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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 시리즈 프롤로그 중셉

얼마 전 ‘장롱면허’에서 탈출하기 위해 도로운전연수를 10시간 받았다. 내가 원해서 한 건 아니었다. 석사 수료 후 취업 준비를 하느라 부모님 집에 얹혀 산지 대충 5개월이 되었을까, 아빠가 차려준 저녁을 먹는 어느 날 아빠는 이제 네 나이 29살 운전은 할 줄 알아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2015년 12월 즈음 휴학해서 집에 있던 나에게 아빠는 이때와 비슷한 말을 했었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동차 운전은 할 줄 알아야지. 처음에는 1종 운전면허 연수를 받았었다. 솔직히 한국 같은 교통체증이 심한 나라에서 용달차나 학원 차량을 운전하며 먹고 사는 사람 말고는 수동 기어 달린 차를 모는 사람은 ‘마니아’라는 이름의 변태밖에 없을 텐데 부모님은 기어코 나한테 1종 운전면허 연수를 받게 했다. 기능시험을 통과하고 도로 연수를 받던 두 번째 날 내 아버지 또래로 보이는 운전 강사는 대체 1종을 왜 따냐고 나한테 택배 기사 할 거냐고 물었었다. 그리고 그 강사는 연수를 받는 내내 그딴 식으로 하면 사람 죽인다고 기어를 그렇게 넣으면 안 되지 기타 등등의 정신 공격을 수없이 퍼부으며 내 진을 빼놨다. 다행히 그날 이후 그 강사한테 도로 연수를 받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나는 존나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차를 몰았고 면허 시험날 나는 시동을 두 번 꺼뜨렸다. 하필이면 우회전 도로가 하나밖에 없는 길목에서 시동을 꺼뜨렸고 시험 시간은 하필 퇴근 시간대여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성난 운전자들이 미친듯이 경적을 울려댔다. 신경질적인 경적 소리로 나는 거의 혼절할 뻔했고 옆에 앉아 있던 시험 감독 선생님께 시동을 다시 걸 수가 없다고 도저히 못 하겠다고 말했다. 푸근한 인상의 할아버지셨던 시험 감독관 선생님과 나는 내려서 자리를 바꿨다. 그 와중에도 나 때문에 우회전을 할 수 없어서 화가 난 운전자들이 계속 경적을 눌러댔다. 나를 죽이려 들 것 같이 울려대는 경적 소리 가운데에도 감독관 선생님은 태연했다. 느긋하게 시동을 걸고 운전면허 학원으로 돌아가면서 감독관 선생님은 ...

2015년 1월 5일: 양효실 선생님께 드린 답장

선생님 답장을 읽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이 저를 보았다던 그 길목에서 스마트폰으로 메일을 읽었는데, 많이 웃었어요. “저렇게 걷는 사람은 ‘공부나’ 해야 할텐데..^^” 라는 대목에서 대체 내가 어떻게 걸었길래 선생님께서 그렇게 생각했지? 라는 웃음. 그리고 선생님다운 답장라는 생각이 들어서 또 웃음.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셔틀을 타고 오면서 생각했어요. 선생님이 나를 언제 보았을까? 아마 저번주에 과외를 끝내고 입구역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셔틀을 타러 갈 때 보셨나 보다. 그리고 그때 제가 어떤 기분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걸었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침부터 과외를 하고 오느라 졸린 데다가, 배가 불렀으니 엄청 졸렸을 겁니다. 빨리 기숙사 들어가서 좀 쉬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인생 참 힘들군… 다음해에 기숙사는 붙으련지, 학교에 다닐까 휴학을 할까, 공부는 어떻게 하지, 이 무기력함을 어떻게 하지, 라는 맨날 하는 고민을 했겠지요. 그렇게 고민하느라 주변은 둘러보지도 않고 땅만 보며 걸었을 겁니다. 어제의 메일은 친구가 닥달해서 겨우 써서 선생님께 보낸 겁니다. 자신감 없음, 무기력에 빠져 있는 저를 보고 친구는 뭐라도 빨리 써서 보내라고 채찍질했고, 그래서 겨우 나온 것이 두서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 글을 쓸 때만 해도 정말 나의 고민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선생님 답장 보고 웃으니까 전보다 더 뭐가 보이더라구요. 불안은 견뎌야 하는 것이고,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요. 일단 뭘 읽어야지, 결국 나는 계속 패배주의에 젖어서 '편하게’ 있었구나. 그런 것들이요.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서 책상 앞에서라도 가만히 있어야겠다는 것. 치열하게 삶을 견뎌보겠다는 것.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많이 웃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불안한 나와 진지한 나를 비웃으면서 불안에서 빠져 나오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 다시 불안에 빠져 있었네. 너무 진지해져버렸네. 다시 웃어봐...

