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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0일

1.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잡생각을 다 한다. 대개 그런 생각들은 처량맞거나 폭력적인 것들인데, 예를 들자면 내 친구가 죽거나 아빠를 내 손으로 죽이는 거나 친척들을 몰살하는 것을 상상하는 거라든지 내 인생은 망한 것 같군 등등이다. 과외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오느라 노곤한 몸으로 지하철을 타는 것은 처량맞은 생각을 하기 딱 좋은 조건이다. 어쨌든 좋은 조건 하에서 나는 갑자기 라임오렌지나무를 떠올렸고 나는 울컥했다. “뽀르뚜가, 저는 너무 빨리 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라는 문장이 떠오르면서 유년기를 타의에 의해 박탈 당한 주인공에 빙의하여 감성에 젖었었다. 그리고 그 감성을 가라앉히자 이번에는 재능이 없는 내가 애처로워서 울컥했다. 이렇게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처량 맞은 생각을 하느라 기분이 잠잠해졌고, 어쨌든 나는 기숙사에 도착했다. 2. 왜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대로 되지 않는 걸까? 대부분의 사람은 재능이 없으며, 일부의 사람은 재능을 갖고 있어도 그 재능이 어떤 것에 대한 재능인지 알지 못한다. 아주 적은 사람만이 재능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고 그 재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철학 공부하는 데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아주 울적해져 버렸는데, 이런 나를 달래느라 ‘그래도 나한테는 어떤 재능이 있을 거야.’ 라는 자위를 했다. 그런데 어떤 재능이 어떤 재능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자기의 적성을 알았더라면 불행이 덜했을까?’ 그리고 곧바로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더 절망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적성을 택하여 자기한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그나마 성공적일 수 있는 삶을 택할 수 있으나, 일부의 청개구리 같은 인간은 자기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택해서 망할 것이라는 의심. 자기 적성이 뭔지 모를 때에는 언젠가 더 노력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잘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라도 품을 수...

2014년 12월 22일: 동아리 운영위원을 은퇴하며

동아리 운영위원을 은퇴하며 운영위원을 공식적으로 그만둔 건 저번 금요일 동아리 종강총회 때였지만, 운영회의 단체카톡방을 나간 건 오늘이었다. 짤막하게 인사를 남기고는 미련 없이 카톡방 나가기를 눌렀다. 동아리 운영위원을 처음으로 하게 된 때는 내가 1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1학년 2학기에 교류팀장을 하게 된 건 악몽과 같았다. 나의 경험 부족과 총체적인 동아리 운영의 똥망 때문에) 그 이후로 2학년 1학기만 빼놓고 계속 동아리 업무에 관여했다. 내 친구들이 다들 동아리 업무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동아리 일을 안 할래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번 학기 퀴플 편집장까지 맡게 되었다. 편집장 일은 아주아주 고되고 나를 피폐하게 했다. (왜냐하면 퀴플 편집장마저도 처음 맡는 일이었고, 나는 끊임없이 나의 자격미달 여부를 고민했다) 편집장 일을 끝내고 나는 정말로 업무 같은 데에 질려 버려서, 그 이후로 명목상으로 계속 동아리 운영위원이긴 했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왜 운영위원 일을 하게 되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동아리에 더 깊이 발을 딛어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가입하게 된 동아리는 신기한 거 투성이었고 동아리방에 가는 일은 즐거웠지만 생각만큼 거기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진 못했다. 그러니까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았고 인사를 받게 되는 일이 많았지만 학교가 끝나고 맛있는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하거나 술자리에 끼어들거나 등등의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조인트에 나가도, 술을 마시지 않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여자 이야기에 도통 흥미가 없다보니 큰 행사에 나가도 친구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동아리 운영위원 일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드는 촉매가 되어 주었다. 어떤 사람과 일정 시간을 보내면 당연히 친해지게 마련이며, 친해지기까지 보내야 하는 시간의 임계점을 넘길 수 있는 수단 중 많은 사람들이 즐겨 ...

