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4일

1. “네가 어떻든 난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왜냐하면 난 너를 이해할 자신이 있으니까.” 하양지 작가의 <우리는 시간문제>에서 나왔던 대사였고, 내 기억에서 끄집어내 쓴 문구이기 때문에 정확한 문구는 저게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지는 비슷하니까 상관 없겠지.
옛날의 나라면 저 말을 하는 사람을 굉장히 오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쩌면 경멸을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전혀 이해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또는 나를 이해할 가능성 자체가 없어 보였고, 그런 주제에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기에.
그런데 1주일 전부터 누군가한테 저 말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어떻게 해서든 나라는 사람을 포착하려는 욕망을 위해 자신의 가치관도 꺾어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선언’ 그 자체가 중요할 거 같았고. 그 선언을 위해 오만함을 감수하며 저질러 버리는 것. 그러니까 상처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그 마음에 감동을 받을 거 같아서. 그 사람이 이렇게 깊은 고찰 끝에 그런 말을 하든, 아니면 내가 너무너무 좋고 나와 어떻게 해서든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냥 생각 없이 저질러버린 것이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상상인 것 뿐이고. 실제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고, 또는 나한테 저런 말을 하고 싶은 살마이 있어도 내가 그 사람의 입을 막아 버리는 태도를 은연 중에 취할 것이다. 이제껏 나는 트위터에서나 아니면 친구들에게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1000000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왔으나 실제로 나한테 관심을 갖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나는 매우 뻣뻣해지고 그 사람을 엄청나게 경계한다. 그러니까 건전한 상식인은 나한테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2. 왜 나는 여자인간즈를 불편해할까? 이것 때문에 동아리 갓 들어온 신입 시절에 많이 고민했었다. 레즈비언인간즈와 친해지고 싶은데 그들은 이미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1000000명 있고 갓 스무살이 된 꾸러기부치 같은 나한테는 관심이 없어 보였고… 그래도 어찌저찌 레즈비언인간즈의 사교현장에 끼어들 기회가 몇 번 찾아와서 열심히 그들과 친해지려 했지만 막상 그런 자리는 나한테 너무 재미가 없었고 나한테 너무너무 죽고싶음을 선사해 주었다.
나는 동질감과 소속감을 엄청나게 갈구하는 모양이다. 나는 내가 레즈비언인간즈에 아무런 불편함 없이 소속될 수 있기를, 나아가 레즈비언인간즈의 일원인 것이 너무너무 나한테 재미를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실패했다.. 실패했고.. 그런 좌절감을 느낀지 몇년이 되어가고 있다.
요새는 내가 여자인간즈 자체를 불편해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한 한달 전까지 대부분의 여자인간즈가 노잼이라서 나는 그들과 친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정신승리를 해왔었는데 요새는 그냥 내 잘못인 거 같다. 내가 그들을 불편해하니까 그들도 나를 불편해하는 것이다. 갑자기 2년 전에 나 설마 여성혐오자레즈비언인간이 아닌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초딩인간이던 시절 초딩고학년 때의 반 여자애새끼들은 나를 무척이나 적대시했었다. 어깨빵도 당한 적 있고… 체육시간에 발야구를 하다가 잘나가는여자애새끼의 면상에 공을 날렸다는 이유로 잘나가는여자애새끼들의 여자애새끼들무리의 일원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게 되어 그 무리들과 같은 팀이었던 반 친구가 내 쪽으로 와서 “쟤네가 너를 너무 욕해서 저기 못 있겠다” 라고 했었었고… 피구 시간에 여자애새끼들은 지들끼리 공을 맞추면 미안해 괜찮아 다치지 않았어? 이지랄을 서로에게 해댔는데, 나한테 공 졸라 세게 던지고 내가 피구장 밖으로 퇴갤할 때는 나를 쌩깠고… 초딩방과후학교 글쓰기 시간에 6학년언니애새끼들이 나를 졸라 왕따시키려고 했었고 멍청한 글쓰기선생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대처할 생각도 안했고 병신같이 나한테 와서 너 괜찮니? 하고 물은 게 다였다. 6학년 시절에는 뭐 친구 한 명도 없었고…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그렇다고 남자인간즈가 더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여자인간즈에 의한 트라우마를 많이 겪었고… 지금도 여자인간즈(특히 헤테로여자인간즈)는 나를 이유 없이 불편해할 것이라고 믿는다.
너무너무 고민이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100년 지나서도 여자인간즈트라우마가 날 지배할까봐
3. 곧 있을 어떠한 졸라멋진일 때문에 동아리에서 글쟁이들의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외로움이었다.. 왜냐하면 나도 그들의 일원이고 싶어서…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일원이 되는 법을 알고 있다. 바로 글을 써서 주면 된다. 그러면 그들은 내 글을 푸하냠냠 맛볼 것이고 나를 글쟁이파티의 회원으로 받아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마이크로소프트오피스 워드 2007의 파란 배경의 하얀 종이를 보면 손가락이 굳고 금방이고 침대에 누워서 게임 실황을 보고 싶다고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나 자신이 너무너무 싫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에서 타온 항우울제의 용량이 반으로 줄었고 아마 한달 뒤에 약을 더 이상 안 먹게 될 것 같은데 내가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섭얼번에서는 과외로 돈을 벌고 누워서 먹고 자고 놀아도 되기 때문이다. 두달간 잊고 있던 글에 대한 공포와 학업 공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제는 과외 갔다 오고 나서 엄청나게 늦은 저녁을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아빠한테 “나중에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바리스타해야지” 라고 씨부렸었는데 그때 당시의 나는 그 말이 걍 씨부리면 말인 줄 아는 걸로 내뱉어진 게 아니라 정말 그 말이 이루어질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내 미래는 어떻게든 될 것 같았고 자살만 안한다면 어케든 나름 인간답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지금은 모르겠다. 엄청나게 자괴하고 있지는 않은데 어제처럼의 이유 없는 낙관에 빠져있지는 않다.
4. 내가 바라는 것은 자살 안 하고 살아 있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삶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될 것… 글을 써서 졸라 멋진 학자가 되고 싶다는 것… 인간즈가 만든 사치와 쾌락과 문화 등등을 나름대로 조금씩 맛보며 살 수 있게 될 것… 그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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