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0일

목요일 수업 중간에 째고 충동적으로 모부 집에 가서 밥줘충 시전하며 누워서 라프텔로 애니 보거나 조아라로 로판 아님 비엘 소설 읽거나 유튜브 게임 실황 보거나 그러면서 시간을 때웠다. 예상치 않게 과외학생 모두가 과외수업을 취소해 버려서 굳이 토요일 일요일을 집에 있을 필요가 없게 됐다. 금요일에 정신병원에 가서 "그럭저럭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니까 의사 선생님께서 뭐 궁금한 거나 그런 건 없냐고 물어봤다. 없다고 대답하고 10초 퀵 진료하고 처방전 받아서 약국에서 약을 탔다. 약사가 내 약을 주려고 나를 호명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내 약이 나온다는 걸 아는데, 왜냐하면 내 취침약이 갯수도 많고 알록달록하며 약사 선생님이 정말 일일히 약을 꼼꼼하게 세어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덜 들어가거나 더 들어가거나 아니면 빼먹은 건 없는지 정말 꼼꼼히 살펴본다. 정신과 계열 약들은 다른 약보다 특히 더 신경 써야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약사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자마자 나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일어나서 약을 탄다.

얼마 전 도림천달리기모임에서 약 2년 전에 연숙이가 나에게 못된 말? 날카로운 말? 을 해서 나를 울렸던 적이 있는데 그때 왜 그런 짜증을 냈는지 연숙이가 답을 주었다. 당시 나는 내 얘기를 지나치게 많이 했고 특히 엄마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때 그 자리는 율피가 연애 문제로 고민상담을 하는 자리였고 율피는 괜찮아 했지만 자꾸 내가 내 얘기를 위주로 해서, 그러니까 율피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하는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걸 빌미로 삼아 내 얘기를 실컷 하는 것으로 보여서 연숙이가 짜증을 냈다는 것이다. 옛날에 연숙이한테 몇 번 "너 왜 그때 짜증냈어?"라고 물어봤을 때 기억이 안 난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정말 기억이 안 났거나 혹은 그 당시의 내가 받아들이기는 힘든 이야기라 판단한 모양인지 2년이 지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어 뭐 작은 궁금증이 해소되었다고 할까 아무튼 그랬다. 망트는 그거 가스라이팅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만은 나는 연숙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그냥 내 입이 나보다 컸었던 거 같고 사실은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말이 툭툭 나온다. 이걸로 언젠가 큰 경을 칠 거라고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말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달리기모임 뒷풀이에서 내 입이 사고를 쳐 버렸고 어느 정도 경을 쳤고 자숙? 중이다. (자숙? 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남들 다 보는 싸이버 공간에? 글을 씁니까? 박제될 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나는 내 입이 방정이라 사고를 친다면 응당 그에 맞는 결과?를 책임?진다고? 떵떵거리면서 말하곤 했는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게 무엇일까? 라는 상념에 빠져 있다.

친오빠는 현 직장을 때려 치우고 서울시 9급 공무원이 됐는데 연수가 11월부터라 잠시 여유가 생겨서 맨날 여행가고 싶다 여행가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엄마랑 해외여행을 갔다. 패키지 여행이고 터키다. 금요일 밤에 떠나서 토요일 일요일에 집에 나랑 개랑 아빠밖에 없었다. 토요일에는 유난히 늦게 일어났는데, 거실이 조용했다. 보통 엄마가 있으면 텔레비전 소리가 방까지 들리고 아빠도 곧잘 티비를 보곤 했는데 거실로 나가니까 아빠가 돋보기로 책을 읽고 있었다. 아마 역사소설일 텐데 문득 그걸 보면서 나는 아빠랑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책을 읽는 게 나랑 아빠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고, 그냥 조용하게 무언가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그런 걸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아빠에게 밥줘충을 시전했다.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헤겔 번역 과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네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아빠는 나간 모양이다. 냉장고에 있는 밥과 먹다 남은 스팸을 데워서 저녁으로 먹었다.

아빠가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엄마랑 오빠가 해외 여행을 가고 아빠는 낮에 일하러 나가니까 집에 홀로 있을 강아지를 위해서 수업 없는 날에 집에 잠깐 있을 수 없냐고 아빠가 입을 열자마자 내가 성질을 냈는데 (아니 나도 할일이 있는데 <- 이때의 할일은? 기숙사에서 누워있기 입니다 어떻게 왔다갔다 하냐) 아빠가 황급하게 사과하고 내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내 눈치를 본다. 엄마는 언젠가 나한테 아빠는 너에게 미움 받는 것을 엄청 무서워한다고 말한 적 있다. 어렸을 때 '체벌'의 일종으로 나무 막대기로 내 명치를 찔러댄 것이나 죽도로 내 엉덩이를 퉁퉁 붓고 피멍 들도록 때렸던 것이나 내 안경이 날아갈 정도로 내 머리를 종이 뭉치로 몇 번이고 내리 쳤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경제력 상실과 갱년기로 인해 미국 갔다고 하네요...) 아빠가 체벌을 할 때면 공포로 몸이 절로 떨려서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눈물콧물을 쏟고 잘못했다고 잘못했다고 자동반사적으로 빌곤 했는데 아무튼 그런 관계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싶다. 이걸 쓰니까 친구들이 너는 엄마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하니 (비난의 의도가 아니라 신기하다는 식으로) 혹은 너네 엄마아빠 부모 맞니 라고 말하던 게 생각나고 그렇다. (고등학교 때 내가 엄마랑 통화하는 것을 보던 친구가 왜 이렇게 화난 사람처럼 통화해? 라고 말했던 것도 생각난다) 음 아무래도 평생 아빠가 나를 체벌한 일이라든지 엄마가 나를 매도한 일을 죽도록 잊지 못할 거 같다... 마치 엄마가 육십이 되어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처럼...

오늘은 한영이랑 미스터힐링이라는 안마 카페에 가서 온 몸을 주물러짐 으깨짐 당하고 왔다. 저녁으로 편의점 김밥을 사 가지고 올라오는데 불안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는 느낌이 들었다. 통장 잔고가 빠져 나가는 것처럼 숨을 쉴 때마다 몸이 조금씩 닳아 없어지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불안한 거겠지. 불안한 상태로 일기를 썼다. 내일은 또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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