2014년 12월 12일

1. 인식론 수업과 초급독일어 랩 수업이 종강했다. 이제 다음주 금요일에는 인식론 시험을 치기만 하면 된다. 독일어 랩 수업은 어떤 독일어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해석하고 같이 따라 부르는 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님포마니악 OST인 람슈타인의 Fuhre Mich가 떠올랐고 이것을 같이 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랩 수업이 끝나고 랩 수업에 대한 평가지를 조교님이 나누어 주었고 평가지는 다 독일어로 쓰여 있었다. 나는 몇몇 단어를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질문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물론 귀찮으면 대충 눈치로 유추하고 넘어갔지만. 설문지를 내자 조교님은 Tshuss! 라고 인사를 했고 나는 왠지 그 발음이 어색해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츄스.. 이랬다. 어쨌든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심리철학 공부를 했다. 6장을 읽는 데에는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걸렸다. 놀랍도록 집중한 결과였다. (물론 중간에는 트위터도 하고 게임도 했지만) 그런데 6장을 다 읽고 나니 무척 배가 고파서 동아리방으로 갔다. 거기서 사람들이랑 노닥거리다가 피자를 시켜먹고 운영회의에 참석하고 그랬다. 운영회의 사람들은 뒷풀이에 갔는데 나는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시험 공부를 해야 하기도 해서 가지 못했다. 어둑할 때 찬 공기를 쐬며 기숙사로 돌아갈 때에 참 외롭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허이모의 진지한 조언 이후로 적당히 외로움을 컨트롤하며 살고 있다. 2. 기숙사에 도착하고 나서는 허리도 뻐근해서 침대에 누웠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자정 30분 전에 일어났는데 잠이 잘 안 깼다. 겨우 일어나서 책상에 앉으려는데, 한 달 동안 치우지 않고 쌓아 온 쓰레기들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정리정돈을 싹 했다. 마시고 먹고 남은 쓰레기들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엄청난 깡통들과 비닐 봉지들, 심지어 KFC 박스도 굴러 다니던 상황이었다. (아마 KFC 박스 안에 남은 치킨에는 훌륭하게 곰팡이가 피어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냄새는 잘 안 났다....

2014년 12월 8일

1. 요새는 끔찍하도록 밤잠을 설친다. 원래는 2시에서 2시 반 사이에 잠들곤 했었는데, 요새는 3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고 4시까지 잠이 안 온 적도 많았다. 어제는 5시 넘어서 잠이 들었는데 그건 늦게 들어온 룸메가 한시간동안 씻느라 왔다갔다하고 레포트를 쓰는지 키보드 소리가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5시 넘어서 잠이 든 건 그리 큰 문제가 되진 않았는데 왜냐하면 일요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월요일. 잠이 하도 안와서 3시 반부터 일기를 쓰고 있는데 룸메가 들어왔다. 어쨌든 나나 룸메나 늦게 잠드는 일이 잦을 것 같다. 룸메의 경우 시험공부를 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거겠지만. 나는 공부를 하지 않지만 잠이 안와서 늦게 깨어있는 거고. 이런 시간에 공부를 하면 좋으련만.. 이라는 생각은 무시하도록 하자. 머리가 아프다. 2. 어쨌든 수면패턴이 완전히 망가져서 하루종일 제대로 공부를 하는 날이 드물었다. 대체로 낮 시간이 비어 있으면 낮잠을 자서 수면 시간을 보충한다. 기묘하게도 낮잠은 또 그리 잘 온다. 요새는 밤잠보다 낮잠의 질이 더 좋아진 것 같다. 어쨌든 낮잠을 잘 자서 밤잠은 또 안 온다. 악순환이지만 낮잠을 자지 않으면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 아마 내일 기호논리학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기숙사에 와서 낮잠을 세 시간 잘 가능성이 높은데, 낮잠을 자게 되면 또 잠에 취해서 저녁 때까지 제대로 공부는 못할 거다. 화요일에는 초급독일어 시험이 있고, 나는 독일어 공부를 중간고사 이후로 아예 놨다. 수업조차 제대로 안 들으니.. 어쨌든 걱정이 무척 된다. 내 인생 망한듯.. 3. 오늘은 또 속이 안 좋았다. 가스가 차고 소화가 안 되어서 속이 저녁 내내 더부룩했었다. 기숙사 와서도 계속 더부룩해서 내 등을 주먹으로 쿵쿵 치면서 가스가 빠져나가길 바랐다. 물론 헛구역질은 한 백만번 정도 했다. 다행히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울 즈음에는 가스가 많이 빠졌지만, 이제는 속이 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가 살살 아팠는데 그것...

