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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1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감상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표정. 금세 사랑에 빠진다. 촌스러울만치 화려하고 과장된 화면 속에서 그녀는 노래하고 춤을 춘다. 결 좋은 머리카락은 부시시해진다. 깨끗한 옷은 결국 더럽고 보풀이 인 스웨터가 된다. 마츠코는 혐오스럽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은 점점 멍청해 보인다. 우리는 그녀가 절망하기 전 흘러나오는 음악과 율동에 깔깔 웃는다. 그러나 그렇게 웃기만 할 것인가. 혐오스러운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릴 것인가. 과외하는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한 리뷰를 찾았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그녀에 대한 연민이 깃든 평이 많았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 파고들면, 그녀의 삶은 눈물겹다. 그저 마츠코는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았는데 번번이 좌절되고, 그녀는 점점 잊혀져 간다. 아무리 지옥 같아도 혼자인 것보다 낫다는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생생했다. 하지만 석연찮았다. 그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는 정도로 끝내야 할까. 매 맞는 여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여자에 대해 말하는 페미니즘을 조롱하듯, 수동적이고 어쩔 때에는 참으로 멍청한 여자가 나오는 작품. 이것을 어찌해야 할까. 교수님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이거 어떡할까요. 그러게요, 어떡할까요. 그렇다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는 틀려먹었어, 이런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뜯어 고쳐야 해, 라고 시원하게 말할 수도 없는데 말이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다시끔 물컹거리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더 있다. 그녀를 그녀 자체의 개인적인 삶에 한정하여 말하기엔 부족하다. 오히려 개인적인 삶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참으로 힘 빠지는, 어이 없게 죽은 그녀에 대한 애도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으므로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초월한 맥락에서 그녀를 이야기할 수 없다...

2013년 11월 6일: 나와 나, 자기혐오

나와 나, 자기혐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악의는 거의 대부분 나 이외의 것을 향해 있었다. 물론 나한테 실망하게 되는 일도 많고, 내가 싫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는 와중에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싫어해,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라는 소리를 깊이 공감하지 못했었다. 어쩔 때에는 ‘왜 나를 싫어하는 거지? 어떻게 나를 싫어할 수가 있는 거지? 나잖아.’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최근에야 이러한 생각은 내가 싫어하던 혈연가족 짱짱맨들이 하는 소리에서 주어만 바뀐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가족을 싫어하는 거지? 어떻게 가족을 싫어할 수가 있는 거지? 가족이잖아.” 무척이나 똑같은 소리였다. 나는 반성했다. 그리고 자기 혐오에 대한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를 타인으로 생각하면 자기 혐오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을 혐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여러 명이다. 한 몸에서 살고 있다. 마치 혈연 가족이 한 집에서 사는 것처럼. 혈연 가족과 다른 점은, 혈연 가족에게서는 독립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의절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는 나한테서 독립할 수 있는가? 나와 의절하고 살 수 있나? 그러니까 자기 혐오는 치 떨리게 싫은 혈연 가족과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싫어하는 나한테서 독립할 수 있다면. 싫어하는 나와 의절할 수 있다면. 싫어하는 나를 쫓아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도무지 나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편해질 수 있을텐데. 싫어하는 나를 쫓아내는 방법은 싫어하는 나를 죽여버리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밖에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이후에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만. 결국 도무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택할 방법은 죽음 혹은 싫어하는 나와 불화하면서 사는 것 혹은 적당히 싫어하는 나와 타협하며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2013년 11월 11일

스스로를 추하다고 생각하는가?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봤던 질문이었다. 심리검사에 등장하는 질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문장을 한참이나 들여다 보았다. 나는 내가 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끔찍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싫지 않다. 내가 예쁘든 추하든 나는 날 사랑한다. 내가 나 자신을 추하다고 여기는 것은, 남들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사랑 받기에는 나는 별로지 않을까. 나 이외의 것이 나를 외면하니, 나라도 이 불쌍한 괴물을 끌어 안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나를 더욱 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 애인은 물론이요, 한 달여 즈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한테서도 그런 말을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간질간질하다. 기쁜데, 많이 낯설어서. 기쁨과 낯섬 중에서 기쁨이 크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기분보다는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끼지만. 나를 봐 주세요,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내 안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올라온다. 나는 내가 애처로워진다. 조금 울컥하기도 한다. 그래, 너도 사랑받아야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외면 당하기에는 억울하다. 요새를 생각하면, 많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토록 호의를 받은 적은 없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들에게 사랑 받을 만한 존재라는 자신감이 조금씩 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다. 그래도 이대로 쭉 나아간다면 이 불쌍한 애가 만족할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노력할테다. 남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이야기를 듣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렇게 나한테 호의를 갖게 된 사람이 언젠가 나를 사랑해주겠지.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2013년 11월 21일: 자해에 대하여

