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1일

1. 이지엔 프로 3알을 꺼내 삼켰다. 이 독한 진통제로 갈아탄 지는 몇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약발은 아주 확실하다. 자궁을 쥐어 짜는 고통은 사라져도 허리는 뻐근하다거나, 어딘가가 아픈 것 같은 느낌조차 없이 아주 평온해진다. 다만 독한 진통제인 만큼 위벽이 시큰거리는 느낌은 이지엔식스 애니를 삼켰을 때보다 더 강하다. 그래도 이 약으로 갈아탄 것은 잘한 짓이다. 언제 이지엔 프로를 먹다가 애니를 먹었을 때 전혀 고통이 경감되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다. 어쨌든 생리통이 더 심해진 모양인지 이 독한 약으로도 세 알 정도를 삼켜야 하며, 오늘 세 알째 삼키자 약이 다 떨어졌다.
약발이 도는 상태에서 공부를 했다. 2달 간 내지 않았던 연체료 700원을 내자 열람실 좌석을 끊을 수 있었다. 심리철학 참고 논문을 읽었는데, 알파벳만 한참 구경한 느낌이다. 전혀 내용이 들어 오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쓸데 없는 알파벳 구경을 두세시간 정도 했고, 초급독일어 2 공부를 조금 하고 나서 도서관을 박차고 나왔다.

기숙사에서 한두시간 쉬고 끼니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숙사 삼거리까지 걸어오자, 그냥 바로 버스를 타고 낙성대에 나가 콰트로치즈와퍼를 포장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버거킹으로 갔다. 그때 마침 성녀에게서 답장이 왔고, 콰트로치즈와퍼를 포장한 채로 기숙사로 안 가고 성녀의 자취방으로 갔다. 하루 종일 조립한 컴퓨터를 원활히 작동시키려고 노력하는 성녀 옆에서 와퍼를 먹고 시덥잖은 이야기를 했다. 결국 성녀는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고 종로에 가지도 않았다.

나오는 길에 GS 슈퍼마켓에 들렀다. 오버나이트 생리대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오버나이트 생리대 대신 슈퍼사이즈 탐폰을 사 들고 나왔다. 이 몸뚱아리에 드는 생필품은 많다. 인터넷으로 생리대와 탐폰을 잔뜩 사서 쟁여 놓자고 생각했다.

2.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는 병을 앓고 나서 나는 참 무료했고 무료해서 초조했고 무료해서 초조했기 때문에 죽을 것 같았다. 앞으로도 실패할 수밖에 없노라는 사실에 대해 너무 지겹고 싫증이 났다. 허이모는 나를 달래주었다. 지금의 외로움, 감정, 고민, 실패함을 소중히 여기라는 허이모의 조언은 정말 맞는 말이다. 나도 거기에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소중하더라도 그 감정이 나를 무의미함에 빠뜨리고 나를 죽이고 있노라는 것 또한 맞는 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글쓰기에 대한 무력함을 견디면서 이 무의미한 글을 타이핑하는 것 뿐이다.

실패는 3차원적이므로 실패자를 수평선으로 배치할 수는 없다. 허이모의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실패자를 계속 수평선에 배치하며, 수평선의 왼쪽 편에 나를 위치 시킨다. 나는 그저 치열하게 고민으로 고통 받을 뿐이지, 고민 너머의 것을 치열하게 갈구할 뿐이지, 실패를 통한 무언가 다른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래서 나 자신이 자꾸만 실패자 오브 실패자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실패자 오브 실패자로 보는 것 또한 아주 한심한 짓거리인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나는 그리 실패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내가 무척 같잖게 보일 것이다.

그냥, 영어를 못해서 이러는 것이다. 영어 독해력을 기르자. 기르자고 다짐만 하지 말고 기를 수 있는 노력을 하자… 책을 많이 읽자. 대학 와서 정말 책을 안 읽는다… 내가 올해 새로이 읽은 책은 학교 수업과 관련된 책을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김승일 <에듀케이션>, 주디스 버틀러 <불확실한 삶>,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삐라>, <How to read 푸코> 이게 전부다.

3. 읽고 싶은 책 목록들: 비트겐슈타인 평전, 밀란 쿤데라 소설들,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계몽의 변증법>, 푸코의 책들… 그리고 몰라…

4. 보고 싶은 혹은 보는 게 좋을 것 같은 영화 목록들: 에일리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어둠 속의 댄서… 그리고 모름…

5. 언젠가 지금의 고민들이 무척이나 유치하고 귀엽게 보일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너무 심각해져서 웃긴 짓을 하지 말자… 일단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냥 살자…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샤오미 게임패드 리뷰 및 샤오미 pc에 연동하는 방법

2022년 2월 10일

2021년 1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