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5일

저번 일기 역대급이었다고 연숙이에게 개인적으로 메시지가 왔다. 댓글이 안 달려서 메시지를 보냈다나. 나의 감동실화로 웃었으면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정진해달라고 연숙이가 말했다.

일기를 오랜만에 올린다는 사실과 더더욱 정진한 일기를 보여달라는 요청 사이에는 아주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 가야겠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은 묻고 더블로 갔고 (그럴 거 같다는 예감이 들긴 했다) 그 덕분에 학교는 정문을 폐쇄해서 버스 및 택시가 후문으로만 다니게 되고 아무튼 여러 모로 밖에 나가기 불편하게 만들어서 싸돌아다니지 말고 기숙사에만 있으라는 학교의 암묵적인 권고를 무시하고 관악02를 타고 나와서 분식집에서 1500원짜리 스팸꼬마김밥(김밥에 스팸밖에 안 들어있음 거의 삼각김밥 급)을 먹고 그걸로도 포만감이 들어서 (하지만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기에 체력은 후달렸다) 고로까지 걸었다. 고로에서 커피 마시고 푸름이랑 창가 자리 앉아서 각자 할 일을 했다. 지금도 하는 중이다. 푸름이는 조교 일 때문에 학생들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아야 하고 아무튼 그러느라 고생하고 있고 나는 계몽의 변증법 발제를 슬슬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줄리엣 또는 계몽의 도덕> 부분을 읽었는데 3페이지만에 머가리가 빠개졌다. 

문제점 1: 입맛의 재기 혹은 순수 탄수화물 중독

무엇이 우선하는지 모르겠다만 입맛이 없어서 목구멍으로 술술 넘길 수 있는 것만 찾게 되고 나의 경우에 그것은 다당류 이당류 및 단당류로서... 쉽게 말하자면 탄수화물 아님 설탕만 처먹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새는 보석바에 환장해서 매일 편의점에서 3개씩 사와서 한번에 다 쳐 먹는다. 원래 나는 수박바나 죠스바를 더 좋아했는데 갑자기 보석바가 그렇게 땡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새벽에 자다 깨서 냉동고에서 보석바를 꺼내 먹기도 했다. 그러면 다음 날에 배가 꾸루룩 거리고 설사를 한다. 

아무튼 그 결과 착실히 몸무게가 빠지고 있고 오늘 재 보니까 이제 55kg 아래로 떨어졌다. 배는 고픈데 입맛은 여전히 없다. 허기를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내가 날 스스로 먹이는 게 너무너무 귀찮고 힘들다.

문제점 2: 코로스로 인한 닌텐도 스위치 기기값 폭등

4월 중순 이후에 물량이 잔뜩 풀린다고 하는데 사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묻고 더불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물량이 잔뜩 풀릴 것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차라리 닌텐도 스위치를 깔끔하게 잊고 코로나가 인류를 집어 삼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대충 1년 뒤에는 다시 그 이전 가격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는데... 괜히 못 산다니까 더 사고 싶은 그런 게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웃돈을 준다든지 24시간 넘게 줄 서서 기다려서 사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트위터 타임라인에 모동숲 실황 트윗이 많이 올라오고 나는 그때마다 킹대적 갓탈감을 느끼게 된다는 건데... 이렇게 쪼커가 되어서는 안 되는데... 

사실 돈도 안 벌고 장학금도 안 받고 있는데... 권장 소비자가격 36만원 닌텐도를 살 돈으로 독일어 과외를 받는 게 나에게 이로울 터이나...

모름...잘 모름...

문제점 3: 모든 흥미를 잃음

닌텐도 스위치가 갖고 싶다는 물욕과 애들과 같이 카드게임을 하고 싶다는 속된 욕망 외에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공부도 시큰둥하고, 수업은 너무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참여하는데... 이게 번아웃인지 그냥 나아지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언젠가 준호가 존나 웃기다면서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 링크를 보내왔는데 제목이 의욕은 없고 자꾸만 눕고 싶고 였다. 그 영상을 보는데 법륜은 1. 병원에 갈 것 2. 사실 어느 정도 누워서 뻗댈 수 있는 구석이 있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즉 폭력적으로 말해 소위 배가 불렀다 라는 말인데 법륜이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법륜이 인간은 보통 살고 싶어한다 라는 예시를 들면서 산에 가서 목을 매달려고 하는데 뒤에서 호랑이가 덮치면 도망가겠어요 안 도망가겠어요? 도망가겠죠? 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걸 들으면서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 자살기도를 하려는 거냐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반감만 들었다. 사실 닥쳐봐야 아는 일이지만 사고실험 속의 나는 호랑이가 오면 얼씨구나 할 것이다. 혹은 그쯤되면 모든 것은 나에게 상관 없는 일이 되어서 아무 감흥 없이 앞으로 닥칠 일을 그저 겪을 뿐이라는 생각만 든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내 친구들 중에는 지금 나의 무기력함을 그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관성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아서 (그들도 물론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더불어 나랑 친하기 때문에 나의 자유의지를 논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속상할 때가 있다. 태희야, 글을 그냥 써, 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끔씩 상대방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도 든다. (당장엔 들지 않고 자기 전이라든지 지금처럼 일기를 쓸 때 그런 충동이 생긴다)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성실하고 의젓하고 건강한 인간이 되고 싶은지 그 열망과 거기에 따른 좌절이 얼마나 끔찍한지 니네가 알까? (알 리가 없다. 심지어 나 자신조차 어떤 때는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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