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20의 게시물 표시

2020년 4월 11일

계몽의 변증법 국역판을 읽다가 '동정은 덕이 아니다' 라는 부분에 눈이 갔다. 오로지 초연한 무감동, 이성에 의거하여 미덕/악덕을 실현해야 한다. 동정은 '여성적'이다. 적어도 어제와 오늘만큼은 동정이라는 약하고 딱히 미덕을 낳지도 않는 감정에 휩싸여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나는 엄마가 보여준 상처 입음과 그로 인한 거리 두기를 겪고 가슴이 뚫린 채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신도림 한우리에 들러서 블러드본이랑 하츠네미쿠 메가미쿠스 타이틀을 샀다. 그리고 랙돌님 집에 잠시 들러 하츠네 미쿠 메가미쿠스를 조금 플레이하고, 그러다가 어제의 일이 생각나 기분이 급격히 재기해서 기숙사로 돌아왔다. 편의점 김밥을 먹고 갑자기 잠이 몰려 와서 한두시간 정도 기절하듯 잤다. 왠지 자면서 웃었던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자 머리가 깨끗해졌는데, 지금 여기 내가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으면서 기분 좋은 저녁잠의 기분에서 좆창난 현실로 떨어졌다. 누워서 카톡으로 준호랑 동교한테 행복하냐고 살 만 하냐고 물어봤다. 준호한테서는 답장이 왔는데, 나름 잘 지낸다고 했다. 그래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 응 태희도. 카톡을 끄고 나는 이 글을 쓴다. 우울은 수용성이라서 샤워를 하면 씻겨 내려간다는 트위터를 떠도는 민간요법을 방금 행하고 왔는데 여전히 기분은 암전이다. 아까 전에 물을 뜨러 갔다가 기숙사 발코니에서 한참이나 그 높이를 가늠했다. 밑에는 나무 하나 없이 오로지 보도블럭만 깔려 있다. 이곳에서 뛰어내린다면 확실히 죽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역시 뛰어들지 못했다. 너무 추워서 다시 기숙사 방으로 들어왔다. 행하는 건 정말 어렵구나. 아니 확실한 자살을 하는 게 어렵구나. 완성된 '학술적 글'을 완성하는 것만큼이나. 적어도 자는 것, 샤워를 하는 것, 약을 삼키는 것, 카톡을 보내는 것, 음울한 기분으로 일기 쓰기는 쉽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도 기쁘지 않다. 나는 약한 마

2020년 4월 10일

밖에서는 친오래비가 페미니스트는 다 정상이 아니다 요새 정당들은 다 이상하다 나는 남성을 위한 당에 투표하고 싶다 이지랄 하고 지금은 엄마랑 결혼할 여자 어쩌구 이야기하고 싶은데 아 그냥 어디로 도망갈까 싶었는데 벌써 오후 10시 50분이고 서울로 그냥 도망가버릴까 카카오버스를 검색하다가 그냥 핸드폰을 껐다. 한남오래비가 방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실 TV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걸 쓰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울컥거리는데 눈을 감으며 꾹 참고 있다. 오늘은 엄마랑 두 번이나 무언가를 같이 한 바람에 (점심에는 외식을 하고 저녁에는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박 터지게 싸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PMS 때문에 내가 괜히 더 지랄한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에 묶여 있지 말고 좀 행복해 질 수는 없냐고 자기가 좆밥인 걸 인정하고 좀 뭐라도 하면 안 되냐고 얘기하는데 정말 엄마한테서 들으니까 짜증이 나고 그래서 일부러 엄마를 열받게 하는 화법을 구사하며 엄마도 부정 우울충인 주제에 나에게 가르쳐 들지 말아라 이래가지고 산책 끝날 즈음엔 엄마가 진심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거 같았다. 또 싸웠네. 또 서로 상처뿐인 싸움만 남겼네. 가식 없이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는 대화가 이런 식으로 파국으로 치닫다니 정말 지겹다 지겨워 죽겠다 싶었다. 엄마는 오늘 나한테 그럼 제발 죽으라는 소리를 두 번이나 했다. 내가 하도 나는 살고 싶지 않다 죽고 싶다 이 마음은 진짜다를 주장하느라 그런 소리를 들은 것이다. 엄마는 아니 네 말대로 너는 정말 살고 싶으니까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죽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물었는데 맞는 말이고? 그래가지고 아까 2시간 전에는 한번 내 방 창문을 열고 그 아래를 쳐다 보았다. 정말 내가 창문 팔걸이에 크게 한 발을 내딛고, 그 다음에 살짝만 균형을 흐뜨린다면, 정말 죽을 수 있을 텐데. 약 10초 정도 아래를 쳐다 보았는데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두 걸음을 내딛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유치하게도 집값과 날씨 탓을 하며 그냥 기숙사

