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25일


얼마 전에 머리를 자르고 엄마가 나한테 "너 참 고등학생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엄마의 '고등학생 같다'는 '선머슴 같다'의 다른 표현인데, 나는 내가 과외를 하면서 만났던 중고등학생들을 떠올려 보았다. 아주 수수하더라도 틴트 정도는 바르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나는 틴트는 고사하고 선크림조차 귀찮다고 잘 안 바르는 경우가 태반이니 나는 요새 중고등학생 같지도 않은 것이다. (갑자기 다이소 계산대에 붙어 있던 "초등학생에게 화장품을 팔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생각난다)

아마 난 30대가 되어서도 '고등학생'같아 보일 것이다. 동안이라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서른 살을 넘긴다면 난 아마 어렸을 적 선크림을 꼬박꼬박 바르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한 건 이런 뜻에서이다. 대충 내가 철학과로 전과하기 바로 전 학기인지 직후의 학기인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무튼 진로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일 것이다. 그때 나는 아침 아홉 시 반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었는데, 언젠가 내가 인문대 8동 옆에 있는 재떨이 항아리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거기에 그 수업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계신 것이었다. 참고로 그 선생님은 시간 강사다. 그 선생님은 내가 오기 전부터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내가 담배를 반 정도 태우자 선생님은 꽁초를 버리고 인문대 건물로 들어가셨다. 그 선생님은 책과 노트북 등을 가지고 다니기 좋은 실용적인 배낭을 매고 계셨고, 옷은 정장이 아닌 그냥 편한 일상복이었다. 나는 그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선생님이 무척이나 대학생 같다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의 뒷모습은 정교수와 너무 달라보였고, 나는 나 또한 저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도 저 선생님처럼 학생 같아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대해 또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면 내가 한창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있을 때 양효실 선생님께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앞으로 공부를 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공부가 손에 잘 안 잡히고 앞으로 재정적인 부분을 내가 온전히 책임지면서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선생님의 답장에는 이런 게 있었다. 자기가 카페에 앉아 있는데 우연히 지나가는 나를 본 적이 있는데, 선생님은 나를 보면서 '저렇게 걷는 애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일단은 도서관에 가서 무작정 책을 읽고 무작정 질문하고 아무튼 '공부를 해 봐라'라고 나한테 조언했었다. 그 조언이 그때 당시의 나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았지만, '나처럼 걷는 애는 공부를 할 팔자다'라는 말은 계속 생각이 났다.

(6월 25일 전후로 썼던 글인데 이 이상 무엇을 쓸 지 기억나지 않아서 임시저장한 글 그대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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