2014년 11월 20일

중간고사가 끝난 뒤로 끔찍하게 집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수업 세 개가 있는데, 제대로 듣는 건 하나도 없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늘 핸드폰 배터리 부족에 시달린다. 수업 시간 내내 핸드폰을 만지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는 것은, 집중 안 되는 수업을 억지로 듣는 것만큼 힘들다. 꼿꼿이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만지고 있노라면 어깨와 목이 결린다. 딴짓하느라 결린 목과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때만큼 나 자신이 한심한 때도 없다. 나는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보다도 학점 따는 요령을 모르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황하는 아이보다도 집중을 못하고 공부를 못한다. 나는 어제 동아리 신입생 퀴어이론 세미나 발제를 맡았는데, 세미나 내내 자조 섞인 자학을 했다. 그리고 자학을 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자학은 그저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한 행위일 뿐, 다음부터 잘해야겠다는 의지의 발로가 아니다. 이런 내가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저 취업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은 쓸데없다는 것을 알아도 자학을 멈출 수 없다. 자학을 해야 내가 편하기 때문이다. 자학의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 자학을 하는 내 입을 틀어 막느라 무척 힘들었다.

2014년 10월 1일

1. 몇 번이고 문장을 지웠다 다시 쓰고, 결국에는 노트 하나를 완전히 삭제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새 노트를 불러와 새로이 쓰고 있다. 에버노트에다 쓰는 중이지만, 이 글을 다 쓰면 텀블러에 업로드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올리겠노라 마음을 먹으면 문장이 힘겹게 나온다. 왜냐하면 진솔하면서도 ‘멋진’ 글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때문이다. '진솔하면서도’, '멋진’ 글을 올리고 싶은 것은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줬으면 하는 그 진부하고 추한 욕망이 발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랑해 줬으면… 그 욕망 때문에 내가 열심히 트위터를 하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쓴다. 2. 하지만 요새는 이 모든 것이 다 지리멸렬하다. 언제는 진부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듯한 문장이지만 사실 늘 그래왔다. 지리멸렬하기 때문에 이 글을 끝까지 쓸 확신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 문장을 타이핑하는 손가락이 몹시나 무겁다… 3년째 쓰고 있는 이 노트북의 키감은 그리 좋지 않다. 키감이 좋지 않기 떄문에 손가락은 쉬이 피곤해진다. 그래서 타이핑하는 게 너무 지겹다. '그래서 타이핑하는 게 너무 지겹다’ 라는 문장을 쓰는 순간 손가락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글을 멋지게 쓰려는 태도가 흐트러졌다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아 이제 걍 솔직하게 쓸래. 멋지게 보이는 것 좆 까라 하자. 각을 잡고 어려운 한잣말을 쓰고 힙한 이론서에서 차용한 듯한 어려운 단어들을 잘 사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나를 더 지리멸렬한 감정에 빠져들게 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질린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빨리 내년에 서드 임팩트가 일어나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을 꿈꾸는 것이다… 3. 9월 이후 그냥 사람 만나는 거 다 싫고 동아리방에 열심히 나가는 것도 싫고 트위터도 다 싫어지는 순간이 많이 찾아왔다. 동아리방 나가기 싫은 거야 뭐...

