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9일
이 개같고 좆같고 진짜 이 너무할 정도로 가혹한 시기가 지나면 꼭 일기를 써야지, 이 좆같은 시기에 강제적으로 '사유'하고 강제적으로 느낀 감정들을 까먹기 전에 꼭 써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자고 일어나서, 푹 쉬고 나서 쓰려고 했지만 이번 달 내내 밤을 샌 빈도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았고 조금씩 끊어 자면서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부려먹은 탓에 푹 잘 수 있는 피로와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도 몇 시간 안 되어서 잠에서 깨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블로그를 켰는데... 진짜로 "졸업논문을 다 썼고 대학원 입시가 끝났다..." 라는 문장보다 이 두달간의 경험을 더 잘 압축적으로 요약할 말이 있을까?
헤겔 법철학을 읽고 잠을 충분히 자고 게임도 충분히 했던 여름방학 시기,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한 요 두 달까지 포함해서, 나는 정말로 내 멋대로 했다. 여름방학 때를 말하자면, 당장 급한 마감이 없었고 그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 게임하고 싶을 때 게임을 했기 때문에 완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 게 맞다. 엄마가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나는 자대 자과생이기 때문에 전공시험을 안 봐도 되고 진짜로 졸업논문만 잘 쓰면 대학원은 붙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내내 읽었던 헤겔 법철학은 내 졸업논문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8월 말, 양효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내가 버틀러의 <윤리적 폭력 비판>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졸업논문 신청서를 내기 위해 지도교수님을 만날 때까지, 나는 그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든 헤겔 법철학을 살리는 주제를 택하고자 했으나 나는 결국 버틀러를 주제로 한 졸업논문 개요를 작성하고 그것을 지도교수님께 보였다. 내가 은연 중에 우리 학교 철학과는 버틀러를 알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 알게 모르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지도교수님 또한 버틀러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아니었고, 왜 첫 면담 때 버틀러를 하겠다고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속으로 여름방학 때 읽은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자 했으나 실패했다는 식의 답을 생각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계속 우리 학교 철학과의 주류에 편승하고 싶었고, 진짜로 나밖에 하지 않는 이야기를 나 혼자서 하면서 외롭고 인정도 별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외면하지 못했기에 버틀러로 졸업 논문을 썼고, 그러니까 졸업논문 작성도 내 멋대로 한 게 맞다.
그리고 대학원 입시 준비... 나는 자기소개서를 전날에 급히 썼다. 왜냐하면 졸업논문 말고도 나는 대학원 수업 같은 로드를 자랑하는 수업 하나를 듣기 때문에, 그 수업이 매주 요구하는 리딩을 소화하고 그것에 대한 요약문을 작성하는 것도 참 고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그리고 내가 졸업논문 초안도 늦게 제출한 터라, 자기소개서를 쓸 시간이 딱 하루밖에 없었다. 그 전날에 리딩 요약과제를 하느라 밤을 샜고, 자기소개서를 써야 해서 또 밤을 새야 하는 그때, 나는 진짜로 자백제를 먹은 사람이 줄줄 말을 토해내는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써야했다. 그러니까, 보통 때는 '검열'을 작동하느라 글을 천천히 썼을 터인데, 그때는 정말 그렇게 할 시 마감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제출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른 대로 바로바로 내뱉어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내 자기소개서는 "실존적 글쓰기"의 결과물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자기소개서(나는 장점이 넘치는 사람이고 내가 가진 단점은 관점을 달리 해보았을 때 장점이 되며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근면성실한 사람이다)와 달리 내 자기소개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진짜 자기소개서를 '솔직하게' 썼다. 보통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자기소개서의 전략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포장하지 않고 내가 보통 친구들에게 나 자신의 역사를 구성해서 설명하듯이 자기소개서에 그렇게 썼다. 심지어 면접도 그렇게 봤다. 이게 옳은 건가? 말하자면 장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단점이 부각되는 것을 말리지 않았는데,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가 맞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그렇게 숙고할 시간이 없었고, 당연히 나의 지인들이랑 머리를 맞대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기소개서에다 죄다 써버렸다.
