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1일: 자해에 대하여

자해에 대하여


사실 자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렇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비정상적'인 일도 아니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도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신을 해치고 있다. 가장 만연한 자해는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하는 것일 테다. 영양소를 고루 섭취하지 않는다던가, 술이나 담배를 한다던가, 잠을 부족하게 잔다던가 등등. 또는 손톱, 손톱 주변의 살갗을 뜯는 버릇. 많이들 갖고 있는 버릇일 것이다. 손톱이나 살갗을 심하게 물어뜯으면 피가 난다. 염증이 나기도 한다. 아플 것이다. 이 또한 자해가 아닌가.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 또한 자해이지 않을까.
하지만 위에서 든 예들은, 보통 자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저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한다, 손톱을 물어뜯는다, 라고 길게 늘여서 말한다. 자해, 라고 우리가 명명하는 짓을 떠올려본다. 일단 피가 흐르는 게 생각난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보다 좀 더 자신을 해하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덧붙여 '더’ 아파보인다. 생각을 계속 하면 몇 가지 더 떠오르겠지만, 이 정도까지만 적어본다.
자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 없이 할 수 있다. 건강에 안 좋은 짓을 한다던가, 손톱을 물어뜯는 짓에는 매번 이유가 붙지 않을 것이다. 불안해서 그런 버릇을 들였을수도 있지만, 이미 버릇이 되었다면 별 이유 없이 했을 것이다.
자해라는 행위에 굳이 이유를 끄집어내자면, 나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떠오른다. 첫째는, 피를 냄으로써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는 것.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면 첫 번째 이유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죽은 듯이 살아간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둘째는 시위의 일종으로서 자해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힘들다고 보여주기 위해서. 두 번째 이유로 자해하는 것은 퍼포먼스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여러 가지 자해를 한다. 일단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고, 담배를 피고, 손톱은 물론이고 손톱 주변의 살갗도 물어뜯는다. 머리카락도 자주 뽑는다. 하지만 이미 내 일부가 되어버린 이러한 버릇을 이 글에서 크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커터칼로 내 손의 피부를 그었던 일에 대해 쓰려고 한다.
피부를 칼로 그어서 상처를 내어 피를 보고자 처음으로 시도했던 시기는 중학생 때였다. 그러나 상처가 나지는 않았다. 피부에 댄 칼에 힘을 주어 아래로 그었는데, 존나 아파서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뺐다. 주방에서 몰래 가져온 칼을 다시 원 위치에 뒀다. 이렇게나 아픈 것을 참으면서 어떻게 자해를 할 수 있지, 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윗 문단을 쓰면서 갑자기 떠오른 일이 있었다. 중학생 때가 아니라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자해를 했다. 자해를 할 거야, 라는 분명한 의도를 갖고 시도한 것이라기보다 충동적으로 한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 CA로 손바느질을 했었고, 그때 사용하던 봉제 가위가 있었다. 자그마했다. 어느 날 책상에 앉아 봉제 가위의 날에다가 왼손 엄지를 댔다. 나도 모르게 양쪽으로 엄지 손가락을 움직였고, 엄지 손가락의 살갗이 벌어졌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것을 최초의 자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첫 번째 자해는 성공적이었고 중학생 때 시도한 자해는 실패했다. 그 다음으로 자해에 성공한 시기는 고등학생 때였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수학 시험을 참 어렵게 냈다. 이과를 택하려고 했던 나에게 수학 점수는 중요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성적을 받지 못했다. 1학기였던가, 2학기였던가, 수학 시험이 끝나고 점심 시간 때였을 것이다. 나는 커터칼을 들고 운동장을 바라보며 왼손 엄지의 아랫 부분을 칼로 계속 그었다. 깊숙한 상처는 나지 않았다. 표피만 잘려져서 살짝 붉은 선만 남았을 뿐이다.