2014년 12월 22일: 동아리 운영위원을 은퇴하며

동아리 운영위원을 은퇴하며 운영위원을 공식적으로 그만둔 건 저번 금요일 동아리 종강총회 때였지만, 운영회의 단체카톡방을 나간 건 오늘이었다. 짤막하게 인사를 남기고는 미련 없이 카톡방 나가기를 눌렀다. 동아리 운영위원을 처음으로 하게 된 때는 내가 1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1학년 2학기에 교류팀장을 하게 된 건 악몽과 같았다. 나의 경험 부족과 총체적인 동아리 운영의 똥망 때문에) 그 이후로 2학년 1학기만 빼놓고 계속 동아리 업무에 관여했다. 내 친구들이 다들 동아리 업무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동아리 일을 안 할래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번 학기 퀴플 편집장까지 맡게 되었다. 편집장 일은 아주아주 고되고 나를 피폐하게 했다. (왜냐하면 퀴플 편집장마저도 처음 맡는 일이었고, 나는 끊임없이 나의 자격미달 여부를 고민했다) 편집장 일을 끝내고 나는 정말로 업무 같은 데에 질려 버려서, 그 이후로 명목상으로 계속 동아리 운영위원이긴 했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왜 운영위원 일을 하게 되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동아리에 더 깊이 발을 딛어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가입하게 된 동아리는 신기한 거 투성이었고 동아리방에 가는 일은 즐거웠지만 생각만큼 거기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진 못했다. 그러니까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았고 인사를 받게 되는 일이 많았지만 학교가 끝나고 맛있는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하거나 술자리에 끼어들거나 등등의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조인트에 나가도, 술을 마시지 않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여자 이야기에 도통 흥미가 없다보니 큰 행사에 나가도 친구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동아리 운영위원 일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드는 촉매가 되어 주었다. 어떤 사람과 일정 시간을 보내면 당연히 친해지게 마련이며, 친해지기까지 보내야 하는 시간의 임계점을 넘길 수 있는 수단 중 많은 사람들이 즐겨 ...

2014년 10월 16일: n십년 뒤의 한심의 아이콘으로서의 삶

1. 우연히 동아리방에서 40대의 나를 상상했다. 망트는 메코의 4, 50대 시절이 궁금하다고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을 듣자 나도 그것을 상상해 보았다. 일단 내 머리 속을 스쳐간 상상은 이렇다. 나를 뺀 나머지 친구들은 어떻게 해서든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중년의 나는 끔찍하지만 어떻게든 숨을 쉬고 살 것이라는 것. 나를 뺀 친구들은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은 대책 없이 낙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내가 끔찍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지나친 비관주의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 내가 예상하는 내 40대의 삶이 끔찍한 이유는 내가 계속 공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 잡는 대신, 늙어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는 선택은 아주 똑똑한 사람 혹은 굳이 돈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적합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적절하고 적합한 선택을 매번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격언이 괜히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내가 아주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또한 앞으로 나는 더더욱 돈이 부족해서 허덕일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따위로 흔들릴 결심은 결심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므로 하루빨리 그 결심이라는 애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난한데 대학원 가면 망해요 라는 소리에 흔들린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가지 말아야 한다 라는 요지의 트윗을 기억하며) 그런데도 나는 계속 부모님한테 대학원 가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뻥을 소극적으로 치고 있고,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있고,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도 안 잡힌 채 이렇게 살고 있다.. 아빠한테서는 씀씀이를 줄이라는 말을 꾸준히 듣고 있으며 (밖에서 사 먹는 밥은 얼마나 비싼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엄마한테서는 유학 준비를 하는...

2014년 10월 23일: 공감에 대하여

1. 공감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감정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고 저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한다면 보통 그 사람과 통하는 게 있어야 할 텐데, 혹은 그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공감이란 건 전자와 후자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감정이다. 이렇게 쓰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공감하는 게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사람이 특별해지는 순간 중에는 그 사람과 내가 무엇을 공유한다는 감정, 즉 공감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쨌든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기만 하면 된다. 그 사람이 달라 보인다거나, 그 사람이 너무 귀여워 보인다거나. 그 특별한 계기 중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공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2. 전에는 무언가에 참 쉽사리 공감하고 사실 지금도 좀 그렇다. 그러나 전과 지금이 좀 다른 거라면,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어떤 것에 잘 공감할 수 있었고 그 공감하는 감정에 거리낄 게 없었으나 지금은 공감이란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룬다는 것일 테다. 대학 와서 얻은 소중한 지혜 중 하나는 언제나 나는 어떤 사람을 오해할 수 있으며 그 사람에게 느끼는 것들, 그 사람이랑 나누는 것들 배후에는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감 또한 오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상을 만들고, 그 상에서 멋대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 내어 자위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니 내 안에 공감의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멈칫한다. 3. 이런 트윗을 봤다. 나 너한테 너무 공감이 된다며 다가오는 사람들 모두 하나 같이 이상했다는 트윗이었다. 나는 타임라인을 손가락으로 밀고, 그 트윗은 시야 밖으로 밀려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내 머리 바깥까지 밀려 나진 않았다. 누군가가 나한테 공감이 된다며 다가 오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거기에 대해 어떤 것을 느끼며 어떤 태도를 취할까? 일단 그...