자해에 대하여 사실 자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비정상적'인 일도 아니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도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을 해치고 있다. 가장 만연한 자해는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하는 것일 테다.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지 않는다던가, 술이나 담배를 한다던가, 잠을 부족하게 잔다던가 등등. 또는 손톱, 손톱 주변의 살갗을 뜯는 버릇. 많이들 갖고 있는 버릇일 것이다. 손톱이나 살갗을 심하게 물어뜯으면 피가 난다. 염증이 나기도 한다. 아플 것이다. 이 또한 자해가 아닌가.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 또한 자해이지 않을까. 하지만 위에서 든 예들은, 보통 자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한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라고 길게 늘여서 말한다. 자해, 라고 우리가 명명하는 짓을 떠올려본다. 일단 피가 흐르는 게 생각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보다 좀 더 자신을 해하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덧붙여 '더’ 아파보인다. 생각을 계속 하면 몇 가지 더 떠오르겠지만, 이 정도까지만 적어본다. 자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 없이 할 수 있다.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한다던가, 손톱을 물어뜯는 짓에는 매번 이유가 붙지 않을 것이다. 불안해서 그런 버릇을 들였을수도 있지만, 이미 버릇이 되었다면 별 이유 없이 했을 것이다. 자해라는 행위에 굳이 이유를 끄집어내자면, 나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떠오른다. 첫째는, 피를 냄으로써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면 첫 번째 이유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죽은 듯이 살아간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둘째는 시위의 일종으로서 자해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힘들다고 보여주기 위해서. 두 번째 이유로 자해하는 것은 퍼포먼스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여러 가지 자해를 한다. 일단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고, 담배를 피고, 손톱은 물론이고 손톱 주변의 살갗도 물어뜯는다. 머리카락도 자주 ...

2013년 11월 22일

요새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내가 과연 레즈비언인지,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애자인지 모르겠다. 심지어 내가 과연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모호해진다. 중고등학생 때, 잠깐이나마 남성을 마음에 담아둔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바이섹슈얼인지 호모섹슈얼인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성을 매우 얕게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남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거기에 더불어, 페니스를 내 질에다가 넣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남자랑 섹스하는 꿈을 꿨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긴 했지만. 그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그래도 나의 젠더는 여성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내 몸의 곡선이 좋았다. 봉긋하게 가슴이 솟은 거라던가, 허리가 살짝 잘록하게 들어가고 골반이 튀어나온 모습. 괜찮았다. 그리고 가랑이 사이에 무언가 튀어나오지 않고, 검고 억센 수풀만 보였다는 것도 좋았다. 페니스가 달려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고 난 후, 동아리 사람들과 어울리고 가끔씩 스트레잇과도 어울리고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을 공부하다보니 내 젠더 또한 모호해져버렸다. 여성 전반과 나와의 괴리가 꽤나 많이 느꼈다. 짧은 머리를 하고 톰보이룩을 즐겨 입는 나, 긴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는 여자. 레즈비언과 나와의 괴리 또한 느꼈다. 동아리 언니들의 식과 나의 식이 다르다는 것을 번번이 깨달을 때마다, 틈새는 더욱 벌어졌다. 그 엿같은 ‘진성’ 레즈비언의 정의, 여성의 몸과 여성의 정신을 가지고 여성스러운 여성을 사랑하는 사람. 나와 어찌나 다른 말인가. 내가 과연 여성의 몸을 가졌는지, 여성의 정신을 가졌는지, 여성스러운 여성을 사랑하는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는데. 이틀 전에 꿈을 꿨다. 내 가랑이 사이에 페니스가 달려 있는 꿈이었다. 꿈 속의 나는 무척이나 초조했었다. 그 초조함은 성적인 흥분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마치 최음제를 먹은 것마냥, 나는...