2014년 10월 11일

1. 이지엔 프로 3알을 꺼내 삼켰다. 이 독한 진통제로 갈아탄 지는 몇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약발은 아주 확실하다. 자궁을 쥐어 짜는 고통은 사라져도 허리는 뻐근하다거나, 어딘가가 아픈 것 같은 느낌조차 없이 아주 평온해진다. 다만 독한 진통제인 만큼 위벽이 시큰거리는 느낌은 이지엔식스 애니를 삼켰을 때보다 더 강하다. 그래도 이 약으로 갈아탄 것은 잘한 짓이다. 언제 이지엔 프로를 먹다가 애니를 먹었을 때 전혀 고통이 경감되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어쨌든 생리통이 더 심해진 모양인지 이 독한 약으로도 세 알 정도를 삼켜야 하며, 오늘 세 알째 삼키자 약이 다 떨어졌다. 약발이 도는 상태에서 공부를 했다. 2달 간 내지 않았던 연체료 700원을 내자 열람실 좌석을 끊을 수 있었다. 심리철학 참고 논문을 읽었는데, 알파벳만 한참 구경한 느낌이다. 전혀 내용이 들어 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쓸데 없는 알파벳 구경을 두세시간 정도 했고, 초급독일어 2 공부를 조금 하고 나서 도서관을 박차고 나왔다. 기숙사에서 한두시간 쉬고 끼니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숙사 삼거리까지 걸어오자, 그냥 바로 버스를 타고 낙성대에 나가 콰트로치즈와퍼를 포장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버거킹으로 갔다. 그때 마침 성녀에게서 답장이 왔고, 콰트로치즈와퍼를 포장한 채로 기숙사로 안 가고 성녀의 자취방으로 갔다. 하루 종일 조립한 컴퓨터를 원활히 작동시키려고 노력하는 성녀 옆에서 와퍼를 먹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했다. 결국 성녀는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고 종로에 가지도 않았다. 나오는 길에 GS 슈퍼마켓에 들렀다.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오버나이트 생리대 대신 슈퍼사이즈 탐폰을 사 들고 나왔다. 이 몸뚱아리에 드는 생필품은 많다. 인터넷으로 생리대와 탐폰을 잔뜩 사서 쟁여 놓자고 생각했다. 2.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병을 앓고 나서 나는 참 무료했고 무료해서 초조했고 무료해...

2014년 10월 16일: n십년 뒤의 한심의 아이콘으로서의 삶

1. 우연히 동아리방에서 40대의 나를 상상했다. 망트는 메코의 4, 50대 시절이 궁금하다고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을 듣자 나도 그것을 상상해 보았다. 일단 내 머리 속을 스쳐간 상상은 이렇다. 나를 뺀 나머지 친구들은 어떻게 해서든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중년의 나는 끔찍하지만 어떻게든 숨을 쉬고 살 것이라는 것. 나를 뺀 친구들은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은 대책 없이 낙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내가 끔찍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지나친 비관주의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 내가 예상하는 내 40대의 삶이 끔찍한 이유는 내가 계속 공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 잡는 대신, 늙어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는 선택은 아주 똑똑한 사람 혹은 굳이 돈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적합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적절하고 적합한 선택을 매번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격언이 괜히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내가 아주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또한 앞으로 나는 더더욱 돈이 부족해서 허덕일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따위로 흔들릴 결심은 결심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므로 하루빨리 그 결심이라는 애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난한데 대학원 가면 망해요 라는 소리에 흔들린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가지 말아야 한다 라는 요지의 트윗을 기억하며) 그런데도 나는 계속 부모님한테 대학원 가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뻥을 소극적으로 치고 있고,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있고,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도 안 잡힌 채 이렇게 살고 있다.. 아빠한테서는 씀씀이를 줄이라는 말을 꾸준히 듣고 있으며 (밖에서 사 먹는 밥은 얼마나 비싼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엄마한테서는 유학 준비를 하는...

