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6일
이번 주 내내 잠과 씨름했다. 어제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것도 친구가 저녁 같이 먹자고 해서 억지로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예컨대 버틀러 발제문 준비가 그렇다. 이러다가 발제문에 내가 기여한 몫은 하나도 없게 될 지경이다. 내일까지 시간이 남았긴 한데 영 안 될 것이다 라는 생각만 든다. 이런 생각이 들면 망한 거다. 아무튼 지금 카페에서 억지로 버틀러 글 3장을 읽고 있는데 아무 생각이 없다. 그마저도 2페이지 읽고 집중력이 고갈되어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카페 옆자리에 앉은 남자아이 목소리가 마치 사우스파크에 나오는 애들 목소리 같아서 웃기다.
어제 발제팀 모임을 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걸 하고 싶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등등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걸 들으니까 울적했다. 남이 무언가를 하겠다,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난 위축된다. 난 하고 싶은 게 있는 지 모르겠고, 있더라도 그걸 당차게 말할 만큼 자신감이 있지 않다. 그래서 어제 버스를 타고 본가로 돌아오면서 투신자살 생각을 많이 했다. 한강에 투신하는 건 익사하는 고통까지 겪어야 하니까 한 방에 뚝배기가 깨지는 맨땅투신이 낫지 않을까 이런 상상을 하며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로맨스판타지 소설을 읽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오늘 2시가 되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오늘 하루도 망했다는 예감과 함께 일어났다.
상담 때 중압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언가 일을 하려고 하면, 중압감 때문에 할 수가 없다고. 마감이 코앞이라든지 돈이 걸린 일이라든지 그런 절박함이 없으면 중압감을 이겨낼 수가 없다. 사실 이겨낸 거라고도 볼 수 없다. 어쩔 수 없어서 중압감에 벌벌 떨면서 하는 거지. 상담 선생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이 답답하고 힘드셨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나는 답답했구나. 나는 내가 유치하고 멍청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면 안 돼, 너는 할 수 있어 라는 말에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많이 지친 것이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너희들이 아니? (안다) 진작 할 수 있었다면 내가 남들 민폐 안 끼치려고 진작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니? (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 나 또한 실의에 빠진 다른 친구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할 테니까... 누가 봐도 재능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빠져 아무 것도 못 하면 안타까울 테니까. 상황이 나아져서 그 사람이 잘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테니까.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바람과 별개로 대학원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고 이제는 교수님들이 초등학교 선생님마냥 학생들에게 잘 했다 칭찬을 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 (일부의 뛰어난 학생은 칭찬을 받겠지만) 이제 칭찬을 해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해야 한다. 여러모로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혼자 있을 수가 없다.
아빠가 저번 주에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빠는 너무 힘들면 언제든 기대라고 하는데, 그 말이 전혀 든든하지 않았다. 나는 혼자야, 나는 혼자라고 생각하면서 과외를 했고, 기숙사에 갔다. 견디고 있는데 견딜 만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사는 게 늘 아슬아슬하다. 세상이 야속하고 남이 밉다. 괜한 화풀이다. 그런데 화풀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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