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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8일

1. 사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왜 살까? 어떻게 살까? 요새 유독 사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이유는 대학원에 떨어지고, 졸업이 미뤄진 것도 있겠다. 그리고 성적 때문에, 공부를 안해서 이렇게 된 건데 전혀 반성을 하지 못해서 이번 학기에 기말 레포트 하나를 못 제출했고 (선생님께서 딜레이를 안 받아주셨다) 시험도 못 본 것도 있다. D+라는 성적을 대학 와서 처음 받아보는데, 다음부턴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후회를 엄청 하고 나서 이런 성적을 받게 되어 나 자신에게 어이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들한테 징징대고 싶지가 않아서, 최대한 말을 아끼고 요새는 내가 살아왔고 내가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해서 혼자서 많이 생각하는 중이다. 2. 공무원 시험에 대해서 꽤 자주 생각해보고 있다. 진지하게 고려하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가볍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애매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앞으로도 게으르고 산만하게 살 것 같아서, 진짜로 9급 공무원으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다니는 독서실은 수능 준비하는 학생도 다니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어른들도 다닌다. 독서실 유리문에 붙은 공무원 영어 스터디 공고를 보면서 자주 공무원 시험에 대해 생각한다. 3. 정말로 인생이 망할 수 있고, 인생이 망한다면 내 탓일 수도 있고 내 탓이 아니라 재수가 더럽게 없는 탓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선택해서 벌어진 일의 결과는 온전히 내가 뒤집어쓴다. 이게 2017년의 나를 붙잡은 문제였고, 2018년에도 계속 나를 붙잡을 것 같다. 4. 일기를 쓰면서 산만함을 느낀다. 의사선생님은 약 탓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몇 년 전부터 쭉 쉽게 지치고 산만함을 느껴서 내가 좀 체력이 좋아지고 집중이 잘 되었음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2017년 12월 8일

1. 잘 모르는 이에게 호의를 받을 때 기묘한 기분이 든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굳이 좋고 나쁨으로 따지자면 좋음에 가까울 텐데 이상한 기분이다. 예를 들어 저번달에 나는 얼굴 본 적 없는 분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커피 기프티콘을 받았으며, 별로 재미 없을 것 같은 내 일기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이해 못 할 호의는 아니다. 나 또한 얼굴 모르는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고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이 덜 불행했으면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관심과 호의가 나를 향했을 때의 느낌은 생경한 것이다. 생경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2. 돈이 없다.. 정말로 없진 않은데 이렇게 돈이 없어본 적은 휴학 직전 빼고 처음이다. 곧 3월부터 학업지원금이 끊기기 때문에 정말로 돈을 벌지 않으면 부모님 집에서 한 발 짝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인터넷에서 과외 문의 글을 볼 때마다 족족 나에게 물어다 주었지만, 성사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께 받은 과외는 시범수업 약속까지 잡았으나 오늘 취소됐다. 그리고 나는 저녁으로 (이틀 전에 먹었던) 짬뽕을 먹으러 갔다. 걸어 가면서 걱정을 했다. 최근 겪은 일들을 생각하고,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일을 생각하면서 걱정을 했다. 그래도 걱정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애씀은 생각보다 잘 되었는데, 왜냐하면 최근 내가 겪었던 것이, 지금 겪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이해는 자괴감, 자책감, 기타 등등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의 자기반성에서 내가 너무 쫄보이기 때문에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인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근 겪은 일로 의기소침했고, 지금도 의기소침하나 전보다는 더 초연해진 것 같다. 요새 절실히 느낀 것은, 경험이 많아지면 사람이 초연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숙해지기도 할 뿐더러, 앞으로 겪을 더 큰 위기를 생각하면 매번 일희일비하여 걱정하고 흔들리면 삶을

2017년 11월 21일

1. 어제 저녁에 나는 서브웨이에 갔었다. 이탈리안 BMT 30cm를 사서 반은 그날 저녁에 먹고 반은 다음날 아침에 먹으려고 냉장고에 넣어 놨던 것을 오늘 낮에 먹었는데, 일주일 정도 커피 마시는 것을 쉬었으니 슬슬 커피를 마셔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식후에 커피를 내려서 마셨는데, 마시고 나니까 헛구역질이 나고 윗배가 꽉 얹혀서 죽을 것 같았다. 한 한시간 정도 그렇게 헛구역질을 하고 억지로 트림을 하고 별 지랄을 다 떨다가 결국엔 화장실에 가서 토해버렸다. 저번주에도 똑같이 소화불량이어서 토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속이 쓰려서 앉아 있기 힘들었는데 다행히 오늘은 속이 안 쓰렸다. 일주일 넘게 위가 말썽이어서, 이대로 가다간 30살 넘어서 위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수업시간에 노트북으로 만성 위염, 신경성 위염, 위암, 어쨌든 위에 대해서 검색했다. 음주, 흡연, 카페인 음료, 진통소염제, 매운 음식. 나는 흡연을 하고 커피 마시는 것을 즐기고 생리 때마다 진통소염제를 3알 이상은 먹는다. 그리고 위는 자율신경과 연결되어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하면 더욱더 맥을 못 춘다고 한다. 2. 지금 우울하고 힘들고 심지어 소화까지 안 되는 상태의 원인을 대학원 입시 결과의 불확정성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것들의 원인을, 졸업논문과 대학원 입시 과정에서 내 멋대로 했고 나의 (못난) 실력을 타인에게 내보였으며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그 과정에서 겪은 낙담, 그것들로 본다. 지금도 졸업논문 심사 때 나를 쳐다보던 교수들의 얼굴과 대학원 면접 때 받은 왜 이렇게 성적이 낮냐는 질문을 떠올린다. 면접 때 나는 나의 못난 역량과 나의 정신적 고통을 털어 놓았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솔직하게 군 바람에 학업적인 신뢰를 사지 못했다. 그것은 전략적으로 (당연히) 불리한 일이었고, 내가 생각한 만큼 그런 행위가 윤리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나는 나의 실력을 확신하고 나의 좋은

2017년 10월 29일

이 개같고 좆같고 진짜 이 너무할 정도로 가혹한 시기가 지나면 꼭 일기를 써야지, 이 좆같은 시기에 강제적으로 '사유'하고 강제적으로 느낀 감정들을 까먹기 전에 꼭 써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자고 일어나서, 푹 쉬고 나서 쓰려고 했지만 이번 달 내내 밤을 샌 빈도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았고 조금씩 끊어 자면서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부려먹은 탓에 푹 잘 수 있는 피로와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도 몇 시간 안 되어서 잠에서 깨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블로그를 켰는데... 진짜로 "졸업논문을 다 썼고 대학원 입시가 끝났다..." 라는 문장보다 이 두달간의 경험을 더 잘 압축적으로 요약할 말이 있을까? 헤겔 법철학을 읽고 잠을 충분히 자고 게임도 충분히 했던 여름방학 시기,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한 요 두 달까지 포함해서, 나는 정말로 내 멋대로 했다. 여름방학 때를 말하자면, 당장 급한 마감이 없었고 그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 게임하고 싶을 때 게임을 했기 때문에 완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 게 맞다. 엄마가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나는 자대 자과생이기 때문에 전공시험을 안 봐도 되고 진짜로 졸업논문만 잘 쓰면 대학원은 붙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내내 읽었던 헤겔 법철학은 내 졸업논문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8월 말, 양효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내가 버틀러의 <윤리적 폭력 비판>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졸업논문 신청서를 내기 위해 지도교수님을 만날 때까지, 나는 그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든 헤겔 법철학을 살리는 주제를 택하고자 했으나 나는 결국 버틀러를 주제로 한 졸업논문 개요를 작성하고 그것을 지도교수님께 보였다. 내가 은연 중에 우리 학교 철학과는 버틀러를 알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2017년 9월 30일