2013년 11월 23일

어떤 것을 긍정하기보다, 어떤 것을 부정함으로써 나의 정체성은 형성된다. 그러나 계속해서 정체성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다 버린다면, 울타리 안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울타리 밖에서 나를 설명해주는 것을 발견하기보다는, 울타리 안에서 나를 부정하는 것을 발견하기가 더 쉽다. 결국 나는 끊임 없이 밖으로 내다 버린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제는 인간도 아니다.

2013년 1월 30일 - 자아분열과 커밍아웃

자아분열과 커밍아웃 1월 30일자 KSCRC 퀴어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본다. 강의는 커밍아웃에 대한 것이었고, 강의 및 질의응답 시간에 ‘자아분열'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아분열이라는 것은 일반 사회에서의 '나'와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분리된 것을 뜻하는 듯 하다. 그래서 각각의 사회에서 취하는 행동 양식, 커뮤니케이션도 상당히 분열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 강사 분이신 MECO님께 “그렇다면 일반 사회에서와 이반 사회에서의 자아 분열감은 어떻게 극복하세요?” 라고 물었고 거기에 MECO님은 “결국은 한쪽이 한쪽을 먹는 식이 되더라"라고 답했던 거 같다. 한 쪽이 한 쪽을 먹는다. 그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히 동감했다. 나 또한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일반 사회에서의 나보다 비중이 훨씬 높고, 결국엔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일반 사회에서의 나를 먹어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한 쪽이 한 쪽을 먹는다, 라는 것은 '일반 사회에서의 나'와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일반 사회에서의 나는 존재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MECO님의 '일반 사회에서의 나'의 비중이 정확히 얼마나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보다는 '일반 사회에서의 나'의 비중이 크신 듯 하다. 대학 들어와서 나는 과 생활을 거의 안 하고 큐이즈 활동만 했으며, 그 결과로 지금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큐이즈 사람들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일반 사회에서의 사람들이고, 그마저도 피상적이다. 일반인 줄 알았던 베프는 최근에 한 부치를 짝사랑하면서 일반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내 인간관계 대부분은 이반들이다. '일반 사회에서의 나'는 아주 흐릿하고 얇은 존재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것은 '이반 사회...

2013년 11월 23일

세상이 시끄러웠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조용히 가득 채웠다. 밝은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형광등 불빛이 밝아서 싫었다. 계몽에 대해 써야 했다. 너무 밝아서 눈을 감아도 환한 세상이다. 계몽은 빛 공해이다. 네온사인 십자가 때문에 사람은 악몽을 꾼다.

2013년 4월 3일

과외가는 길에 탔던 지하철에서 폰으로 일기를 썼었다. 베가레이서(a.k.a 베레기)의 구린 터치감을 견디며, 손가락이 뻐근해지도록 일기를 길게 썼었다. 다 쓰고 나서 태그를 입력하고 publish를 누르려는 순간 갑자기 text 창은 link 창으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열심히 썼었던 내용은 홀랑 사라지고 말았다. 참으로 황망하여 트위터에다 뭘 끼적이고는 그만뒀다. 과외 끝나고 자취방에 돌아가서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고 말았다. 지금은 수업 중간의 쉬는 시간이다. 약 오십분 정도를 견디면 오늘 수업은 완전히 끝나고, 짧고 굵었던 이번주 학교 수업은 마무리된다. 남은 삼일간은 학교에 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여유로운 건 아니다. 조별과제가 남아있고 다음주 퀴즈가 남아있고 데이트도 해야하고 과외도 가야하고 뭐 그렇다. 느긋하게 침대에 누워서 쉴 수 있는 시간은 오늘 오후에만 해야할 듯 싶다. 최근의 삶을 간단히 말하면 고단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제는 정말 고단했고, 지금도 사실 고단하다. 잠이 부족해서 머리가 아팠고 수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며칠 전부터 스마트폰 텍스트뷰어로 ‘우리는 아프리카로 갑니다’ 를 불러내어 읽고 있다. 소녀시대 팬픽이다. 이번에 불러낸 것을 다 읽으면 이 작품은 세 번째 완독하게 된다. 고단할 때마다 생각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팍팍한 삶의 고단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술집에서 과일 안주를 마련하는 야간노동, 다방에서 커피배달 일을 하는 레지. 달동네, 가난함. 그 가운데에서 은은한 희망과 반짝이는 사람의 선함이 묻어나온다. 삶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고단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요즘, 이 작품만큼 나한테 와닿는 작품은 없는 거 같다.

