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14일: 팬픽에 대한 썰
오랜만에 소녀시대 팬픽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는 ‘책방’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태연 생일 이벤트로 암탉님이 쓰신 '소프트 보일드 키튼’ 1~6편을 다운받아 얼마 전에 다 읽었었다. 언젠가 덕력을 더 쌓아서(ㅋㅋ) 소녀시대 팬픽의 개인적 추천 리스트를 쓰겠노라고 생각했는데, 그 전에 '팬픽'에 대한 개인적 썰을 한번 써보려고 한다.
내가 팬픽에 입문하게 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난 여중을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속한 3학년 7반에는 유독 구동방신기의 팬이 많았다. 그들은 핸드폰 혹은 mp3 플레이어로 팬픽을 읽었고, 나는 그들에게 가끔씩 “너 팬픽읽냐?ㅋㅋㅋ” 면서 농담따먹기를 시전하기도 했고 어쩔 때는 그들이 읽고 있는 팬픽을 소리 내어 읽는, 그들에게는 개짱날듯한 장난도 치곤 했다.
그들 중에는 최강창민을 특히 좋아하는 애가 있었다. 뭔가 주제와는 상관없이 이 애에 대한 개인적인 것을 말하자면, 걔는 정치적 신념이 매우매우 강한 애였고(한나라당을 싫어했고 중도좌파였을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던 걸로 기억한다.
고등학교 입시가 끝난 후 어느 날(내가 속한 지역은 비평준화여서 일반고라도 시험쳐서 들어가야했다) 그 애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책은 팬픽 인쇄본이었다. 나는 이전에도 인쇄본을 몇 번 봤음에도(제목은 잘 기억 안나는데, '혀 깨물기'라던가 '순수의 시대'라던가 뭐 그랬던 거 같다) 그 책에 관심을 보였다. “나도 한 번 보고 싶다"라고 말하자 그 애는 "1권 다른 애가 읽고 있으니까 그 애가 다 읽으면 너한테 빌려줄게"라고 말했다.
그 책의 겉면에는 'Amante'라고 쓰여 있었다. 아망떼? 나는 집에 가서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검색창에 amante라고 쳤고 바로 그 팬픽이 나왔다(….) 어째선지 나는 그것을 다운받고 mp3 플레이어에 옮기고 침대에 누워서 이게 대략 어떤 소설인지 훑어보려고 했다.
중간에 저녁을 먹고 계속 읽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중반부까지 읽었고 그 때는 밤 12시 정도였다. 좀만 읽고 자야지 자야지 하는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는 계속 읽었고 그 팬픽을 읽으면서 내 안에 죽어있던 소녀심이 다시 살아나서 주인공과 다른 인물들이 피폐해지는 장면에서는 으흐흐르흐ㅡㄹ그흙흐흙ㄱ 하고 울게 되어버린 것이었던 거시다.
결국 다 읽으니 그 때의 시간은 대략 새벽 4시였다. 저녁 7시부터 읽었던 거 같은데 중간에 저녁먹은 시간 빼고는 계속 누워서 팬픽 읽은 것이다. 나 쩌는군ㄷㄷㄷ 이러고 잤다. 근데 다음날은 학교에서 단체로 뮤지컬 관람하러 가는 날이어서 일찍 일어나야 했던게 함정. 결국 난 두세시간밖에 못잤다. 나는 최강창민 팬인 그 애한테 가서 "야 나 아망떼 밤새서 다 읽음"이라고 말했고 그 애는 "얽ㅋ 님 좀 쩌는듯ㅋ"이라고 말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땐 좀 내가 미친 거 같았다.
어쨌든 아망떼 이후로 나는 팬픽을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동반신기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첫 팬픽 입문이 동방신기 팬픽이었으니 계속 동방신기 팬픽을 찾아서 읽었다. (그렇게 에쎌은 예비고등학생으로서 고등선행은 개나 주고 겨울 방학 봄방학 내내 동방신기 팬픽만 읽는 잉여로운 생활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최초식결정론이라고 아는가? 간단히 설명하자면 첫사랑이 지니고 있는 타입이 그대로 식(이상형)으로 굳혀지는 것을 뜻한다. 최초식결정론은 팬픽에서 일어났다. 첫 팬픽 입문이 된 아망떼는 최강창민(수)을 중심으로 영웅재중(공)과 믹키유천(공)의 삼각관계가 주가 되는 팬픽인데(그 과정에서 이 세 인물은 참 많이 망가진다), 그 커플링이 그대로 식으로 굳혀져서(….) 어쩐지 나는 최강창민 수인 소설만을 찾게 되었다. 특히나 아망떼에서 이뤄지지 못한 유천x창민 커플때문인지(사실 재중x창민도 이뤄지지는 못했다만) 특히나 유천창민 팬픽을 좋아라 했던 거 같다. 다른 소설에서라도 이루어지렴 뭐 이런 마음으로?ㅋㅋ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강창민 수는 마이너였던 거라. 그래서 다른 팬픽들에 비해 그 수가 적었고, 그렇기 때문에 최강창민 수 팬픽 수작들은 더더욱 적었다. 그나마 만족했던 작품은 아망떼 이외에 '템페스트'와 'Holiday’, 단편으로는 '헌화가’ 정도였던 거 같다.
