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일
6월의 첫 아침을 상쾌하게 과외 짤림으로 시작했다. 오늘은 애인과의 정기적인 데이트날인데 애인은 2명의 교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이번주에도 앓아 누웠고, 잔뜩 쉬어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오늘 말고 내일 만나자고 전화했다. 그때가 한 10시 쯤이었고, 나는 애인을 다독이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과외 학생 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온 것이다.
나는 그 문자를 받고 기분이 나빴는데, 그것은 물론 과외가 짤려서 그런 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과외 어머니가 굳이 문자로 내 과외가 짤린 이유를 명시했기 때문이다. "아이의 중간고사 성적이 좋지 않은 까닭입니다" 라는...
이런 말을 할 거면 대체 왜 '아이가 선생님의 열정을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언급했는가? 어쨌든 나는 과외 학생의 중간 고사 성적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학생의 말로는 전체에서 두 개 틀렸다고 했는데, 어머니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원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뒤따라 들었다. 만점을 받기를 원한 것일까? 이래저래 나는 가성비가 좋지 않은 서울대 재학생 과외 선생이었고, 슬프게도 불경기인 한국에서는 가성비가 나쁜 나는 짤리기가 너무나도 쉬웠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대체로 어머니들이 과외를 짜를 때에는 문자로 통보한다. 나는 그래도 비즈니스 관계일지라도 몇 달 정도의 '계약'을 맺었다면 문자로 해고를 통보하는 게 그리 썩 좋은 해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좋은 해고란 무엇인가.... '좋은 이별'이 무엇인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썩 좋지 않은 해고를 당하면 나도 답 문자를 보낼 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말투를 사용하고 만다. 나는 남은 과외비를 환불하고 (정말 과외비를 환불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불쾌한 하루의 시작에 일조했다) 어머니께 '더 좋은 수학 선생님을 찾아 원하는 꿈 이루기를 바랄게요'라고 답문자를 보냈고, 어머니가 그에 이제까지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나는 거기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힘내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엄마한테 전화해서 과외 짤렸다고 통보했다. 엄마는 열심히 다음 일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여럿 겪었는데 어쨌든 겪을 때마다 삶의 지리멸렬함에 기운이 없어지곤 한다.
이렇게 내 수입은 다시 불안정해졌다. 돈을 아끼는 게 좋을 터이지만 나는 오늘도 외식을 했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으며 저녁에는 나가기 귀찮아서 피자를 시켰다. 기숙사 오는 길에 올리브영에 들러서 돈을 쓰기도 했다(할인이라는 것에 낚여서 말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레포트 제출 및 시험이 예정되어 있는데 오늘도 역시 썩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레포트는 늘 그랬듯 막막하다. 그래서 미학원론 서평으로 쓸 독일 미학 전통을 읽었는데 이 책은 표지가 예쁘긴 하지만 재미가 없다. (미학 책이니까 재미가 있을리가 없지만)
오늘 하루는 막막한 미래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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