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4일: 애니메이션 <요르문간드> 감상

의식의 흐름같은 요르문간드 감상문. 애니메이션 요르문간드 스토리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요르문간드를 감상 중이거나 감상할 예정이면 주의해 주세요.
요르문간드 1기를 전부 보게 된 건 가을 즈음. 그때는 이미 요르문간드 2기가 나오던 때였다. 완결이 다 나고 나서 보고 싶었기 때문에 2기는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 전 우연히 요르문간드를 검색해 보았고, 그때서야 2기가 이미 완결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날 당장 요르문간드 토렌트를 검색하여 2기를 전부 받았다. 다 받고 난 다음 어제 오늘 요르문간드 2기 총 12화를 다 감상하였다.
열린 결말이었다. 보통 난 열린 결말에 ‘아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는 거냐고!’ 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열린 결말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시덥잖은 열린 결말보다 시덥잖은 닫힌 결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은 열린 결말은 여운을 길게 남긴다. 좋은 열린 결말로 맺은 작품은 한동안 그 작품에 대해 고찰하게 한다. 그런 점 때문에 사람들은 열린 결말로 작품을 마무리하려는 걸까.
요르문간드의 결말이 좋은 열린 결말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덥잖은 것도 아니다. 그냥 요르문간드 보고 기분이 꽁기하니 요르문간드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다.
요르문간드는 내가 밀리터리물에 흥미를 느끼게 만든 인상깊은 작품이다. 액션물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내가 요르문간드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사실 애니메이션이었기에 재미있게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친화적이기 때문에ㅋㅋ;;
인물들이 좋다. 소년병 요나와 무기상인 코코 헥마티아르. 여기에 추가하면 소피아 발메까지. 음, 코코에 대한 발메의 사랑이 좋았다ㅋㅋㅋ 배캅을 팔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작품이다, 요르문간드는. 하지만 그렇게 케미돋는 작품은 아님.
제목 '요르문간드’.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이라고 한다. 세계를 휘감고 있는 뱀… 이라고 한다. (자세한 건 검색을) 1기 1화와 2기 1화는 같은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대로 옮겨적지는 못하겠지만 대충은 '육지와 바다는 지배할 수 있지만 하늘만큼은 어쩌지 못한다. 나는 세계의 뱀 요르문간드’ 뭐 이랬던 거 같다. (이것도 자세한 것은 직접 보셔서 확인을) 왜 요르문간드가 제목인지는 2기 막판까지 보지 않으면 짐작하기 어렵다.
2기 막판을 보면서 나는 1기 초반의 어떤 장면이 생각났다. 요나가 코코에게 던진 “왜 코코는 무기를 팔아?” 질문에 코코가 “세계 평화를 위해"라고 대답한 장면. 코코의 대답에 누구나 모순을 느낄 것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세계 평화를 해치는 무기를 팔다니. 하지만 2기 막판을 보면, 정말 코코가 무기를 판 이유는 세계 평화를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된다ㅋㅋ
무기를 판 돈을 기반으로 한 강제적 세계평화. 일단 하늘을 봉쇄하고 그 후에 천천히 무기를 없애는 과정. 항상 미소 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코코가, 자신의 계획을 말할 때 썩소를 짓는 것은 묘한 느낌이었다. 그 표정을 꿈에 젖은 표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것은 꿈에 젖은 표정이라고 난 생각한다. 음, 꿈에 젖은 표정보다는 꿈에 도취된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코코는 요나에게 말한다. 너는 날 이해할 수 있어, 너와 난 닮았어.
하지만 요나는 코코의 계획 or 꿈을 거부한다. 처음에 난 요나가 코코의 꿈을 거부한 이유를, 코코의 꿈은 좀 얼토당토않고(좀이 아니라 많이일지도) 희생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12화에서 보면 요나는 결국 무기를 증오하지만 한편으로 무기에 맛을 들이고 그 힘에 도취되었기 때문이다. 요나는 그걸 깨닫고 절망한다.