위에서 말했듯 중 3 겨울방학은 그렇게 팬픽으로 보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이제 팬픽과는 안녕이야” 라면서 mp3에 있던 팬픽들을 모두 삭제했다. 그렇게 당분간 팬픽과 이별할 줄 알았다.
는 개뿔ㅋ
내가 레즈비언임을 완전히, 의식적으로 정체화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지만, 고딩 1학년 때부터 뭔가 슬슬 그 낌새를 눈치채려는 시절이긴 했다. (근데 고딩 1학년 초반에는 같은 반 남자애한테 호감을 좀 심하게 느끼긴 했긴 했다만. 그래서 레즈비언이란 정체화를 좀 미뤘던 거 같다.)
나는 백합 작품을 갈망했고, 그래서 BL말고 GL은 없나 찾으려고 했다. 백합소설, GL소설로 검색했는데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BL 치면 수두룩하게 팬픽과 소설이 나왔는데, GL 치면 기껏 나와봤자 마리미떼 뭐 이런 정도였다. 내가 원한 거는 출판되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1차 창작 GL 소설 혹은 2차 창작 팬픽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운받을 수 있는 GL 소설을 찾게 되었다. 1차 창작 작품은 아니었고, 소녀시대 팬픽이 우연히 검색에 걸리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걸그룹은 팬픽이 무척이나 적은 줄 알았다(….) 우연히 걸리게 된 팬픽은 태연x티파니 팬픽인 '연애'였고, 나는 그것을 다운받아 읽었다. (동방신기에 전혀 관심없는 채 동방신기 팬픽을 읽었던 것처럼, 소녀시대 팬픽 또한 소녀시대에 관심이 없는 채로 읽었다)
'연애'는 수작이었다. 나는 그때 마음 속의 전구가 켜졌다. 그래, 소녀시대 팬픽으로 검색하면 되겠구나! 그렇게 에쎌은 고등학교 때에는 팬픽을 읽지 않겠노라고 마음 먹은 주제에 PMP에 소녀시대 팬픽을 차곡차곡 쌓아놓게 된다. (소녀시대 팬픽의 아카이브인 책방을 알게 된 후로는 더더욱 팬픽을 쌓아놓게 된다ㅋ)
역시 소녀시대 팬픽에도 최초식결정론이 작용하긴 해서, 처음에는 태니(태연x티파니) 팬픽 위주로 찾아 읽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점점 태니 팬픽이 질렸고 그것은 율싴(유리x제시카)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두 커플링은 공식으로 불려서 그 두 커플링 팬픽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거의 소녀시대 팬픽을 찾으면 저 두 커플링 위주였고, 그렇기 때문에 질렸던게 아닌가 추측된다. 그래서 결국 난 마이너 커플링 팬픽을 찾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냥 난 최초식결정론적 커플링 지지가 아닌 마이너 커플링 덕후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게 걸그룹 쪽으로 팬픽 리딩 방향을 틀었고, 그래서 지금 읽는 확장자명 txt 파일은 거의 대부분 걸그룹 팬픽, 특히 소녀시대 팬픽이다. 사실 정말 읽고 싶은 팬픽은 고등학교 2~3학년 즈음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된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 팬픽이지만, 아쉽게도 에프엑스 팬픽은 소녀시대 팬픽에 비해 그 수가 현저히 적다. 수작 또한 드물고.
에프엑스 팬픽은 거의 버클(엠버x크리스탈) 위주인데, 에프엑스 팬픽이 다른 걸그룹 팬픽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은 엠버의 부치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일단 엠버의 외모가 스테레오 부치 타입에 속해서 그런지 엠버는 대부분 팬픽 내에서 공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에프엑스 팬픽의 그런 점에 더더욱 흥미를 느껴서 에프엑스 팬픽을 더욱더 갈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수작을 뽑아내는 한 에프엑스 팬픽 작가가 주로 쓰는 커플링이 설리x크리스탈이어서 그 커플링도 많이 봤는데, 이 작가의 팬픽 속에서 설리는 어쩐지 긴머부같이 묘사되는 것에도 흥미를 느꼈다. 트위터에서 어떤 분과 멘션을 주고받을 때 설리 공 팬픽 작품에서는 설리가 긴머부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작가의 작품만 그럴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설리는 팬픽 내에서 긴머부 포지션이 된다는 확언은 못하겠다. 좀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함)
대충 풀어놓을 수 있는 개인적 팬픽 썰은 다 풀어놓은 것 같다. 이쯤되면 난 그냥 일코하는 휴덕 상태의 후죠시라고 인정해야겠다. 이미 트위터로 몇번 덕밍아웃했지만 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덕밍아웃임.
이후에 더욱더 팬픽 덕력을 쌓으면 더 심층적인 팬픽 썰을 써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개인적 팬픽 추천 리스트로 덕밍아웃 또 할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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