2014년 10월 23일: 공감에 대하여

1. 공감만큼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감정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랑 친해지고 싶고 저 사람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한다면 보통 그 사람과 통하는 게 있어야 할 텐데, 혹은 그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공감이란 건 전자와 후자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감정이다. 이렇게 쓰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공감하는 게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사람이 특별해지는 순간 중에는 그 사람과 내가 무엇을 공유한다는 감정, 즉 공감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쨌든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기만 하면 된다. 그 사람이 달라 보인다거나, 그 사람이 너무 귀여워 보인다거나. 그 특별한 계기 중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공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2. 전에는 무언가에 참 쉽사리 공감하고 사실 지금도 좀 그렇다. 그러나 전과 지금이 좀 다른 거라면,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어떤 것에 잘 공감할 수 있었고 그 공감하는 감정에 거리낄 게 없었으나 지금은 공감이란 감정을 조심스럽게 다룬다는 것일 테다. 대학 와서 얻은 소중한 지혜 중 하나는 언제나 나는 어떤 사람을 오해할 수 있으며 그 사람에게 느끼는 것들, 그 사람이랑 나누는 것들 배후에는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감 또한 오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내가 그 사람에 대한 상을 만들고, 그 상에서 멋대로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 내어 자위한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니 내 안에 공감의 감정이 떠오르는 순간 나는 멈칫한다. 3. 이런 트윗을 봤다. 나 너한테 너무 공감이 된다며 다가오는 사람들 모두 하나 같이 이상했다는 트윗이었다. 나는 타임라인을 손가락으로 밀고, 그 트윗은 시야 밖으로 밀려나간다. 그러나 그것은 내 머리 바깥까지 밀려 나진 않았다. 누군가가 나한테 공감이 된다며 다가 오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나는 거기에 대해 어떤 것을 느끼며 어떤 태도를 취할까? 일단 그...

2014년 8월 18일

1. 이 집안은 글러먹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친오빠 생일 이틀 전, 가족들은 동네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쿠팡에서 산 곳이고, 예상대로 그 곳은 좆같았다. 어중간한 맛이었고 피자는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 최악인 것은 저녁 먹는 시간이 지루했다는 것이다. 친오빠는 편입 공부를 하고 있고 부모님한테 토라진 상태라 말이 없다. 엄마나 아빠나 누구 하나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얘기해봤자 시덥잖은 과외 이야기 정도만 했다. 내가 가족한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돈 버는 이야기, 또는 학업. 어쨌든 엄마는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피자를 4번 리필해서 마지막 피자는 포장해서 가져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각자는 방으로 들어갔고, 아빠는 거실에서 무협만화를 읽다가 혼자 술을 먹거나 했다. 물을 뜨러 거실로 나갔을 때 아빠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배가 고파서 라면 끓이려고 냄비에 물 올렸을 때 아빠는 뭐라고 타박을 했다. 그 때에는 이 사람은 존나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득 이 집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안 사람들은 서로 소원해졌고, 가까워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나는 그 사실이 몹시도 고맙지만 어쨌든 궁금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왜 같이 살아서 서먹한가.  2. 세상이 너무 지겹다. 무언가에 몰두했으면 했다. 그렇다면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지리멸렬함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몰두한 상태에서 몰두하지 않은 상태로 내팽겨쳐졌을 때의 단절감이 무섭다. 그럴 때 나는 상당히 죽고 싶어진다. 어쨌든 총체적으로 좆같은 상황에 처해 있고, 나는 지금 강박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그러니까 덕질할 수 있는 것 말이다. 3. 세상이 너무너무 지겹고 죽도록 외롭다고 방금 위에서 썼지만 오늘 밤에는 활짝 ...

2014년 7월 19일: 무의미함과 우스움

무의미함과 우스움 1. 무의미의 세계에 지나치게 빠져드는 건 좋지 않아요, 라는 친구의 조언을 흔쾌히 들었던 나는 계속 무의미함에 젖어들고 있다. 무의미함을 느끼는 것 중 몇 가지는 나의 고민, 나의 감정, 그리고 내가 그토록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던 타인의 감정과 고민이다. 나의 고민이야 이렇다. 어떻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먹고 사는 데에도 지장이 없을까? 그 고민이 절실했던 시절에는 공부가 나한테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고,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쭉 공부하고 싶었다. 친구는 나를 두고 “정체성 공부하려고 철학과 온 애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내가 하려는 공부는 망할 게 뻔하며, 다른 길을 찾으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라는 것은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덕질 정도의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무척이나 고민했으나 무의미함에 빠져든 나는 공부고 뭐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있는 삶에 끌린다. 2.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버튼 투성이었고 그 버튼은 민감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이야 뭐 무의미함에 젖어서 버튼이 전보다야 둔감해졌다. (버튼이 없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버튼이 눌리는 일이야 당연히 가족이랑 젠더다. 감정적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부모한테 오히려 집착했던 나는 이제 부모가 뭔 무심한 말을 하든지 나를 어떻게 상처 주는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이야 상하는데 그 상한 감정을 붙잡고 있어 봤자 뭐 하겠냐는 것이다. 나는 가족이 불편하고, 가족은 내 감정을 상하게 만들지만 어찌 되든 상관 없는 기분. 3. 그래서 그런지 상처만 핥으며 누구든지 자기를 건드리면 죽여버리겠다는 여린 사람,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안타까우면서도 우스워졌다. 이해를 못 해서 비웃는 게 아니다. 다만 계속 저렇게 상처를 핥고 있으면 낫지도 않고 감염되어서 곪기만 할 뿐이며 무엇보다 ‘재미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2014년 3월 23일: 나의 음악 취향

