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의 게시물 표시

2018년 12월 19일

1. 어제 퀴플 회의에 갔다. 어떻게 글 한 편을 쓰는데 성공해서 이번 퀴플에 내 글이 실리게 되었다. 회의에 갔는데 애쉬님한테 얼굴빛이 좋아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애쉬님 말고도 다른 분들도 동의했는데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 말고도 이번 학기에 졸업하시는 분도 회의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그분한테도 얼굴빛이 좋다는 소리를 했다. 그분은 취업을 하셨는데, 아무튼 진로라는 건 아주 무거운 짐인 모양이다. 어떻게 진로가 정해진 사람은 마음의 짐을 덜어 홀가분한 얼굴을 하니 안색이 어두침침하지 않은 것이다. 퀴플 회의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뒷풀이로 양꼬치를 먹으러 갔는데, 나는 갈 길이 먼 수도권 거주자이기 때문에 한시간밖에 있지 못했지만 아주 오랜만에 유쾌한 술자리를 가졌다. "내가 있는 모임은 망하고 내가 없는 모임은 흥한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는데 어제만큼은 그 격언이 틀려서 참 좋았다. 2.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탔는데, 즐거운 술자리치곤 서둘러 나온 것이긴 하나 아무튼 시간이 야심해서 배차간격이 늦으므로 서서 가더라도 타는 게 좋았다. '운이 좋게도'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탔는데, 사실 그건 딱히 행운은 아니었다. 취객이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출발이 지체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카드를 찍고 버스를 탔을 때, 취객과 기사님은 싸우고 있었고 토사물 냄새가 났다. 냄새가 아주 심한 건 아니었다. 취객이 버스에다 토했는데 토사물을 치우는 걸 거부한 모양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쌍욕과 험한 말이 오갔는데 기사는 씨발 그럼 니가 토한 걸 니가 치워야지 내가 치우냐? 너 내가 토한 거 치울래? 응? 이런 식으로 말했고 취객은 왜 욕을 하고 지랄이냐 이런 식으로 대꾸했던 것 같다. 취객은 참 멀쩡해 보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곧잘 떠올리곤 하는 "진상 취객"의 꼬질하고 추한 모습이 아니라 어엿한 가부장이자 멀끔한 샐러리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히

2018년 11월 30일

1. 글을 써야 한다... 퀴플글을 써서 퀴플을 살려야한다... (사실 내가 글을 못 내더라도 퀴플은 당장 죽진 않을 거 같지만) 어쨌든 나 같은 인간은 의무와 마감이 아니면 한 편의 완성된 글을 못 쓰는 사람이다... 블로그에는 잘만 일기 따위의 잡문을 올리곤 하지만, 어디에 인쇄될 글을 쓰는 건 아무래도 부끄러우니까 잘 써보려는 핑계를 대며 1억년의 시간을 소비하곤 하니까... (그리고 긴 시간을 소비해서 글이라도 완성하면 다행인데 삽질로 그치는 경우가 더 많아서 문제다) 2. 어제 과외 일이 하나 더 들어왔고 총 4명의 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 중 2명은 주1회 수업이긴 하지만) 거의 내 체력의 한계까지 일을 받아버렸으니 쉴 시간이나 공부할 시간은 있을까 걱정이긴 한데 일단 저질러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 2, 3주만 기다리면 종강이라서 서울 갈 일이 없어지고 대충 주 2일은 온전히 일정이 비는 날이 되니 괜찮지 않을까? (잘 모름) 저번 화요일에 친구들을 만났는데 내가 과외 일을 많이 하게 되었고 그걸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비축해둬야 한다고 말하니까 연숙이가 걱정을 했다. 걱정이 될 만도 하다... 나는 나같은 정신병자 친구들을 많이 뒀는데 그런 친구들 중에서도 체력이 진짜 없는 편이기 때문이다. (근육도 지방도 없는 말라깽이라서) 모르겠다... 일단 저질러보자... (결론 똑같음ㅋㅋㅋ) 3. 엄마아빠는 이제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래서 집은 평화롭다. 보통 엄마아빠 사이에 오고 가는 말 중 많은 것들이 굳게 닫힌 내 방문을 뚫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집에 아주 늦게 들어오거나, 집에 일찍 들어오면 저녁 먹고 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지나치게 집안 눈치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청소년기부터 집안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애꿎은 내가 좆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나를 둘러싼 환경의 분위기를 읽고 거기에 맞춰 몸을 사리는 식으로 나는 생존해 왔으니, 그 생존방식이 나를

2018년 11월 23일

대학원 삼수에 성공했다... 한시름 덜었다. 그리고 과외 일 하나 성사됐고 학부모님이 화끈하게 당일 입금을 해주셔서 통장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일타쌍피로 좋은 일이 생겨서 기분이 묘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아 기쁘고 삼수 기간동안 내가 자살할까봐 걱정했던 친구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어 또한 기쁘다. 그간 긴장을 많이 했는지 어제부터 계속 몸에 힘이 없다. 약간 바람 빠진 공기인형처럼 정신이랑 몸이 흐물거린다... 어제는 하필 엄청나게 추워가지고 이러다 몸살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아직까진 괜찮다. 이왕 흐물거린 김에 푹 쉬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고 하면서 카페에 왔지만 퀴플글을 안 쓰고 인터넷 서핑만 하고 있으니 이것도 휴식의 일부겠지) 오늘 점심에는 엄마랑 추어탕 먹고 카페에 갔다. 합격 겸 과외 성사 축하 기념으로 내가 다 샀다. 아무튼 엄마랑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석사과정 등록금 이야기와 생활비 마련 등등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푸닥거리도 듣고 그랬다. 아무튼 엄마와는 참 복잡한 관계다.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심하게 상처 입히면서 그 누구보다 가장 나를 잘 위로한다... 어쩔 때는 그 누구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아주 가끔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지. 서로를 가장 연민하다가 빡이 쳐서 머리통 뽑힐 정도로 머리채 쥐어뜯고 싸우고 그러다가 다시 화해하고... 그러고보니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서 재미 있는 일화가 나오는데 일기를 마무리하면서 여기다 복붙하도록 하겠다. -------- 비화와 전설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정치적 관심 어디에도 의미 있는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막스 브로트, 프란츠 베르펠, 에곤 에르빈키슈 같은 그의 프라하 친구들이나, 역사의 의미를 알려고 한다면서 미래 모습을 그려 내기만을 즐겼던 다른 전위주의자들과 구별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만 집중된 내향적 예

2018년 11월 21일

1. 미쳐가는 기간 동안 발저의 책 2권을 읽었다... 뚜부가 선물한 <벤야멘타 하인학교>와 배수아 작가님이 번역한 <산책자>라는 책이다. 발저는 가난한 프톨레타리아라 글을 쓸 종이가 없어서 광고지나 신문지 등등에 아주 조그마한 글씨로 글을 썼다는데 내게 타임캡슐이 있다면 내 방에 넘쳐 흐르는 종이 1억장을 발저에게 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데 발저에게 종이가 많았다면 그렇게 미친듯이 글을 썼을까? 문득 길을 걷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뭔가를 많이 쓰고 그리고 아무튼 무언가를 생산해 낸 사람들은 얼마나 속에 쌓인 게 많아서 그렇게 미친듯이 만들어 낸 걸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떠올린 것이었다. 발저가 트위터를 했다면? 니체가 트위터를 했다면? 기타 등등의 할말이 오지게 많았던 옛날 사람들에게 썩어 넘치는 종이와 펜 그리고 노트북 아이패드 등등을 쥐어주는 상상을 했다. 2. 버크만 심리검사라는 것을 하고 그것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했었는데 세미나 활동의 일환으로 비슷한 유형의 사람끼리 모아두고 각자의 취미와 그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적고 다른 유형끼리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었다. 세미나에 참여한 학생은 나 포함해서 대충 9명 정도 있었고 (9명 모두 여자였다. 남자들은 심리검사에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테이블은 3개였는데 내 테이블은 나를 포함해서 3명이 앉았다. 아무튼 다들 초면이다. 초면에 갑자기 초등학교 때나 하던 모둠활동을 하라고 하니 모두들 약간 당황스러워했지만 곧 어색함을 풀고 잘 해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 테이블의 유형은 (당연하게도) 간접소통을 선호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소위 '예술가형'이었는데 그 테이블에 앉은 3명 중에서 내가 제일 자폐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10분 가량의 활동을 하면서 '소통'이라는 것을 해야 했고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고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다가 자연히 긴장감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나 빼고 나머지 두 분은 나보다 좀더 성의 있게

2018년 10월 25일

1. n년 전 야심한 시각에 광역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야심한 시각이다보니 취객 비율이 꽤 높았는데, 집에 도착하기 몇 정거장 전부터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서 복도 쪽을 보니 취객의 토사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건더기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아무튼 위액과 술이 섞인 액체가 내는 냄새가 온 버스에 진동했고 그 토사물을 뱉은 취객은 당연히 취객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토사물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그냥 내렸다... 버스 기사님은 그 취객한테 아니 이대로 해 놓고 가시면 어떡해요 그냥 토해놓고 내리기만 하면 다예요? 라고 억울하게 항변했지만 그 취객은 진짜 제 발로 걷는 게 용할 정도로 이성을 잃은 상태여서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내렸다... 버스 기사님은 몇 번이고 욕을 내뱉다가 버스에 남은 몇 명의 승객(나 포함)에게 잠시 슈퍼 좀 들르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락스를 사들고 왔다... 승객들이 다 내리고 차고지에서 그 버스 기사님은 자기 책임이 1나도 없는 그 토사물을 치울 수밖에 없겠지... 어쨌든 대책 없이 흐르는 토사물과 그것이 내는 불쾌한 냄새와 억울하고 빡친 기사님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왜 갑자기 그때의 가엾은 버스 기사님이 떠올랐더라? 아마 오늘 정신병원 갔다가 카페로 가는 길에서 억울함과 답답함에 대해 곱씹다가 내 기억 한켠에 있던 그 일화가 툭 튀어나왔던 것 같다. 수없이 많은 억울한 사람들... 불쌍한 사람들.... 2. 오늘 아침에 정신병원에 간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이 분이 내 정신병 주치의가 된 지는 대략 3년 정도인데 오늘 아침에 받은 진료가 최장 진료였다. (그 때문인지 내가 진료실을 나오니 대기하는 환자들이 참 많았다..) 오늘 진료 때 처음으로 주치의 분께 가장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거 같은데 그러니까 그 분에게 구구절절한 사연을 말하면서 질질 짰다는 말이다... "님은 정말 성숙한 사람이라서 자기 객관화도 잘 되고 되게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다만 에너지가 없어서 몸이 안 따라주는 것 뿐입