그렇게 한 14시간을 앉아서 후다닥 쓴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그후에 졸업논문 발표를 해야 했고 바로 그 발표 다음날에 면접을 봐야 했다. 졸업논문 발표랑 면접은, 처음으로 내가, 나의 역사와 환경을 알고 있고 나에게 호의를 가진 내 친구들이 아닌, 나를 잘 모르고 나를 판단할 '권위'를 가진 교수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쓴 글을 설명하고 나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완전히 강제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강제적으로 판단 당하는 위치로 내몰려지고 그들의 시선 아래에서 어떻게든 말을 하고 나 자신을 변호하는 그 이틀 간의 경험은...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데 그 경험은 나를 무언가 혼백이 나간 이로 만들게 했다. 약간 대수술을 겪은 듯한 느낌, 옷을 벗고 볼품 없는 나신을 드러낸 느낌, 이런 식의 표현만 지금 머리 속에 떠오른다. 특히 면접 때에 내가 생각해도 너무한 나의 성적을 설명해야 했을 때, "철학과에 갓 전과했을 당시에는 철학적 글쓰기에 익숙치 않고 철학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부족했고 나중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져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라는 '변명'을 했을 때, 그때만 생각하면 대학원 입시가 끝난 지금도 아득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성적표와, 나의 자기소개서와, 면접 대상자인 나의 말들은 나의 학업 및 연구 역량을 의심하게끔 만들 수밖에 없게 했다. 나는 내 멋대로 군 결과 나를 의심의 대상으로 몰아갔다. 이것을 인정해야겠다.
바로 이번 주 수요일에 대학원 1차 결과 발표를 보았을 때, 내가 우리 학교 철학과 학부생 중에서 유일하게 조건부 합격이 아닌 사람이었을 때, 나는 정말 그때부터 너무너무 우울하고 내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어쨌든 자대 자과생이 암묵적으로 전공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은 특권이긴 한데, 나에게도 그 특권이 주어질 줄 알았다. 왜냐하면 1학기 때 멘토 선생님이 전공시험 안 본다고 말했고, 심지어 과 사무실 조교님도 우리 학과 학부생은 대학원에 지원하면 100% 붙는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에, 나는 그걸 믿고 안일할 정도로 대학원 입시 준비를 대충했다. 그런데 전공시험을 봐야 해서, 나는 내가 그렇게 공부를 못 했나? 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했고, 현실을 받아들이더라도 당장 사흘 만에 전공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사실이 나를 너무 짓눌렀다. 다행히도 2학기 멘토 선생님이 자기가 전공 시험을 준비할 때 정리한 자료들을 보내주셨고, 그 잘 정리된 자료가 그나마 나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전공 시험과 별개로 보는 독일어 시험도, 정말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여름방학 때 공부를 하나도 안 해놨기 때문에, 그것에 통과하리라는 확실한 보장도 할 수 없었다. 종이사전으로 단어를 찾으며 예전 독일어 기출문제를 푸는데, 지문을 이루는 단어의 99%를 사전으로 일일이 찾아야 할 정도로 내가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 정말 울고 싶었다. 이 사흘 간의 급박한 벼락치기 공부는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여름방학을 보냈고 내가 아무리 정신적으로 취약하더라도 너무너무 공부를 안 한 게으름뱅이라는 사실을 나로 하여금 뼈저리게 깨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꼭 대학원 입시가 끝나고 한달 뒤에 자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지금은 아니다)
금요일에 공부를 하면서는 완전히 스트레스로 미쳐 버려서 공부를 하는 내내 내가 이 고통스러운 생을 지속하지 않고 자살을 하는 게 합리적인 일이라는 것에 대한 논증을 1억개 정도 구성했다. 그래서 그 논증을 추려 내서 합당해 보이는 것들을 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서 이 타당성을 검증받으려고 마음 먹었는데, 내가 너무 단순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나자 그 논증들을 싹 다 까먹어 버렸다. 정말 시험이 끝나니까 죽을 생각이 사라지는 게 너무 어이 없을 정도였다.
어쨌든 전공시험과 독일어 시험을 봤고, 생각보다 너무 나쁘게 보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다 한 시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 입시의 결과가 거대한 물음표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정말 내가 떨어지려면 충분히 떨어질 수 있었고 내가 붙는다면 붙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로 내가 '어중간하게' 해 냈기 때문이다. 전공시험은 흡사 바깔로레아같은 문제가 나왔고, 독일어 시험은 그냥 저냥 나왔는데 내가 단어를 하나도 안 외워둔 바보였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마지막 문제의 마지막 문장을 해석하지 못하고 시험이 끝나버렸다. 만약 제 2외국어 시험이 어느 정도 선만 넘기면 합격이 되는 절대평가라면, 턱걸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답안을 써 낸 것 같긴 하다.
