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9의 게시물 표시

2019년 10월 24일

율피랑 연숙이의 일기를 읽고 슬퍼졌다. 친구들이 힘들면 슬프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기원밖에 할 수 없다. 아니면 범사에 감사하여 기원이라도 할 수 있음에 고마워해야 할까? 좆같은 놈들이 살기엔 적절한 곳인 재미 없는 대학원 수업에서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의 일기를 읽어서 슬픈 것일수도 있다. 아니 내 침대에 누워서 친구들의 일기를 읽었어도 슬펐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 친구들이 고생을 하는 게 싫다 좆같은 놈들이 서식하는 대학원 수업에 갇혀있음 공부를 하고 싶다. 너무너무 하고 싶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편해졌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그러면 훌륭한 결과물을 내 놓을 것이라고 나는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못해도 공부를 하고 싶을 수는 있을 것 아닌가! 나는 공부를 ‘잘’ 하고 싶은데 ‘잘’ 하지 못해서 공부 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오해했고 공부가 저주처럼 나한테 달라 붙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 나는 공부를 잘 하고 싶었던 거고 지금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내가 만족할 만큼 잘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공부를 하고 싶다’로 내 바람을 바꾸니까 마음이 더 편한 것 같다. 하고 싶지만 못 할 수도 있고 안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공부를 해야 한다’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데 앞으로 그러지 못할까봐 불안한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로 상황이 나쁘진 않다. 그래서 아무튼 괜찮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공부를 너무너무 하고 싶다. 건강해져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안락한 집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 어려운 꿈이지만 상관 없다. 어쨌든 나는 그걸 원한다.  

2019년 10월 20일

목요일 수업 중간에 째고 충동적으로 모부 집에 가서 밥줘충 시전하며 누워서 라프텔로 애니 보거나 조아라로 로판 아님 비엘 소설 읽거나 유튜브 게임 실황 보거나 그러면서 시간을 때웠다. 예상치 않게 과외학생 모두가 과외수업을 취소해 버려서 굳이 토요일 일요일을 집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됐다. 금요일에 정신병원에 가서 "그럭저럭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니까 의사 선생님께서 뭐 궁금한 거나 그런 건 없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대답하고 10초 퀵 진료하고 처방전 받아서 약국에서 약을 탔다. 약사가 내 약을 주려고 나를 호명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내 약이 나온다는 걸 아는데, 왜냐하면 내 취침약이 갯수도 많고 알록달록하며 약사 선생님이 정말 일일히 약을 꼼꼼하게 세어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덜 들어가거나 더 들어가거나 아니면 빼먹은 건 없는지 정말 꼼꼼히 살펴본다. 정신과 계열 약들은 다른 약보다 특히 더 신경 써야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약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자마자 나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일어나서 약을 탄다. 얼마 전 도림천달리기모임에서 약 2년 전에 연숙이가 나에게 못된 말? 날카로운 말? 을 해서 나를 울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 왜 그런 짜증을 냈는지 연숙이가 답을 주었다. 당시 나는 내 얘기를 지나치게 많이 했고 특히 엄마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 그 자리는 율피가 연애 문제로 고민상담을 하는 자리였고 율피는 괜찮아 했지만 자꾸 내가 내 얘기를 위주로 해서, 그러니까 율피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걸 빌미로 삼아 내 얘기를 실컷 하는 것으로 보여서 연숙이가 짜증을 냈다는 것이다. 옛날에 연숙이한테 몇 번 "너 왜 그때 짜증냈어?"라고 물어봤을 때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정말 기억이 안 났거나 혹은 그 당시의 내가 받아들이기는 힘든 이야기라 판단한 모양인지 2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어 뭐 작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고 할까 아무튼 그랬다. 망트는 그거 가스라이팅이라고 할 지도

2019년 10월 13일

요새 끼니를 전적으로 백종원 님한테 의존하고 있다. 맨날 홍콩반점 짬뽕만 처먹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금은 역전우동 가서 우동 한그릇 뚝딱 순삭하고 왔다... 여기는 새로 생긴 시간제 스터디 카페이며 영문과 리딩에 힘겨워하는 푸름이를 마주하고 헤겔 과제를 끝마치고 남은 한 시간을 적당히 때우기 위해 일기를 쓴다.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홍콩반점 가게의 직원들과 미스사이공 쌀국수 주방 직원들과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편의점 직원들과 온갖 직원들 돈을 벌기 위해 서 있거나 말을 하거나 움직이고 온갖 것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렇게 볼 때 가끔 울적해지는데 이유는 그들에 대한 동정은 아니고 (완전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냥 내가 슬픈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들에게 개좃같이 굴 소시민들과 그 소시민들도 어디선가 일을 하며 빌어먹고 살고 있을 터이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또 개좃같이 구는 소시민들과 기타 등등의 무한의 연쇄를 상상하며 슬퍼진다.  이제 개인사업가 -> 백수 -> 비정규직 노동자 가 될 아빠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엄마를 보며 이들은 이제 나랑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큰 차이가 있는데 그들은 수도권의 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들은 월 이백도 못 버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월 백도 못 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9급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롤인벤롤트위치인셀한남 친오빠가 우리 집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이 될 거라는 사실에 세월의 흐름 (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감상이다) 을 느끼고 있다. 어쨌든 가족 중에서는 내가 제일 못 산다. (하하! 새삼스럽지만 그걸 깨닫고 너무너무 어이가 없었다! 10대 때는 야망보지힘조프로젝트열공개빡공해서 엄마아빠 다 패버리고 짱이 될 거야 암튼 짱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엄마아빠 팰 힘도 없고 본가 가면 과외 일 두세시간 하고 흐물텅해져서 침대에 늘러붙는 그런 한심한 대학원생일 뿐이다) 음 돈이 안 돼도 뭔가 의미 있는 일 그런 것을 하고

2019년 10월 2일

일기를 안 쓴 지 한 달 쯤 됐다. 일이주 전에 준호가 요새 사람들이 개강해서 그런지 일기를 잘 안 쓴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준호에게 본인부터 실천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는데 준호는 뻔뻔하게도 자기에겐 쓸 만한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일기를 쓴다면 추석 때 아빠가 울었던 일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데, 추석 전날 굉장히 자리가 불편한 (마치 힙한 카페처럼 테이블이 무릎께에 오는 그런 이상한 오리고기 집이었다) 곳에서 아빠는 돌이켜 보니 너희(나와 친오빠)에게 좋은 모습도 보이지 못하고 옛날에 ‘그런 식’으로 굴었던 것에 대해 모든 것을 후회한다며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울었다. 60줄이 가까워진 한 중년 남성이 자신이 제대로 된 가부장이 되는 데 실패했음을 한탄하며 엄청나게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며, 나는 생리적으로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가족과 선을 그으며 살았고, 더 이상 당신들이 필요 없다는 태도를 취했는데, 그 순간에는 아빠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 보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친오빠와 엄마는 울지 않았다. 나중에는 나만 울게 되었는데, 내 옆에는 아빠가 앉아 있었고 아빠는 내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밥을 다 먹을 즈음에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어제부로 3회기 째였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래서 oo씨는 어떻게 느꼈어요?”라는 식의, ‘다른 사람의 평가 말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를 ‘집요하게’ 물었다. 내 감정? 내 생각? 그런 것을 다시 살려내려고 하면 괴성과 같은 울분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상담이 끝날 즈음 선생님은 오늘 어떤 기분이 드셨냐고 묻는데, 어제는 슬프다고 대답했다. 저번 주에도 슬프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나를 억누르고 살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으며, 한편으로는 선생님께 상담에 대한 불신,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이미 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