2018년 10월 21일

1. 나는 이제 자유의지가 없는 기계 같다. 생각을 할 때만 나 자신이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처럼 느껴지는데, 생각의 촉발은 심각한 고통을 야기한다. 그래서 의지력을 써서 뭘 해야지 라는 생각을 버리고 때 되면 집안을 청소하는 로봇청소기처럼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잠이 덜 깼으면 양껏 자고, 잠이 다 깨면 조금은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지 하고 앉아 있다가 슬픈 생각이 들면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산책을 하고... 내가 자유의지를 갖고 하는 행위는 오로지 누워서 잠들기 뿐이다. 약 덕분인지 낮잠을 실컷 자도 밤에 잠이 잘 온다. 자는 건 너무 좋다. 면접이 끝나고 댜른이랑 이른 점심으로 섭샌을 먹으면서 댜른이가 요새 정신분석과 문학이라는 수업을 듣느라 프로이트를 읽는데, 프로이트가 "별 거 아닌 사람보다 별 거 있는 사람에게서 우울증이 더 많이 발견되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라고 했다며 나를 위로하는? 뭐 암튼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웃겼다. 그후에 커피를 마시고 댜른이랑 야노남 이야기랑 뭐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귀찮아서 적지 않겠다... 2. 면접 때 들은 "쉬는 시간이 많았는데 공부를 별로 안 한 것 같으네?"라는 질문과 "요새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뭐야"라는 질문이 아직도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비슷한 질문을 듣게 되면 어떤 식으로 대답해야 덜 똘추같을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저런 질문을 할 사람이 앞으로 몇이나 될까? 그래도 저 질문에 대해 그럴 듯한 대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기보다 곧 있을 제2외국어시험을 위해 독일어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내일부터 열심히 하면 되지) 3. 오타쿠질을 시작하다보니 부끄러움이 많은 오타쿠에게 모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부끄러움이 많은 오타쿠들이랑 구석탱이에 모여서 음험하고 부끄러운 이야기하면서 수치를 공유하고 싶다...

2018년 10월 10일

1. 사랑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이 으레 가지고 있을 법할 바람이나, 나의 경우엔 그것이 유치할 정도로 노골적이라고 생각했다.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사랑 받고 싶어! 인정 받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울적해지거나 혹은 좀 더 힘내야겠다는 다짐을 할 정도이다. 그냥 내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인정하는 게 가성비가 좋은 일일 테지만 남들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툭 던지는 호의라든지, 그들의 따뜻한 말이나 칭찬이 주는 짜릿함과 기쁨을 어떻게 바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게 무의미한 짓거리로 보일 정도로 남들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줄 때의 쾌감은 엄청나다... (라는 것을 며칠 전부터 골똘히 생각했고 블로그에 메모해 둬야 한다고 생각해서 오늘 적었다) 2. 무의미한 것도 무의미하다는 것에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똘추 인문학자들이 좋아하는 말장난이다) 요새는 정말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버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현재 밖'으로 생각이 튀어나가려고 하면 얼른 생각을 차단하고 있어서 심각한 무기력과 우울에는 빠지지 않고 있다. 그래도 너무 낙이 없어서 (나에게 낙을 주려고 해도 그것들이 나에게 주는 감흥이 별로 없어서) 요새가 엄청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서 더더욱 그럴 것이다. (혼자 있고 싶고, 돈도 없다. 그래서 난 혼자다) 내 머리 속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될 수도 있을 법한 영감들이 간간히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그게 내 머리 밖으로 나와야 말이지 지금의 나로서는 공상에 빠져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 (당신은 방금 우울증으로 인해 베토벤을 죽였습니다) 빨리 무의미한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

2018년 10월 4일

(사실은 10월 3일 일기임) 개천절에 외할머니 병문안 갔는데 이제 수술 후 간병+재활치료를 위해 일산 등지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모양이었다. 척추 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팔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셨는데 많이 아프신지 여름에 뵀던 것보다 더 야위고 초췌해 보이셨다... 내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할머니는 슬퍼 보였다. 엄마는 내 옆에 서서 여기 병원 어떻냐 뭐 필요한 거 없냐 물으면서 이 자리를 견디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할머니는 뭐라 뭐라 대답했다. 좀 앉아 있다 보니까 어디선가 똥 냄새가 났다. 할머니가 싼 걸까? 싶었는데 옆 침대 할머니가 싼 것이었다. 간병인이 새 기저귀로 갈아주는데 옆 침대 할머니가 좀 냄새날 수 있어요 라고 웃으면서 말하는데 나는 그다지 불쾌하진 않았다... 비위가 강한 편이기도 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기저귀에 지린 본인이 더 불쾌할 것이고 사람이 똥을 싸면 냄새가 나는 법이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어쨌든 병문안은 한 시간 정도로 끝났다. 할머니가 이제 가라고 두 번이나 말했을 때 엄마랑 나는 병실을 나왔다. 할머니가 계속 내 손을 자기 가슴께에 가져다가 주물거리는 것이 생각나는데 그때 나는 할머니의 가슴이 너무 앙상해서 갈비뼈밖에 느껴지지 않아서 생경했었다. 아빠는 복도에 있는 휴게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병원 원칙상 두 명까지 병실에 들어갈 수 있다) 무슨 집에 그냥 빨리 가서 야구를 볼 것이지 조금만 더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서 엄마랑 나는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갔다. 이디야가 있어서 거기로 갔다. 내가 커피 사줄까? 하고 물으니까 엄마가 여기까지 왔는데 자기가 사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나)와 카페라떼(엄마)와 생크림 와플을 시켰다. 자리에 앉아서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엄마한테 "엄마가 죽고 싶으면 스위스 데려다 줄게 거기는 2천만원에 안락사를 할 수 있대 만약 살고 싶으면 그때 돈 많이 있으면 좋은 요양원 데려다주고"라고 말했는데 엄

외로와요 외로와요

이해 받고 싶다... 라는 생각을 어제부터 계속 했다. 그러다가 방금 생각이 바뀌었는데, 이해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제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성내지 않고 끝까지 들어줬으면 좋겠다, 나에게 해명하고 변명할 기회를 한 번만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말이다. 제발 제 이야기 좀 들어 주십시오... 그런데 아무도 안 들으니까 아무한테도 이해 받지 못는 외톨이 광인들은 이상한 확성기나 팻말 같은 걸 들고 명동 한복판이나 지하철 같은 데에서 떠드는 거겠지. 그네들이 내 미래일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수줍음이 많고 체력도 약하니까 직접 광장으로 나가 외치지 않고 인터넷에다가 글을 써서 올릴 터이다. 같은 장르를 파는 덕질 인터넷 친구도, 게임을 같이 하는 에오르제아 친구도 어느 순간에는 불편함을 느껴버린다. 그것은 어떤 사안에 대해 솔직하게 내 의견을 털어 놓을 수 없을 때 그렇다. 얼마 전에 파판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고 싶어 파판 게임 계정을 따로 팠는데 한 분이 트랜스젠더 혐오적인 트윗을 알티했다. (랟펨 쪽에서 뭐라 뭐라 하는 것들 말이다) 그 분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트윗을 동의의 의미에서 알티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리트윗 끄기를 눌렀다. 어떤 특정 집단에게 모함을 받고 혐오를 투사 받는 인간이 내 친구고 님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예요 라고 말할 수가 없다. 그냥 속으로 눈물이 날 뿐이다. 옛날에는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게 많으면 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지금은 그 생각이 꽤나 순수한 이상론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고 공부를 그만두지도 말을 잃고 싶지도 않지만... 어쨌든 요새는 그냥 말문이 막히고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속으로 언젠가는 해명할 기회가 있을 거야, 저들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닐 거고 그저 몰라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라고 긍정회로를 돌리기만 한다. 사람들이 조금만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덜 잔인해졌음 좋겠다...

2018년 9월 22일

1. 과외 일 하나를 정리했다... 이유는 학생 어머니가 싼 값에 지나치게 갑질을 해서이다. 안 그래도 자살 직전이라 멀쩡한 집이라도 도저히 일을 할 상태가 아니기도 했다. 어쨌든 과외 학생 자체는 괜찮았는데 과외 학생 어머니는 찔려서인지 아니면 화가 나서인지 알 수가 없지만 일을 그만두겠다는 문자에 답이 없었고 (이 집 어머니는 지가 뭐 요구할 거 있을 때에만 답장 보내고 그 외에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는 의례적인 답장조차 보내질 않는 사람이다) 과외 학생만 나한테 "시험까지만 봐 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거기다가 "진짜 미안한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안 돼..."라고 답하니까 "네..."라는 아련한 답장이 왔다. 내가 잘못한 것은 1나도 없지만 괜히 내가 책임감 없는 사람된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였지만 어쩔 수 없지... 어쨌든 일을 하나 정리하고 곧 수능을 볼 고 3 남학생 국어 과외 하나만 하기로 했다. 월 수입은 이제 45만원에 그치겠지만 일단 정신머리 상태가 나아지고 나서 일을 구하든지 하기로 했다... 올해는 과외 학생 학부모한테 데인 게 많아서 피해망상이 극심한 상태라 새로 일을 구하려는 시도조차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다... 아무튼 그렇게 됐다. 2. 갑질하는 과외 학생네 어머니 욕을 하다가 엄마가 늘 그랬듯이 공감성 제로인 반응을 보였었는데 (원래 세상이 그래 라는 식의 대답) 안 그래도 정신 머리가 안 좋은 상태라 엄마 말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해버렸고 덕분에 엄마랑 오랜만에 다투고 이틀 간 냉전 상태여서 며칠 전 엄마한테 저녁 사주겠다는 상투적인 화해법으로 해결했다... 엄마랑 나는 늘 같은 걸로 싸우고 같은 방식으로 푼다. 엄마가 "정말 우리는 궁합이 안 맞고 따로 사는 수밖에 없나봐"라고 말했는데 나도 동감했다. 동감하니까 엄마는 또 그것 나름대로 불만인 반응을 보였는데 결국은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엄마는 도대체 나를 이해하고 싶