시험이 끝나고 나의 정신 상태를 걱정한 연숙이가 학교에 찾아 와서 담배를 피우고 무언가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졸업 논문과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경험한 고난들과 거기서 내가 느낀 것들 생각한 것들을 연숙이에게 이야기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서 여기에다가 조리 있게 설명하긴 힘들어서 (왜냐하면 지금 내 상태가 많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기억나는 것들만 핵심적으로 쓰도록 하겠다. (내가 안 까먹으려고)
"네가 이제까지 아도르노를 읽지 않은 게 이상하다. 솔직히 너 버틀러가 말하는 윤리보다 아도르노가 하는 비판 같은 것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너 아도르노 읽으면 질질 쌀거다(ㅋㅋ) 너 솔직히 버틀러적으로다가 모든 인간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 안 하잖아. 어떤 인간은 욕 좀 먹고 어떤 인간들은 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잖아 솔직히. 그러면 윤리보단 비판이지. 너 프랑크푸르트학파 해야겠는데. 비판이론 해야겠는데. 미니마 모랄리아 읽어라. 부정변증법도 읽어라. 너가 하는 게 다 부정변증법 같은 거다."
"(나의 자기소개서와 내가 했던 면접에 대해서) 어떤 연구를 위한 펀딩을 따 오는 등의 일에서 자기 자신과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설명해야 할 때, 말하자면 연구자인 자기 자신을 '팔 때', 잘 팔리도록 이야기를 잘 꾸며내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일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데 너 그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자기소개서랑 면접 때 그렇게 한 거고. (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머리로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결국은 내가 그걸 거짓말이라고 느끼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거짓말'을 잘 하는 인간들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내 멋대로 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과 자신을 잘 파는 법을 동시에 잘 하는 사람이 드물게 존재하고 그들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 눈에 띄고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 그러나 우리 같은 (ㅋㅋ) 글 쓰는 것을 힘겨워하고 자기를 잘 팔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아서 누군가가 발견해주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 숙명을 인정해야 한다. (이 부분은 기억이 잘 안난다)"
나의 공부할 자격, 내가 하고 싶은 것, 그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할 성실함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한 자책 등등, 이러한 주제들은 사실 평소에 내가 내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한 주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달간 내 멋대로 무언가를 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평가 받고 내가 멋대로 한 결과를 이제 책임져야 하는 이 상황을 겪고 나서 연숙이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전에 이야기한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까 이 경험을 겪고 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는 전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글을 쓰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한 연구들을 평가 받으면서 덜 눈물이 날 것 같다.
강제적으로 어떤 상황에 내몰려질 때 그 경험에서 소위 '교훈'을 얻고 이전과는 다른 나 자신이 된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데, 나는 어떤 강제적이고 힘겨운 상황에서 얻는 교훈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경험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구성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 두 달 간 겪은 일들을 절대 "하나님 나의 딸이 미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감사합니다"라는 식으로 긍정하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연숙이랑 이야기하고 나서는 저녁에 경석이랑 밥을 먹었다. 경석이와도 이야기를 많이 했고 (바로 직전에 연숙이와 말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경석이에게 설명하면서 그에 대해 경석이의 생각을 물었다) 경석이에게 너도 화가 많은 사람이라 너한테도 아도르노가 딱이라는 시덥잖은 말들을 했다. 밥을 먹었던 가게는 (좋은 음악이긴 하지만) 음악 소리가 컸고 주인 아저씨가 자꾸 말을 걸어서 좀 곤혹스러웠다. 그렇지만 엄청 싫지는 않았다. 가게에서 두어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사서 경석이와 같이 기숙사로 올라왔다. 그러면서 경석이가 버틀러가 윤리에 대해 말한 책들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강제적으로 버틀러의 <불확실한 삶>을 빌려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실화'라고 '강요'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전날에 세네시간 밖에 못 잤고 요 두달간 늘 만성피로 상태여서 일찍 잠들었으나 금방 깨 버리고 말았다. 밤을 샌 것 만큼 끊어서 조금씩 잔 적이 많았기에 몸이 건강한 수면을 취하는 법을 까먹은 듯 하다. 그 탓에 이 긴 일기를 쓰고 말았다. 이제 다시 누워야겠다. 나는 너무너무 누워 있는 것을 사랑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는데 이제까지 맘 편히 누워 있지 못했으니까 좀 누워야겠다...