1. 4일동안 쳐다도 안 봤던 (왜냐하면 이틀 동안은 과제 때문에 시간이 없었고 남은 이틀은 말 그대로 탈진해서) 졸업논문을 다시 붙잡았는데, 추석연휴 내내 이것을 붙잡고 있어도 내가 수없이 쓰고 제출한 'F는 면하자 제출용 레포트' 퀄리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울적하고 슬펐다. 울적하고 슬프고 무기력해서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연어를 퀵서비스로 배달해 먹을까 고민했다. (이미 이번 달에 돈을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내가 직접 전화를 해서 퀵서비스를 부탁한다고 말하기 싫었기 때문에 (나는 전화를 싫어한다) 그냥 녹두에 와서 늘 먹는 쌀국수를 먹었다. (녹두에 아는 가게가 쌀국수집이랑 돈까스집밖에 없다) 생리전증후군의 한복판에 서서 이번 달에 상실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릴 뻔했다(진짜로). 글을 쓰는 게 싫은 것은 글 자체가 안 써지는 것도 있고 (말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은 내가 "말하고자 한 바"를 "정확히" 말하는 것이라는 지젝의 말이 생각난다) 글을 쓰면서 잠기는 상념들에 우울과 슬픔이 섞이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분류해버리고 타인이 분명히 행복하게 잘 살 거라고 멋대로 단정짓는 행위를 멈출 수가 없다. (버릇이 들어버린 데다가 지금은 우울에 잠겼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하루에 글을 반 페이지 정도밖에 쓰질 못해서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과연 내가 말하는 바를 잘 담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일기를 쓰는 것도 힘들고 자괴감이 든다. (이렇게 괄호로 나의 울적함의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고통의 한 복판에 있는 것 같은 순간들은 여러 차례 있었고 그 시기가 지날 때마다 그때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 또한 몇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생생한 고통이 더욱 슬퍼진다

2017년 9월 26일

1. 개강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새벽 네 시 이후에 (어쩔 수 없이) 잠든다. 왜냐하면 누워서 비엘 소설을 읽거나 아님 정말 단순하게도 자기가 싫어서이다. 언제는 아침 여덟 시에 잠들어서 낮 세 시에 겨우 깬 적이 있었는데, 자꾸 아침의 새 소리를 들으며 깨질 것 같은 대가리의 고통을 참으며 어쩔 수 없이 자는 게 몸에는 그리 좋지 않아서 이번 주 월요일에 정신과에 가서 이러한 나의 망한 수면 패턴을 토로해 버렸다. 그 덕에 의사 선생님께 낮잠 금지령도 당하고 무조건 아침 10시 이전에 일어나라는 (거부할 수 없는 법의 남성적 언어 같은) 조언을 들었다. 일단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것은 항우울제를 아침에 먹는 것인데 (나는 몰랐는데 지금 먹는 약이 밤에 먹으면 밤잠에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서 아침에 먹는 게 좋을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것만은 지키고 있다. 어쨌든 오늘도 새벽 다섯 시에 잠들어서 낮 한 시 즈음에 깼다. 그 후로 오래된 노트북처럼 버벅거리고 무거운 상태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수업을 들으러 왔는데 대체 마음 놓고 쉴 날이 11월 이후에나 찾아올 거라서 '이게 사는 건가'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고,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내일 수업 때 제출해야 할 요약문 작성을 시작했는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환멸이 나 버려서 아마 저녁 먹고 나서 더 이상 미루면 좆될 때까지 진도를 못 뺄 예정이다. 그리고 선택한 게 오랜만에 블로그에 일기 쓰기라서 좀 웃기다다. 2. 어제 저녁에 한영이랑 밥을 먹었는데 옛날에도 한영이에게 사과를 했었지만 어제 저녁에도 또 한 번 사과를 했다. (재차 한 사과이니만큼 예전의 것보다는 더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요새 두 명의 친구와 소원해져서, 예전에 내가 한영이를 멀리했던 것이 생각나서 한영이가 느꼈을 소원함과 외로움에 동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과를 듣고는 한영이는 그때 자신이 느꼈던 외로움과 섭섭함이 지금의

2017년 8월 3일

1. 더위 먹은 상태가 디폴트인 채로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과외 가는 길에 너무 덥고 피곤해서 세 걸음 디딜 때마다 목숨을 유지하기가 버거운 듯이 한숨을 쉬고 그랬다. 정말 장난 아니게 더운 것이었다. 집에서 과외하는 집까지는 도보로 30분 정도인데, 덥다고 샌들을 신으면 발바닥이 너무 아플 게 뻔해서 양말을 신고 운동화를 신는데 거기에 고이는 열기가 장난이 아니고 내가 발을 딛는 아스팔트 바닥이랑 보도블럭도 너무너무 뜨거웠다. 집에서는 선풍기를 거의 내내 틀어놔서 엄마가 볼 때마다 그리 좋아하진 않아한다. 오늘은 애인이 사는 부천에 놀러 갔는데 오늘도 너무 더워서 점심으로 먹은 인도카레도 잘 안 먹혔고 (그리고 카레가 너무 달아서 한 입 먹으니 물릴 정도였다) 애인네 집에 가는 길도 너무 더웠다. 다행히도 애인네 집에서 에어컨을 틀어서 나는 애인네 집에서 살고 있는 강아지랑 같이 누워서 낮잠을 잤다. 더울 때에는 낮잠을 안 잘래야 안 잘 수가 없다. 사실 안 더울 때에도 낮잠을 잘 수밖에 없는 몸이긴 하지만 말이다. 2. 요 몇 달간 먹는 항우울제 처방은 부프로피온 서방정 한 알과(웰부트린이라는 상품명으로 잘 알려진 것) 설트랄린 반 알(졸로프트라는 상품명으로 잘 알려진 것)이었는데, 원래는 설트랄린만 복용했는데 설트랄린의 부작용인 오르가즘 지연이 너무너무 좆같은데 그렇다고 이 약을 완전히 끊으면 너무너무 어지러워서 일상 생활이 불가할 정도였기에 웰부트린과 소량의 설트랄린을 먹는 처방으로 합의를 본 것이었다. 그런데 소량이어도 설트랄린을 먹으면 정말정말 오르가즘을 느끼기가 힘들다. 살짝 붕 뜨고 열감만 느껴지는 게 전부고 오르가즘을 느끼려고 더욱 더 애를 쓰면 (예를 들어 자위를 하거나 애인이랑 섹스를 하거나) 아프기만 할 뿐이어서 너무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결국은 설트랄린을 끊었을 때 일상생활을 크게 어렵게 만드는 어지러움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해서라도 이 약을 끊고 싶다고 의사 선생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다면 설트랄린 약을 이로 조금만

2017년 7월 13일

1. 오늘은 엄마에게 너 솔직히 공부 안 하잖아, 너 누워만 있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도서관 간다더니 한 번도 안 가고,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고 정말 말 그대로의 사실 적시라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할 일이 없고 그렇다고 트위터에 재미 있는 글이 올라오지도 않는데 그렇다고 트위터를 그만두지 않는 트위터 유저들이 으레 하는 놀이 중 하나인 해시태그 놀이에 자기 학부 혹은 대학원 시절의 최고 학점과 최저 학점을 밝히는 것이 있었다. 내 트위터 친구 중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하기에, 내 최고 학점이 얼마였는지 궁금해서 성적을 조회해보았더니 새삼 충격 먹는 것도 이상하지만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일 정도로 좀 놀라 버렸다. 내 최고학점은 3.58 정도였고 최저학점은 2.63으로 바로 9학점밖에 듣지 않았던 이번 학기의 성적이었다. 그것을 보니 솔직히 내가 자대 자과생이어도 대학원에 떨어질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내 평균 학점을 올려준 것은 대부분 교양 과목으로, 탯줄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적부터 배운 페미니즘과 퀴어와 관련된 과목이었다. 과외를 하고 집으로 걸어 오면서 앞으로의 내 생활은 어떨까 걱정어린 생각을 좀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게으른 것 같은데, 사실 게으른 것은 죄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비난 받을 만한 특성도 아니며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게으른게' 아니라 '지나치게 여유로운 것'이며 이것은 책임감이 없어서 내가 해야 할 책무로부터 도망치는 일과 구별해야 되는 게 아닌가.... 성실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이며 이 성실함에 복무하는 것은 노동자의 자기소외 현상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변명 같은 생각만 하며 집으로 왔다. 이런 변명을 이론의 용어로 그럴 듯하게 지껄이려고 철학과에 온 거냐고 누가 따져도 할 말 없을 정도로 말이다. 2. 집에 와서 나는 좀 외로웠다. 만악은 트위터에서 나오는 것인데(사실