2014년 7월 19일: 무의미함과 우스움

무의미함과 우스움 1. 무의미의 세계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건 좋지 않아요, 라는 친구의 조언을 흔쾌히 들었던 나는 계속 무의미함에 젖어들고 있다. 무의미함을 느끼는 것 중 몇 가지는 나의 고민, 나의 감정, 그리고 내가 그토록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던 타인의 감정과 고민이다. 나의 고민이야 이렇다.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먹고 사는 데에도 지장이 없을까? 그 고민이 절실했던 시절에는 공부가 나한테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고,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쭉 공부하고 싶었다. 친구는 나를 두고 “정체성 공부하려고 철학과 온 애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가 하려는 공부는 망할 게 뻔하며, 다른 길을 찾으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라는 것은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덕질 정도의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무척이나 고민했으나 무의미함에 빠져든 나는 공부고 뭐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삶에 끌린다. 2.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버튼 투성이었고 그 버튼은 민감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이야 뭐 무의미함에 젖어서 버튼이 전보다야 둔감해졌다. (버튼이 없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버튼이 눌리는 일이야 당연히 가족이랑 젠더다. 감정적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부모한테 오히려 집착했던 나는 이제 부모가 뭔 무심한 말을 하든지 나를 어떻게 상처 주는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야 상하는데 그 상한 감정을 붙잡고 있어 봤자 뭐 하겠냐는 것이다. 나는 가족이 불편하고, 가족은 내 감정을 상하게 만들지만 어찌 되든 상관 없는 기분. 3. 그래서 그런지 상처만 핥으며 누구든지 자기를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는 여린 사람,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안타까우면서도 우스워졌다. 이해를 못 해서 비웃는 게 아니다. 다만 계속 저렇게 상처를 핥고 있으면 낫지도 않고 감염되어서 곪기만 할 뿐이며 무엇보다 ‘재미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2014년 3월 23일: 나의 음악 취향

나의 음악 취향 누군가 나한테 좋아하는 음악 아티스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꼭 이 세 아티스트는 언급할 것이다. AVTechNO!, Bjork, Sigur ros. 중학생 때에는 Linkin Park를 좋아했고 고등학생 때에는 Guckkasten을 좋아했고, 여전히 나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무튼 현재 매혹된 아티스트는 저 셋이니까. 저 세 아티스트의 매력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AVT는 강렬하고 독특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좋은 가사를 담았다. Bjork는 어쩔 때는 속삭이는 듯한, 또는 나른하고 힘 빠지는, 또는 강렬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온다. 독특한 사운드에 어우러져 말이다. Sigur ros는 반짝이는 사운드와 꿈 꾸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로 둥둥 뜨는 듯한 기분을 내게 준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의 음악 취향이 대충 윤곽이 잡힌다. 나는 일단 독특한 사운드를 좋아한다. 사운드는 보컬보다 중요하다. 내가 매혹을 느끼는 사운드는, 그 아티스트만이 갖고 있는 개성적인 사운드다. 그래서 나는 ‘실험적인’ 사운드도 좋아한다. 이러다 보니 내가 매혹당하는 사운드는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노래의 사운드를 들으면 밋밋한 느낌을 받는데, 그런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사운드가 쉽게 꽂히지 않는 느낌을 받겠지.   이러다 보니 나는 디바의 음악들에 매혹당하지 못한다. 디바의 음악은 보통 디바의 음색과 가창력이 돋보이기에 상대적으로 사운드는 밋밋하다. 나에게 있어 보컬은 하나의 악기에 지나지 않기에, 보컬의 음색과 가창력만 돋보이는 음악은 별로다.   나는 온갖 사운드가 버무러진, 독특한 음악이 좋다. 그래서 나는 요새 Sigur ros에 꽂혔다. Sigur ros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작아진 내가 음악 안에 섞인다. 그래서 둥둥 뜨는 것 같다. 또는 하늘에 있는 오로라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오로라가 걸린...