2018년 9월 17일

1. 신경안정제+수면유도제까지 추가로 받고 온 날 저녁, 엄마가 다 같이 산책을 가자고 해서 게임을 하다 말고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무슨 생각으로 덥썩 나갔는지 모르겠다. 산책이 엄청나게 싫은 건 아니었고, 가기 싫다고 하면 운동도 안 하고 맨날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만 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나간 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아빠, 오빠, 그리고 우리집 개가 저 멀리 앞서 걷고 있었고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견디려고 애썼다. 막 나갔을 때는 괜찮았는데, 대학원 진학 관련으로 멘토링을 해야 한다는 문자를 받고 부모와 오빠의 이야기를 듣는 게 괴로워지기 시작하자 더 이상 가족들이랑 '오붓하게' 산책을 하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내 걸음은 차츰 느려져서 나만 혼자 떨어져서 걸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잘 따라오는지 뒤돌아 보면서 "산책하기 힘들어?"라든지 "너 체력이 약해서 큰일 났다" 따위의 말을 건넸는데 그들은 내가 갑자기 기분이 썩창돼서 가까스로 눈물을 참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들 딴에는 그런 쓸데 없는 말을 건네면서 내가 우울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려고 그런 것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위로'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뭐라 대답하면 오열할 거 같아서 엄마와 아빠가 건네는 시덥잖은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머리가 다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억겁과 같은 기나긴 '가족과의 산책'이 끝나고 나는 그냥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말했다. 원래 엄마가 산책의 조건으로 내건 것은 "산책 같이 나가면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였는데 애초에 맛있는 것을 얻어 먹으려고 나간 것도 아니었거니와 그 당시 내게 필요한 건 조용히 방구석에 처 박혀서 아무 것도 나를 자극하지 않는 안온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엄마와 오빠만 외식을 하러 나갔고, 아빠는 조용히 저녁을 먹는 나

ㅠㅠ2

제 2의 부모인 정신의학과 의사선생님께 "에쎌님은 저한테 힘들다는 말을 잘 안 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한테 마음을 못 열어서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제가 힘든 건지 안 힘든 건지 판단이 잘 안 된다는 이상한 변명 같은 것을 황급하게 뱉었는데 선생님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는 듯, 그러면서도 다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 웃음을 보자 내가 선생님한테 어떤 식으로 보였는지가 눈에 보이는 듯해서 부끄러우면서 웃겼고 (전형적인 중증 우울자의 병적인 '둔감함') 선생님이 나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하긴 이 병원을 3년째 다니고 있으니까) 누가 봐도 내가 지금 힘들어 보이는구나 싶었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힘들다는 이야기를 잘 안하는 사람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선생님께서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니까 그 표정이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고 싶어하는 것이었구나 싶었다. 그러니까 기뻤다는 것이다. 어쨌든 다음주에 다시 한 번 병원에 들르기로 약속하고 자기 전에 먹는 신경안정제와 수면유도제를 새로 처방받고 바로 이비인후과에 가서 비염약을 받아 왔다. 처방전 두 개를 들고 약국에 가니까 나 자신이 완전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같았다. 정신의학과에서, 이비인후과에서 처방 받은 약을 받으면서 약사 선생님은 코막힘을 억제하는 수도에피네프린이 신경 흥분제라서 메틸페니데이트와 중복되는 효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꼭 병원을 동시에 갈 땐 평소 먹는 약을 알려야 한다는 잔소리 비스무리한 당부를 들었다... 알겠습니다 하고 얌전히 약을 받았다. 약을 받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나는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고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곱씹었다. 나는 힘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맨날 누워 있고 내가 걱정하는 것들이 쓸데 없는 걱정이고 나는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피곤

ㅠㅠ

"마음의 아픔도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 신경을 활성화시키므로 마음이 아플 때 진통제를 먹으면 도움이 된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고통을 느낀다. 진통제는 먹지 않았다. 곧 생리를 시작할 것 같아서...(안할지도 모르지만) "'너는 먹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먹질 못했다"라는 말도 실감하고 있다.. 너무 외로워서 레즈비언 업소에 간 사연을 그린 작가의 말이었는데 방금 전에 배가 고파서 이틀 전에 시키고 남은 피자를 먹은 참이다. 먹는 것도 너무 힘겹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피자는 맛있었다) 음식을 먹는 일에 자격을 논하는 건 웃기는 일이고 설사 자격을 논한다 하더라도 내게는 충분히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먹는 일은 너무 싫다... 하지만 배고픔은 더 싫어서 억지로 먹는 것 뿐이다. 먹어야 낫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음식을 목구멍으로 넘기면 몸은 그걸 밀어내려고 애쓴다... 특히 스트레스와 흡연 및 카페인으로 좆창난 위가 엄청나게 성내는 게 느껴진다. 내 몸뚱아리를 구성하는 것들 중 제일 미안한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위장일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위장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아 그 죄로 지옥에 간다면 할 말 없을 정도로 위장에게 송구할 뿐이다... 그리고 더더욱 지옥 갈 말이지만 송구하기만 하다... 나도 위장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가 너무 괴롭고 싫어서 안 하고 있다.. (미안합니다...) 난 고장이 났다. 고장난 건 오롯이 내 잘못만은 아니다. 스피노자적으루다가 생각한다면 이런 고장은 필연적이다... 왜 갑자기 스피노자 이야기를 꺼내고 그러지..? 그것은 인과론에 대한 생각 때문에 튀어나온 드립이다. 방금 전에 피자를 먹으면서 생각했는데 정신병자들이 다 자기 탓이라며 자책하는 이유는 그것이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이제 의식적으로 자책을 회피하고 언젠가는 지나갈 일이다 라고 되뇌이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몹시 불편하다... 내 잘못이라

2018년 9월 9일

1. 어제 도착한 언데드 앨범 (앙스타 덕질의 산물) CD 리핑을 하려고 과외 끝나고 피씨방 두 곳을 찾아가서 여기 CD 리핑 되냐고 물어봤는데 다 안된대서 (요새 누가 CD 같은 걸 쓰겠어요...) 두 달 간 묵혀 뒀던 데스크탑을 한 번 고쳐보자고 마음 먹고 집에 가서 고쳐 봤다... 그런데 너무나 허무하게 해결이 되어서 (진짜 좀 어이 없을 정도로...) 나는 드디어 두 달 만에 데스크탑을 쓸 수 있고 게임도 할 수 있게 됐다. 뭐 어차피 여름 내내 너무 더워서 데스크탑이 멀쩡히 돌아간다 해도 잘 안 했을 테지만... 우울증도 오져서 누워 있기 바빴고... 아무튼 그 기념으로 오랜만에 넓찍한 화면으로 일기를 쓰고 있다. 두 달 동안 키보드도 제대로 만지지 않았기 때문에 먼지 쌓인 게 장난 아니었다. (나름 싸구려지만 무접점 키보드라서 10만원 정도 주고 산 키보드인데) 아무튼 물티슈로 박박 닦았다. 2. 오늘은 너무 화가 나고 죽고 싶었다... 일단 아침에 밥을 먹으면서 아빠한테 등록금 달라는 아쉬운 소리를 했다. 당연하게도 니가 내라는 소리를 들었다. 방학 시작 전에는 내가 내겠다고 당당히 큰 소리를 쳐 놓았는데 내가 생각보다 돈을 못 모아둬서 어케 안 되겠냐고 사정했다. 그 과정에서 엄마한테 "내가 보기엔 너는 아직 덜 힘들어봤고 인생 편하게 살았어" 라는 말을 들었는데 내가 생리 직전이기도 하고 이른 아침(8시)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만 것이었다. 실수로 부모 말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들은 것이다. 더욱이 아쉬운 소리를 할 땐 온갖 인신공격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내뱉은 저 말은 꽤나 고통스러웠다. (왜냐하면 진짜 못 살 거 같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엄마한테 "내가 언제 엄마한테 인생 편하게 산다고 이야기한 적 있냐? 아무튼 내 잘못인 건 맞는데 인생 쉽게 산다고 말하지 마라"라고 쏘아 붙였다... 음...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

2018년 9월 1일

어느덧 9월 이다 ? ??? 자주 가는 카페에 갔더니 사람이 와글와글했다. 거의 다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의 자녀를 둘 법한 나이의 여자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황망하게 나와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에 갔다. 그리고 정말 맛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가 모양 빠지게 머그잔에 담겨 있는 것을 시키고 자리에 앉아서 독일어 공부를 했다...(아마도) 한 5번 정도는 읽은 문법책인데 읽으면 이해가 된다... 외우질 못해서 그렇지...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읽으니까 너무너무 힘들고 의욕이 없었다. 요새 나는 울적한 기분에 빠져들 것 같으면 아예 생각을 멈춘다. 그런 탓에 고장난 라디오처럼 자살...자살...자살...만 반복하는 것이다.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면 자살 뒤에 이어지는 심오하고 깊고 쓸데 없는 부정적인 것들이 이어질 터라서) 이럴 때는 답이 없다. 빨리 집에 가서 누워 있는 게 상책이다! 안 그러면 괜히 불편한 카페 의자에 뭉기적 앉아 있어 치질만 악화되고 쓸데 없이 힘만 든다. (안 그래도 집 근처 항문외과를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맛 없는 커피를 어찌저찌 다 마시고 짐을 챙기고 집으로 갔다. 이틀 전만 해도 하늘이 무너지듯 번둥천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졌는데 하늘이 무척 맑았다... 햇빛을 쬐니 뜨거웠는데 7월 말과 8월 초에 있었던 그 불지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걸어오면서 하루라도 더 살아 있는 건 대단한 일이고 어찌됐든 사는 놈이 강한 것이다 라는 이상한 적자 생존적 명제를 되새겼다. 안 그러면 정말 죽고 싶을까봐 그랬다... 가끔씩은 탈수 증세가 올 정도로 통곡하다가 칼로 온 몸을 긋거나 목을 조르면서 못 살겠다 못 살겠다 발작하고 싶기도 하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티고 최대한 안 좋은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로 했다. 이래봬도 체력은 약하지만 정신력은 강한 편이다... (아마도)  얼마 전에 본 에밀 시오랑 봇 트윗 중에서 '

2018년 8월 28일

1. 쉬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쉴 수가 없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로 '어른스러운' 이유다... 그래봤자 여전히 나는 대학원에 발목 잡혀서 이도 저도 못하는 멘헤라 백수일 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공부든 돈 벌기든 둘 중 하나만 하는 게 효율적일 뿐더러 내 심신에도 이로울 일일 텐데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도 싫고 (<- 손 벌리면 그래도 조금의 돈이라도 내 줄 수 있는 중산층 부모를 두었는데 배 부른 소리죠? 뜬금 없이 오늘 봤던 트위터 드립 중에서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 싫어서 다리를 벌리기 시작했어요 라는 문장이 생각난다) 돈 없이 곤궁하게 생활하는 것도 싫다... 그러면 공부를 포기해야 할 텐데 장학금 어쩌구 분쟁 때문에 전혀 그럴 수가 없게 되었죠? 망했죠? ... 그런 고로 그냥 둘 다 애매하게 울면서 하고 있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과외도 짤리고 입시도 망하고 겸사겸사 자살도 하고 그럴 텐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즐겨요 이기분... 이기?) 2. 마치 자위를 처음 배워 자위 생각만 하는 애새끼처럼 자살 생각을 강박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살 생각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의 'ㅈㅏㅅㅏㄹ'이라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을 계속 머리 속에 떠올리는 그런 행태라 예전에 겪었던 '자살 충동'과는 궤가 다르다. 이건 대체 뭐지... 몸과 마음이 더 이상은 무리라고 제발 좀 쉬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 내가 그걸 그냥 흘려 보내고 있는 걸까? 아무튼 다음에 정신병원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 상담해봐야 겠다. 3. 감기에 걸려서 코가 막힌 바람에 머리가 띵하다... 이만 줄여야겠다.