2017년 6월 25일

얼마 전에 머리를 자르고 엄마가 나한테 "너 참 고등학생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엄마의 '고등학생 같다'는 '선머슴 같다'의 다른 표현인데, 나는 내가 과외를 하면서 만났던 중고등학생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주 수수하더라도 틴트 정도는 바르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나는 틴트는 고사하고 선크림조차 귀찮다고 잘 안 바르는 경우가 태반이니 나는 요새 중고등학생 같지도 않은 것이다. (갑자기 다이소 계산대에 붙어 있던 "초등학생에게 화장품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생각난다) 아마 난 30대가 되어서도 '고등학생'같아 보일 것이다. 동안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서른 살을 넘긴다면 난 아마 어렸을 적 선크림을 꼬박꼬박 바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 건 이런 뜻에서이다. 대충 내가 철학과로 전과하기 바로 전 학기인지 직후의 학기인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튼 진로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일 것이다. 그때 나는 아침 아홉 시 반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었는데, 언젠가 내가 인문대 8동 옆에 있는 재떨이 항아리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거기에 그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계신 것이었다. 참고로 그 선생님은 시간 강사다. 그 선생님은 내가 오기 전부터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내가 담배를 반 정도 태우자 선생님은 꽁초를 버리고 인문대 건물로 들어가셨다. 그 선생님은 책과 노트북 등을 가지고 다니기 좋은 실용적인 배낭을 매고 계셨고, 옷은 정장이 아닌 그냥 편한 일상복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무척이나 대학생 같다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의 뒷모습은 정교수와 너무 달라보였고, 나는 나 또한 저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도 저 선생님처럼 학생 같아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대해 또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면 내가 한창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을 때 양효실 선생님

2017년 6월 1일

6월의 첫 아침을 상쾌하게 과외 짤림으로 시작했다. 오늘은 애인과의 정기적인 데이트날인데 애인은 2명의 교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이번주에도 앓아 누웠고, 잔뜩 쉬어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오늘 말고 내일 만나자고 전화했다. 그때가 한 10시 쯤이었고, 나는 애인을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과외 학생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온 것이다. 나는 그 문자를 받고 기분이 나빴는데, 그것은 물론 과외가 짤려서 그런 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과외 어머니가 굳이 문자로 내 과외가 짤린 이유를 명시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은 까닭입니다" 라는... 이런 말을 할 거면 대체 왜 '아이가 선생님의 열정을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언급했는가? 어쨌든 나는 과외 학생의 중간 고사 성적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학생의 말로는 전체에서 두 개 틀렸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원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뒤따라 들었다. 만점을 받기를 원한 것일까? 이래저래 나는 가성비가 좋지 않은 서울대 재학생 과외 선생이었고, 슬프게도 불경기인 한국에서는 가성비가 나쁜 나는 짤리기가 너무나도 쉬웠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대체로 어머니들이 과외를 짜를 때에는 문자로 통보한다. 나는 그래도 비즈니스 관계일지라도 몇 달 정도의 '계약'을 맺었다면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는 게 그리 썩 좋은 해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해고란 무엇인가.... '좋은 이별'이 무엇인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썩 좋지 않은 해고를 당하면 나도 답 문자를 보낼 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말투를 사용하고 만다. 나는 남은 과외비를 환불하고 (정말 과외비를 환불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불쾌한 하루의 시작에 일조했다) 어머니께 '더 좋은 수학 선생님을 찾아 원하는 꿈 이루기를 바랄게요'라고 답문자를 보냈고, 어머니가 그에 이제까지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2017년 5월 21일

만 24세가 되는 생일을 맞아서야 깨달은 게 있는데 그것은 내가 내 생일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 그리 만족스러운 교우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 그래서 어떤 애의 생일파티에 초대되지 못했다는 것과 더불어 엄마아빠가 생일파티는 낭비라고 생각해서 성대한 생일파티를 열지 못했다는 것이 나에게 강렬한 결핍의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는 걸 깨달으니 쓸쓸하게 우스웠다. 유독 내가 생일 즈음만 우울했던 게 다 이러한 결핍에서 나온 기대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버렸다. 자아라는 것을 갖추고 나서 늘 외로움을 겪었지만 나이가 들도록 그 외로움에 대한 공포는 줄어들 생각을 안 하고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하는 것 같다. 앞으로 의미 있는 인간관계라고는 별로 없는 시시한 삶을 살게 될까봐 두렵다. 아니, 부모님께 생일 선물로 20만원 받으면 됐지...뭐....

2017년 5월 15일

1. 당장 떠오르는 내 미래 계획이란 내년에 자취를 하든 부모님 집에 얹혀 살든 플4 프로를 사겠노라는 것뿐이다. 공부 계획은 어느 정도 잡혀 있으나 그렇게 의욕적이지 않고, 생계비를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 생각 없다. 의욕적이고 구체적인 미래 계획이란 내가 무엇을 살 것이고 어떻게 놀 것인지에 대한 것밖에 없다. 나는 정말로 내년에 큰 모니터와 (최소 32인치 이상의) 플4 프로를 사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2. 정말 요즘 절실히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여유가 꼭 필요하다. 생계에 대한 여유도 생기기 어려울 정도로 빠듯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요즘 시대에 정신적 여유를 추구하자는 말조차 하기 힘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날이 많이 서 있다고 느낀다. 비판 의식을 갖는 것과 날이 서 있는 것은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중 한분이 "분노가 기본 정서가 아닌 지식인들을 혐오하기까지 한다"라는 문장을 썼던 걸로 기억하는데, 분노는 비판 의식을 갖는 데에 첫걸음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거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게 살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이 나약하기에 가질 수 있는 인간만의 선량함을 믿고 어떻게든 어떤 사람과의 대화 가능성과 설득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앞으로 나 자신이 엄청나게 훼손당하는 일을 겪게 되더라도, 그 때문에 이런 결심을 내버리고 인간을 혐오하고 세상을 등진 채로 살 수도 있을 것이나, 나는 나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지금 내가 바라고자 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다시끔 다짐하리라 믿고 있다. 앞으로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든, 지금 이 순간의 나의 다짐은 진짜이고 이 다짐은 옳다고 믿는다. 요새 내가 읽은 철학자들은 결국에는 인간에게 희망을 품는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나는 그 긍정이 단순히 생각이 없는 긍정이 아닌, 끝없는 부정과 의심과 비판 끝에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나

2017년 5월 3일

1. 허이모와 카페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다. 이야깃거리 중 하나는 선거를 통한 대의민주주의로 나 같은 사람들의 의견이 절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현재 자본주의와 결탁한 대의민주주의가 갖는 한계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다는 나의 바람에 관한 것이었는데, 허이모가 그것을 듣고 셸든 월린(Sheldon Wolin)이라는 미국의 정치철학자를 소개해 주었다. 오늘 저녁에 게임을 잠깐 하고 그 학자에 대해 검색해 보았는데, 나는 그 학자의 책이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을 거라 짐작했는데 그 짐작이 틀렸다. 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월린을 검색해보니 후마니타스에서 번역한 책들이 있었다. 이번 학기에 헤겔 수업을 청강하면서 졸업 논문을 헤겔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헤겔뿐만 아니라 읽어야 할 책 목록들이 지치지도 않는 듯 갱신되고 있다. 게으른 내가 죽기 전까지 그 책들을 모두 읽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2. 헤겔 입문서를 읽는데, 이 입문서를 쓴 학자가 여성이라는 소수성을 갖고 있어서 헤겔이 현 체제를 무조건적으로 정당화하는 보수주의자라는 혐의에 대해 천착하려는 게 보였다. 그것은 내가 헤겔을 알기 전 헤겔에 대해 품은 인상과도 부합하는 것이어서, 여성 헤겔 연구자는 어쩌면 처음에 헤겔을 접했을 때 비슷한 걱정과 혐의를 갖고 접근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헤겔로 졸업 논문을 쓰게 될 경우,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을 하루 빨리 읽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헤겔 입문서부터 완독해야겠지만. 3. 스피노자 입문서를 읽고 나서 내가 좀더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커피가 나에게 주는 기쁨, 지금 날씨의 적당한 온도와 좀더 짙은 파란색이 된 하늘과 총천연색의 꽃들이 주는 자연미 기타 등등이 주는 좋음을 수용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듯 하다. 오늘 허이모와도 이야기했던 건데, 사람은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조건들과 자원들만을 가지고 지금 그 사람이 자신의 상황에 대해