헤겔 법철학을 읽고 잠을 충분히 자고 게임도 충분히 했던 여름방학 시기, 졸업논문을 작성하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한 요 두 달까지 포함해서, 나는 정말로 내 멋대로 했다. 여름방학 때를 말하자면, 당장 급한 마감이 없었고 그때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책을 읽고 싶을 때 책을 읽고 게임하고 싶을 때 게임을 했기 때문에 완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산 게 맞다. 엄마가 걱정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그때 엄마에게 나는 자대 자과생이기 때문에 전공시험을 안 봐도 되고 진짜로 졸업논문만 잘 쓰면 대학원은 붙을 것이라 호언장담했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내내 읽었던 헤겔 법철학은 내 졸업논문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8월 말, 양효실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내가 버틀러의 <윤리적 폭력 비판>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졸업논문 신청서를 내기 위해 지도교수님을 만날 때까지, 나는 그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고 어떻게든 헤겔 법철학을 살리는 주제를 택하고자 했으나 나는 결국 버틀러를 주제로 한 졸업논문 개요를 작성하고 그것을 지도교수님께 보였다. 내가 은연 중에 우리 학교 철학과는 버틀러를 알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 알게 모르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지도교수님 또한 버틀러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연히 아니었고, 왜 첫 면담 때 버틀러를 하겠다고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속으로 여름방학 때 읽은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자 했으나 실패했다는 식의 답을 생각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가 계속 우리 학교 철학과의 주류에 편승하고 싶었고, 진짜로 나밖에 하지 않는 이야기를 나 혼자서 하면서 외롭고 인정도 별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외면하지 못했기에 버틀러로 졸업 논문을 썼고, 그러니까 졸업논문 작성도 내 멋대로 한 게 맞다.
그리고 대학원 입시 준비... 나는 자기소개서를 전날에 급히 썼다. 왜냐하면 졸업논문 말고도 나는 대학원 수업 같은 로드를 자랑하는 수업 하나를 듣기 때문에, 그 수업이 매주 요구하는 리딩을 소화하고 그것에 대한 요약문을 작성하는 것도 참 고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그리고 내가 졸업논문 초안도 늦게 제출한 터라, 자기소개서를 쓸 시간이 딱 하루밖에 없었다. 그 전날에 리딩 요약과제를 하느라 밤을 샜고, 자기소개서를 써야 해서 또 밤을 새야 하는 그때, 나는 진짜로 자백제를 먹은 사람이 줄줄 말을 토해내는 것처럼 자기소개서를 써야했다. 그러니까, 보통 때는 '검열'을 작동하느라 글을 천천히 썼을 터인데, 그때는 정말 그렇게 할 시 마감에 맞춰 자기소개서를 제출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른 대로 바로바로 내뱉어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내 자기소개서는 "실존적 글쓰기"의 결과물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쓰는 자기소개서(나는 장점이 넘치는 사람이고 내가 가진 단점은 관점을 달리 해보았을 때 장점이 되며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노력하는 근면성실한 사람이다)와 달리 내 자기소개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그러니까 진짜 자기소개서를 '솔직하게' 썼다. 보통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자기소개서의 전략들이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포장하지 않고 내가 보통 친구들에게 나 자신의 역사를 구성해서 설명하듯이 자기소개서에 그렇게 썼다. 심지어 면접도 그렇게 봤다. 이게 옳은 건가? 말하자면 장점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단점이 부각되는 것을 말리지 않았는데,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자기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가 맞는데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그렇게 숙고할 시간이 없었고, 당연히 나의 지인들이랑 머리를 맞대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자기소개서에다 죄다 써버렸다.
