꼭 써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자고 일어나서, 푹 쉬고 나서 쓰려고 했지만 이번 달 내내 밤을 샌 빈도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았고 조금씩 끊어 자면서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부려먹은 탓에 푹 잘 수 있는 피로와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도 몇 시간 안 되어서 잠에서 깨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블로그를 켰는데... 진짜로 "졸업논문을 다 썼고 대학원 입시가 끝났다..." 라는 문장보다 이 두달간의 경험을 더 잘 압축적으로 요약할 말이 있을까? 헤겔 법철학을 읽고 잠을 충분히 자고 게임도 충분히 했던 여름방학 시기,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한 요 두 달까지 포함해서, 나는 정말로 내 멋대로 했다. 여름방학 때를 말하자면, 당장 급한 마감이 없었고 그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 게임하고 싶을 때 게임을 했기 때문에 완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 게 맞다. 엄마가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나는 자대 자과생이기 때문에 전공시험을 안 봐도 되고 진짜로 졸업논문만 잘 쓰면 대학원은 붙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내내 읽었던 헤겔 법철학은 내 졸업논문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8월 말, 양효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내가 버틀러의 <윤리적 폭력 비판>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졸업논문 신청서를 내기 위해 지도교수님을 만날 때까지, 나는 그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든 헤겔 법철학을 살리는 주제를 택하고자 했으나 나는 결국 버틀러를 주제로 한 졸업논문 개요를 작성하고 그것을 지도교수님께 보였다. 내가 은연 중에 우리 학교 철학과는 버틀러를 알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2017년 9월 30일

1. 4일동안 쳐다도 안 봤던 (왜냐하면 이틀 동안은 과제 때문에 시간이 없었고 남은 이틀은 말 그대로 탈진해서) 졸업논문을 다시 붙잡았는데, 추석연휴 내내 이것을 붙잡고 있어도 내가 수없이 쓰고 제출한 'F는 면하자 제출용 레포트' 퀄리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울적하고 슬펐다. 울적하고 슬프고 무기력해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연어를 퀵서비스로 배달해 먹을까 고민했다. (이미 이번 달에 돈을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내가 직접 전화를 해서 퀵서비스를 부탁한다고 말하기 싫었기 때문에 (나는 전화를 싫어한다) 그냥 녹두에 와서 늘 먹는 쌀국수를 먹었다. (녹두에 아는 가게가 쌀국수집이랑 돈까스집밖에 없다) 생리전증후군의 한복판에 서서 이번 달에 상실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진짜로). 글을 쓰는 게 싫은 것은 글 자체가 안 써지는 것도 있고 (말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말하고자 한 바"를 "정확히" 말하는 것이라는 지젝의 말이 생각난다) 글을 쓰면서 잠기는 상념들에 우울과 슬픔이 섞이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분류해버리고 타인이 분명히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멋대로 단정짓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다. (버릇이 들어버린 데다가 지금은 우울에 잠겼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하루에 글을 반 페이지 정도밖에 쓰질 못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과연 내가 말하는 바를 잘 담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일기를 쓰는 것도 힘들고 자괴감이 든다. (이렇게 괄호로 나의 울적함의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고통의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순간들은 여러 차례 있었고 그 시기가 지날 때마다 그때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 또한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생생한 고통이 더욱 슬퍼진다...

2017년 9월 26일

1. 개강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새벽 네 시 이후에 (어쩔 수 없이) 잠든다. 왜냐하면 누워서 비엘 소설을 읽거나 아님 정말 단순하게도 자기가 싫어서이다. 언제는 아침 여덟 시에 잠들어서 낮 세 시에 겨우 깬 적이 있었는데, 자꾸 아침의 새 소리를 들으며 깨질 것 같은 대가리의 고통을 참으며 어쩔 수 없이 자는 게 몸에는 그리 좋지 않아서 이번 주 월요일에 정신과에 가서 이러한 나의 망한 수면 패턴을 토로해 버렸다. 그 덕에 의사 선생님께 낮잠 금지령도 당하고 무조건 아침 10시 이전에 일어나라는 (거부할 수 없는 법의 남성적 언어 같은) 조언을 들었다. 일단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것은 항우울제를 아침에 먹는 것인데 (나는 몰랐는데 지금 먹는 약이 밤에 먹으면 밤잠에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서 아침에 먹는 게 좋을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만은 지키고 있다. 어쨌든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잠들어서 낮 한 시 즈음에 깼다. 그 후로 오래된 노트북처럼 버벅거리고 무거운 상태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업을 들으러 왔는데 대체 마음 놓고 쉴 날이 11월 이후에나 찾아올 거라서 '이게 사는 건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고,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내일 수업 때 제출해야 할 요약문 작성을 시작했는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환멸이 나 버려서 아마 저녁 먹고 나서 더 이상 미루면 좆될 때까지 진도를 못 뺄 예정이다. 그리고 선택한 게 오랜만에 블로그에 일기 쓰기라서 좀 웃기다다. 2. 어제 저녁에 한영이랑 밥을 먹었는데 옛날에도 한영이에게 사과를 했었지만 어제 저녁에도 또 한 번 사과를 했다. (재차 한 사과이니만큼 예전의 것보다는 더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요새 두 명의 친구와 소원해져서, 예전에 내가 한영이를 멀리했던 것이 생각나서 한영이가 느꼈을 소원함과 외로움에 동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를 듣고는 한영이는 그때 자신이 느꼈던 외로움과 섭섭함이 지금의 ...