2017년 3월 13일

1. 저번 일요일부터 왼쪽 아래에 있는 사랑니를 둘러싼 잇몸이 다 헐어서 아프다. 매년 봄마다 사랑니가 쑤셔서 왜 봄에만 자라나는 걸까 궁금할 때도 있었는데, 어쨌든 치과에 가서 이것을 뽑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검사를 받아야 하는 때인 거 같다. 2. 이번 학기는 9학점만 들어서 무척이나 시간이 한가한데, 그 한가한 시간에 누워 있고 게임을 하고 아무튼 공부는 안 한다. 그래도 책은 1년 전보다야 많이 읽는 것 같다. 한영이와 졸업 및 대학원 준비를 위한, 어쨌든 책상 앞에 앉아 있기 모임을 만들어서 일주일에 두 번 도서관 스터디룸을 빌려서 두 시간 있기로 약속했다. 저번주에는 화요일 수요일 저녁에 스터디룸을 빌려 앉아 있었다. 그 시간동안 내가 읽은 것은 헤겔 법철학과 들뢰즈 해설서였다. 3. 헤겔 강의를 청강하는데, 선생님을 너무나 사랑해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헤겔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틀러 책을 몇 권 읽은 덕인지 헤겔 법철학 서론의 4절부터 7절까지 읽는데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헤겔 해설서를 읽을 필요를 느끼는데, 도서관에서 빌리면 십중팔구 연체를 할 것임이 뻔해서 책을 사야할 것 같다. 그런데 책이 너무 비싸다. 그러니까, 책 한권 정도야 당연히 살 수 있지만 알라딘에서 이것저것 책을 고르다보면 내가 읽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모든 재산을 탕진할 만큼 책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아무튼 돈을 주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이다. 4.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사람이 우울해지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트위터에서도 그런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다는 트윗을 본 기억이 난다. 어쨌든 바로 내가 봄을 타서 정말로 몸에 힘이 없고 울적해져서 (밖에만 나가면 울고 싶었다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걷기가 힘들었다) 항우울제를 늘렸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기운이 났다. 약을 먹게 되면서 바보가 되는 게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다. 분명 몸에 활력이 생기고 책을 읽을 기운도 나니

2017년 2월 15일

1. 요 2주간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기력과 피곤함에 시달렸다. 일단 눈을 뜨면 배고픔을 없애려고 밥을 먹고, 그후엔 몸이 무거워서 어디 밖에 나갈 엄두도 못내고 침대에 누워 있거나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내가 내린 커피만 홀짝거리며 마셨다. 과외 학생은 위염과 장염으로 개고생을 하여 과외 수업을 못하게 되어서, 밖에 나갈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역시 계절성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정신과에서 약을 타오면서 비타민 D 주사를 맞아야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1년 전에도 같은 주사를 맞았었는데, 그때보다 엉덩이가 더 얼얼했다. 지금은 주사를 맞은 지 일주일 후인데, 그리 몸이 가뿐해졌다던가 그런 느낌은 전혀 안 든다. 그래도 하나는 느꼈는데, 주사는 효능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통스럽게 무거운 몸을 들어서 바깥공기를 쐬어주면 좀 낫다는 것이다. 어제는 세미나에 갔다. 사실 가기 싫었는데, 코어 세미나 정산서 건도 있고 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나간 김에 학교 근처에서 자주 찾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미용실에 가니 내 머리를 담당했던 사람은 없었고, 어떤 남자 직원이 잘라줬는데 그 사람의표정은 정말 오늘 일하기 싫하기 싫고 지쳐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 머리를 굉장히 시원하게 (혹은 대충, 과감하게) 잘라주고 머리도 아주 털털하게 말려주셨다 (혹은 대충 말렸다). 머리를 다 자르고 허이모한테 연락했는데, 허이모가 근처 돈까스집에서 밥을 먹고 있대서 그 가게로 갔다. 나는 입맛이 없어서 어떤 것을 먹어도 그저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기에 돈까스는 나쁘지 않았다. 돈까스를 먹고 허이모랑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면서 요새의 증상을 호소했더니 허이모가 그렇다면 햇볕을 쬐고 바깥공기를 쐴 소풍을 가자고 제안해서 그러기로 했다. 2. 이렇게 신체의 증상으로 느껴질 만큼 우울할 때는 외롭다. 이 고통을 아무리 호소해봤자 이 고통은 내가 겪는 것이라서 나만이 알 수 있고 아무도 나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2017년 1월 21일

1. 부모님 집에 머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장점은 다음과 같다. a) 혼자만의 방이 있다.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기타 등등을 할 수 있다. b) 커피를 내려 마시기 아주 수월하다. c) 식비가 많이 절감된다. d) 엄마와 아빠라는 타인이 있기 때문에 어떤 공간에 홀로 살고 있다는 외로움이 가신다. e) 엄마나 아빠가 가끔씩 아침 또는 저녁을 차려준다. 단점은 다음과 같다. a) 가족들 간의 문제에 어쩔 수 없이 연루된다. b) 담배를 피우기가 힘들다. 눈치껏 밖에 나가서 피우거나 과외 하기 전에 피우거나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 피우거나 밤에 방문을 꼭 잠그고 환기에 신경 쓰며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운다. 2. 오늘은 단점-a항 때문에 피곤했다. 울적하기도 했다. 부모님과 늦은 아침을 먹고 잠이 다 깨버려서 커피를 내려서 엄마와 아빠한테도 주고 내 몫까지 내려서 방으로 들어와 칸트 순수이성비판을 읽을 때였다. (앞으로 철학을 공부할 예정이므로 더 이상 칸트 읽기를 미뤄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의무적으로 매일 1페이지라도 읽으리라 마음 먹었다) 엄마는 김치를 담그느라 순무와 무를 손질했고 아빠는 텔레비전을 봤다. 즉, 그들은 오랜만에 거실이라는 한 공간에 같이 머물렀다. 엄마는 아빠한테 친오빠 이야기를 했다. 친오빠 이야기를 하자면, 친오빠는 졸업을 미뤘고 1년 동안 취업준비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친오빠는 수원에서 학교를 다니며 자취하고 있었고, 2016년 2학기 내내 부모님 집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으며 (추석 때 한 번 비추고 끝이었다) 겨울방학에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의 이야기 끝에 겨울방학부터 부모님 집에 머물면서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취업준비를 시작하기로 그들은 합의했다. (그 과정에서 좁아 터지게 된 부모님 집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도록 하자) 그래서 필연적으로 언젠가 오빠와 부모님 사이에 트러블이 있을 것이었고, 그 일이 생각보

2017년 1월 17일: 꿈에 대한 일기

1. 요 이틀간 꿨던 꿈 메모 a) 이틀 전에 꿨던 꿈이다. 나는 갑자기 몸 어디가 아파서 밤중에 집을 나와 응급실을 향해 걸었다. 아마 귀가 아팠던가 그랬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치 않다. 119를 부르면 되는 것을 왜 그 추운 한밤중에 직접 내 발로 걸어서 병원을 갈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굉장히 오래 걸었고, 그 꿈의 풍경은 내가 어렸을 적 살았던 동네가 기묘하게 재구성된 곳이었다. 딱 기억나는 건 내가 어떤 풀숲이 우거진 (그렇다고 숲 속은 아닌) 인도 오르막을 걷고 있었다는 거고, 그 풍경과 비슷한 곳이 바로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맨날 소풍을 뻔질나게 다니던 장릉으로 향하는 길이다. 어쨌든 열심히 걷다가 내리막으로 접어들 즈음, 응급실이 보였고 나는 갑자기 내가 응급실에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응급실에 갈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건지 잘 모른다. 어쨌든 응급실에 가지 않기로 마음 먹고 다시 집으로 향했는데, 왔던 길을 돌아서 간 건 아니고 응급실 근처에 있는 다른 길로 갔다. 달동네의 좁은 골목길이었고 경사가 있지 않았다. 이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이 하얗다는 게 기억난다. 어쨌든 걷는데, 어떤 사람이 눈 앞에 보였다. 처음에는 머리가 긴 사람인 줄 알았던 거 같았다. 그 사람을 앞질러 지나가려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날 붙잡더니 나를 죽이려 들었다. 손에 칼을 들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머리가 긴 줄 알았던 그 사람은 어떤 아저씨였다. 아이보리색 패딩을 입은 아저씨였던 것 같다. 나는 그 사람을 보자 거리를 벌리며 핸드폰을 꺼내서 112에 신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주 태연하게 "한 번 신고해봐." 라고 말했다. 나의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듯이. 나는 112로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걸린 건 근처의 경찰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죽이려 드는 눈 앞의 그 사람의 핸드폰이었다. 그 사람은 빈정거리는 듯이 웃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날 죽였냐 하면,