그렇게 한 14시간을 앉아서 후다닥 쓴 자기소개서를 제출했고, 그후에 졸업논문 발표를 해야 했고 바로 그 발표 다음날에 면접을 봐야 했다. 졸업논문 발표랑 면접은, 처음으로 내가, 나의 역사와 환경을 알고 있고 나에게 호의를 가진 내 친구들이 아닌, 나를 잘 모르고 나를 판단할 '권위'를 가진 교수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쓴 글을 설명하고 나 자신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완전히 강제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강제적으로 판단 당하는 위치로 내몰려지고 그들의 시선 아래에서 어떻게든 말을 하고 나 자신을 변호하는 그 이틀 간의 경험은...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데 그 경험은 나를 무언가 혼백이 나간 이로 만들게 했다. 약간 대수술을 겪은 듯한 느낌, 옷을 벗고 볼품 없는 나신을 드러낸 느낌, 이런 식의 표현만 지금 머리 속에 떠오른다. 특히 면접 때에 내가 생각해도 너무한 나의 성적을 설명해야 했을 때, "철학과에 갓 전과했을 당시에는 철학적 글쓰기에 익숙치 않고 철학 텍스트를 읽는 능력이 부족했고 나중에는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져서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다"라는 '변명'을 했을 때, 그때만 생각하면 대학원 입시가 끝난 지금도 아득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성적표와, 나의 자기소개서와, 면접 대상자인 나의 말들은 나의 학업 및 연구 역량을 의심하게끔 만들 수밖에 없게 했다. 나는 내 멋대로 군 결과 나를 의심의 대상으로 몰아갔다. 이것을 인정해야겠다.
바로 이번 주 수요일에 대학원 1차 결과 발표를 보았을 때, 내가 우리 학교 철학과 학부생 중에서 유일하게 조건부 합격이 아닌 사람이었을 때, 나는 정말 그때부터 너무너무 우울하고 내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어쨌든 자대 자과생이 암묵적으로 전공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은 특권이긴 한데, 나에게도 그 특권이 주어질 줄 알았다. 왜냐하면 1학기 때 멘토 선생님이 전공시험 안 본다고 말했고, 심지어 과 사무실 조교님도 우리 학과 학부생은 대학원에 지원하면 100% 붙는다는 것을 암시했기 때문에, 나는 그걸 믿고 안일할 정도로 대학원 입시 준비를 대충했다. 그런데 전공시험을 봐야 해서, 나는 내가 그렇게 공부를 못 했나? 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했고, 현실을 받아들이더라도 당장 사흘 만에 전공 시험을 준비해야 하는 사실이 나를 너무 짓눌렀다. 다행히도 2학기 멘토 선생님이 자기가 전공 시험을 준비할 때 정리한 자료들을 보내주셨고, 그 잘 정리된 자료가 그나마 나를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전공 시험과 별개로 보는 독일어 시험도, 정말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여름방학 때 공부를 하나도 안 해놨기 때문에, 그것에 통과하리라는 확실한 보장도 할 수 없었다. 종이사전으로 단어를 찾으며 예전 독일어 기출문제를 푸는데, 지문을 이루는 단어의 99%를 사전으로 일일이 찾아야 할 정도로 내가 기본이 안 되어 있어서 정말 울고 싶었다. 이 사흘 간의 급박한 벼락치기 공부는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여름방학을 보냈고 내가 아무리 정신적으로 취약하더라도 너무너무 공부를 안 한 게으름뱅이라는 사실을 나로 하여금 뼈저리게 깨닫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꼭 대학원 입시가 끝나고 한달 뒤에 자살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지금은 아니다)
금요일에 공부를 하면서는 완전히 스트레스로 미쳐 버려서 공부를 하는 내내 내가 이 고통스러운 생을 지속하지 않고 자살을 하는 게 합리적인 일이라는 것에 대한 논증을 1억개 정도 구성했다. 그래서 그 논증을 추려 내서 합당해 보이는 것들을 시험이 끝난 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서 이 타당성을 검증받으려고 마음 먹었는데, 내가 너무 단순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시험이 끝나자 그 논증들을 싹 다 까먹어 버렸다. 정말 시험이 끝나니까 죽을 생각이 사라지는 게 너무 어이 없을 정도였다.
어쨌든 전공시험과 독일어 시험을 봤고, 생각보다 너무 나쁘게 보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다 한 시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 입시의 결과가 거대한 물음표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정말 내가 떨어지려면 충분히 떨어질 수 있었고 내가 붙는다면 붙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정도로 내가 '어중간하게' 해 냈기 때문이다. 전공시험은 흡사 바깔로레아같은 문제가 나왔고, 독일어 시험은 그냥 저냥 나왔는데 내가 단어를 하나도 안 외워둔 바보였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했다. 마지막 문제의 마지막 문장을 해석하지 못하고 시험이 끝나버렸다. 만약 제 2외국어 시험이 어느 정도 선만 넘기면 합격이 되는 절대평가라면, 턱걸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답안을 써 낸 것 같긴 하다.