2013년 4월 6일

새벽 두시가 넘었음에도 옆방에서는 계속 떠드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옆방 사람이 전화를 하나 생각했으나 웃음소리가 겹치고 다른 목소리가 나는 걸 보면 다른 친구가 왔나 싶었다. 말소리가 들리고 간헐적으로 크게 울리는 웃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털이 쭈삣 섰다.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내 팔자가 기구하구나 싶었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꿈을 하나 꿨다.  애인이 나한테 같이 자살하자고 하는 꿈이었다. 자신은 이미 자살할 날을 정했고, 그때 너도 같이 죽자고 말했다. 후일에 이뤄질 죽음은 자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다. 돌이킬 수 있고 없고의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서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나는 죽기 싫은데 죽어야 한다는 혼란스러움에 시달렸다. 이 장면에서는 여러 이미지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보였던 거 같은데 기억은 안난다. 그러다가 알람 소리를 듣고 깼다. 뒤숭숭한 기분이 드는 꿈이어서 오늘 애인과 점심을 먹으면서 간밤의 꿈을 이야기했고 애인은 많이 걱정했다. 나는 초조해서 그런 꿈을 꾼 거 같다며, 특히나 전날 밤에는 옆방의 소음 때문에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어서 그런거 같다고 말했다. 요새 나는 초조하다. 애인도 거기에 동의했다. 심지어 애인과의 데이트에서도 난 계속 초조했다. 손도 계속 뜯었고 다리를 가만히 두질 못했다. 심장은 묘하게 뛰었고 신경은 날카롭게 서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최곤에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가, 할 일이 많다고 느껴지고 항상 쫓기는 기분이었다. 기분 나쁘게 기민했다. 왜 그럴까.

2013년 4월 8일

지금 들려오는 소리가 냉장고의 소음인지 옆방의 소음인지 아랫방의 소음인지 대각선 아래방의 소음인지 모를 때. 환청인지 아닌지도 모를 낮은 진동소리를 느낄 때.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 심장이 쿵쿵 뛰고 머릿속이 날카로워질 때. 어떠한 기침 소리가 들릴 때. 신경 과민이구나, 피곤하구나 싶다. 많이 졸린데 진정되질 않는다.

2013년 4월 18일

작년 2학기 말에 하도 트위터에다가 ‘성소수자 간호’ 연구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때 반쯤은 허세 비슷하게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간호학을 그냥 전공한다면 성소수자 간호를 연구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 계획을 점점 구체화시키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계획을 트위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올해 1학기에 나는 간호학과 선배님이 기부한 장학금을 받았고, 그래서 돈을 기부하신 선배님들 대표에게 감사편지를 썼어야 했다. 그 때 나는 편지에 “철학 혹은 여성학을 공부한 후 간호대학원에 진학하여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간호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라고 썼다. 그래서 지금 계획으로는 일단 남은 2년 반동안 간호학을 공부하면서 간호학과를 욕하고 심신을 너덜너덜하게 만든 다음에, 4학년을 마치면 6개월에서 1년동안 휴학해서 쉬고, 철학을 복수 전공한 후 우리학교 간호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다. 아니면 철학 복수전공이 아니라 대학원으로 여성학 협동과정에 진학할까(우리 동아리의 한 언니로 인하여 여성학 협동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철학이든 여성학이든 아는게 너무 없기 때문에 선뜻 정하기는 어렵고, 일단은 임시로. 이 두 학문이 내가 원하는 연구에 도움이 될까.