샤오미 게임패드 리뷰 및 샤오미 pc에 연동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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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에 샀던 샤오미 게임패드를 리뷰합니다. 저는 xbox one 구형패드를 1년 간 이용한 사람이고, 샤오미 게임패드의 하드웨어적 리뷰는 아마 xbox one 구형패드와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일단 박스 포장은 이렇습니다. 배송비 포함 약 3만원으로 구입한 게임패드의 미색 크라프트지 재질의 박스가 참 깔끔해서 좋았습니다. (xbox one의 초록색을 싫어합니다) 상자를 열면 이렇습니다. 게임패드가 있고, 사용설명서가 끼워져 있습니다.  (중국어로만 쓰여 있고, 영어도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박스 뚜껑 내부에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검은색 스티로폴 완화재가 붙여 있습니다. 샤오미 패드 디자인 자체는 굉장히 xbox one 패드와 흡사합니다. 아날로그 스틱 배치도 그렇고, 십자키와 ABXY키도 그렇고, 가운데에 있는 start버튼과 back버튼과 게임패드의 전원스위치와 블루투스 페어링 표시를 담당하는 mi 버튼도 xbox one 패드 특유의 x버튼과 비슷합니다. 왼쪽이 샤오미 게임패드, 오른쪽이 xbox one 구형패드입니다. 상당히 모습이 비슷합니다. 두 패드의 차이점을 쓰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샤오미 게임패드가 xbox one 구형패드보다 가볍다. (저는 xbox one 구형패드에 충전 가능한 배터리를 달지 않았고, 두 패드 똑같이 AA 건전지 2개를 사용합니다.) 2. xbox one 구형패드의 LB RB 버튼(샤오미 게임패드에서는 L1과 R1버튼)은 쉽게 눌리지 않는 딸깍거리는 버튼임에 반해 샤오미 게임패드는 쉽게 눌리고 딸깍거리지 않습니다. (샤오미 게임패드의 이 점은 마음에 듭니다) 3. xbox one 구형패드의 ABXY 버튼은 찰칵거리며 잘 눌리는데 반해 샤오미 게임패드의 ABXY 버튼은 눌리는 데 좀 더 센 힘이 필요하고, ABXY 버튼 눌리는 소리가 더 작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샤오미 게임패드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

2017년 1월 8일

1. 블로그를 옮겼다. 잘 하지도 않는 주제에 말이다. 그런 데다가 국내 블로그 서비스는 죽어도 이용하기 싫어서 내가 알아본 것은 구글 블로거랑 워드프레스였다. 그러나 워드프레스는 블로그 툴일 뿐이지, 거기서 무언가 웹호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라 포기했다. 컴퓨터라든지 웹이라든지 프로그래밍이라든지 그런 것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기 때문에 결국 남은 것은 구글 블로거였다. (텀블러는 깔끔해서 좋았는데, 텀블러는 사진을 올리는 데에 특화된 서비스라는 게 나를 걸리게 했다. 나는 주로 일기를 써서 올리는데 글 포스팅을 깔끔하게 올리고 이전 포스팅을 편하게 볼 수 있고 이전 포스팅을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다.) 어쨌든 블로그를 잘 하지도 않는 주제에 블로그는 여러 가지를 써 보았고 그때마다 이전 포스팅을 갈무리하는 수고를 겪었는데, 저번까지 썼던 텀블러는 내가 꽤 오랫동안 성실하게 글을 올려 놓아서 생각보다 블로그 이사가 힘들었다. 복붙을 하고 문단을 좀 다듬고 눈에 보이는 오타를 고치고 태그를 다는 것이 뭐 이렇게 귀찮고 품이 드는지 모르겠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옛날 일기를 강제적으로 살펴 봐야 하는 형벌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 형벌은 아주 고통스럽진 않았고, 부끄러움으로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정도로만 괴로웠다. 손가락이 오그라들면서도 갓 스무 살의 나와 지금의 나의 변화 과정을 살펴 보았는데, 2012년과 2013년에는 좀 '귀여운' 면모가 있었고 2014년부터 우울증이 심각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더니 2015년에는 거의 매일매일 일기를 썼었고 그 일기에는 자괴감과 심각한 우울증으로 가득 찼었다. 그래서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의 변화 과정을 거칠게 말하자면 '우울증의 발전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우울증의 발전을 보고 있노라니 왜 진작 내가 우울증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으며 그것을 빨리 눈치 채서 약물치료를 받았더라면 그때의 그 자괴감과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책을 읽으려고 했

2013년 11월 11일: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감상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표정. 금세 사랑에 빠진다. 촌스러울만치 화려하고 과장된 화면 속에서 그녀는 노래하고 춤을 춘다. 결 좋은 머리카락은 부시시해진다. 깨끗한 옷은 결국 더럽고 보풀이 인 스웨터가 된다. 마츠코는 혐오스럽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은 점점 멍청해 보인다. 우리는 그녀가 절망하기 전 흘러나오는 음악과 율동에 깔깔 웃는다. 그러나 그렇게 웃기만 할 것인가. 혐오스러운 그녀를 보며 눈살을 찌푸릴 것인가. 과외하는 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면서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한 리뷰를 찾았다.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그녀에 대한 연민이 깃든 평이 많았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 파고들면, 그녀의 삶은 눈물겹다. 그저 마츠코는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았는데 번번이 좌절되고, 그녀는 점점 잊혀져 간다. 아무리 지옥 같아도 혼자인 것보다 낫다는 그녀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생생했다. 하지만 석연찮았다. 그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는 정도로 끝내야 할까. 매 맞는 여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여자에 대해 말하는 페미니즘을 조롱하듯, 수동적이고 어쩔 때에는 참으로 멍청한 여자가 나오는 작품. 이것을 어찌해야 할까. 교수님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피아노 치는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이거 어떡할까요. 그러게요, 어떡할까요. 그렇다고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는 틀려먹었어, 이런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회를 뜯어 고쳐야 해, 라고 시원하게 말할 수도 없는데 말이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다시끔 물컹거리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더 있다. 그녀를 그녀 자체의 개인적인 삶에 한정하여 말하기엔 부족하다. 오히려 개인적인 삶에만 집중하는 것은 그녀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다. 참으로 힘 빠지는, 어이 없게 죽은 그녀에 대한 애도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아는 게 많지 않으므로 그녀의 개인적인 삶을 초월한 맥락에서 그녀를 이야기할 수 없다, 아직

2016년 11월 5일

1. 공부 하기 싫어서 일기를 쓴다. 지금 있는 이 곳의 카페는 1주일 전에 우연히 발견한 곳으로 혼자서 뭘 하기가 참 좋다. 인테리어도 내 취향이고 화장실은 카페 내부에 있는데 무척이나 깔끔하고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한적하고. 자리도 편하고 콘센트도 있다.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현대인에게 아주 적합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단점이라면 아주 불편한 접근성인데, 이곳으로 오는 버스가 없어서 한참 걸어가야 올 수 있는 곳이다. 그래도 그 힘듦을 감수할 만한 곳이다. 2. 엄마와 아빠는 요새 말을 안 하고 산다. 이혼하기에는 그들의 감정의 골이 그리 깊지 않고 그 법적 절차가 무척 번거로우며 아빠는 이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해서 그냥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은 공간을 같이 점유하며 살기로’만’ 한 것 같다. 그와 별개로 나는 매주 금요일 밤에 부모님 집으로 온다. 홀로 있을 방이 부모님 집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에 대한 모종의 책임감이 있다. 엄마와 외식을 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야 한다는 그런 책임감이다. 나는 이제 엄마와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에(오히려 좋은 편이다) 그런 책임감이 나한테 그리 부담이 되는 건 아니다. 엄마가 나와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는 것이 나에게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좋아해주는 게 좋으니까. 3. 이번 학기부터 코어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에 진학하겠다는 서약서에 동의하는 대가로 월마다 내 수중에는 75만원의 돈이 들어온다. 다음 학기부터는 월 60만원을 받게 되고. 그러나 내 지출은 월 75만원을 초과한다. 그것은 내가 먹고 싶은 게 생길 때 먹으며 (그것이 만원이 넘는 초밥이라던가 3만원 가까이 되는 아웃백 스테이크라 하더라도)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고 매일 커피를 사 마시고 담배를 꾸준히 태워서 그렇다. 저번 달에는 노트북이 필요해서 인민에어를 사

2016년 1월 25일

1. 금요일에 집 근처 신경정신과에서 항우울제를 타면서 비타민D 주사를 맞았다. 진료 중간에 “요새 일조량이 부족해서 그런가 전보다 더 우울하고 쉽게 지치네요” 라고 말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나한테 비타민D 주사를 영업한 것이었다. 어찌보면 비타민D 주사를 맞는 것은 호구가 되는 일이었으나 왠지 모르게 나는 “그거 얼만가요” 라고 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학생이니까 만원 할인해서 4만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비타민D 주사를 맞으면 3개월간 지속된다고 하면서 비타민D 주사가 그렇게 호구잡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어필하였다. 나는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진료를 끝내고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카운터에 앉아 계신 간호사님 또는 간호조무사님이 주사 키트를 들고 나를 주사실로 안내하였다. 주사를 맞은 자국이 욱신거렸다. 지금도 사실 손으로 그 부분을 문지르면 아프다. 비타민D 주사가 내 삶을 좀 더 살만한 것으로 만들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안 맞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살고 있다. 2. 사실 이 세상 대부분의 것들에게 흥미를 잃었다. 비타민 D 주사 맞은 게 호구 잡힌 일인지 아닌지도 사실 관심이 없고 인간들 대부분에게 관심을 잃었고 내 자신조차, 내 목숨의 온전함에도 관심을 잃었다. 그냥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져버렸고, 귀찮음에도 계속 생각을 하는 것은 생각을 하는게 내 습관이라서 그렇다.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파이널판타지14이다. 숨 넘어가게 과외를 뛰고 집에 와서 게임을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다. 하지만 요새 체력이 훅 떨어졌는지 게임을 하는 게 너무너무 피곤하다.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쓰는 것도 게임 하는 게 피곤해서다. 게임 하는 게 피곤하지 않았다면 일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굳이 적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낄테니까. 내 말, 내 생각이 너무나 허무하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열심히 글로 적어봤자 기분만 안 좋아질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쓰는 것은 그래도 내가 열심히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려