2017년 8월 3일

1. 더위 먹은 상태가 디폴트인 채로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과외 가는 길에 너무 덥고 피곤해서 세 걸음 디딜 때마다 목숨을 유지하기가 버거운 듯이 한숨을 쉬고 그랬다. 정말 장난 아니게 더운 것이었다. 집에서 과외하는 집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인데, 덥다고 샌들을 신으면 발바닥이 너무 아플 게 뻔해서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는데 거기에 고이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고 내가 발을 딛는 아스팔트 바닥이랑 보도블럭도 너무너무 뜨거웠다. 집에서는 선풍기를 거의 내내 틀어놔서 엄마가 볼 때마다 그리 좋아하진 않아한다. 오늘은 애인이 사는 부천에 놀러 갔는데 오늘도 너무 더워서 점심으로 먹은 인도카레도 잘 안 먹혔고 (그리고 카레가 너무 달아서 한 입 먹으니 물릴 정도였다) 애인네 집에 가는 길도 너무 더웠다. 다행히도 애인네 집에서 에어컨을 틀어서 나는 애인네 집에서 살고 있는 강아지랑 같이 누워서 낮잠을 잤다. 더울 때에는 낮잠을 안 잘래야 안 잘 수가 없다. 사실 안 더울 때에도 낮잠을 잘 수밖에 없는 몸이긴 하지만 말이다. 2. 요 몇 달간 먹는 항우울제 처방은 부프로피온 서방정 한 알과(웰부트린이라는 상품명으로 잘 알려진 것) 설트랄린 반 알(졸로프트라는 상품명으로 잘 알려진 것)이었는데, 원래는 설트랄린만 복용했는데 설트랄린의 부작용인 오르가즘 지연이 너무너무 좆같은데 그렇다고 이 약을 완전히 끊으면 너무너무 어지러워서 일상 생활이 불가할 정도였기에 웰부트린과 소량의 설트랄린을 먹는 처방으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그런데 소량이어도 설트랄린을 먹으면 정말정말 오르가즘을 느끼기가 힘들다. 살짝 붕 뜨고 열감만 느껴지는 게 전부고 오르가즘을 느끼려고 더욱 더 애를 쓰면 (예를 들어 자위를 하거나 애인이랑 섹스를 하거나) 아프기만 할 뿐이어서 너무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은 설트랄린을 끊었을 때 일상생활을 크게 어렵게 만드는 어지러움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해서라도 이 약을 끊고 싶다고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다면 설트랄린 약을 이로 조금만...

2017년 6월 1일

6월의 첫 아침을 상쾌하게 과외 짤림으로 시작했다. 오늘은 애인과의 정기적인 데이트날인데 애인은 2명의 교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이번주에도 앓아 누웠고, 잔뜩 쉬어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오늘 말고 내일 만나자고 전화했다. 그때가 한 10시 쯤이었고, 나는 애인을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과외 학생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온 것이다. 나는 그 문자를 받고 기분이 나빴는데, 그것은 물론 과외가 짤려서 그런 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과외 어머니가 굳이 문자로 내 과외가 짤린 이유를 명시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은 까닭입니다" 라는... 이런 말을 할 거면 대체 왜 '아이가 선생님의 열정을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언급했는가? 어쨌든 나는 과외 학생의 중간 고사 성적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학생의 말로는 전체에서 두 개 틀렸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원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뒤따라 들었다. 만점을 받기를 원한 것일까? 이래저래 나는 가성비가 좋지 않은 서울대 재학생 과외 선생이었고, 슬프게도 불경기인 한국에서는 가성비가 나쁜 나는 짤리기가 너무나도 쉬웠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대체로 어머니들이 과외를 짜를 때에는 문자로 통보한다. 나는 그래도 비즈니스 관계일지라도 몇 달 정도의 '계약'을 맺었다면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는 게 그리 썩 좋은 해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해고란 무엇인가.... '좋은 이별'이 무엇인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썩 좋지 않은 해고를 당하면 나도 답 문자를 보낼 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말투를 사용하고 만다. 나는 남은 과외비를 환불하고 (정말 과외비를 환불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불쾌한 하루의 시작에 일조했다) 어머니께 '더 좋은 수학 선생님을 찾아 원하는 꿈 이루기를 바랄게요'라고 답문자를 보냈고, 어머니가 그에 이제까지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2017년 5월 21일