2013년 4월 16일

고등학교 같은 학교생활과 자취방을 제외하고, 대학로의 것들은 좋다. 처음으로 저녁 6, 7시가 아닌 시간에 학교 수업이 끝나는 화요일이었다. 기본간호학 및 실습이 휴강이었고, 그래서 영양과 식이라는 과목만 듣고 끝났다. 그 후에 조별 과제를 조금 하고 나니 약 4시였다. 시험이 일주일 남았지만 나는 자취방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공부할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두세번 정도 갔던 북카페도 가기 싫었다. 그 공부밖에 할 수 없는 숨막히는 답답함. 안 그래도 심신이 피로할 때에 그런 분위기 속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른 저녁같은 간식을 먹었고(아침에 굽고 남은 고등어구이와 밥) 가방에 노트북을 들고 나갔다. 거리를 산책했다. 혜화역 1, 2번 출구가 있는 골목길 안쪽이었다. 지하철역 출구가 있는 큰 거리에서는 연극 예매하셨어요? 라고 호객하는 사람들과, 노점상들과, 사람들로 적당히 북적였다. 건물은 적당히 키가 낮고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붉은 벽돌이 깔린 거리.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소극장이 몇개 보이고, 프랜차이즈 카페와 음식점이 보이고, 점점 더 들어가면 다른 가게들이 있다. 하늘은 흐렸지만 공기의 온도는 적당했고, 안 가봤던 골목 구석구석을 산책하며 행복함을 느꼈다. 그러다가 적당히 어느 카페로 들어갈까 고심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고, 나는 Brown Factory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적당히 넓었는데 평일 낮이라 그런지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거기서 레몬차를 시켰다. 노트북을 키고, 옆에는 레몬차를 두고 공부했다. 카페 한켠에서는 로스팅 기계로 커피를 볶는지 고소한 냄새가 났고, 카페 주인이 자꾸 로스팅 기계 쪽으로 가서 커피가 잘 볶아지는지 확인했다.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있는 조명은 따스한 빛을 냈고, 왠지 나는 아늑해졌다. 그렇게 3,4시간을 죽치다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대학로가 좋다. 예쁘게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키가 작은 건물들, 길바닥의 붉은 벽돌 타일, 어수선하지 않은 활기참과 생기, 빈티지함이 느껴지는...

2013년 3월 1일

알람은 8시에 맞췄지만 일어난 건 8시 반이었다. 어차피 짐이 별로 없었으므로 더 자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몰라 일어났고, 머리를 감았다. 이틀 전부터 싸놓은 짐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다시 풀러야 할 형편이었다. 어차피 부모님이 오실 때 커다란 가방을 몇 개 가져오실 것이다. 거기에다가 책을 쓸어담으면 되는데, 괜히 캐리어와 옆으로 매는 가방에 책을 쌓았다.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다시 쌌다. 옷걸이에 걸려있지 않은 옷을 접어서 캐리어에 밀어넣었고, 책장과 서랍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추려서 옆으로 매는 가방에 넣었다. 결국 10시 15분즈음에 다 쌌다. 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것은 11시였다. 아침을 안 먹고 짐을 쌌는데 그러는 도중에 몇 번 현기증을 느꼈다. 배가 고픈 상태에서 이리저리 일을 해서 그런 거 같았다. 내려가서 간단히 때웠다. 1200원짜리 맛있는라면 컵. 이제는 못 먹을 것이다. 이 학교에 오지 않는 이상. 학교 매점 말고 이 라면을 파는 곳은 별로 없는 거 같았다. 설사 이 라면은 자주 볼 수 있어도 컵라면 자체를 먹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라면은 끓여먹겠지. 라면을 다 먹고 나서 기숙사로 올라가니 룸메의 아버지께서 오셨다. 룸메 책상과 침대 위에 커다란 비닐봉지에 싸여 있던 짐은 어느새 거실로 옮겨져 있었다. 나는 거실에 있었다. 부모님은 결국 11시 50분이 넘어서 왔다. 그 사이 룸메의 아버지와 룸메는 짐을 챙기고 나갔다. 마지막으로 “안녕"이라고 인사했다. 그동안 잘 지냈다고 고맙다고 카톡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보내지 않았다. 내일 즈음 생각나면 보낼 것이다. 510호실에 나밖에 없자 나는 집안을 구경했다. 옆방을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열린다. 그곳은 내가 사는 방과 냄새가 달랐다. 햇빛의 따스한 향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방 특유의 냄새. 짐이 하나도 없는 빈 방이었지만 내가 사는 방보다 더 더럽고 낡아보였다. 다시 내 방으로 갔다. 룸메 쪽 벽에 붙어 있던 ...