2015년 11월 21일

며칠 전 과외짤림트라우마 덕택에 오늘 과외는 지각을 거의 안 했다. 지각을 거의 안 하니까 그날따라 집에는 과외학생밖에 없었고. 그리고 이 애가 숙제를 안 해오면 엄청나게 진중한으른처럼 타일러야지 라고 마음 먹었는데 과외학생은 숙제를 다 해왔다. 과외 집을 오가는 버스를 타면서 생각한건데 내가 내 인생을 졸라 망한 것으로 여기는 이유는 내가 굳이 남들한테 나 졸라 못 사는 것 같다며 징징거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 인생 살기 바쁘기 때문에 딱히 불우한 소식을 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잘 살고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다 못마땅하고 성에 안 차기 때문에 내 친구한테나, 아니면 트위터나 텀블러 같은 데에 내 인생의 좆같음을 투덜거리기 때문에 나는 영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내가 생각하는, 내 주변에 있는 ‘으른들’은 다들 조용하다. 그네들이 입을 여는 경우는 대체로 1000000000000년만에 자기의 소식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경우이고, 대체로 그런 소식들은 자기가 이런 일을 했고 이런 것들을 경험했고 등등에 대한 것들이고, 나 같은 삐뚤어진 인간이 보기에 그것들은 다 자기자랑이다. 물론 그들이 살기 힘듦을 토로할 때가 있지만 역시 내가 보기에 그런 하소연은 하소연을 빙자한 자기 노력의 과시 같다. 어찌되었든 ‘으른들’은 내가 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하는 것처럼 일기를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으른이 되고 싶지도 않고 으른이 될 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기도 하다. 다행히도 내 친구들도 적어도 당분간은 으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으른 되지 못할 자들과 계속 으른답지 못하게 놀고 싶다.

2015년 11월 18일

저번 주 월요일부터 운전면허 학원을 다녔고,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총 120만원을 들여서 산 컴퓨터 부품들을 조립했다. 주말 내내 게임을 했고, 요새의 평일 일정은 낮에 운전학원 저녁에 과외이다. 어제는 운전학원 아저씨 강사한테 호통을 1000000000번 들었다. 그 때문에 운전배우는 게 스트레스였다. 오늘 만난 강사는 기초를 중시하며 아주 차근차근 가르치고 화를 내지 않았다. 수업 받는 게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오늘 과외를 갔고, 대충 10분 정도 늦었고 10분 정도 일찍 갔다. 가는 길에 과외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과외 어머니는 애 기말고사가 1주도 안 남았는데 늦게 오고 일찍 가고 이래서 졸라 속상하다고 했다. 나는 어버버 하면서 곧바로 영업용 목소리로 죄송하다 했다. 그리고 찝찝해서 집에 와서 카톡으로 장문의 사과문자를 보냈다. 게임을 하다가 답장이 왔는데 그냥 쭉 게임을 하다가, 문득 게임이 질려서 게임을 끄고 핸드폰을 열어 봤더니 자기 애가 공부를 안하는 애라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애를 잡는 선생님을 바랐는데 선생님은 어쩌구저쩌구 그리고 수업에 열의가 없어 보여서 어쩌구저쩌구 그래서 미안하지만 수업료를 환불해주었으면 한다고 어쩌구저쩌구 해서 나는 알겠습니다 내일 입금시켜드리겠습니다 좋은 선생님 찾길 바랍니다 어쩌구저쩌구 답장하고 인생에 현타가 와서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너무너무 피곤하다… 일을 벌리니까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데 나는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게 너무너무 싫어서 그냥 아무 것도 안하고 싶다. 아무 것도 안 하면 성공도 안하겠지만 실패도 안 할 것이니까… 어쨌든 과외를 하는 데에 엄청나게 진득한 현타를 느끼고 있다. 아니 공부할 의지가 없는 애새끼를 내가 구워서 삶아서 어떻게든 연필을 쥐게 만드는 것이 너무너무 피곤하고 내 적성이 아닌 것 같은데 과외만큼 돈을 잘 벌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래서 한국이 너무 싫다… 과외 아니어도 돈 벌 수 있는 일을 좀 많이 달라고.. 개짜증난다… 울적한 와중에 엄마 친구한테서 과외

2015년 11월 4일

1. “네가 어떻든 난 너를 이해할 수 있어. 왜냐하면 난 너를 이해할 자신이 있으니까.” 하양지 작가의 <우리는 시간문제>에서 나왔던 대사였고, 내 기억에서 끄집어내 쓴 문구이기 때문에 정확한 문구는 저게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지는 비슷하니까 상관 없겠지. 옛날의 나라면 저 말을 하는 사람을 굉장히 오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어쩌면 경멸을 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를 전혀 이해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또는 나를 이해할 가능성 자체가 없어 보였고, 그런 주제에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기에. 그런데 1주일 전부터 누군가한테 저 말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어떻게 해서든 나라는 사람을 포착하려는 욕망을 위해 자신의 가치관도 꺾어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선언’ 그 자체가 중요할 거 같았고. 그 선언을 위해 오만함을 감수하며 저질러 버리는 것. 그러니까 상처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그 마음에 감동을 받을 거 같아서. 그 사람이 이렇게 깊은 고찰 끝에 그런 말을 하든, 아니면 내가 너무너무 좋고 나와 어떻게 해서든 가까워지고 싶어서 그냥 생각 없이 저질러버린 것이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상상인 것 뿐이고. 실제로 나한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고, 또는 나한테 저런 말을 하고 싶은 살마이 있어도 내가 그 사람의 입을 막아 버리는 태도를 은연 중에 취할 것이다. 이제껏 나는 트위터에서나 아니면 친구들에게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1000000명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왔으나 실제로 나한테 관심을 갖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나는 매우 뻣뻣해지고 그 사람을 엄청나게 경계한다. 그러니까 건전한 상식인은 나한테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2. 왜 나는 여자인간즈를 불편해할까? 이것 때문에 동아리 갓 들어온 신입 시절에 많이 고민했었다. 레즈비언인간즈와

2015년 10월 25일

오늘 수학 과외를 끝내고 침대에 눕는데 갑작스레 외로움이 닥쳐왔다. 그 외로움은 마치 내가 과외 학생을 떠나 보내서 공허함을 느낀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아. 이 학생을 이제 2달 정도 가르쳤는데 어제오늘 이 애가 아주 예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실제로 내가 가르친 수많은 학생들 중에서 외모가 제일 훌륭하고 수업도 가장 열심히 듣는다. 안 예뻐할 구석은 1도 없는 것이다… 굳이 안 예뻐할 구석을 따지자면 이 학생이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 시급이 가장 적은데 그것은 얘에게 달린 문제라기보다는 얘의 어머니한테 달린 문제니까… 어쨌든 이 애같은 학생만 백만명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빨리 다음주 일요일에 얘를 가르쳐서 수학을 잘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나를 외롭게 만든 것은 그 학생 뿐만 아니라 다른 요소들도 있는데 그것은 여기서 말할 수는 없고… 그래도 그 애가 나를 외롭게 만든 것은 최소 1g 정도 있기 때문에 왜 그 애가 나를 외롭게 만들었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 애가 나를 외롭게 만든 이유는 내가 그 애를 훅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왜 그 애를 훅 좋아하게 되었나? 그것은 그 애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필요라는 게 수학을 배우기 위한 것이라 해도… 나는 늘 누군가가 나를 지독히 필요로 해줬으면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열심히 무언가를 가르치고 그 애가 아~ 하고 이해가 잘 되었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누군가가 나의 말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나를 대단하게 여기는 이 감각이 너무 좋다.. 그래서 과외는 양가적인 감정을 준다. 졸라 피곤하다는 것과 졸라 자존감을 채워준다는 것… 누군가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감각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너무 좋고 너무 좋을 정도로 부담스럽다… 그 누군가에게 엄청나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엄청나게 조심하게 되면서 한편으로 이 사람