만 24세가 되는 생일을 맞아서야 깨달은 게 있는데 그것은 내가 내 생일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 그리 만족스러운 교우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어떤 애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지 못했다는 것과 더불어 엄마아빠가 생일파티는 낭비라고 생각해서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지 못했다는 것이 나에게 강렬한 결핍의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깨달으니 쓸쓸하게 우스웠다. 유독 내가 생일 즈음만 우울했던 게 다 이러한 결핍에서 나온 기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버렸다. 자아라는 것을 갖추고 나서 늘 외로움을 겪었지만 나이가 들도록 그 외로움에 대한 공포는 줄어들 생각을 안 하고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의미 있는 인간관계라고는 별로 없는 시시한 삶을 살게 될까봐 두렵다. 아니,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20만원 받으면 됐지...뭐....

2017년 5월 15일

1. 당장 떠오르는 내 미래 계획이란 내년에 자취를 하든 부모님 집에 얹혀 살든 플4 프로를 사겠노라는 것뿐이다. 공부 계획은 어느 정도 잡혀 있으나 그렇게 의욕적이지 않고, 생계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다. 의욕적이고 구체적인 미래 계획이란 내가 무엇을 살 것이고 어떻게 놀 것인지에 대한 것밖에 없다. 나는 정말로 내년에 큰 모니터와 (최소 32인치 이상의) 플4 프로를 사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2. 정말 요즘 절실히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여유가 꼭 필요하다. 생계에 대한 여유도 생기기 어려울 정도로 빠듯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요즘 시대에 정신적 여유를 추구하자는 말조차 하기 힘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날이 많이 서 있다고 느낀다. 비판 의식을 갖는 것과 날이 서 있는 것은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중 한분이 "분노가 기본 정서가 아닌 지식인들을 혐오하기까지 한다"라는 문장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분노는 비판 의식을 갖는 데에 첫걸음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게 살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이 나약하기에 가질 수 있는 인간만의 선량함을 믿고 어떻게든 어떤 사람과의 대화 가능성과 설득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앞으로 나 자신이 엄청나게 훼손당하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그 때문에 이런 결심을 내버리고 인간을 혐오하고 세상을 등진 채로 살 수도 있을 것이나,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지금 내가 바라고자 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시끔 다짐하리라 믿고 있다. 앞으로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든, 지금 이 순간의 나의 다짐은 진짜이고 이 다짐은 옳다고 믿는다. 요새 내가 읽은 철학자들은 결국에는 인간에게 희망을 품는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나는 그 긍정이 단순히 생각이 없는 긍정이 아닌, 끝없는 부정과 의심과 비판 끝에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나...

2017년 5월 3일

1. 허이모와 카페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깃거리 중 하나는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로 나 같은 사람들의 의견이 절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현재 자본주의와 결탁한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한계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다는 나의 바람에 관한 것이었는데, 허이모가 그것을 듣고 셸든 월린(Sheldon Wolin)이라는 미국의 정치철학자를 소개해 주었다. 오늘 저녁에 게임을 잠깐 하고 그 학자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 나는 그 학자의 책이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을 거라 짐작했는데 그 짐작이 틀렸다. 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월린을 검색해보니 후마니타스에서 번역한 책들이 있었다. 이번 학기에 헤겔 수업을 청강하면서 졸업 논문을 헤겔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헤겔뿐만 아니라 읽어야 할 책 목록들이 지치지도 않는 듯 갱신되고 있다. 게으른 내가 죽기 전까지 그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2. 헤겔 입문서를 읽는데, 이 입문서를 쓴 학자가 여성이라는 소수성을 갖고 있어서 헤겔이 현 체제를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는 보수주의자라는 혐의에 대해 천착하려는 게 보였다. 그것은 내가 헤겔을 알기 전 헤겔에 대해 품은 인상과도 부합하는 것이어서, 여성 헤겔 연구자는 어쩌면 처음에 헤겔을 접했을 때 비슷한 걱정과 혐의를 갖고 접근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헤겔로 졸업 논문을 쓰게 될 경우,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을 하루 빨리 읽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헤겔 입문서부터 완독해야겠지만. 3. 스피노자 입문서를 읽고 나서 내가 좀더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커피가 나에게 주는 기쁨, 지금 날씨의 적당한 온도와 좀더 짙은 파란색이 된 하늘과 총천연색의 꽃들이 주는 자연미 기타 등등이 주는 좋음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듯 하다. 오늘 허이모와도 이야기했던 건데, 사람은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조건들과 자원들만을 가지고 지금 그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

