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13일


1. 오늘은 엄마에게 너 솔직히 공부 안 하잖아, 너 누워만 있고 컴퓨터 게임만 하고, 도서관 간다더니 한 번도 안 가고,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고 정말 말 그대로의 사실 적시라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할 일이 없고 그렇다고 트위터에 재미 있는 글이 올라오지도 않는데 그렇다고 트위터를 그만두지 않는 트위터 유저들이 으레 하는 놀이 중 하나인 해시태그 놀이에 자기 학부 혹은 대학원 시절의 최고 학점과 최저 학점을 밝히는 것이 있었다. 내 트위터 친구 중 몇몇 사람들이 그것을 하기에, 내 최고 학점이 얼마였는지 궁금해서 성적을 조회해보았더니 새삼 충격 먹는 것도 이상하지만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거짓일 정도로 좀 놀라 버렸다. 내 최고학점은 3.58 정도였고 최저학점은 2.63으로 바로 9학점밖에 듣지 않았던 이번 학기의 성적이었다. 그것을 보니 솔직히 내가 자대 자과생이어도 대학원에 떨어질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내 평균 학점을 올려준 것은 대부분 교양 과목으로, 탯줄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적부터 배운 페미니즘과 퀴어와 관련된 과목이었다.

과외를 하고 집으로 걸어 오면서 앞으로의 내 생활은 어떨까 걱정어린 생각을 좀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게으른 것 같은데, 사실 게으른 것은 죄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비난 받을 만한 특성도 아니며 엄밀하게 말하자면 나는 '게으른게' 아니라 '지나치게 여유로운 것'이며 이것은 책임감이 없어서 내가 해야 할 책무로부터 도망치는 일과 구별해야 되는 게 아닌가.... 성실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이며 이 성실함에 복무하는 것은 노동자의 자기소외 현상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변명 같은 생각만 하며 집으로 왔다. 이런 변명을 이론의 용어로 그럴 듯하게 지껄이려고 철학과에 온 거냐고 누가 따져도 할 말 없을 정도로 말이다.

2. 집에 와서 나는 좀 외로웠다. 만악은 트위터에서 나오는 것인데(사실 아님), 트위터를 보니까 내 친구가 생일 파티를 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이 친구가 나에게 생일 선물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는데 이 사실이 떠오르고 외로워진 것만 하더라도 내가 무척이나 '초딩'같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 또한 많은 친구들의 생일 선물을 챙겨주지 않았거나 혹은 너무 뒤늦게 챙겨준 적이 많고, 생일 선물을 주지 않은 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저 까먹었거나 전달을 하기 어려웠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충분히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친구에게 언젠가 장난으로 네가 나랑 놀아주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랑만 놀아서 질투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어쨌든 친구는 뭐라 뭐라 대답했고 나는 툴툴거리면서 그것을 들었었다. 사실 이것은 나의 치졸한 질투가 맞기 때문에 이것을 글로 표현하기까지 아주아주 힘들었다(왜냐하면 글을 쓰는 것은 이 감정을 인정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승인 받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기에). 어쨌든 그런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이다.

이 생각을 하자 역시 사람은 자기 일에는 서툴고 남의 일에는 프로라는 사실을 실감했는데, 왜냐하면 나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그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이야기하라고 종용했을 것임에 틀림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끄러운 감정들을 쓴 이유도 바로 이런 실감을 다시 되새기며 사람이라면 으레 저지를 수밖에 없는 실수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다(누굴 위해서? 라면 결국은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나의 욕망을 위해서라고 대답하겠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친구로부터 너는 참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 비슷한 것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어떤 맥락에서 나왔냐면 내가 한창 레포트를 써야 할 과제철에 글이 잘 안 써진다고 징징댈 때 친구가 말해준 것이다. 그러니까 친구의 말로는 네가 쓰는 일기를 보면 네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네가 주지하고 있는 철학과 가치관으로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는데 네가 자꾸 글을 못 쓴다고 하니까 처음에 자기는 내가 엄살을 피우는 것 같았다며, 네가 너무 부끄러움이 많아서 너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진단이 굉장히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데, 비단 글 쓸 때의 마음가짐도 그렇고 나의 부끄러운 점들을 인정할 때도 그렇다. 그래서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블로그에다 (심지어 위에서 말했던 친구가 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쓴다. 잘 하는 짓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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