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0일 - 자아분열과 커밍아웃


자아분열과 커밍아웃


1월 30일자 KSCRC 퀴어아카데미 강의를 듣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본다.
강의는 커밍아웃에 대한 것이었고, 강의 및 질의응답 시간에 ‘자아분열'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자아분열이라는 것은 일반 사회에서의 '나'와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분리된 것을 뜻하는 듯 하다. 그래서 각각의 사회에서 취하는 행동 양식, 커뮤니케이션도 상당히 분열되어 일어나는 것이다.
질의응답 시간에 누군가 강사 분이신 MECO님께 “그렇다면 일반 사회에서와 이반 사회에서의 자아 분열감은 어떻게 극복하세요?” 라고 물었고 거기에 MECO님은 “결국은 한쪽이 한쪽을 먹는 식이 되더라"라고 답했던 거 같다.
한 쪽이 한 쪽을 먹는다. 그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히 동감했다. 나 또한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일반 사회에서의 나보다 비중이 훨씬 높고, 결국엔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일반 사회에서의 나를 먹어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한 쪽이 한 쪽을 먹는다, 라는 것은 '일반 사회에서의 나'와 '이반 사회에서의 나'가 모두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일반 사회에서의 나는 존재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MECO님의 '일반 사회에서의 나'의 비중이 정확히 얼마나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보다는 '일반 사회에서의 나'의 비중이 크신 듯 하다. 대학 들어와서 나는 과 생활을 거의 안 하고 큐이즈 활동만 했으며, 그 결과로 지금 인간관계의 대부분은 큐이즈 사람들이다.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일반 사회에서의 사람들이고, 그마저도 피상적이다. 일반인 줄 알았던 베프는 최근에 한 부치를 짝사랑하면서 일반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내 인간관계 대부분은 이반들이다.
'일반 사회에서의 나'는 아주 흐릿하고 얇은 존재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나라는 것은 '이반 사회에서의 나'밖에 존재하지 않는게 아닐까. 그래서 일반 사회에서 생활할 때 자아 분열감이 아니라 낯설음을 느끼는 게 아닐까? (여기서는 낯설음과 자아 분열감을 구별하여 쓴다) 아예 다른 세계로 던져진 이방인의 낯설음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커밍아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라는 생각을 했다.아직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하진 못했다. 그래서 그냥 날 것 그대로의 생각을 써내려가 본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결국 일반 사회가 아닌 이반 사회에서만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반 사회가 너무나도 낯설기 때문에, 아예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일반 사회로부터 도망치고 이반 사회에서만 살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내가 성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게 되든, 간호대학원을 가서 성소수자의 간호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되든 결국 그것은 이반 사회에서의 활동이 될 거 같다. 이런 상황에서 커밍아웃은 어떤 의미인가, 아니 커밍아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이반 사람들에게 자기의 정체성을 밝히는 걸 커밍아웃으로 치지 않는 거 같다. 커밍아웃으로 치는 것은 주로 일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경우가 대다수인 거 같다. 내가 만약 이반 사회에서만 활동하게 되면 커밍아웃이라는 것은 내 세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벽장 밖으로 나온 것일까, 아니면 무한히 확장된 벽장 안에서 사는 걸까? 복잡하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한다. 나 자신이 이반 사회에서만 존재하는 게 가능할까? 피상적이든 간에 결국 일반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은 발생할 것이다. 일반 사람들과 접촉하는 순간에 '일반 사회에서의 나'는 드러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해서 총체적 난국. 그래서 어제 강의 질의응답 시간에 이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 쓴 이 글을 보니 두서가 없지만, 이만큼이라도 정리하여 쓴 것은 놀랍다. 어제는 그냥 날 것의 생각들이 엉켜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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