나의 음악 취향 누군가 나한테 좋아하는 음악 아티스트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꼭 이 세 아티스트는 언급할 것이다. AVTechNO!, Bjork, Sigur ros. 중학생 때에는 Linkin Park를 좋아했고 고등학생 때에는 Guckkasten을 좋아했고, 여전히 나는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아무튼 현재 매혹된 아티스트는 저 셋이니까. 저 세 아티스트의 매력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겠다. AVT는 강렬하고 독특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좋은 가사를 담았다. Bjork는 어쩔 때는 속삭이는 듯한, 또는 나른하고 힘 빠지는, 또는 강렬한 목소리로 내게 다가온다. 독특한 사운드에 어우러져 말이다. Sigur ros는 반짝이는 사운드와 꿈 꾸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로 둥둥 뜨는 듯한 기분을 내게 준다. 이렇게 쓰고 나니 나의 음악 취향이 대충 윤곽이 잡힌다. 나는 일단 독특한 사운드를 좋아한다. 사운드는 보컬보다 중요하다. 내가 매혹을 느끼는 사운드는, 그 아티스트만이 갖고 있는 개성적인 사운드다. 그래서 나는 ‘실험적인’ 사운드도 좋아한다. 이러다 보니 내가 매혹당하는 사운드는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노래의 사운드를 들으면 밋밋한 느낌을 받는데, 그런 사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사운드가 쉽게 꽂히지 않는 느낌을 받겠지.   이러다 보니 나는 디바의 음악들에 매혹당하지 못한다. 디바의 음악은 보통 디바의 음색과 가창력이 돋보이기에 상대적으로 사운드는 밋밋하다. 나에게 있어 보컬은 하나의 악기에 지나지 않기에, 보컬의 음색과 가창력만 돋보이는 음악은 별로다.   나는 온갖 사운드가 버무러진, 독특한 음악이 좋다. 그래서 나는 요새 Sigur ros에 꽂혔다. Sigur ros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작아진 내가 음악 안에 섞인다. 그래서 둥둥 뜨는 것 같다. 또는 하늘에 있는 오로라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오로라가 걸린...

2014년 1월 2일

불안증. 무언가를 이토록 바라본 적도, 후회한 적도 없었다. 이틀 동안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 역시 꼬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게 되어버렸으니. 나한테 있어서 이과 공부는 고등학교 수준까지만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에 오고 싶어서 점수에 맞춰 과를 선택했고, 그 과는 나한테 너무 버겁다. 전출할 수 있는 인원도 엄청나게 적다. 나는 왜 안일하게 대학교 생활을 했는지, 왜 나는 학점을 잘 받지 못했는지 처음으로 후회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친구들은 내가 곁에 오랫동안 있으리라고 믿고 있고,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 탈출할 수도 없이, 그저 가만히 몇 년을 버텨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게 너무나 싫다. 제발 내가 담담하게 견뎌야 하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내가 죽지 않고 활발히 살아서 공부하고 싶다.

2014년 1월 20일

여행 갔다가 자취방에 왔다. 자취방은 여전히 추웠고 쓸쓸했다. 보일러를 틀었다. 곧 있으면 뜨거워질 것이다. 언니는 무엇이 불안한지 정말정말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톡을 5개나 보냈다. 여독 때문인지 대장이 말썽이다. 화장실을 여러 번 왔다갔다 했다. 갑자기 일기를 쓰겠다 마음을 먹었다. 귀찮음을 이기는 게 제일 힘들다. 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과 결과는 6시 이후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 올라왔다. 이미 결과는 알고 있으나 빨리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