2015년 10월 19일

놀랍도록 쓸 말이 없다. 아니 어떻게? 곧 있으면 과외 학생은 5명이 될 것이고 덕분에 돈이 풍족해져서 이것저것 사고 먹고 놀러다니고 집 안에서 놀기도 많이 놀았는데, 그냥 귀찮아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일기를 쓴다. 뭐라도 기록해두지 않으면 이제까지의 시간이 졸라 의미없어보이고… 그리고 일기를 쓰면 멋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핸드드립 세트를 마련해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목요일 금요일을 빼면 매일매일 과외가 최소한 하나씩 있고.. 잠은 엄청 늦게 자서 점심 먹을 즈음에 일어나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뭔가 가끔씩 너무 너무 심심해서 미쳐 돌아가버릴 것 같은 때가 있다. 무언가 시간을 때울 일이 필요한데 책도 안 읽히고 핸드폰도 하기 싫고 기타 등등 심지어 숨 쉬기도 싫을 때. 삶이 안정되어도 가끔씩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니 죽을 맛이다. 그럴 때면 너무너무 살기 싫어지는데 살기 싫어지는 이유가 엄청난 심심함 때문이라니 가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보인다. 그런 순간에 심심함을 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친구를 만나는 것… 하지만 나는 섭얼번에 거주하고 있고, 사실 서울에 있었어도 그런 순간에 친구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 때문에 더 안타까워지는 게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지. 저번 주 금요일에 상담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었다. 정말정말 일반적인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사는지. 그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 그리고 그들을 곤경에 빠뜨려서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도… 나는 나 자신을 엄청나게 사회 부적응자, 삐뚤어진 자로 보고 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읽을 수 있다. 그렇게 나 자신을 여기면서 나 자신을 졸라 특별한 사람으로 보고 싶어한다는 것, 한편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한테서도 이해 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을 함축한다는 것…. 나는 도저히 나를 이해해줄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배척하고

2015년 9월 14일

1. 지금의 생활이 나한테 안정을 준다. 돈도 적당히 벌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로운 한량의 시간. 잠을 맘대로 늦게 잘 수 있기 때문에 밤의 시간이 온전히 내 것이다. 엄마와 아빠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인간들은 새벽 1시를 넘기면 잠이 들기 때문에 내가 있는 곳은 아주 조용하다. 그 시간에 나는 책을 읽거나 웹서핑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자위를 하거나(기숙사에서는 할 수 없는 짓이다) 어쨌든 어떤 것을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을 할 수 있다. 2. 오늘은 낮에 자전거를 타고 섭얼번 등지를 돌아다녔다. 이 곳은 언덕이 많아서 자전거를 타는 게 엄청나게 운동이 된다.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나서 내리막에서 겨우 쉴 수 있다. 어쨌든 두어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중간에는 이마트에 들러서 진기한 것들을 구경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과외를 하러 갔다. 열심히 돈을 벌고 엄마랑 같이 집에 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러서 장을 봤다. 엄마는 남이 해준 요리를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낮에 내가 집에 있으면 엄마는 파스타를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이마트에서 파스타 소스를 샀다. 바나나도 샀다. 집에 도착하니 아빠가 닭죽을 해 놓아서 그것을 먹었다. 양파를 넣어서 달고 맛있었다. 그리고 밀크티를 끓여서 방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다가 핸드폰 게임을 했다가 쉬다가 등등을 했다. 3. 이틀 전에 허이모네 집들이를 갔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서 불안했다. 불안해서 불안했다. 막 얹히는 느낌도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거기서 거의 먹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나서야 라면을 끓여 먹었다. 환경의 변화를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추구할 삶은 안정감이라고는 1도 없는 삶이다. 4. 지금까지 쓴 일기를 보니 행복한 중산층 지식인의 삶 같다. 그럼 나는 행복한가? 행복? 잘 모르겠다. 한달 전보다 꿈은 덜 꾸긴 해도 여전히 꿈에는 부모와의 불화라든지 폭력과 불안이 점철된 것들이 나온다. 일단 적어도 노트북이 병신같아서 일

2015년 9월 3일

생각보다, 놀랍게도, 잘 살아가고 있는 편이다. 얼마 전에 갔던 지역도서관은 작지만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했고 쾌적했다. 그곳에서 내가 가져온 책을 읽었는데, 몇 년 만에 느껴본 생경한 감각을 경험했다. 책의 문장이 나에게 촉촉히 스며드는, 그러면서 지적인 쾌감을 주는, 즉 간단히 말해서 전에는 더럽게 안 읽히고 이해가 안 되었던 문장들이 이제서야 잘 이해된다는 감각. 그래서 오랜만에 즐겁게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 길도 좋았다.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한산함과 깨끗함. 이곳은 졸라 섭얼번이지만 어째선지 유럽의 어느 깨끗한 소도시의 길을 걷는 듯한… 선진국의 감각… 밥도 잘 먹고 있다. 엄마는 내가 와서 식비가 엄청 늘었다고 불평하지만 (왜냐하면 내 입맛이 쓸데없이 까다롭고 고-급이기 때문이다), 그네들은 내가 이 집에 온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 사람이 한 명 느니까 집이 그전만큼 적막하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내가 그네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말하자면 효녀가 된 것이다. 알바가 도통 구해지지 않아 며칠 전에 화상과외 업체를 찾아가기도 했는데, 그 후에 어리둥절하게도 과외 일이 두 개나 들어왔다. 물론 확정은 아니다. 미팅이 두 개 잡혔는데, 설마 하나도 못 건지랴 싶다. 어쨌든 일이 확정된다면 나는 이것저것 살 수 있다. 친구들과 맛있는 커어-피도 마실 수 있고, 패-숀 에도 신경을 쓸 수 있다. 즉 잘 살 수 있다… 매우 말이다. 일단 커어피를 마시고 옷을 사고 기타 등등을 할 것이지만… 무엇보다 돈을 모으게 되면 할아범이 된 노트북을 편히 보내드리고 어린-이 노트북을 새로 들일 것이며… 할멈이 된 핸드폰도 바꿀 것이다. 이 일기를 쓰고 있는데 아주 병신같게도 자꾸 타자가 끊겨서, 커서가 자꾸 이상한 곳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문장을 두다다 쓰려고 하면 내가 쓴 글자가 영 이상한 곳에 있어서 아주 아-주 불편하다. 어제 마비노기를 깔아서 그런가… 어제까지는 이러지 않았다. 이 문장을 치는 순간 커서가 맨 처음으로 돌아갔다

2015년 8월 31일

1. 생리 이틀째, 무더운 한낮에 빨빨 돌아다닌 탓인지 엉덩이가 접히는 부위가 짓물렀다. 어제는 걷기 힘들 정도로 쓰라렸고, 지금은 긁고 싶다는 마음을 참느라 다리를 떨 정도로 가렵다. 몇 년 만에 면 생리대를 꺼내 쓰고 있다. 2. 내일부터 내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계속 집에 있는다. 기숙사 침대보다 훨씬 푹신하고 좋은 침대에 누워 있으면, 이렇게 핸드폰을 볼 게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하는데, 글을 써야 하는데, 아니면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데, 따위의 생각이 든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통해서 우울과 불안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발적으로 책이 잡히진 않는다. 읽을 순 있다. 퀴어이론 세미나 때문에 젠더 트러블 1장을 읽는데, 옛날에 읽었던 것보다 훨씬 이해가 잘 되고 집중도 잘 되었다. 그저 책을 읽겠다는 마음이 안 든다. 아마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실패할까봐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일수도 있다. 억지로 어디에 나가 있어야지. 돈이 있었으면 독서실 가듯 카페에 갔을 것이다. 돈이 없으므로, 카페 대신 도서관에 가는 게 좋을 듯 하다. 3. 과외는 번번이 짧게 끝난다. 저번 주에 맡았던 일은 딱 한번 수업하고 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과외 학생 어머니에게 입금 독촉 문자를 보냈다. 하루 수업 나가서 62500원을 벌었다. 수수료를 떼이지 않았으므로, 나쁘지 않은 벌이다. 이걸로 현재 내 잔고는 10만원 남짓이다. 내일은 용돈 30만원이 들어오고, 9월달은 약 40만원의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이 중 15만원은 데이트 통장에 넣는다. 그리고 8월달 교통비는 11만원이 나왔고, 월초에 빠질 것이다. 핸드폰비는 대략 3~4만원이다. 이렇게 되면 용돈은 똑 떨어진다. 십만원 남짓으로 기타 등등의 유흥비와 필요한 것들을 사야 할 것이다. 집에서 살게 되니까 밥 굶을 걱정은 없다. 하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집에만 있게 되는 게 싫다. 다행히 모종의 사은품으로 자전거를 얻게 되어서 이 동네 돌아다닐 때 드는