시험이 끝나고 나의 정신 상태를 걱정한 연숙이가 학교에 찾아 와서 담배를 피우고 무언가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졸업 논문과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경험한 고난들과 거기서 내가 느낀 것들 생각한 것들을 연숙이에게 이야기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서 여기에다가 조리 있게 설명하긴 힘들어서 (왜냐하면 지금 내 상태가 많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기억나는 것들만 핵심적으로 쓰도록 하겠다. (내가 안 까먹으려고)
"네가 이제까지 아도르노를 읽지 않은 게 이상하다. 솔직히 너 버틀러가 말하는 윤리보다 아도르노가 하는 비판 같은 것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너 아도르노 읽으면 질질 쌀거다(ㅋㅋ) 너 솔직히 버틀러적으로다가 모든 인간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 안 하잖아. 어떤 인간은 욕 좀 먹고 어떤 인간들은 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잖아 솔직히. 그러면 윤리보단 비판이지. 너 프랑크푸르트학파 해야겠는데. 비판이론 해야겠는데. 미니마 모랄리아 읽어라. 부정변증법도 읽어라. 너가 하는 게 다 부정변증법 같은 거다."
"(나의 자기소개서와 내가 했던 면접에 대해서) 어떤 연구를 위한 펀딩을 따 오는 등의 일에서 자기 자신과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설명해야 할 때, 말하자면 연구자인 자기 자신을 '팔 때', 잘 팔리도록 이야기를 잘 꾸며내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일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런데 너 그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래서 자기소개서랑 면접 때 그렇게 한 거고. (나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머리로 그게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답했다. 결국은 내가 그걸 거짓말이라고 느끼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거짓말'을 잘 하는 인간들을 시기하고 질투해서 내 멋대로 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과 자신을 잘 파는 법을 동시에 잘 하는 사람이 드물게 존재하고 그들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 눈에 띄고 사람들이 그를 찾는다. 그러나 우리 같은 (ㅋㅋ) 글 쓰는 것을 힘겨워하고 자기를 잘 팔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아서 누군가가 발견해주기 전까지는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 숙명을 인정해야 한다. (이 부분은 기억이 잘 안난다)"
나의 공부할 자격, 내가 하고 싶은 것, 그 하고 싶은 것을 실현할 성실함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나태함에 대한 자책 등등, 이러한 주제들은 사실 평소에 내가 내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한 주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달간 내 멋대로 무언가를 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평가 받고 내가 멋대로 한 결과를 이제 책임져야 하는 이 상황을 겪고 나서 연숙이와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전에 이야기한 것들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까 이 경험을 겪고 이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는 전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글을 쓰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한 연구들을 평가 받으면서 덜 눈물이 날 것 같다.
강제적으로 어떤 상황에 내몰려질 때 그 경험에서 소위 '교훈'을 얻고 이전과는 다른 나 자신이 된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데, 나는 어떤 강제적이고 힘겨운 상황에서 얻는 교훈들을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경험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구성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이 두 달 간 겪은 일들을 절대 "하나님 나의 딸이 미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감사합니다"라는 식으로 긍정하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연숙이랑 이야기하고 나서는 저녁에 경석이랑 밥을 먹었다. 경석이와도 이야기를 많이 했고 (바로 직전에 연숙이와 말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경석이에게 설명하면서 그에 대해 경석이의 생각을 물었다) 경석이에게 너도 화가 많은 사람이라 너한테도 아도르노가 딱이라는 시덥잖은 말들을 했다. 밥을 먹었던 가게는 (좋은 음악이긴 하지만) 음악 소리가 컸고 주인 아저씨가 자꾸 말을 걸어서 좀 곤혹스러웠다. 그렇지만 엄청 싫지는 않았다. 가게에서 두어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사서 경석이와 같이 기숙사로 올라왔다. 그러면서 경석이가 버틀러가 윤리에 대해 말한 책들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강제적으로 버틀러의 <불확실한 삶>을 빌려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동실화'라고 '강요'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전날에 세네시간 밖에 못 잤고 요 두달간 늘 만성피로 상태여서 일찍 잠들었으나 금방 깨 버리고 말았다. 밤을 샌 것 만큼 끊어서 조금씩 잔 적이 많았기에 몸이 건강한 수면을 취하는 법을 까먹은 듯 하다. 그 탓에 이 긴 일기를 쓰고 말았다. 이제 다시 누워야겠다. 나는 너무너무 누워 있는 것을 사랑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는데 이제까지 맘 편히 누워 있지 못했으니까 좀 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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