2018년 8월 21일

1.  나를 위로하는 문장 첫번째: "아무도 내가 얼마나 혼자인지 모른다..."  그리고 두번째: "적어도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아닐 거야!" 그리고 나를 무섭게 하는 것: 커서만 깜빡이는 빈 화면... 뭐라도 해서 유형의 결과물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 점점 약해지는 체력.... 2.  마누라랑 데이트하는데 과외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저희 애가 학원에 가기로 해서요... 앞으로 수업을 못하게 되었어요..." 저번 토요일에 수업했던 앤데 다음날에 잡혀 있던 수업을 취소하고 보충수업 기약을 잡지 않은 것에서부터 이 엄마가 다른 학원이나 과외를 알아보고 있구나 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그게 맞았던 것이었다. 이제 개강하면 평일엔 목요일밖에 시간이 나지 않는데 하필 마누라의 졸업논문 지도일이 목요일이어서 평일 낮에만 짧게 만나는 것으로 합의를 봤는데 토요일 일요일에 있던 과외 하나를 짤렸으니 토요일 오후에 만나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데다가 내 체력과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과외 학생 3명을 제 정신으로 가르치는 건 무리라는 사실에서 어쩌면 이렇게 깔끔하게 과외 하나가 정리된 건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다만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담배를 피우면서 "자살하고 싶다... 뭐라도 해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을 속으로 계속 읊었다. 그러다가 적어도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아닐거야 라는 문장을 떠올리면서 어떻게든 멘탈을 붙잡았다. 적당히 벌어서 아주 잘 살고 싶다!  3. 외롭기도 하거니와 뭐라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일기를 자주 쓰게 된다. 일기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고, 아무렇게나 써도 상관 없고 그게 부끄럽지도 않기 때문에 그렇다. 일기라도 마음 편히 쓸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하고 싶은 말이 속에서 곪아 터졌겠지... 4. 일단 앉아 있는 습관을 들

2018년 8월 19일

1. 틈만 나면 누워서 잠만 잔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도 끝났다. (이유: 다시 폭염이 시작되어 잠을 못 잘 것이기 때문에) 오늘 친오빠 생일이어서 외식을 하고 돌아올 때 너는 뻑하면 누워서 잠만 자는데 왜 이렇게 피곤해하냐고 한 소리 들었다. 진짜 피곤하고 힘들어서 누워 있는 거라고 하니까 엄마가 걱정된다고 했다... 나도 내 자신이 걱정된다. (누워서 아무 것도 안 하는게 습관이 된 건지 아니면 건강이 재기해서 이러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2. 앙스타 인형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있다... (씹타쿠 다 됨) 나중에 혼자 살면 다키마쿠라도 사지 않을까...? 모를 일이다... 사실 다키마쿠라보다는 폭 껴안기 좋은 봉제 인형을 갖고 싶은데 그런 건 팔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손재주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우상을 두는 게 생각보다 흐뭇한 일이라 돈을 벌어 피규어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크소울이든 소녀전선이든 앙스타든...나는 이제껏 먹을 거 입을 거 읽을 거에만 돈을 썼지 장식물에는 돈을 별로 안 써봤는데 이번에 책상을 들이면서 (+데이터쪼가리에 목 매는 미친년이 되면서) 그런 것들을 사게된 건데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워서 놀랍다. 3. 늘 졸립고 과외로 돈 버는 건 조만간 못 해 먹을 거 같고 (일자리도 잘 안 들어올 것이며 내가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나는 어떤 재주를 팔아 돈을 벌며 먹고 살까...? 오늘 외식하면서 친오빠가 스물여덟살까지 집에 얹혀 살았으니 (그리고 이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더 이상 백수가 아니게 된다) 너도 스물여덟살까지는 얹혀 살아도 된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대충 1년 반 정도는 이렇게 살아도 될 것이다. 아무튼 어떻게든 되겠지???? (모르죠) 4. 어제는 독서실 사물함에서 짐을 뺐다. 이제는 공부할 기력이 날 때에만 카페에 가는 게 돈이 덜 들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제 날이 추워지면 방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날이 추워져서 집에서 커피를 내려

2018년 8월 16일

1. 최근의 댜른이의 일기에서 드러난 그의 고통(아주 폭력적으로 요약하자면 연락 오는 거 짱나는데 친구들한테는 연락 받고 싶다는 것)을 곱씹어보고 있다.. 갑자기 이 말을 왜 쓰냐면 방금 전에 과외 학생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왔기 때문이다... 무서워서 전문을 읽지는 않았지만 대충 팝업으로 뜬 내용은 자기 아들이 수업을 잘 받고 있느냐, 처음에 만났을 때 스터디플래너 등으로 수업 진행 상황이 어떤지 보고해주겠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는데 그런 걸 안해주셔서 물어보는 것이다... 정도일 것이다. 어쨌든 내 집에 와서 수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과외비가 아깝지 않게 잘 가르치고 있는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나한테 연락을 하는 것이고 나는 그거에 응답하는 게 너무 스트레스다... 그래서 방금 전에 샤워하고 왔다. 샤워하면서 재기하고 싶다... 재기하고 싶다... 이 생각만 계속 했다. 오늘은 특히 내 상태가 병신이라서 더더욱 재기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과외학생 어머니들이랑 소통하는 게 제일 피곤하다... 그래서 답장을 재깍재깍 안 하는 편이고 이제까지 나를 접한 모든 어머니들은 그런 나에게 짜증났겠지... 하지만 내 알 바 아니다... 아무튼 일기 쓰고 나서 용기 내서 문자를 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죽고 싶다... 돈을 벌면 죽고 싶은 일들을 견뎌야 한다... 죽고 싶어야 돈을 벌 수 있다... 힘내자.... (힘이 안나요...) 2. 일하기 20분 전에는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재기하고 싶었다... 이거 진짜 약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정작 잠은 푹 못 자고 그렇다고 앉아서 뭘 하면 너무 피곤해서 아무고토 못하고...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운동 같은 것은 좆도 안 하고 단백질은 잘 안 쳐먹고 오로지 정제 탄수화물만 쳐먹어서 그런 거겠지요? 그런데 입맛이 없는 걸 어떡하라고... 나도 건강한 거 쳐먹고 근육돼지 되고 싶다.... 아무튼 수업하는 도중엔 속까지 쓰려와서 중간에 겔포스 먹고 수업 끝나자마자 바로 드러누웠다...

2018년 8월 9일

1. 아주 크고 긴 책상을 사는 것은 실패했다... 대신 엄마가 지역 맘카페 글을 보고 어디서 얻어 온 책상을 들였는데 길이는 1200센티 정도 된다. 널찍한 작업 공간을 가지지 못했다는 서운함은 있지만 꽤 만족스럽다. (공짜로 얻어온 거니까) 데스크탑과 27인치짜리 모니터를 두면 아주 부산스럽고 좁아질 테지만 현재 데스크탑은 벽돌 상태이고 내 게으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쓸 일이 없다... 그래서 현재는 방 구석에다가 데스크탑을 밀어놓고 책이랑 노트북만 뒀다. 책상이 생겨봤자 또 누워만 있겠지 싶었지만 생각보다 앉아서 무얼 그리거나 쓰거나 읽는 시간이 늘어나서 나 자신에게 놀라는 중이다. 물론 낮엔 더워서 에어컨이 있는 곳으로 피신해야 하지만, 아직 잠이 안오는 밤에 책상 앞에 앉아서 노트북으로 웹서핑을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일기까지 쓰는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사람은 책상이 있어야 한다... 옛날에 대학로 쪽에서 자취했을 때가 생각난다. 아주 창렬한 지역이다보니 원룸 옵션에 책상이 없어서 앉은뱅이 밥상에서 과제를 하고 글을 쓰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봤던 21살 시절... 빌라를 좆같이 지어놨기 때문에 옆집 대학원생 남자 놈이 친구를 불러다가 미친 듯이 술판을 벌여서 안 그래도 정신병 걸릴 정도로 예민한 데다가 안 맞는 간호학과 다니느라 피폐했던 때라 잠을 못 자서 24시간 카페 가서 밤을 새거나 녹두거리로 가서 친구들 술자리에 끼기도 했었는데... 잠시 이야기가 샜는데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괜찮은 입식 책상과 좋은 의자가 있으면 게으르고 힘 없고 우울한 인간일지라도 전보다는 좀 더 작업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 오늘은 턱 보톡스를 맞았다. 엄마가 여기가 이 주변에서 제일 싸다고 간 곳이었는데 치과였다. 역시 미용시술이 돈이 되나 보다... 아무튼 엄마도 아빠도 옛날에 한 번 맞았던 곳이라고 해서 엄마가 오늘 점심에 예약해 놓고 나보고 점심을 사라고 해서 승낙하고 갔다. 그

2018년 8월 1일

1. 시원하고 나 혼자밖에 없는 작업실을 몹시 갖고 싶다... 오늘도 독서실에는 사람이 많아 무거운 가방을 지고 카페로 갔다. 카페는 몹시 시원한데, 문제는 내가 두 시간만 앉아 있으면 드러 눕고 싶다는 바람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집에 가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아까 나오기 전에 내 방의 온도계를 보니 33도를 찍었다. 분명 집에 가면 후회할 것이다. 누워 있는 것도 괴롭겠지... 몇 년 전에 머물렀던 홍콩 청킹멘션같은 구식 기숙사 방이 그리울 정도다. 누가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걷는 소리가 울리는 쓰레기 같은 곳이었지만 거기엔 에어컨이 있었다. 한 2주 동안은 여름방학 한정 룸메이트가 해외 여행을 가서 그곳은 온전히 나만의 방이었다. 물론 그 시원한 방에서 꼼짝 않고 한 건 누워서 핸드폰 보기 뿐이었지만, 지금의 이 마음이라면 그 기숙사 방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감지덕지하며 책상에 앉아 뭐라도 읽고 쓸 것 같다. (물론 아닐 것이다) 2. 과외 학생이 세 명으로 늘어난 바람에 하루도 안 거르고 과외 수업을 해야 한다. 한 명은 집으로 와서 괜찮긴 하지만, 잘못하면 화상 과외도 하나 더 생길 판이다. (괴로울 정도로 배부른 소리다) 아무튼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다. 이 돈으로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가챠게임 과금도 하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커피도 물처럼 마실 것이고, 읽지 않을 책을 잔뜩 사고 별로 앉지도 않을 넓찍하고 긴 책상도 방에다 들여놓을 예정이다. 3. 지금 앉아 있는 카페의 자리 바로 위가 에어컨인데, 에어컨에서 물이 떨어진다. 덕분에 서양철학사 책 (20페이지를 겨우 다 읽고 덮었다) 종이가 울었고, 포마드 바른 내 머리에도 떨어지고 있다. 4. 겨울이 왔으면 좋겠다... 우울증이 심해지겠지만 말이다. 5. 외롭지는 않은데 괴롭다. 그 이유는 바빠져서다, 바빠야만 하는 상황에 닥쳐버렸기 때문이다. 덥고 졸리다...