2013년 5월 10일: 우울함 캐기

우울함 캐기 0. 나는 음울한 것을 좋아한다. 우울과는 좀 다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음울한 것은 가끔씩 우울한 것과 맞닿아 있기도 한다. 음, 말하자면 음울과 우울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와 그 느낌의 차이인 거 같다. 우울을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풀어놓으면서도 어쩐지 매력적이고 희망이 살짝 묻어있는 것. 희망이 묻어나지 않아도 괜찮다. 매력적인 우울함.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음울함이다. 1. 내가 좋아하는 음울함에 대한 것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어떤 특성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 때문이다. 그 어떤 특성이라는 것은 사람들 속의 음울함을 들여다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음울함을 본다는 것은 어쩔 땐 피곤하고 곤란한 일일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들여다 봐선 안 될 것 같은 남의 일기장을 읽는 기분일 때가 있다. 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듯한 죄책감과 거기에서 나오는 길티 플레져. 꼭 훔쳐보듯 남의 음울함을 보지 않아도, 누군가가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듯 말하는 음울함을 듣는 것도 좋다. 왜 나는 사람의 우울함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가. 그 부정적인 것에 나까지도 휘말릴 수도 있고,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일에 매혹되는가.  여럿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내 안에 있는 음울함 때문인 거 같다.  누구나 나같은 음울함을 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나만 특별나게 나약해서 음울한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에. 나만 이상한 게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음울한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확신이 필요한 거 같다. 좀 구리긴 하지만 평범함이란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고 싶다. 또 다른 이유로는 음울함이라는 비밀을 공유함으로써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이것은 특히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한테 느끼는 감정이다. 어쩐지 이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은 공유되어서는 안되는 비밀 비슷한 것으로 취급될 때가 있기 때문에, 비밀을 공유한 친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가끔씩....

2013년 5월 14일: 팬픽에 대한 썰

오랜만에 소녀시대 팬픽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는 ‘책방’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태연 생일 이벤트로 암탉님이 쓰신 '소프트 보일드 키튼’ 1~6편을 다운받아 얼마 전에 다 읽었었다. 언젠가 덕력을 더 쌓아서(ㅋㅋ) 소녀시대 팬픽의 개인적 추천 리스트를 쓰겠노라고 생각했는데, 그 전에 '팬픽'에 대한 개인적 썰을 한번 써보려고 한다. 내가 팬픽에 입문하게 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난 여중을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속한 3학년 7반에는 유독 구동방신기의 팬이 많았다. 그들은 핸드폰 혹은 mp3 플레이어로 팬픽을 읽었고, 나는 그들에게 가끔씩 “너 팬픽읽냐?ㅋㅋㅋ” 면서 농담따먹기를 시전하기도 했고 어쩔 때는 그들이 읽고 있는 팬픽을 소리 내어 읽는, 그들에게는 개짱날듯한 장난도 치곤 했다. 그들 중에는 최강창민을 특히 좋아하는 애가 있었다. 뭔가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 애에 대한 개인적인 것을 말하자면, 걔는 정치적 신념이 매우매우 강한 애였고(한나라당을 싫어했고 중도좌파였을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입시가 끝난 후 어느 날(내가 속한 지역은 비평준화여서 일반고라도 시험쳐서 들어가야했다) 그 애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팬픽 인쇄본이었다. 나는 이전에도 인쇄본을 몇 번 봤음에도(제목은 잘 기억 안나는데, '혀 깨물기'라던가 '순수의 시대'라던가 뭐 그랬던 거 같다) 그 책에 관심을 보였다. “나도 한 번 보고 싶다"라고 말하자 그 애는 "1권 다른 애가 읽고 있으니까 그 애가 다 읽으면 너한테 빌려줄게"라고 말했다. 그 책의 겉면에는 'Amante'라고 쓰여 있었다. 아망떼? 나는 집에 가서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검색창에 amante라고 쳤고 바로 그 팬픽이 나왔다(….) 어째선지 나는 그것을 다운받고 mp3 플레이어에 옮기고 침대에 누워서 이게 대략 어떤 소설인지 훑어보려고 했다. ...

