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9일

1. 어제 퀴플 회의에 갔다. 어떻게 글 한 편을 쓰는데 성공해서 이번 퀴플에 내 글이 실리게 되었다. 회의에 갔는데 애쉬님한테 얼굴빛이 좋아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애쉬님 말고도 다른 분들도 동의했는데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 말고도 이번 학기에 졸업하시는 분도 회의에 오셨는데, 사람들은 그분한테도 얼굴빛이 좋다는 소리를 했다. 그분은 취업을 하셨는데, 아무튼 진로라는 건 아주 무거운 짐인 모양이다. 어떻게 진로가 정해진 사람은 마음의 짐을 덜어 홀가분한 얼굴을 하니 안색이 어두침침하지 않은 것이다.

퀴플 회의에서 반가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았다. 뒷풀이로 양꼬치를 먹으러 갔는데, 나는 갈 길이 먼 수도권 거주자이기 때문에 한시간밖에 있지 못했지만 아주 오랜만에 유쾌한 술자리를 가졌다. "내가 있는 모임은 망하고 내가 없는 모임은 흥한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는데 어제만큼은 그 격언이 틀려서 참 좋았다.

2.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를 탔는데, 즐거운 술자리치곤 서둘러 나온 것이긴 하나 아무튼 시간이 야심해서 배차간격이 늦으므로 서서 가더라도 타는 게 좋았다. '운이 좋게도' 버스가 대기하고 있어서 탔는데, 사실 그건 딱히 행운은 아니었다. 취객이 소동을 벌이는 바람에 출발이 지체되었던 것이었다.

내가 카드를 찍고 버스를 탔을 때, 취객과 기사님은 싸우고 있었고 토사물 냄새가 났다. 냄새가 아주 심한 건 아니었다. 취객이 버스에다 토했는데 토사물을 치우는 걸 거부한 모양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쌍욕과 험한 말이 오갔는데 기사는 씨발 그럼 니가 토한 걸 니가 치워야지 내가 치우냐? 너 내가 토한 거 치울래? 응? 이런 식으로 말했고 취객은 왜 욕을 하고 지랄이냐 이런 식으로 대꾸했던 것 같다.

취객은 참 멀쩡해 보였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곧잘 떠올리곤 하는 "진상 취객"의 꼬질하고 추한 모습이 아니라 어엿한 가부장이자 멀끔한 샐러리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히려 기사님이 더 취한 사람 같아 보였다. 취객은 얼굴이 벌겋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되게 차분한 목소리로 꼬장을 부리는데, 그런 면에서 내가 봐왔던 취객 중 별난 취객으로 기억될 것 같다. 막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기사 말고도 다른 승객들에게 아니 제가 잘못한 거예요? 이런 식으로 막 꼬장을 부렸고 한 아주머니는 그를 달래고 한 아저씨는 그를 막고 별 난리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취객과 기사 사이에 몸싸움이 일어날 뻔했다. 그때 모두가 숨을 삼키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했다. 나는 숨이 막혔다. 야 씨발 너 기사 폭행하면 깜빵 가는 거 모르냐? 연말이라 술자리 많은 거 알겠는데 연초부터 깜빵 가고 싶어? 기사는 욕을 하고는 누가 경찰에 신고 좀 해줘요 라고 요청했다. 아무튼 가까이 있으면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아 기사님은 제 자리로 돌아왔고 몇몇 용기 있는 승객들이 그를 어떻게든 제지하고 버스에서 내쫓으려고 애를 썼다. 어떤 한 아주머니가 줄곧 취객을 달래고 이 많은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못 가고 있으니까 아저씨 제발 내리세요 말했고 취객은 기사가 사라졌으니 타겟을 아주머니로 돌려서 아주머니한테 아니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저 아저씨가 승객을 패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했다. 다행히도 몇몇 '덩치 있는' 남자 승객들이 그를 막을 거긴 하지만 아무튼 무서웠다.

이런 실랑이가 벌어지는 동안 몇몇 사람들은 그냥 내리고 그랬다. 그 '덕분에' 자리가 비어서 나는 앉을 수 있었는데, 앉으면서도 이거 다른 버스를 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결국은 몇몇 손님의 고생 덕분에 그 취객을 '내쫓는데' 성공했고 무언가 불쾌한 토사물 냄새,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나는 그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수 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공포에 질려서 뻣뻣하게 앉아 있었다. 어쨌든 밤이 늦었으니 그 버스에는 나 말고도 그 소동을 함께 겪은 승객들이 많이 있었고, 나는 그 승객들도 나처럼 공포에 질려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내 옆에 앉은 아저씨는 개새끼 버스에 토해놓고 난동 부리고 지랄이야, 라는 식으로 말한 걸 보면 공포에 떤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아무튼 자정 전에 침대에 누울 수 있었고 버스에서의 소동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는지 꿈자리가 영 뒤숭숭했다. 왠지 모르게 선로에 사람이 떨어졌고 그 사람이 미쳐 피하기도 전에 기차가 지나가서 다리가 절단된 사람, 무언가의 비명,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환승 통로... 그런 파편적인 이미지들만 떠오른다.

그리고 다른 꿈도 꾸었는데, 그건 속에서 계속 무언가를 게워내는 꿈이다. 내 악몽 레퍼토리 중 단골 소재다. 속에서 계속 나오는 건 이상한 콩비지 같은 찌꺼끼들이다. 그게 계속 목구멍으로 나오고, 나는 화장실로 가는데 계속 그 콩비지 찌꺼기가 울컥울컥 나와서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하지만 계속 나와서 양손이 그득해진다. 변기에 가서 양손에 모인 그 찌꺼기 덩어리를 버리고, 입 곳곳에 낀 그 찌꺼기들을 손가락으로 긁어서 뱉어내는데, 계속 목에서 콩비지 찌꺼기가 나온다... 뭐 이런 꿈이다. 아무튼 역겹고도 무서운 꿈인데 잊어버릴 즈음 가끔 꾸는 그런 성가신 악몽이다.

아무튼 술이 문제다. 일기를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3. 퀴플글도 냈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없어졌다. 이제 과외 일만 열심히 나가면 되고, 밥만 잘 먹고 건강을 챙기면 된다. 갑자기 자유를 찾게 되어 기분이 이상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또 초조하다. 초조해서 노트북과 전기가오리에서 온 책 하나를 집어서 단골 카페에 왔다. 그리고 카페에 와서 어제 일어났던 일을 이렇게 적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낸 퀴플글은 아주 교훈적이고 긍정적인 글이었다.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가 그 글의 요지인데 그게 얼마나 편하면서도 또 초조한 일인지 새삼 일기를 쓰면서 실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초조하게 글을 쓰고 있다. 초조하니까 문장이 술술 써지는데, 아무튼 난 지금 초조한 것 같다.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일단 지금은 괜찮다(아마). 더 쓸 말이 없어 이만 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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