요나는 코코를 떠나면서 '왜 코코의 꿈이 싫은지 모르겠어 하지만 싫어’ 라는 비슷한 내용의 혼잣말을 했다. 음, 결국 요나는 무기가 없는 코코의 세계가 싫었기 때문인거 같다. 무기에 도취되었기 때문에. 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계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무기를 싫어함에도).
요나가 불쌍하다. 실제로 소년병이었던 한 아프리카 소년이 쓴 회고록이 떠오른다. 제목이 '집으로 가는 길에’ 였던가. 전쟁에 도취된 소년병들. 그 중에 한 명이 요나인 것이다. 으음…..
이제 코코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코코의 계획에 코코의 오빠 캐스퍼는 "하늘이 봉쇄되면 배를 통해 팔면 되고 총이 없으면 칼을 팔면 되고 칼이 없으면 몽둥이를 팔면 된다. 그게 무기상인이다.” 라면서, 인간은 결국 폭력성을 버릴 수 없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형태로든 전쟁과 무기는 존재할 거라고 냉소한다.
나도 캐스퍼의 생각과 같다. 코코가 강제적 세계평화를 이루어 내도 인간은 어떻게든 틈새를 파고들어 무기를 사고팔테고 폭력성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실 코코의 생각이 나이브하긴 하다. 세계 평화는 강제로 될 게 아닌데.
하지만 코코처럼 될 것인가, 캐스퍼처럼 될 것인가, 를 선택할 수 있으면 난 코코처럼 되는 것을 선택할 거 같다. 나는 새로운 세계, 유토피아적 세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토피아적 세계를 시도한 세계를 시도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기대한다.
코코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실 그 계획을 계획하면서 코코 또한 자신의 계획에 굉장히 냉소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럼에도 그것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는 세계가 싫지만 희망은 버릴 수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코코는 “몰라, 어떻게 되든” 이라면서 자신의 계획 '요르문간드'가 어떻게 될지 생각 안하겠다고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지만 일단 시도해본다. 그것은 나도 동감이긴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브한 코코의 계획을 그렇게 심하게 비웃지 않는다.
애니의 결말은 코코가 요르문간드를 실현하는 것으로, 열린 결말 형태로 끝난다. 즉 그 뒤에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점이 독특한 거 같다. 내가 이제까지 봐온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는 나이브한 꿈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지 나쁜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지 어느 정도 암시로라도 대답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코코의 꿈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 애니메이션은 결말을 맺는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의 등장인물조차 코코의 꿈에 대해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난 생각한다. 아 물론 등장인물들이 코코의 계획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장면이 있긴 하다. 또한 요나는 코코를 떠난 2년 동안 코코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애니에서 그걸 깊게 다루지는 않았음)
코코가 꾼 강제적 세계평화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그것 때문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문명이 퇴보하면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거야. 그게 원숭이와 다른 점이지"라는 코코의 말처럼 인간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전쟁을 그만둘 것인가.
천진난만한 꿈, 그 꿈의 실현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새로운 세계는 정말 유토피아적 세계일까?
아 쓰고 나니 중2중2하다. 세계의 실현이래;;
어쨌든 나름 기나긴 감상문이었다. 오랜만에 글을 길게 쓰니 노트북 키보드가 뻑뻑하다.
전체적으로 좋은 애니메이션이었다. 단점을 꼽자면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거? 전개가 빠르다 보니 설명을 대충 하고 지나간다. 자칫하면 애니 내용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코코의 계획 '요르문간드'조차 설명이 좀 부족한 느낌. 아니 애니에서 가장 중요한 코코의 계획을…. 이건 나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그 점만 빼면 좋다. 액션도 박진감 넘치고. 밀리터리물 포비아가 아니라면 볼 만하다고 생각.
결론은 요르문간드 좋았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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