2013년 2월 24일: 애니메이션 <요르문간드> 감상

의식의 흐름같은 요르문간드 감상문. 애니메이션 요르문간드 스토리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요르문간드를 감상 중이거나 감상할 예정이면 주의해 주세요. 요르문간드 1기를 전부 보게 된 건 가을 즈음. 그때는 이미 요르문간드 2기가 나오던 때였다. 완결이 다 나고 나서 보고 싶었기 때문에 2기는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우연히 요르문간드를 검색해 보았고, 그때서야 2기가 이미 완결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날 당장 요르문간드 토렌트를 검색하여 2기를 전부 받았다. 다 받고 난 다음 어제 오늘 요르문간드 2기 총 12화를 다 감상하였다. 열린 결말이었다. 보통 난 열린 결말에 ‘아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는 거냐고!’ 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열린 결말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시덥잖은 열린 결말보다 시덥잖은 닫힌 결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은 열린 결말은 여운을 길게 남긴다. 좋은 열린 결말로 맺은 작품은 한동안 그 작품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그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열린 결말로 작품을 마무리하려는 걸까. 요르문간드의 결말이 좋은 열린 결말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덥잖은 것도 아니다. 그냥 요르문간드 보고 기분이 꽁기하니 요르문간드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다. 요르문간드는 내가 밀리터리물에 흥미를 느끼게 만든 인상깊은 작품이다. 액션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내가 요르문간드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사실 애니메이션이었기에 재미있게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친화적이기 때문에ㅋㅋ;; 인물들이 좋다. 소년병 요나와 무기상인 코코 헥마티아르. 여기에 추가하면 소피아 발메까지. 음, 코코에 대한 발메의 사랑이 좋았다ㅋㅋㅋ 배캅을 팔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작품이다, 요르문간드는. 하지만 그렇게 케미돋는 작품은 아님. 제목 '요르문간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이라고 한다. 세계를 휘감고 있는 뱀… 이라고 한다. (자세한 건 검색을) 1기 1화와 2기 1화는...

2013년 1월 22일

나는 말을 지나치게 했으면 했지 결코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민이 있으면 친구한테 항상 털어놨고, 친구와 있을 때의 어색한 침묵은 너무도 싫어했다. 그러나 말을 아끼지 않고 지나치게 하는 특성은 여러 친구에게 막말이라는 형태로 던져졌고, 한 친구에게는 특히 깊은 상처를 남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막말은 아니었다. 내 기준에서 막말인 거 같아서 사과하면 친구는 기억을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는.) 어느 순간, 나는 말을 아꼈다. 그러나 여기서 ‘말'이라는 것을 구분해야겠다. '진솔한’ 말을 아끼게 되었다고 하자. 나의 진심이 들어간 말이면 일단 멈칫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결론은 “하지 말자.” 내가 참자. 하더라도 빙빙 돌려서 말하자. 그러한 순간이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순간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난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기까지 얼마나 답답하고 응어리졌는가. 변비도 이런 변비가 없다. 다행인건 용기를 내는 것은 순간이라는 것이었다. 일단 텍스트창을 키고 나니, 쓰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렇다, 진심을 털어놔서 그렇다. 진심을 털어놓는 것은 어떤 때는 너무도 어렵고 어떤 때는 너무도 쉽다. 지금은 쉬운 편에 속한다. 다행인 일이다. 사실 노트북으로 글을 쓴 것은 오랜만이다. 이제껏 노트북을 키면 서핑질, 유튜브, 정보를 흥청망청 소비하는 형태였다. 지금 계절학기로 듣고 있는 생명의료윤리 피드백을 작성하기 위해 겨우겨우 노트북을 켜서 썼다. 아까 전에 발송했다. 피드백을 쓴 것은 강제적인 비강제 점수 때문에. 1, 2점의 미소한 차이로 점수가 갈리는 수업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파악했는데 피드백 보내기라는 강제적 비강제 과제는 배점이 5점이나 된다. 미리 꾸준히 보냈어야 했다. 이번 겨울은 너무도 게을렀다. 중간 과제도 지각해서 내고, 중간에 엄청나게 간단한 퀴즈 정답도 보내지 않았다. 어...

