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8일

1. 잘 모르는 이에게 호의를 받을 때 기묘한 기분이 든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굳이 좋고 나쁨으로 따지자면 좋음에 가까울 텐데 이상한 기분이다. 예를 들어 저번달에 나는 얼굴 본 적 없는 분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커피 기프티콘을 받았으며, 별로 재미 없을 것 같은 내 일기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이해 못 할 호의는 아니다. 나 또한 얼굴 모르는 누군가의 블로그를 보고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이 덜 불행했으면 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관심과 호의가 나를 향했을 때의 느낌은 생경한 것이다. 생경해도 감사할 따름이다..

2. 돈이 없다.. 정말로 없진 않은데 이렇게 돈이 없어본 적은 휴학 직전 빼고 처음이다. 곧 3월부터 학업지원금이 끊기기 때문에 정말로 돈을 벌지 않으면 부모님 집에서 한 발 짝도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인터넷에서 과외 문의 글을 볼 때마다 족족 나에게 물어다 주었지만, 성사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께 받은 과외는 시범수업 약속까지 잡았으나 오늘 취소됐다. 그리고 나는 저녁으로 (이틀 전에 먹었던) 짬뽕을 먹으러 갔다.

걸어 가면서 걱정을 했다. 최근 겪은 일들을 생각하고, 앞으로 겪을지도 모를 일을 생각하면서 걱정을 했다. 그래도 걱정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그 애씀은 생각보다 잘 되었는데, 왜냐하면 최근 내가 겪었던 것이, 지금 겪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이해는 자괴감, 자책감, 기타 등등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의 자기반성에서 내가 너무 쫄보이기 때문에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인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근 겪은 일로 의기소침했고, 지금도 의기소침하나 전보다는 더 초연해진 것 같다.

요새 절실히 느낀 것은, 경험이 많아지면 사람이 초연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숙해지기도 할 뿐더러, 앞으로 겪을 더 큰 위기를 생각하면 매번 일희일비하여 걱정하고 흔들리면 삶을 지탱하기 힘들기 때문에 굳이 걱정으로 힘을 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걸 직접 체험하기 때문이다. 요새 내가 그런 것 같다. 내가 처한 상황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들에게 미안하게도, 내 곁에 있는 가난한 친구들과 비교해봐도 그건 명백하다. (그러니까 그들의 빈곤함과 피곤함을 아는데 사서 걱정을 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기만적인 엄살이라는 것이다. 물론 내 상황을 힘들어할 수는 있다. 피곤해할 수도 있고. 그런데 내 상황은 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을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3. 2주만에 엄마와 통화했었다. (그저께의 일이다) 전화로 엄마에게 나의 공부 의사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엄마가 걱정할 만한 상황에 내가 자주 처하겠지만 어떻게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납득했지만, 그래도 내가 언제든 공부를 업으로 삼는 것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앞으로 엄마에게 설명하고 엄마를 안심시키면서도 엄마를 불안하게 만들 일이 많아질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좀 그렇긴 한데,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가 '일반적인 삶'을 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대로 살기를 꿈꾼다면 늘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누군가를 설득할 일을 많이 수행해야 할 것이다.

엄마한테 그래도 나는 현실적으로 살고자 노력하며 진짜로 엄마가 걱정하는 '박사 학위를 딴 고학력 백수'가 된다면 공무원 준비를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내가 나 자신을 굶게 하는 일은 없게 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내 말을 듣자 조금은 안심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내가 마치 비트겐슈타인이 학계를 떠나 정원사나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것처럼 학계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을 하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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