2013년 11월 6일: 나와 나, 자기혐오

나와 나, 자기혐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악의는 거의 대부분 나 이외의 것을 향해 있었다. 물론 나한테 실망하게 되는 일도 많고, 내가 싫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는 와중에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싫어해,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라는 소리를 깊이 공감하지 못했었다. 어쩔 때에는 ‘왜 나를 싫어하는 거지? 어떻게 나를 싫어할 수가 있는 거지? 나잖아.’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최근에야 이러한 생각은 내가 싫어하던 혈연가족 짱짱맨들이 하는 소리에서 주어만 바뀐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가족을 싫어하는 거지? 어떻게 가족을 싫어할 수가 있는 거지? 가족이잖아.” 무척이나 똑같은 소리였다. 나는 반성했다. 그리고 자기 혐오에 대한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를 타인으로 생각하면 자기 혐오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을 혐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여러 명이다. 한 몸에서 살고 있다. 마치 혈연 가족이 한 집에서 사는 것처럼. 혈연 가족과 다른 점은, 혈연 가족에게서는 독립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의절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는 나한테서 독립할 수 있는가? 나와 의절하고 살 수 있나? 그러니까 자기 혐오는 치 떨리게 싫은 혈연 가족과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싫어하는 나한테서 독립할 수 있다면. 싫어하는 나와 의절할 수 있다면. 싫어하는 나를 쫓아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도무지 나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편해질 수 있을텐데. 싫어하는 나를 쫓아내는 방법은 싫어하는 나를 죽여버리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밖에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이후에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만. 결국 도무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택할 방법은 죽음 혹은 싫어하는 나와 불화하면서 사는 것 혹은 적당히 싫어하는 나와 타협하며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2013년 11월 21일: 자해에 대하여

자해에 대하여 사실 자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비정상적'인 일도 아니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도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을 해치고 있다. 가장 만연한 자해는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하는 것일 테다.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지 않는다던가, 술이나 담배를 한다던가, 잠을 부족하게 잔다던가 등등. 또는 손톱, 손톱 주변의 살갗을 뜯는 버릇. 많이들 갖고 있는 버릇일 것이다. 손톱이나 살갗을 심하게 물어뜯으면 피가 난다. 염증이 나기도 한다. 아플 것이다. 이 또한 자해가 아닌가.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 또한 자해이지 않을까. 하지만 위에서 든 예들은, 보통 자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한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라고 길게 늘여서 말한다. 자해, 라고 우리가 명명하는 짓을 떠올려본다. 일단 피가 흐르는 게 생각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보다 좀 더 자신을 해하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덧붙여 '더’ 아파보인다. 생각을 계속 하면 몇 가지 더 떠오르겠지만, 이 정도까지만 적어본다. 자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 없이 할 수 있다.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한다던가, 손톱을 물어뜯는 짓에는 매번 이유가 붙지 않을 것이다. 불안해서 그런 버릇을 들였을수도 있지만, 이미 버릇이 되었다면 별 이유 없이 했을 것이다. 자해라는 행위에 굳이 이유를 끄집어내자면, 나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떠오른다. 첫째는, 피를 냄으로써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면 첫 번째 이유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죽은 듯이 살아간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둘째는 시위의 일종으로서 자해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힘들다고 보여주기 위해서. 두 번째 이유로 자해하는 것은 퍼포먼스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여러 가지 자해를 한다. 일단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고, 담배를 피고, 손톱은 물론이고 손톱 주변의 살갗도 물어뜯는다. 머리카락도 자주 ...

2013년 1월 30일 - 자아분열과 커밍아웃

자아분열과 커밍아웃 1월 30일자 KSCRC 퀴어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본다. 강의는 커밍아웃에 대한 것이었고, 강의 및 질의응답 시간에 ‘자아분열'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아분열이라는 것은 일반 사회에서의 '나'와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분리된 것을 뜻하는 듯 하다. 그래서 각각의 사회에서 취하는 행동 양식, 커뮤니케이션도 상당히 분열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 강사 분이신 MECO님께 “그렇다면 일반 사회에서와 이반 사회에서의 자아 분열감은 어떻게 극복하세요?” 라고 물었고 거기에 MECO님은 “결국은 한쪽이 한쪽을 먹는 식이 되더라"라고 답했던 거 같다. 한 쪽이 한 쪽을 먹는다. 그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히 동감했다. 나 또한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일반 사회에서의 나보다 비중이 훨씬 높고, 결국엔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일반 사회에서의 나를 먹어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한 쪽이 한 쪽을 먹는다, 라는 것은 '일반 사회에서의 나'와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일반 사회에서의 나는 존재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MECO님의 '일반 사회에서의 나'의 비중이 정확히 얼마나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보다는 '일반 사회에서의 나'의 비중이 크신 듯 하다. 대학 들어와서 나는 과 생활을 거의 안 하고 큐이즈 활동만 했으며, 그 결과로 지금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큐이즈 사람들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일반 사회에서의 사람들이고, 그마저도 피상적이다. 일반인 줄 알았던 베프는 최근에 한 부치를 짝사랑하면서 일반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내 인간관계 대부분은 이반들이다. '일반 사회에서의 나'는 아주 흐릿하고 얇은 존재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것은 '이반 사회...