2017년 3월 13일

1. 저번 일요일부터 왼쪽 아래에 있는 사랑니를 둘러싼 잇몸이 다 헐어서 아프다. 매년 봄마다 사랑니가 쑤셔서 왜 봄에만 자라나는 걸까 궁금할 때도 있었는데, 어쨌든 치과에 가서 이것을 뽑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검사를 받아야 하는 때인 거 같다. 2. 이번 학기는 9학점만 들어서 무척이나 시간이 한가한데, 그 한가한 시간에 누워 있고 게임을 하고 아무튼 공부는 안 한다. 그래도 책은 1년 전보다야 많이 읽는 것 같다. 한영이와 졸업 및 대학원 준비를 위한, 어쨌든 책상 앞에 앉아 있기 모임을 만들어서 일주일에 두 번 도서관 스터디룸을 빌려서 두 시간 있기로 약속했다. 저번주에는 화요일 수요일 저녁에 스터디룸을 빌려 앉아 있었다. 그 시간동안 내가 읽은 것은 헤겔 법철학과 들뢰즈 해설서였다. 3. 헤겔 강의를 청강하는데, 선생님을 너무나 사랑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헤겔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틀러 책을 몇 권 읽은 덕인지 헤겔 법철학 서론의 4절부터 7절까지 읽는데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헤겔 해설서를 읽을 필요를 느끼는데, 도서관에서 빌리면 십중팔구 연체를 할 것임이 뻔해서 책을 사야할 것 같다. 그런데 책이 너무 비싸다. 그러니까, 책 한권 정도야 당연히 살 수 있지만 알라딘에서 이것저것 책을 고르다보면 내가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모든 재산을 탕진할 만큼 책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아무튼 돈을 주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4.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사람이 우울해지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트위터에서도 그런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는 트윗을 본 기억이 난다. 어쨌든 바로 내가 봄을 타서 정말로 몸에 힘이 없고 울적해져서 (밖에만 나가면 울고 싶었다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걷기가 힘들었다) 항우울제를 늘렸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기운이 났다. 약을 먹게 되면서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다. 분명 몸에 활력이 생기고 책을 읽을 기운도 나니...

2017년 1월 21일

1. 부모님 집에 머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다음과 같다. a) 혼자만의 방이 있다.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기타 등등을 할 수 있다. b) 커피를 내려 마시기 아주 수월하다. c) 식비가 많이 절감된다. d) 엄마와 아빠라는 타인이 있기 때문에 어떤 공간에 홀로 살고 있다는 외로움이 가신다. e) 엄마나 아빠가 가끔씩 아침 또는 저녁을 차려준다. 단점은 다음과 같다. a) 가족들 간의 문제에 어쩔 수 없이 연루된다. b) 담배를 피우기가 힘들다. 눈치껏 밖에 나가서 피우거나 과외 하기 전에 피우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 피우거나 밤에 방문을 꼭 잠그고 환기에 신경 쓰며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운다. 2. 오늘은 단점-a항 때문에 피곤했다. 울적하기도 했다. 부모님과 늦은 아침을 먹고 잠이 다 깨버려서 커피를 내려서 엄마와 아빠한테도 주고 내 몫까지 내려서 방으로 들어와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읽을 때였다. (앞으로 철학을 공부할 예정이므로 더 이상 칸트 읽기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의무적으로 매일 1페이지라도 읽으리라 마음 먹었다) 엄마는 김치를 담그느라 순무와 무를 손질했고 아빠는 텔레비전을 봤다. 즉, 그들은 오랜만에 거실이라는 한 공간에 같이 머물렀다. 엄마는 아빠한테 친오빠 이야기를 했다. 친오빠 이야기를 하자면, 친오빠는 졸업을 미뤘고 1년 동안 취업준비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친오빠는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취하고 있었고, 2016년 2학기 내내 부모님 집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으며 (추석 때 한 번 비추고 끝이었다) 겨울방학에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의 이야기 끝에 겨울방학부터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취업준비를 시작하기로 그들은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좁아 터지게 된 부모님 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도록 하자) 그래서 필연적으로 언젠가 오빠와 부모님 사이에 트러블이 있을 것이었고, 그 일이 생각보...