2013년 1월 29일

내가 초, 중딩일 때. 그러니까 2000년대 중반 즈음. 그 때는 친구들끼리 다음 카페 또는 네이버 카페를 만들어서 친목질을 하는게 유행이었다. 우리 3명도 친목 카페를 만들어 한참 노닥거렸다. 폭파하고 새로 만드는 친목 카페가 도대체 몇 개더라. 되게 많았다. 소설도 쓰고 그랬다. 오랜만에 그 친목 카페에 들어가보았다. 내 흑역사…ㅋㅋ 시발 개오글. 중 2병을 혹독하게 앓고 있던게 한 눈에 보인다. 나 어떡해…ㅋㅋㅋㅋㅋㅋ 최근 게시물을 보았다. 2013.01.28. 최근이다. 보니까 온통 그 애가 글을 쓰고 있었다. 거의 도배 수준. 걔가 쓴 글을 쭉 읽어봤다. 근황도 있고 소설도 있고. 그러다 결국 이걸 봤다. “이걸 언제 읽을지 모르지만 읽는다면 연락해. 밥 한번 같이 먹자. 꼭.” 그 글을 읽고 얘한테 연락해야 겠다는 건 안 자랑. 저번 주 토요일에 다른 친구랑 만나면서 얘를 한참 깠는데, 인지 부조화같은 느낌이다. 사실 망설이는게, 나는 얘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해서 만나고 싶은 건데, 한번 만나고 난 뒤에는 얘랑 계속 친구 관계를 유지해야 할 거 같아서 그렇다. 그리고 소름이 돋는다. 이 생각은 마치 한 꼴마초가 한 여자에게 ‘한번만 즐기려고’ 연락하는 거랑 비슷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민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은 '연락하자'라는 쪽에 기운다. 모르겠다. 얘는 결국 총체적 난국이야.  만나고 나서 얘의 깨방정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도 의문이고.

2013년 10월 24일

수면 시간은 적었지만, 푹 잤다. 화요일 밤에는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심장이 엄청나게 두근거렸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았고, 결국 나는 ASMR 요법이라는 것을 시도했다. 두 시간짜리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트위터를 했다. 밝은 불빛은 수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텐데. 그렇지만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다. 특히 심장이 두근거리는 상태에서는. 아마 새벽 세 시 넘어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요일은 무척이나 피곤했었다. 1시 전에 누웠는데, 금방 잠들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오늘은 몸 상태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사회철학의 이해 교수님은 니체를 깠다. 니체는 미친 놈이에요. 걔 책 읽으면 정신 없어요. 학생들이 웃었다. 러시아 명작의 이해 수업에서는, 요 몇 주부터 늘 그랬듯이 나는 집중하지 못했다. 그렇게 수업이 다 끝났다. 어디를 가야 할까. 자취방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 자취방은 전혀 편한 공간이 아니다. 너무나 피곤해서, 누워서 잘 곳이 필요하니까 억지로 가는 곳. 옆 방 사람이 조용해도 신경 쓰인다. 그냥 옆 방에 사람이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나는 견디기 힘든 것이다. 지금 이걸 쓰는 순간에는 아마 옆 방은 비어 있다. 밤 늦게 오는 걸까. 사람을 데리고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잘 곳을 찾아 보고, 안 되면 24시간 카페에 갈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피곤하다면, 화를 억누른 채로 이 방에서 견딜 것이다. 내일은 사람을 만난다. 피곤한 상태면 곤란할텐데. 오늘은 잘 잤으면 좋겠다. 내일이 되면, 본가에 내려갈 수 있다. 거기에서는 편히 잘 수 있다. 내년에 조용한 자취방에서 살게 된다면 이 불안은 없어질까? 저번 주 화요일, 나는 성원맘 자취방에서 잠 자고 밥을 먹고 같이 놀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자취방에 온 순간, 나는 자취방이 정적이 무척 싫었다. 갑자기 다른 세계에 떨어진 기분. 눈물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