보석의 나라 1기 감상

라프텔이라는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앱에 가입할 때 받은 5일 월정액 체험권으로 <보석의 나라>라는 애니메이션 1기를 봤다. 다 본 건 일주일 전 즈음이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든 단상을 (심심해서) 기록하고자 한다. 당연하게도 1기의 내용이 서술될 것이니 보석의 나라를 조만간 보려는데 스포일러가 싫은 분은 주의를 부탁드린다. ~이하 감상~ 1. 처음 든 생각은 몸이 딱딱한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째서 사지를 구부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의아함이었다. 후반부에 포스포필라이트가 팔 두 짝을 잃어버려서 합금 팔로 바꾼 것은 뭐, 합금 소재가 유동체이기 때문에 구부러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런 유동성이 없는 보석으로 이루어진 사지가 어떻게 살덩이처럼 접힐 수가 있지... 이런 것만 신경 쓰면 안 되겠지만... (신경 써도 되지만...) 뭐 보석 내부에 관절이 있다거나 뭐 아무튼 그런 설정이 있겠지... 2. 작가가 밀로의 비너스 같은 조각상을 보고 인간의 육신이 마치 조각상처럼 깨지면 어떨까 라는 기괴한 망상을 실현하려고 <보석의 나라>를 그리고, 그것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잘 구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화에서 머리가 똑 부러지거나 팔과 다리가 깨지는 보석인형이 꼭 하나씩은 등장한다. 덕분에 보석으로 된 토르소 조각상이 주는 미적 자극을 실컷 맛보았다. 예쁘기는 하다. (약간 "예쁘게 죽어요" 같다) 3. 보석인형들은 (물론 생명체로 묘사되지만 나는 보석인간보다는 보석인형이라는 표현이 더 적확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21세기의 일본 여고생과 남고생(학원물 애니메이션에서 재현되는)처럼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도 웃기다. 4. 또 보석인형이 쓰는 1인칭 대명사가 대부분 남성의 그것(오레, 보쿠)이라는 것도 웃기다. 여자 목소리를 내는데 자기를 남성형으로 일컫는 건 보석인형들의 무성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 같은데, 그러면 왜 남자 목소리로 자신을 여성형으로 칭하는 보

2018년 7월 27일

1. 살면서 처음으로 여름의 폭염에 진심으로 화났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 아니라 여름 더위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대충 적응하며 살았는데, 올 여름은 너무 더워서 현기증이 나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설사를 많이 했다... 네다섯시간밖에 자질 못해서 어제 오늘은 쓰러지듯 아침잠을 잤다. 아침에 해가 뜨면 내 방으로 직사광선이 들어오는데, 그 햇빛이 방 안을 달궈놔서 살풋 든 잠도 다 깨워버렸는데, 오늘 아침은 좀 덜해서 (아님 내가 너무 지쳤거나) 오랜만에 정오까지 잠들었다. 더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아침형 인간이 되어서 독서실에 아침 아홉시에 도착하고 그랬는데, 이제 여름방학 시즌이다보니 독서실에 사람이 많다. 나는 이번 달 들어서 내가 뭔가를 하려면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카페도 바로 옆 테이블에 사람이 있으면 신경이 쓰여서 집중이 안 되는데, 독서실 카페라운지는 더더욱 그렇다... 나는 가끔씩 공부 말고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것도 하고 싶은데, 괜히 사람들이 내가 무얼 하는지 다 쳐다볼 것이라는 이상한 불안함 때문에 자꾸만 딴 짓을 하게 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의 변명이다) 유독 내가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 같은 창작활동을 할 때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달았다.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나서 두 시에 집을 나섰는데, 독서실 카페라운지가 만석이었다. 엄밀히 말해 만석은 아니고 2자리 정도 남았는데 양 옆에 사람을 끼고 앉아야 하는 좁은 자리라서 나는 황망하게 거기서 빠져 나와 근처에 있는 단골 카페에 갔다... 다음 달부터는 그냥 독서실 정기권을 끊지 말고 카페 다닐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차피 독서실에서 최대 세네시간만 있고, 커피는 또 커피대로 따로 근처 카페에서 사고 있어서 이중 삼중으로 돈이 든다) 2. 돈이 없어서 닥치는 대로 과외 일을 받고 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문의 전화에 응대하는 것도 피곤하고 새로운 학부모와 학생을 만나는 것도

2018년 7월 17일

어제를 기점으로 마음이 즐겁고 편안해졌다. 이유는 기말레포트 코멘트를 듣는 겸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에 얽힌 좌절과 우울에 대해 이행남 선생님께 털어 놓았고, 선생님께서 굉장히 통찰력 있게 내 고민을 정리해주면서 도움이 정말 많이 되는 말을 해 주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내 고민을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러니까 적절한 무게로 진지하게 들어 주셨고 아주 적절하게 헤겔의 말로써<-ㅋㅋ 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의 그 적절한 객관성과 무게감 있는 말이 내 정신을 확 들게 만든 것이다. 요지만 말하자면 선생님은 내가 너무 내 안에 갇혀 있었고, '공부'를 너무 무겁게 생각하여 그 허상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고 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해 보아라, 마치 고시 공부를 하듯, 단순 노동을 하듯, 기계적인 업무를 수행하듯 책상에 앉아 보아라. 다만 지금은 심신이 쇠약해진 상태니까, 충분한 휴식과 운동을 통해 몸을 추스리고 나서. 선생님이 주신 조언은 아주 생경한 것이 아니었다. 자기성찰을 통해, 주변인들의 말들을 통해, 단편적으로 다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알고 있던 그 말이 바로 어제 오후에 학교에 있는 카페에 앉아 학자이신 선생님의 입을 통해 나오자, 이전과 달리 나에게 그 말들이 푹푹 박혔다. 그래서 내가 오랫동안 허우적대고 빙빙 돌고 있던 한계를 인지했고, 그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진심으로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원래 만남의 목적이었던 레포트 코멘트에 대해서는, 선생님께서 내 글이 다른 학생들의 것과 비견해서 아주 뛰어났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에 더 북돋아지고 이제부터는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일 수도 있다. 첨삭 및 평가가 쓰여진 내 레포트를 가방에 넣고 나는 마치 굴하지 않는 일본 소년만화 주인공처럼 싱글벙글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아주 기분이 좋아서 힘내서 밥을 먹고 힘내서 즐겁게 넷플릭스로 키미슈미트를 봤다. 나는 아주 욕심이 많았다! 그리고 지금

2018년 7월 6일

돈이 없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화상과외업체 면접 및 교육을 받으러 갔다. 타블렛 디지타이저를 구매해야 했기 때문에 5만원을 지출했다. 과연 일이 들어올지는 모를 일이다. 일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이 타블렛으로 그림이나 그려야 할 것이다. (십대 이후로 별로 그려보지 않은 그림을 말이다) 교육이 끝나고 바로 학교로 갔다. 오늘은 허이모가 토론 패널로 참여하는 여성학 학부-대학원 연계 포럼을 하는 날이었다. 허이모는 심한 목감기에 걸려서 목이 팍 쉬어버렸다. 그런 연유로 정말로 서발턴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목이 쉬어서). 허이모가 삑삑거리고 바람이 푸쉭푸쉭 빠지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토론자 총평을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응원을 해 버릴 정도였다. 아무튼 허이모는 늘 그랬듯이 깔끔하게 총평을 남겼다. 원래는 포럼 끝까지 들을 생각으로 왔는데, 오기로 한 친구들이 오지 않았고 허이모는 여성학과 대학원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포럼이 끝나고 뒷정리 및 뒷풀이 참석을 해야 했기에 굳이 오래 머물 이유를 못 찾겠기도 하고 체력도 떨어져서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계속 잤다. 자다가 저녁을 먹으라는 소리에 일어나서 저녁을 먹고, 다시 누우려는데 과외학생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와서 이야기를 했다. 그후에는 엄마랑 이야기했다. 과외학생 어머니랑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에 대해서는 너무 피곤하고 귀찮아서 각설하고, 그냥 엄마랑 거실에서 이야기했던 것만 간략하게 적자면 엄마는 나한테 보통 사람들이 너를 어려워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과외를 오래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엄마가 해준 이야기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상당 부분 수긍이 갔다. 아무튼 엄마랑 이야기하면서 슬슬 과외로 돈 벌 기대는 접고 다른 돈 벌 구석을 찾아야 할 필요성을 확인했다. 엄마는 내가 걱정되는지 자기가 돈 빌려줄테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을 옮겨 적으니 드는 의문은,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나는 지금 친구랑 만

2018년 7월 4일

1. 더위 때문에 졸지에 어제오늘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너무 더워서 독서실로 피서를 갔다. 카페인 도핑용으로 아이스아메리카노 4샷짜리를 들고 세시간 정도 독서실에 있다가 슬슬 배가 고파질 즈음 집으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바로 누워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유튜브를 보다가 저녁 먹을 때 다시 일어나서 밥을 먹고 또다시 눕고 그렇게 보냈다. 어제도 오늘도. 오늘 아침에는 독서실로 가면서 오늘만큼은 집에서 계속 누워 있지 말고 무언가 한 몫 잡을 만한 생산적인 일을 구상해보자고 생각했다. 그 생산적인 일이랍시고 떠올린 건 비엘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헛된 공상이었다. 근면성실한 노동자가 되기엔 글러먹은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구석이라곤 곧 사양산업이 될 비정규직 과외선생 일을 어떻게든 지속시키는 것과 망상 속에서나 쩔지 실제로는 완결이나 지으면 대단한 일이 될 비엘소설 쓰기밖에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단 과외 일은 계속 찾고 있고 하고 있으니 제쳐두고, 비엘소설 쓰기는 아직 시도를 하지 않은 일이니까 오늘부터 시작해보자고 굳게 마음 먹었었다. 물론 하지 않았다. 이 일기를 쓰고 나서 하면 되겠지만, 아마 안 될 것이다. 운이 좋으면 할 수도 있겠다. 2. 나는 내 친구들이 하나같이 다 자랑스럽다. 마치 그들의 친모라도 된 양 내 친구들 모두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고 언젠가 그들 자신이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삶 혹은 고결한 삶을 살다가 죽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 일주일 전에 엄마한테 내 친구들 중 몇몇을 이야기했었다. 내가 이야기 한 친구들 중에는 규범에 종속된 웃어르신들이 보기에는 불성실하고 건강하지 못한 이들이 있었고, 엄마는 내가 그들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고 속상했는데, 밖으로 표출하진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남들도 똑같이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라는 원론적인 교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들