2017년 1월 17일: 꿈에 대한 일기

1. 요 이틀간 꿨던 꿈 메모 a) 이틀 전에 꿨던 꿈이다. 나는 갑자기 몸 어디가 아파서 밤중에 집을 나와 응급실을 향해 걸었다. 아마 귀가 아팠던가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치 않다. 119를 부르면 되는 것을 왜 그 추운 한밤중에 직접 내 발로 걸어서 병원을 갈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굉장히 오래 걸었고, 그 꿈의 풍경은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가 기묘하게 재구성된 곳이었다. 딱 기억나는 건 내가 어떤 풀숲이 우거진 (그렇다고 숲 속은 아닌) 인도 오르막을 걷고 있었다는 거고, 그 풍경과 비슷한 곳이 바로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맨날 소풍을 뻔질나게 다니던 장릉으로 향하는 길이다. 어쨌든 열심히 걷다가 내리막으로 접어들 즈음, 응급실이 보였고 나는 갑자기 내가 응급실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응급실에 갈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건지 잘 모른다. 어쨌든 응급실에 가지 않기로 마음 먹고 다시 집으로 향했는데, 왔던 길을 돌아서 간 건 아니고 응급실 근처에 있는 다른 길로 갔다. 달동네의 좁은 골목길이었고 경사가 있지 않았다. 이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이 하얗다는 게 기억난다. 어쨌든 걷는데, 어떤 사람이 눈 앞에 보였다. 처음에는 머리가 긴 사람인 줄 알았던 거 같았다. 그 사람을 앞질러 지나가려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날 붙잡더니 나를 죽이려 들었다. 손에 칼을 들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머리가 긴 줄 알았던 그 사람은 어떤 아저씨였다. 아이보리색 패딩을 입은 아저씨였던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보자 거리를 벌리며 핸드폰을 꺼내서 112에 신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주 태연하게 "한 번 신고해봐." 라고 말했다. 나의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듯이. 나는 112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걸린 건 근처의 경찰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죽이려 드는 눈 앞의 그 사람의 핸드폰이었다. 그 사람은 빈정거리는 듯이 웃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날 죽였냐 하면, ...

2017년 1월 8일

1. 블로그를 옮겼다. 잘 하지도 않는 주제에 말이다. 그런 데다가 국내 블로그 서비스는 죽어도 이용하기 싫어서 내가 알아본 것은 구글 블로거랑 워드프레스였다. 그러나 워드프레스는 블로그 툴일 뿐이지, 거기서 무언가 웹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라 포기했다. 컴퓨터라든지 웹이라든지 프로그래밍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결국 남은 것은 구글 블로거였다. (텀블러는 깔끔해서 좋았는데, 텀블러는 사진을 올리는 데에 특화된 서비스라는 게 나를 걸리게 했다. 나는 주로 일기를 써서 올리는데 글 포스팅을 깔끔하게 올리고 이전 포스팅을 편하게 볼 수 있고 이전 포스팅을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다.) 어쨌든 블로그를 잘 하지도 않는 주제에 블로그는 여러 가지를 써 보았고 그때마다 이전 포스팅을 갈무리하는 수고를 겪었는데, 저번까지 썼던 텀블러는 내가 꽤 오랫동안 성실하게 글을 올려 놓아서 생각보다 블로그 이사가 힘들었다. 복붙을 하고 문단을 좀 다듬고 눈에 보이는 오타를 고치고 태그를 다는 것이 뭐 이렇게 귀찮고 품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옛날 일기를 강제적으로 살펴 봐야 하는 형벌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 형벌은 아주 고통스럽진 않았고, 부끄러움으로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정도로만 괴로웠다. 손가락이 오그라들면서도 갓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의 변화 과정을 살펴 보았는데, 2012년과 2013년에는 좀 '귀여운' 면모가 있었고 2014년부터 우울증이 심각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더니 2015년에는 거의 매일매일 일기를 썼었고 그 일기에는 자괴감과 심각한 우울증으로 가득 찼었다. 그래서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의 변화 과정을 거칠게 말하자면 '우울증의 발전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우울증의 발전을 보고 있노라니 왜 진작 내가 우울증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으며 그것을 빨리 눈치 채서 약물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때의 그 자괴감과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책을 읽으려고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