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19의 게시물 표시

2019년 12월 28일

아주 화가 난 상태로 본가 근처의 정신병원으로 갔다. 놀랍게도 대기실에 엄마를 마주쳤다. 엄마는 수면제를 처방 받으러 온 거였고, 나한테 아직도 계속 힘든 거냐고 약 계속 먹으면 안 좋은데, 라는 소리를 해서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엄마한테 내가 진료할 때 들어 오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지 직접 보라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신병원은 풀방이었다. 엄마는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았고, 과외 문의 들어왔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학기는 끝났냐,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과외 문의 들어왔고 1월 1일 저녁에 시범수업을 하러 가야 하고 학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뭐가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모든 게 다 힘들다, 과외도 힘들고, 대학원도 힘들다고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라고 말했고 나는 화가 나서 그러면 어떻게 생활비를 버냐고 물었다. 엄마는 집으로 오라고 그랬다. 그러다가 엄마가 먼저 진료실에 들어갔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나오고 나서 또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들어가서 선생님께 저 진료 받을 때 엄마도 들어오라고 말했는데 혹시 그런 말씀 안 하셨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어머니가 진료받으면서 내가 당분간은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와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고 했는데, 원한다면 어머니 들어오시게 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뒤늦게 들어왔다. 엄마가 들어오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서 말이 뭉개질 정도였다. 말이 뭉개지는 건 오랜만이었는데, 아빠한테 체벌을 당할 때 말고는 울음이 말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아무튼 어떻게는 울음에 잡아먹히지 않는 말을 꺼냈는데, 당연히도 두서가 없고 유치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힘들었는데, 힘든 건 하나도 안 들어주고, 약 안 먹으면 병신이 되는데, 그런데 나는 서울대 나왔다는 이유로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이 없다고, 뭐 그런 식으로 말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울었고 선생님은 지금 버티는 것만으로도 용하다고 하면서

2019년 12월 6일

이번 주 내내 잠과 씨름했다. 어제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것도 친구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억지로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예컨대 버틀러 발제문 준비가 그렇다. 이러다가 발제문에 내가 기여한 몫은 하나도 없게 될 지경이다. 내일까지 시간이 남았긴 한데 영 안 될 것이다 라는 생각만 든다. 이런 생각이 들면 망한 거다. 아무튼 지금 카페에서 억지로 버틀러 글 3장을 읽고 있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그마저도 2페이지 읽고 집중력이 고갈되어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카페 옆자리에 앉은 남자아이 목소리가 마치 사우스파크에 나오는 애들 목소리 같아서 웃기다. 어제 발제팀 모임을 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걸 하고 싶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들으니까 울적했다. 남이 무언가를 하겠다,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난 위축된다. 난 하고 싶은 게 있는 지 모르겠고, 있더라도 그걸 당차게 말할 만큼 자신감이 있지 않다. 그래서 어제 버스를 타고 본가로 돌아오면서 투신자살 생각을 많이 했다. 한강에 투신하는 건 익사하는 고통까지 겪어야 하니까 한 방에 뚝배기가 깨지는 맨땅투신이 낫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로맨스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늘 하루도 망했다는 예감과 함께 일어났다. 상담 때 중압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언가 일을 하려고 하면, 중압감 때문에 할 수가 없다고. 마감이 코앞이라든지 돈이 걸린 일이라든지 그런 절박함이 없으면 중압감을 이겨낼 수가 없다. 사실 이겨낸 거라고도 볼 수 없다. 어쩔 수 없어서 중압감에 벌벌 떨면서 하는 거지. 상담 선생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답답하고 힘드셨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나는 답답했구나. 나는 내가 유치하고 멍청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