2015년 8월 9일

1. 유독 요 며칠간은 누워서 핸드폰게임만 한 것 같다. 그렇다고 몸을 안 움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헬스장을 꾸준히 다니고 있으며 케틀벨 스윙을 지나치게 한 탓에 온 몸이 욱신거렸다. 친구들도 가끔씩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었는데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런 감흥이 없어서 시간이 남으면 낮잠으로 떼운다. 책도 읽기 싫어서 빌러비드는 연체된 상태이다. 오늘은 운동 갔다온 후에 계속 누워 있다가 잠이 오면 잠도 자고 그래서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억지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노트북은 느려 터져서 왠만하면 이것을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책상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라. 일기를 쓴다. 2. 사람들에게 쉽게 짜증을 느낀다. 이러다가 친구 및 가족들에게 확 화를 낼까봐 두렵다. 조금이라도 날 답답하게 하면 말에 가시가 돋고 얼굴이 구겨진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우울증 탓으로 돌리고 있다. 병에 걸렸으니까, 내 마음이 약해진 상태이니까 금방 짜증을 내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안 그래도삶이 재미 없는데 타인이 나한테 재미 없게 굴면 도저히 참기가 어려우니까. 그냥 이걸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3. 만사가 너무 귀찮아진 탓에 옷을 계속 안 산다. 안 친한 사람한테 밥 한 번 먹자고 연락해야 하는데 그것도 자꾸만 미룬다.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 놓은 기숙사에서 그냥 있는다. 계속 이렇게 냉장고에 묵혀진 햄처럼 되어 버릴까봐 걱정된다. 걱정을 해도 냉장고에 있는 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2015년 8월 2일

1. 섭얼번 집에서 허이모와 댜른이랑 함께 음식을 해먹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즐거운 홈컴파아티클럽 이었다. 리타 언니한테 추천 받은 영화였던 택시드라이버도 같이 봤다. 2. 허이모와 댜른이를 버스정류장으로 배웅하고 이마트에 들러 버블티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엄청난 급똥신호가 찾아왔다. 딱 이마트와 섭얼번 집 중간지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엄청나게 빨리 집으로 걸어갔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괄약근의 힘이 풀리는 게 느껴지더란다.. 바지에 똥을 쌌음에도 나는 침착하게 집으로 가려고 애를 썼다.. 왜냐하면 더 나올 것 같았기에… 섭얼번 집으로 향하는 길은 인적이 드물고 길 옆에는 사람들이 불법경작을 해 놓은 빈땅이어서 그 빈땅의 수풀로 기어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똥을 쌀까 싶었는데 그렇게 하면 사람이 지나갈 것 같아서 열심히 집으로 가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집에 다다르기 1분 전 또 똥을 싸버렸고…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없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이 소박한 바람은 이루어졌고 나는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가서 당장 바지를 벗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뒷처리를 했다. 나는 생리 중이었기 때문에 생리대도 찼고 생리팬티도 입었기 때문에 말하자면 나의 팬티는 기저귀 같았다. 그래서 바지에 묻지도 않았다.. 나는 처량하게 일회용 생리대를 떼고 물로 행궈서 휴지통에 버렸고 팬티도 빨았다… 생각보다 인간의 괄약근이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기 시절 이후로 처음 내가 내 의지로 괄약근을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겪어서 웃기기도 하였다. 3. 할 게 없으니까 시간을 떼우는 방법으로 낮잠을 택한다. 방금도 에어컨 틀고 자다가 일어났다. 내일부터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장르소설이나 읽을까 싶다.

2015년 7월 29일

1. 저번 일요일부터 밤마다 인간을 미워하고 있다. 나의 불우했던 초등학생 시절이 나를 또다시 괴롭힌다. 그때 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애들을 다 죽이고 싶고, 전국의 초등학생을 몰살하고 싶고, 내 또래 인간들을 싸그리 없애고 싶고, 그냥 인간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 나는 인간을 미워하느라 웃는 법을 몰랐고, 그래서 더더욱 내 또래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샀을 것이다. 애들 앞에서 자해한 것을 보여줄 정도로 반사회적 행동을 해도 어린 나는 그런 짓이 이상한 줄도 몰랐다. 지금도 이유가 궁금하다. 왜 그들은 나를 그토록 불편해했을까? 왜 나에게 적대적으로 굴었을까? 이유는 안다. 그냥 자기와 다른 인간이고 그래서 불편하니까, 사회화가 아직 덜 되었지만 유치원생보다는 영악해진 애들이 그렇게 나를 학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이유가 내 억울함을 납득해주지 못하니까, 나는 자꾸만 이유를 알아도 이유를 찾는 것이다. 나랑 같은 반이었던 애들한테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물어봐도 그들은 까먹었을 것이다. 대학생이 되니까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호감있는 사람이 되는 법도 익혔다. 하지만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다시 상기되자 왜 내가 인간들에게 호의적으로 굴어야 하는지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원래 인간을 싫어했었는데 왜 내가 이렇게 호의적으로 구는 거지? 호구가 되는 건지? 비굴해지는 건지? 그런 생각이 드니까 무고한 인간 100명을 살해하고 싶어졌다. 이런 꼬락서니가 되어버려서 나는 나를 돌보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때의 트라우마는 내가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을 호구같은 일로 만들어 버린다. 그냥 나 자신을 돌보기보다 나를 이렇게 만든 그들을 좆되게 하고 싶다. 죽이고 싶다. 신세를 망치게 하고 싶다. 매우 부질없는, 파괴적인 욕망이어서 매력적이었다. 과거에 그들이 나한테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나의 일부는 그들이 내게 했던 짓들이다. 그때의 적대적인 말, 행동, 시선, 공기가 나를 이루고 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

2015년 7월 21일

1. 오늘은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이야, 라고 자학하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지만 그런 생각은 장기적으로 나한테 도움이 안 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내 방식을 관철하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막막했다. 2.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자초한 것도 있고 불행히도 조우하게 된 것도 있다. 3. 룸메이트는 굉장히 일찍 자서 밤에 뭘 하기가 눈치 보인다. 지금 이 일기를 쓰는 것도 룸메이트가 자려고 하는데 쓰는 거라서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래서 이만 줄인다… 일기 왜 썼지

2015년 7월 13일

1. 책읽기모임 끝나고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기숙사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왜 이상하다고 느꼈냐면 방금 전까지 재미잇는 사람들과 아주 재미있고 충만한 시간을 보냈는데 행복하고 뿌듯하기는커녕 내 기분은 울적하려고 들어서 그렇다. 물론 재미있는 시간과 단절되어서 또는 뭐 기타 등등의 이유로 아니면 이유없이 울적해질 수 있지만, 항우울제를 먹고 나서는 울적할 일이 그리 없어서 말이지. 정말 최근은 스트레스 받을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나의 울적함이 이상했다. 지금도 조금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제 노는 게 권태로워서 그런 걸까? 뭐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되도록이면 울적해지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불가능한 바람이지만. 2. 저번 주말에는 이틀이나 본가에 있었고 이곳 섭얼번이 정말로 아무 것도 없이 한적한 섭얼번이어서 휴학하고 나서 어찌 지낼지가 걱정스러웠다. 금요일에 집에 갔었는데 엄마 아빠가 계속 집에 있고 엄마 아빠랑 이마트에 같이 갔기도 했기 때문에 도저히 몰래 담배를 피울 수가 없었다. 내 방 창문에서 마치 좀도둑처럼 몰래 헐레벌떡 피웠는데 그 꼴이 우스웠다. 어떻게든 담배 연기가 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신경쓰는 모습이… 본가에 돌아오면 담배를 어떻게 피울지를 고민해야겠지. 답은 집 밖에 하루 종일 나가있고 밤에는 내 방 창문으로 몰래 피우고 공기탈취제나 향초 등으로 냄새를 지우는 거겠지만… 그것도 그렇고 휴학하고 나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가 고민이다. 책 읽고 놀고 친구 만나고 돈 벌고 그러면서 살 텐데 그런 것을 하면서 무기력할까봐. 사실 아직도 그런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나 빼고 다른 사람 모두가 대단해보이는 마음.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 의미 있게 산다는 마음. 나는 심성이 꽤 좋은 사람이지만<-ㅋㅋㅋㅋㅋㅋㅋ 단지 그것 뿐, 심성이 거지같은데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더 나아 보이는 마음… 그냥 그렇다… 3. 옛 친구들에게 도저히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