2018년 6월 24일

지겨울 정도로 아프고 힘들다. 제발 우는 소리 좀 내지 말라고 주변 사람들이 못 참고 말할 때까지 계속 아프고 힘들지 않을까? 아무튼 나는 어리광이 심한 편이라 아프고 힘들다는 말을 속으로 꾹 참을 수가 없는지라, 주변 사람들이 지쳐 떨어지고 나 자신조차도 지칠 때까지 계속 아프고 힘들고 죽겠다는 소리를 되풀이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심하게 아프고 힘든 시기가 오랜만에 찾아 왔다. 심지어 아프고 힘든 시기가 내 예상보다 꽤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괜찮아 질 때 쯤이면 다시 힘들고 아픈 게 시작되니, 솔직히 올해의 불운에 좀 놀랐다. 아무튼 불운 덕분에 심신이 더 상했다. 심장 박동이 확실히 빨라졌고, 상반신은 근육통에 시달려 일주일에 세번은 파스를 어깨와 등에 붙이지 않고서는 책상 앞에 앉아 있기가 힘든 정도였으니 알 만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빨리 내가 이 불우하고 아픈 시기를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 같다. 누구도 이 불우함과 아픔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나 내가 확실히 아파하고 힘들어하기 때문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나 또한 그들의 기다림을 길게 늘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은 내 통제 밖에 있기 때문에, 초조함을 가지지 말고 나 또한 숨 죽이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세상은 이미 나한테 충분히 너무했지만, 극단적으로 나한테 너무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나아지겠지. 정신과 의사선생님은 우리 몸은 회복탄력성이 있기 때문에 나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그리 믿고 누워 있을 수밖에 없다.

2018년 6월 11일

우울도 만만찮게 나를 괴롭히지만, 슬픔이야말로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다. 나는 슬프다. 어떻게든 나의 고군분투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나의 시도들이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해서. 나는 내 분수에 맞지 않은 꿈을 꾼 걸까? 아니면 내가 게으르고 멍청해서 꿈을 실현하는 일에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걸까?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슬프다. 자기인식이 부정적인 쪽으로 왜곡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으나, 부정으로 쏠리는 인식을 온 몸으로 막는 데 이미 한계를 느끼고 있다. 정말로 내가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이면 어떡하지? 내가 내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미련한 주제에 끈기가 없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이번 학기에 수강하게 된 서양근대철학특강 수업은 꼭 좋은 성적을 맞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이 수업과 이 수업을 이끈 선생님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당장 4시간 후 기말고사인데, 너무 슬프고 괴로워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저번 목요일에 받게 된 불합격 소식 때문에 나는 기말고사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안 그래도 평소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도 못한 주제에, 막판 벼락치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데 내가 학자를 꿈꿔도 되는 것이었을까? 엄마는 그렇게 힘들어하고 잘 못하는데 왜 어려운 길을 택하느냐고 말했다. 나는 엄마의 말에 설득당하고 있다. 그런데 포기하는 게 힘들다. 내가 정말 학자로서의 꿈을 버릴 수 있을까? 취직 준비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나는 울고 싶다. 나는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그래서 쉬고 싶은데, 점점 마음 놓고 쉬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간다. 이런데도 살아야 할까? 친구들한테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말해달라고 했을 때, 친구들은 "네가 죽으면 나는 무척 슬플거야"라고 했다. 친구들이 댄 이유는 나에게 호소력이 있었고, 그래서 열심히 살고자 했다. 지금은 자신이 없다.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것 같다. 일단 일기로 털어놓았으니, 다시 손에 안 잡히는 공부를 억지로 부여잡고자 한다. 여전히 나는 슬프다

2018년 6월 7일

대학원에 떨어졌다. 결국은 공부를 못해서다. 공부를 못한 이유는 망할 우울증 때문이다. 나의 아둔한 머리와 보잘 것 없는 학업능력을 조금이나마 낫게 만들려는 노력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우울증 때문이다. 요새 트위터에다가 늘 '아졸려죽을래'라는 말을 올리고 심지어 닉네임조차도 (졸려서시야와판단능력에영향받음) 이라고 바꿀 정도로 나는 졸리다. 졸려서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다. 심지어 게임을 하는 것이나 영상을 보는 것조차 집중할 수가 없어서 일찍 자는데도 늘 졸리다. 특히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면 진짜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끔찍하게 피곤하고 눈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데 어떻게 공부를 한단 말인가? 노는 것조차 힘들어서 할 수가 없는 마당에? 결국에는 대학원에 떨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튼 내가 지원하는 과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므로 저번 지원에 비해 딱히 나아진 것도 없고 노력한 흔적도 없는 나를 뽑아줄 리가 없다. 그러니까 당연한 결과다... 그리고 흔한 불행이다... 무언가를 꿈꿨는데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흔한 불행이고 죽었거나 살아 있는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숱하게 겪어온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너무너무 분하고 억울하다. 흔한 불행이라고 해서 불행이 아닌 건 아니다. 아무튼 나는 끽해봐야 네다섯시간만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도 상태가 아주 좋을 때나 그렇지, 보통은 두세시간이 한계다) 어떻게든 더 나아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노력했다고 해서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 노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만큼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어떻게든 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고,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고, 목숨을 끊지 않고 생을 연명할 작정이면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단 나는 대학원 입시를 또 도전할 마음이 없다. 적어도 이런 상태에선 말이다. 이렇게 졸리고 피곤한 상황에서 삼수를 해 봤자 헛수고다. 자살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로서는 최대한

2018년 6월 3일

요새는 자기 전에 자연 다큐멘터리를 본다. 저번에 모텔에 가서 잠든 애인을 옆에 두고 심심해서 티비를 켰는데, 우연히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다큐멘터리를 봤었다. 그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연 다큐멘터리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넷플릭스에서 적당한 것을 찾아서 보고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는 집중해서 볼 필요가 없어서 좋다. 인간 놈들이 미지의 자연을 헤집고 들어가 카메라로 찍은 진기한 자연 풍경과 거기에 사는 생물들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그것들의 색깔과 움직임들에 의해 나는 일종의 미적 무관심성의 상태에 돌입한다. 그래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게 일종의 영적 명상처럼 느껴진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문법상 늘 포식자와 피식자의 쫓고 쫓기는 장면은 숱하게 등장했고, 다큐멘터리를 만든 사람들은 꼭 그러한 장면에 비장미 어린 서사를 부여하곤 했다. 포식자들, 특히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포식자들은 지치고 굶주려 있기에, 먹이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린다. 피식자들은 살기 위해 그들 또한 열심히 달린다. 운이 좋으면 포식자는 먹이를 잡을 수 있고, 역시 피식자 또한 운이 좋으면 살아 남을 수 있다. 늘 힘이 없어 드러누워 있는 나라는 인간 눈에는 포식자와 피식자 모두 엄청나게 애를 쓰며 사는 것 같아서, 선악이 없는 자연에는 사실 선악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그런데 당연히 자연에는 선악이 없다. 그냥 생물체들은 애를 쓸 뿐이다... 그래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내가 어떤 짓을 하든 이 생물체들이 애를 쓰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무튼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오히려 자연보다는 인간 세계에 대한 생각만 더 많아졌다. 윤리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인간과 세계와 윤리 등등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것이 나의 마음을 흐뜨려놓지는 않는다. 일단 내가 자기 전에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는

2018년 5월 24일

이제 포마드로 앞머리를 그럴싸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 헤어스타일로 바꾸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사람 모두가 그 머리가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하는 걸 보면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이다. 5월 21일은 내 생일이었다. 애인은 내 생일을 까먹었고, 그 다음날 22일에 만나서 생일 기념 식사를 하면서 사과를 들었다. 애인이 내 생일을 까먹었다는 것에 그리 섭섭한 마음은 들지 않았으나, 그래도 연인이라는 관계에서 해야 할 일에 소홀한 것이기에 나는 농담 식으로 사과를 요구했고 애인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 내었다. 친구들한테 생일 선물로 책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꼭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특정 책이 많이 떠올리지 않아, 한영이를 제외하고는 선물로 받을 책 선정을 친구들한테 맡겼다. 일단 허이모로부터는 아비탈 로넬의 어리석음을 받을 것이고, 준호한테서는 보들레르 산문집을 받을 것이다. 친구들이 어떤 책을 선물해줄 지 기대된다. 생일날 저녁에는 재욱이가 저녁을 사 줬다. 두만강 샤브샤브에 처음 가 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서울대학교 근방에는 좋은 퀄리티의 중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가게들이 여럿 있기 때문에, 이럴 땐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게 정말로 좋다는 생각이 든다. 훠궈, 어향가지, 지삼선을 먹었다. 정말 양껏 시킨 것이기 때문에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내 몸 "구석구석까지 채워졌다." (톨킨을 좋아하는 애인이 알려준 표현이 정말 적절한) 저녁을 얻어 먹고 나서 보답으로 나는 재욱이한테 커피를 사 주었다. 티라노의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학자로서의 진로와 관련된 이야기와 기타 신변잡기적인 것들에 대해서) 5월 24일 오늘은 독서실에 가서 2017학년도 고2 6월 수리 나형 기출문제를 풀고 (주말에 있는 수학과외 수업준비를 위해) 루소의 고백록을 읽었다. 고백록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연숙이 덕분에 이 재미 있는 책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5월 18일

잘 지내고 있다.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고, 잠을 충분히 자고, 세 끼 밥도 잘 챙겨 먹고 있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애니메이션이랑 영화를 보고, 앉아 있을 기운이 생기면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는다. 다만 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은 마치 생리통을 심하게 겪고 있는데 진통제가 잘 들어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데 어딘가가 마뜩찮고 불편한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그래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수전증이 생겼다. 오르가즘을 못 느낀다든지, 약효가 잘 듣지 않아 예민해지는 것보다는 수전증을 겪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손이 발발 떨리는 걸 보면 괜히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든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처럼, 불안해서 손을 떠는 게 아니라 손을 떠니까 불안하다. 오늘은 애인과 만나는 날이었는데, 애인이 간밤에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데이트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좀 느긋하게 잤다가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병원에 들러서 약을 타고 독서실에 왔다. 독서실에 와서 백팩을 주문했고 (수납공간이 더 많은 가방이다) 곧 반납해야 할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있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초조한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트북을 꺼내서 일기를 쓰고 있다. 요새는 누워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흥미를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유리 온 아이스, 카케구루이) 뚜부가 추천해준 영화를 봤다(스카페이스). 영상을 보고 싶다는 욕구는 오랜만에 찾아온 것으로, 이 기회에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 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때가 이제껏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비엘 애니메이션인 유리 온 아이스와, 미친 여자들이 잔뜩 나오는 레즈비언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카케구루이를 보고 든 생각이 있다. 일단 카케구루이를 보고 든 생각부터 적자면, 나는 미친 여자들이 너무 좋기 때문에 레즈비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