2020년 4월 7일

(화상강의 중인데 눈뜨고 자느니 일기라도 쓰기로 마음 먹음) (너무 졸림 지나치게 졸림 캠 강제만 아니었어도 누워서 듣는 건데) (누워서 들으면 3초만에 잠들듯 불면증 약 없이 뚝딱 해결) 오늘은 엄마한테서 "잘 먹고 힘내!!!" 라는 카톡이 왔다. 엄마가 느낌표를 이렇게 많이 쓴 건 처음 본다. 의기소침했지만 다행히 눈 앞에 엄마가 있는 게 아니므로 카톡으로 힘낼게 라는 답장을 보냈다. 4, 5월은 우울증자에게 잔인한 달... 이 죽일 놈의 환절기... 집에만 있으라는 사회적 명령이 내려졌고 이런 기회에 실내에서 무언가를 쓰거나 읽으면 참 좋으련만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 자가격리를 하라고 하니까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7년째 기숙사에 살지만 기숙사이기 때문에 세대주를 등록할 수도 없고 나는 서류상 부모님 집에 있는데 그곳은 과외를 하러 갈 때만 오가는 곳이고 문득 내가 유목민같다는 생각을 했다. 뭐 기숙사 환경이 나쁜 건 아닌데... 만약에 정말로 '락다운'이 벌어진다면 룸메이트와 나 둘이서 이 방에 갇혀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니 답답해졌다. 집... 집을 갖고 싶다... 나만의 집... 살 만한 집... 어떤 것을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게 맞을까? 이렇게 하루하루를 웹소설 읽기 유튜브 보기 게임하기로 소모해도 되나? 기숙사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사 가지고 기숙사 방으로 돌아갈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의 가치가 주변에 의해 결정되는 거라면 내 가치는 뭐지?" (너에게 사랑받아 아팠다 만화 중에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건 스메라기 양 자신이에요." (카케구루이 만화 중에서)  위의 두 말이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내 가치는 내가 결정하는 걸까? 이때 내가 결정한다는 자율성은 사회에 묶여 있는 것으로...나를 거부하는 담

2020년 4월 5일

저번 일기 역대급이었다고 연숙이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가 왔다. 댓글이 안 달려서 메시지를 보냈다나. 나의 감동실화로 웃었으면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정진해달라고 연숙이가 말했다. 일기를 오랜만에 올린다는 사실과 더더욱 정진한 일기를 보여달라는 요청 사이에는 아주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 가야겠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은 묻고 더블로 갔고 (그럴 거 같다는 예감이 들긴 했다) 그 덕분에 학교는 정문을 폐쇄해서 버스 및 택시가 후문으로만 다니게 되고 아무튼 여러 모로 밖에 나가기 불편하게 만들어서 싸돌아다니지 말고 기숙사에만 있으라는 학교의 암묵적인 권고를 무시하고 관악02를 타고 나와서 분식집에서 1500원짜리 스팸꼬마김밥(김밥에 스팸밖에 안 들어있음 거의 삼각김밥 급)을 먹고 그걸로도 포만감이 들어서 (하지만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기에 체력은 후달렸다) 고로까지 걸었다. 고로에서 커피 마시고 푸름이랑 창가 자리 앉아서 각자 할 일을 했다. 지금도 하는 중이다. 푸름이는 조교 일 때문에 학생들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야 하고 아무튼 그러느라 고생하고 있고 나는 계몽의 변증법 발제를 슬슬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줄리엣 또는 계몽의 도덕> 부분을 읽었는데 3페이지만에 머가리가 빠개졌다.  문제점 1: 입맛의 재기 혹은 순수 탄수화물 중독 무엇이 우선하는지 모르겠다만 입맛이 없어서 목구멍으로 술술 넘길 수 있는 것만 찾게 되고 나의 경우에 그것은 다당류 이당류 및 단당류로서... 쉽게 말하자면 탄수화물 아님 설탕만 처먹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새는 보석바에 환장해서 매일 편의점에서 3개씩 사와서 한번에 다 쳐 먹는다. 원래 나는 수박바나 죠스바를 더 좋아했는데 갑자기 보석바가 그렇게 땡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새벽에 자다 깨서 냉동고에서 보석바를 꺼내 먹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 날에 배가 꾸루룩 거리고 설사를 한다.  아무튼 그 결과 착실히 몸무게가 빠지고 있고 오늘 재 보니까 이제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