2013년 5월 10일: 우울함 캐기

우울함 캐기 0. 나는 음울한 것을 좋아한다. 우울과는 좀 다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음울한 것은 가끔씩 우울한 것과 맞닿아 있기도 한다. 음, 말하자면 음울과 우울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와 그 느낌의 차이인 거 같다. 우울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풀어놓으면서도 어쩐지 매력적이고 희망이 살짝 묻어있는 것. 희망이 묻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매력적인 우울함.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음울함이다. 1. 내가 좋아하는 음울함에 대한 것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어떤 특성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그 어떤 특성이라는 것은 사람들 속의 음울함을 들여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음울함을 본다는 것은 어쩔 땐 피곤하고 곤란한 일일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들여다 봐선 안 될 것 같은 남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일 때가 있다.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듯한 죄책감과 거기에서 나오는 길티 플레져. 꼭 훔쳐보듯 남의 음울함을 보지 않아도, 누군가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듯 말하는 음울함을 듣는 것도 좋다. 왜 나는 사람의 우울함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가. 그 부정적인 것에 나까지도 휘말릴 수도 있고,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에 매혹되는가.  여럿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내 안에 있는 음울함 때문인 거 같다.  누구나 나같은 음울함을 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나만 특별나게 나약해서 음울한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음울한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확신이 필요한 거 같다. 좀 구리긴 하지만 평범함이란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고 싶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음울함이라는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이것은 특히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한테 느끼는 감정이다. 어쩐지 이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은 공유되어서는 안되는 비밀 비슷한 것으로 취급될 때가 있기 때문에, 비밀을 공유한 친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가끔씩....

2013년 5월 14일: 팬픽에 대한 썰

오랜만에 소녀시대 팬픽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는 ‘책방’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태연 생일 이벤트로 암탉님이 쓰신 '소프트 보일드 키튼’ 1~6편을 다운받아 얼마 전에 다 읽었었다. 언젠가 덕력을 더 쌓아서(ㅋㅋ) 소녀시대 팬픽의 개인적 추천 리스트를 쓰겠노라고 생각했는데, 그 전에 '팬픽'에 대한 개인적 썰을 한번 써보려고 한다. 내가 팬픽에 입문하게 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난 여중을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속한 3학년 7반에는 유독 구동방신기의 팬이 많았다. 그들은 핸드폰 혹은 mp3 플레이어로 팬픽을 읽었고, 나는 그들에게 가끔씩 “너 팬픽읽냐?ㅋㅋㅋ” 면서 농담따먹기를 시전하기도 했고 어쩔 때는 그들이 읽고 있는 팬픽을 소리 내어 읽는, 그들에게는 개짱날듯한 장난도 치곤 했다. 그들 중에는 최강창민을 특히 좋아하는 애가 있었다. 뭔가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 애에 대한 개인적인 것을 말하자면, 걔는 정치적 신념이 매우매우 강한 애였고(한나라당을 싫어했고 중도좌파였을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입시가 끝난 후 어느 날(내가 속한 지역은 비평준화여서 일반고라도 시험쳐서 들어가야했다) 그 애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팬픽 인쇄본이었다. 나는 이전에도 인쇄본을 몇 번 봤음에도(제목은 잘 기억 안나는데, '혀 깨물기'라던가 '순수의 시대'라던가 뭐 그랬던 거 같다) 그 책에 관심을 보였다. “나도 한 번 보고 싶다"라고 말하자 그 애는 "1권 다른 애가 읽고 있으니까 그 애가 다 읽으면 너한테 빌려줄게"라고 말했다. 그 책의 겉면에는 'Amante'라고 쓰여 있었다. 아망떼? 나는 집에 가서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검색창에 amante라고 쳤고 바로 그 팬픽이 나왔다(….) 어째선지 나는 그것을 다운받고 mp3 플레이어에 옮기고 침대에 누워서 이게 대략 어떤 소설인지 훑어보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