2018년 5월 11일

가르치던 한 학생이 과외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학원에 가고 싶다는 것인데, 과외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미리 선불로 받은 과외비를 어떻게든 더 많이 환불받으려는 속셈으로 과외 학생의 어머니는 구구절절 나에게 미안함을 가장한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 때문에 나는 내 고등학교 시절을 입 아프게 떠들어야 했으며 (어제 오늘 30분씩해서 총 1시간이었고 나는 참고로 현재 목감기에 걸려있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내가 과외 학생을 위해 시간을 빼 놓았기 때문에 4회분만 환불하겠다고 말하자 학생의 어머니는 확 돌변하여 나를 후려쳤다. 학생 어머니는 그간 나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나를 감복시켜 내가 흔쾌히 돈을 많이 돌려줄 것을 기대했으나 (그래서 시험 전 2번 수업을 제하고 30만원을 돌려 받고 싶어한 것이다, 내가 바로 어제 학생을 위해 30분을 초과하면서 수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20만원만 돌려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굳이 가식을 떨 필요가 없어 그 학생 어머니는 나의 칼같음(과외학생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고 과외학생에게 일일히 문자를 하면서 학생의 공부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하지 않고 오로지 주 2회 수업만 열심히 한 것)을 욕하고 선생님처럼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훈계를 받았다. (친엄마한테 훈계 받아도 짜증나는 상황에!) 나는 독서실에서 책을 읽다가 이 어머니의 전화를 받느라 팔자에도 없는 산책을 하면서 30분간 학생 상담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결국은 돈을 많이 환불받고 싶어하는 속셈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애초에 그 용건부터 말해서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지을 것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갔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각설하고, 그럼 3회 수업 한 것으로 치고 나머지 5회분 환불할게요" 라고 그 어머니의 말을 끊자, 그 어머니는 10초간 침묵하다가 코웃음을 치더니 "그럼 3회분 수업한 걸로 하고 그렇게 하세요"라는 대답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방금 일어난 상황에 어이 없는 분노를 느껴서 (아니 왜 내 노동을 후려친단 말인

2018년 4월 22일

오늘 낮에 엄마가 옷을 사준대서 집 근처에 있는 아울렛으로 갔다. 며칠 전에 엄마한테 홈플러스에서 산 천원짜리 초콜릿을 줬는데, 그때 엄마가 언제 시간나냐고 옷 사주겠다고 해서 나는 엄마가 면접용 정장을 사 주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울렛으로 가면서 엄마가 면접용 정장이 아니라 평소에 입을 옷 사 주려고 했었다면서, 나한테 일주일 뒤에 면접이야? 라고 물어봤다. 어쨌든 그래서 면접용 정장을 사러 가는 것으로 되었다. 20대 여성이 정장을 사러 가는 곳은 뻔하다. 로엠이나 수프 이런 곳이다. 집 근처에 있는 아울렛은 다 망해가는 곳이었는데, 그래서 20대 여성의류를 파는 곳이 로엠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기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게에 들어가면서 엄마는 나한테 사람들이 너 남자인 줄 알겠다고 말했다. 이 소리는 대충 백만번쯤 들은 소리이다. 엄마는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남자애 같죠?"라고 부러 먼저 할 필요 없는 소리를 하곤 했고, 옷가게 같은 데를 들어가기 전에 꼭 나한테 "사람들 너 남자애인줄 알겠다"라는 소리를 주지시켜 주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났고, 오늘도 짜증이 나서 "엄마만 그렇게 생각해"라고 대답했고 엄마는 전혀 동의를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가게에 들어가서 정장을 골랐다. 나는 요새 여성복 시장에 부는 오버핏 유행이 참 다행이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정말 허리가 달라붙고 어깨가 껴서 팔을 반 이상 못 올리는 불편한 옷을 못 참기 때문이다. 그 가게에서 입은 자켓도 오버핏으로 나와서 불편하지 않았다. 바지도 마음에 들었다. 옷을 고르면서 가게 점원은 어디 면접을 보냐고 했고, 엄마는 회사 면접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점원 분이 대학원? 이라고 물었다. 점원 분은 50대 여성이셨는데, 자기 아들도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논문을 쓰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보다는 애들이 고생이죠 하면서 나한테 힘 내시라고 했다

2018년 4월 17일

건강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 실망하고, 세상에게 화가 나고 그랬다. 실망과 분노를 자각하니까 오히려 우울이 사라졌다. 실망과 분노를 인정하는 것도 나 자신을 긍정하는 일의 일환이라 그런 것일수도 있다. 입시에 떨어지면 더 이상 대학원에 가려고 애쓰지 않겠다 마음 먹었다. 자아실현에의 욕심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즐겁게 사는 게 우선인 것 같고, 학자가 되는 일이 즐거움을 희생하면서까지 꼭 이뤄야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에는 학자가 아닌 나 자신을 상상하기 싫었는데, 아마 학자 아닌 나 자신이 실패한 나 자신으로 생각 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지금은 학자 아닌 나 자신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로지 한 길에만 집착하는 것은 마치 한 동앗줄에만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일과 다름 없고, 그 동앗줄이 끊어지면 완전 망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동앗줄로 내 몸을 묶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고, 하기 싫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일로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사는 건 어찌 보면 단순해서, 그냥 밥 한술만 넘기는 것도 사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밥 한술만 넘기고 숨만 쉬며 사는 것도 어쨌든 사는 것이다.

2018년 4월 15일

(쓰다 말았는데 더 이상 쓰기 귀찮아서 미완성 상태로 게시함) 토요일 저녁에 준호를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 이야깃거리 중 하나는 학자로서의 마인드셋이었다. 작금의 신자유주의 영향 아래에 있는 제3세계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문 연구자가 된다는 것은 돈도 못 버는 불안정한 직업을 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런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이유로서 보통 학자가 되려는 이들은 두 가지 마인드셋을 장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자신을 투사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가 숭고한 사명을 행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혹은 아주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자기가 하는 일을 덕질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말고 제 3의 마인드셋은 준호와 함께 골똘히 생각해봐도 나오지 않았다. 어쨌든 저 두 마인드셋을 떠올리고 나는 준호한테 말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숭고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나 자신을 투사로서 규정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하는 일이 즐겁지는 않다. 나는 정말 그렇다. 나는 철학 연구자가 되기 위해 머리 빠지도록 책을 읽고 원전을 읽기 위해 영어, 독일어를 눈물 나게 공부해야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전혀 '덕질'로 느껴지지 않는다. 덕질은 쉽잖아. 그리고 즐겁다. 하지만 학문을 하는 건 어렵고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떠오른 것은 덕질을 위해 제2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나는 덕질을 위해 공부를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아무리 봐도 나는 일본어 실력이 썩 향상하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내가 덕질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철학 공부하는 것을 덕질로 규정했을까? 그랬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학자가 되려고 하는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고, 하고 싶은 말을 철학으로서 설득력 있게 하고 싶고, 그것을 학계라는 제도권 안에서 인정 받을 만한 형태로 하고 싶기 때문에 학위를

2018년 3월 31일

1. 감히 사는 게 무섭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감히'라는 부사를 붙인 것은 내게 삶을 무서워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체력과 정신력 모두 약하다. 그렇기에 조급해서는 안 되고 내 약함에 맞는 페이스대로 살아야 한다. 내가 당장 먹고살 돈이 없어서 억지로 혹사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나는 부모 집에 얹혀 살고 있고, 내가 얹혀 산다고 해서 부모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는 것도 아니다. 집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침대는 푹신하고, 맛있는 흰쌀밥은 부족하지 않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화하며, 전혀 초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되뇌어도, 이 글을 쓰는 나는 계속 불안해서 손이 떨리는 것이다. 나의 인식이 왜곡되는 것을 이성으로써 교정해도, 몸은 불안을 호소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무고한데 부당한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2. 삶이라는 형벌로 괴로운 와중에는 (정말로 철학충이 좋아할 법한 표현을 쓰게 되어 부끄러운데, 내가 철학충이라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말에 정말로 고마움을 느끼고 그것들에 계속 목 마르게 된다. 내 글이 좋다는 말, 에쎌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죠 같은 말... 이런 말들에 기쁨을 느끼는 게 가끔은 내가 죽지 않으려고 그 말에 엄청나게 의미 부여를 하고 거기에 매달리는 게 아닐까 싶다. 죽고 싶지는 않다... 나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 무섭다. 무서움과 버거움과 피곤함이 나를 갉아 먹는데 나는 그 고통에 나 자신을 내어주면서 자연사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2018년 3월 29일

1. 미니마 모랄리아를 재밌게 읽고 있다. 아도르노가 안 죽으려고 미국으로 망명 가 있던 시절에 인터넷이 발달하고 블로그가 있었으면 블로그에다 쓸 것 같은 글들로 엮여 있는 책이다. 읽고 있으니까 왜 친구가 이제껏 아도르노를 안 읽은 게 신기하다고 타박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서실에 가서 햇볕이 잘 드는 카페테리아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다... 한두시간 정도 그렇게 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삶이 살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고 있으니까 햇볕이 얼마나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다. 오후 네시가 넘어가면 더 이상 집중을 하기 어렵고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마침 그때쯤 배도 고파져서 집에 갈 명분이 충분히 생긴다. 밖에서 밥을 사먹으면 돈이 드니까 집에 남아 있는 밥과 반찬을 먹자! 만약 성실하고 건강한 학생이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에 다시 독서실에 와서 밤까지 공부를 했겠지만 나는 건강하지 못하기에 저녁밥을 먹고 침대에 눕는다. 요새는 엄마 혹은 아빠가 매번 저녁을 차려줘서 먹는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부모님이 끼니까지 차려주니까 약간 내 자신이 식충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식충이 삶이 얼마나 편안한지, 죄책감으로 그 편안함을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충 언제까지 죄책감 없이 식충이 삶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20대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그 이전까지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살기가 싫어서 침대에만 누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언제 저녁밥을 퍼먹고 있는 내 옆에 아빠가 앉아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산다고 대답했다. 아빠는 지금도 이 나이 먹고 솔직히 앞이 안 보이는데 네 나이 때에는 더 했다고 말했다. 아빠 말에 맞다고 대답했다. 2. 엄마가 내 옷장에서 내가 아끼는 캐시미어 목도리를 꺼내 세탁기에 돌렸다. 안방 서랍장 위에 개어 놓은 내 팬티와 양말 아래에 깔려 있는 목도리를 보자마자 나는 혈압이 올랐다. 당장 거

