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1일
헤겔 수업을 듣다가 갑자기 나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병이 도진 것이다. 지각을 해서 선생님 바로 옆 자리에 앉아 버려서, 딴 짓도 못하게 됐고,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서 그게 한국말이지만 전혀 머리에 들어 오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여기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울했다. 지각을 하느라 아침을 안 먹어서 더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밀린 일들을 해치웠다. 일단 소피스트 코멘트를 억지로라도 썼고 (3주째 쓰지 않았었다) 컴퓨터 출장수리를 불렀다. 방금 전 게임을 돌렸는데 3초만에 파워가 꺼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서 당분간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밀린 것들을 해치우니까 기분이 조금 좋아지긴 했다. 수업 시간에 나는 여기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살면서 큐이즈 동아리 활동 빼놓고 내가 소속감이나 안정감을 느낀 곳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원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있을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개 1) 동료가 없음 2) 그 곳에서 뭔가 특별한 사람이 아님 둘 중 하나인데 대학원의 경우에는 후자다. 나는 영어가 많이 딸리고 철학사적 지식도 부족하다. 이에 대해 한 선생님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공부를 하면 된다고 하는데 여전히 자신감 부족이다. 남들이 다 한다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 않나? 남들이 무리 없이 하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게 우울증의 증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남들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혼자서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남들과 같이 공부를 할 때, 그럴 때 문제가 된다.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머리에 힘 줘서 비교를 안 하고 '나는 잘 하고 있어'라고 마음 먹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내가 수능이 끝나고 이과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는 깨달음을 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