이렇게 나의 자해의 역사를 서술했는데, 가장 성공적이어서 처참했던 자해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리고 이제까지 그게 마지막으로 한 자해다. 누군가 나에게 자해를 했던 일화를 묻는다면 나는 이 마지막 자해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때 나는 아빠에게 부당하게 맞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맞았다. 맞은 게 아팠기보다는 자존심이 짓밟힌 게 아팠다. 아빠는 신문지를 둘둘 말아 내 머리를 두어 번 세게 내리쳤고, 관자놀이 근처를 맞은 바람에 내 안경은 심하게 구부러졌다. 안경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엄마는 아빠를 말렸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미친 듯이 울면서 커터칼로 공책을 잘랐다. 마치 복부를 메스로 긋는 것처럼, 커터칼로 공책을 찢었다. 그것으로는 울분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부당함에서 발생한 울분을 풀 대상이 필요했고, 공책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사실 아빠를 그렇게 자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나는 왼쪽 손등을 마구마구 긋기로 했다. 커터칼을 손 소독제로 소독했다. 그 다음에 칼로 미친 듯이 여러 번 손등을 그었다. 심리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살갗이 벌어져 피가 나는 게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아프지 않았다. 손등에서 피가 흘렀고, 내 얼굴은 굉장히 못 생기게 팅팅 부었다.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알몸으로 거울을 봤는데, 굉장히 나 자신이 못생겨 보였다. 얼굴은 새빨갛고 눈은 팅팅 부었고 코에서는 콧물이 흘렀고 입술은 뻘겋게 부었다. 손톱으로 마구 할퀴어진 것 같은 손등의 상처는, 피딱지가 진 채로 붉게 부풀었다. 흉측했다. 뜨거운 물로 내 몸을 삶아내듯 푹 씻어버리고, 방으로 돌아와서 손등에 후시딘을 발랐다. 상처에서 나는 진물과 후시딘이 섞였다.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잤다.
그 다음날 나는 걱정했다. 손등은 감추기에는 너무 바깥 공기에 잘 드러나는 부위였다. 학교 가는 버스에 타면서 왼쪽 손등을 주머니에 넣거나 오른손으로 그 위를 덮어 가렸다.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에 도착해서, 정말 이것을 감추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싶었다. 결국 보건실에 갔다. 보건 선생님께 왼쪽 손등을 보이면서, 이것 좀 가리려고 하는데요.. 라고 잦아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보건 선생님은 그 위에 붕대를 감아줬다. 붕대를 감아주면서, 나에게 몇 마디 말을 했다.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으나 따뜻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엄마나 아빠나 나에게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말이었다. 나는 결국 펑펑 울었다. 보건 선생님은 뿌리는 파스를 주면서, 아이들이 의심할 수 있으니 붕대 위에다 뿌리라고 했다. 마치 손목을 삔 것처럼 가장하라면서.
그리하여 나는 일주일 간 붕대를 감고 다녔다. 엄마나 아빠나 붕대 감은 나의 왼쪽 손을 보았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 두 사람이 알았으면 했다. 내가 자해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척이나 아파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두 사람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상상했다. 만약 그 두 사람이 나에게 사과를 한다면, 이 처참한 자해는 성공적인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자해는 '실패'했다. 아빠나 엄마나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사실 이 손등에 붕대를 감은 것은 자해 때문이라고 내 입으로 밝혔다, 엄마한테. 그러나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알고 있었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걱정스럽다는 표정조차 없었다. 충격적이었지만, 애써 덤덤한 마음을 먹었다. 자해라는 극단적 시위도 소용이 없구나 싶었다.
자해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얼마 전 페미예 교수님이 자기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딸이 자해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먹었다는 여자. 나는 놀랐다. 내 엄마는 놀라지도 않고 걱정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은 충격 때문에 학교를 쉴 수가 있는 거지? 씁쓸한 느낌이었다.
글을 어떻게 끝맺어야 할 지 모르겠다. 그냥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페미니즘 미학과 예술 기말 레포트에 '자해'에 대한 것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간단히 메모를 하기 위함이었다. 자해에 관하여 나중에 또 한 번 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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