2018년 3월 4일

1. 세미나를 같이 하는 한 친구 A랑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데, A가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퀴플에 실렸던 나의 일대기를 처음 읽었을 때 '에쎌님이 진짜 많이 힘드셨었구나, 힘드시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제 자기가 심한 우울증을 겪고 그 글을 다시 읽으니 님의 고통을 절절히 공감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첫 감상이 떠올랐고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면서, A는 깔깔 웃었다. 그것을 감동실화로 읽게 되었다니 우울증 환자가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고, 나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후에 나는 A에게 우울증 선배로서 그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싶어 쓸데없는 조언 몇 마디를 건넸다. A가 나의 우울증 수기를 읽고 팬이 되었다는 것은 A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나 (왜냐하면 A가 심한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는 것이니까), 그에게 연민을 느끼고 걱정이 되는 것과 별개로 A가 나의 글을 읽고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는 감상은 나를 기쁘게 했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칭찬은 내 글에 대한 칭찬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얼마 전에는 어떤 분이 트위터 멘션으로 텀블러 시절부터 나의 일기를 잘 읽고 있노라고 말해주기도 했었다. 기분이 좋았다. 2. 오후 네다섯시 경이 되면 두뇌뿐만 아니라 몸뚱아리에도 남는 힘이 거의 없어진다. 어제는 정말로 하늘도 화창하고 기온도 포근한 봄날씨였는데, 봄날씨를 맞아 사람들은 행복한 것처럼 보였는데 나는 전혀 행복할 힘이 없었다. 독서실에 4시간 정도 버티고 있다가 도저히 앉아있기가 힘들어서 밖에 나왔다. 그런데 집으로 바로 들어가기가 싫었다. 이제는 일찍 들어오는 나를 보고 엄마든 아빠든 별 말을 안 하지만, 나는 그냥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B에게 오늘 저녁에 홍대에서 놀까? 라는 카톡을 보냈다. B는 바로 답을 주었다. 언제 만날지 시간도 정했는데,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기 직전에 심한 무기력증이 도져서 B에게 그냥 오늘 보지 말고 다음에 기회될 때 보자고 말해버렸다. 5분만에 만날까? 아니다 만나지

2018년 2월 18일

1. 설에는 외할머니 댁에 갔다. 오빠는 취준생이라 사람 만나는 일을 극도로 꺼려서 안 갔고, 나는 갈까 말까 하다가 갔다. 생각해 보니 외할머니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연세도 많으시고, 설이나 추석 같은 날이 아니면 부러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몇 달 만에 외할머니를 봤는데, 외할머니가 나를 보고 얼굴이 좀 달라진 것 같다고 해서 코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엄마는 늘 내 코를 보면서 안 한 것 같다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외할머니의 반응에 얘 코 한 거 같애? 라고 물어봤고 나는 그럼 외할머니가 나를 키웠는데 얼굴 달라진 걸 몰라보면 수술 잘못 한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나한테 키가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늘 나를 오랜만에 만나는 어르신들은 내 키가 커진다고 말한다. 외할머니가 요새 뭐하냐고 물어봐서, 집에서 과외 하고 공부한다고 말했다. 대학원은 안 갔고? 라고 해서 이제 시험 봐야지 라고 답했다. 외할머니가 그럼 대학원 가면 4년을 더 공부하냐고 물었는데, 옆에서 엄마가 얘한테 기대 같은 거 하지 말고 얘는 공부 평생 할 거라서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된다고 답했다. 나는 엄마가 괜히 호들갑을 떠는 게 불쾌했다. 외할머니가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엄마가 나를 불안정하고 불우한 인간으로 취급한 것 같이 느껴져서였다. 할머니는 부담 주려는 거 아니었다고, 늘 나랑 친오빠가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왠지 나는 할머니에게 기대감을 주고 싶어서, 꼭 교수가 될 거라고 허황된 말을 뱉었다. 엄마가 옆에서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교수 될 거냐고 농담 삼아 물어서, 그럴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알아서 과외로 돈 벌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거라는 말에 할머니가 태희한테는 걱정이 없다는 식의, 조부모들이 손주들에게 갖는 천진난만한 믿음에 기분이 좋아서 마냥 할머니에게 (허황된) 희망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폴더폰을 쓰는데, 내 기억으로만 해도 할머니의 핸드폰은 4년 넘은 오

2018년 2월 11일

1. 금요일 인권포럼 참석하면서 M과 H를 만나서 놀았다. 중국차를 마시며 H가 나에게 트위터를 멀리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M은 트위터를 끊게 되어 만나는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 훨씬 많아졌다고 했고, 나는 그 말에 몹시 혹했다. 사람들을 만나서 할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만나서 할 수 있는 말이 내 상태가 안 좋다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M과 H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위터 앱을 삭제했다. 그리고 트윗청소기를 돌려서 이제까지 써 놓은 트윗들을 삭제할 수 있을 만큼 삭제했다. 2. 오늘은 새로운 과외 학생 시범수업을 하러 갔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고, 브랜드가 있는 거라서 집이 무척 좋았다. 도착하고 나서 시범수업을 하고 과외학생과 어머니와 상담을 하는데, 어머니가 사실 과외 선생님을 3명 보고 결정하려고 했다면서 상담을 오래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상관 없었는데 어머니가 굉장히 미안해했고, 나 다음에 만날 과외 선생님이 20분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굉장히 정신 없이 집을 나갔다. 집을 나서면서 과외 어머니가 날이 추운데 따뜻한 차 한잔 하시라고 2만원을 주셨다. 시범수업 수업료를 (굳이 이 쪽에서 먼저 달라고 안 했는데) 받아본 적이 처음이라 기분이 좋았다. 40분 상담하고 2만원을 벌었기 때문에, 이 학생과의 과외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상관 없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3. 저녁에는 가족들이랑 외식을 했다. 감자탕을 먹으면서 아빠가 오빠에게 너가 열심히 하는 것 같아도 네 관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서 오빠가 무척 화를 냈다. 1년 정도 이어진 취업 준비 때문에 단순한 응원과 격려 외의 말은 상처가 될 시기인데 아빠가 오빠의 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에는 내가 중재했다. 중재는 성공해서 분위기가 그 이상으로 험악해지는 일은 막았다.

2018년 1월 20일

1. 제목은 1월 20일이라고 썼지만 수요일에 있던 일이다. 오랜만에 B를 만났다. B는 나를 보자마자 코 수술이 너무 잘 됐다며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우리는 점심으로 초밥을 먹었다. 김태완스시라는, 길 가다가 한 번 가봐야지 생각만 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갔다. 거기서 점심을 먹으면서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학교 가는 버스를 타면서 B가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지금까지 마누라인 J 빼고는 아무도 안 만났다가 나를 만나서 반갑다는 이야기, 철학과 이야기와 제3세계 한국인인 우리가 학문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격과 어려움 등등을 이야기했다. B와 이야기하면서 B에게 애틋함을 느끼면서 B가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에 도착해서 B가 지도교수 면담을 가기 전까지 학교 안에 있는 파스쿠찌에서 마실 것을 시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너무나 하고 싶었기에 나는 B에게 요즈음 생각하고 있는 골칫거리에 대해 털어 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B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놈의 정을 버려, 라고. B는 내가 B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가 버리라고 한 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그렇게 말한 게 재미 있어서, 그리고 맞는 지적이어서 나는 그래야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B에게 나중에 다시 만나서 밥 먹자고 기약한 다음에 헤어졌다. B와 했던 이야기 중에 B의 마누라인 J에 대한 것도 있었는데, 내가 우스갯소리로 J를 매도한(?) 일침들에 깔깔 웃으면서 B가 꼭 저녁에 J를 만나면 내가 지금 했던 이 말들을 하라고 했다. B가 굳이 그 이야기를 하라고 시키지 않았어도 나는 친구들을 만나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J에게 B랑 했던 이야기를 전하려고 마음 먹긴 했었다. 세미나 뒷풀이 후 J는 다른 남편 H를 만나러 간다고 해서 (놀고 싶었던) 나는 그를 따라갔다. 따라가면서 나는 J에게 B랑 했던 이야기를 떠들었다. 그가 어쩔 수 없이 구사해버리고 말아서 자기 혐오에 빠지곤

2018년 1월 11일

1. 세미나를 끝내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집으로 오면서 뚜부랑 뿌수미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2017년에 기억할 만한 일? 잘한 일? 중 하나가 이들과 친해졌다는 것인데, 이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다는 외적 조건이 컸기 때문에 '이들과 친해진 게 잘한 일이다'라는 말은 조금 어색한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러한 외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이들과 친해진 결과가 나한테는 즐겁고 좋은 일이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지 뭐'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나 자신이 만족스러울 만큼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많아지고 나의 육신이 늙어가는 것이기에 나쁜 일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기도 해서 좋은 측면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올해에는 뚜부와 뿌수미랑 더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재미 있고 좋은 사람을 새로 사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자신이 나에게 덜 부끄러운 사람일 수 있기를, 앞으로 살게될 삶을 버틸 수 있기를, 많은 것을 깨닫고 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할 뿐이다. 2. 2017년 하반기에는 내가 많이 자기중심적이었고 그런 성향이 내 졸업논문에도 많이 반영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한 자기중심적 태도는 심지어 내가 생각하는 윤리의 기준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서, 정말 애새끼같게도 나는 나 같은 사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나 같지 않은 사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던 것이다. 옛날에 열여섯살 즈음에 과외 선생님이 나한테 지적했던 사실을 잊고 있다가 혹은 외면하고 있다가 요즈음 나의 상황과 나의 친구들 덕분에 의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윤리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런 깨달음은 무척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무척 서사화를 좋아해서 나의 모든 것을 서사화하고자 하는 경향, 소위 말

2018년 1월 2일

1. 요 며칠간은 독서실에서 계몽의 변증법을 읽었다. 철학책을 읽으면서 느낀건데, 내가 철학을 어려워하고 싫어하는 만큼 그것을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쾌감보다 고통이 더 심할지라도, 이렇게 이론서적을 읽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좀 덜해졌다. 2. 내가 만약 타투를 한다면, 옛날에는 트라이벌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이레즈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하게 타투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독서실에서 공부하면서 딴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떠올린 잡념 중 하나였다. 이레즈미를 한다면, 붉은 잉어를 하고 싶다. 3. 오늘 담배를 피우면서 내가 이제 스물여섯살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몇 살인지 자주 까먹어서, 내가 올해 스물여섯인지 스물다섯인지 헷갈렸었다. 나는 93년생이므로 스물여섯살이 맞다! 스물여섯살이고 아직 졸업을 못 했다. 두 달 후에는 생활비 장학금이 끊기는데 당장은 수중에 돈이 있다. 고통스럽고 잘 할 자신은 없는데 그래도 독서실에서 책을 읽고 있다. 나의 나이를 생각하면서 내 친구들의 나이를 헤아려 보았다. 서른에 가까운 친구와, 나와 비슷한 나이의 또래와, 나보다 네 살 정도 어린 친구들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