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31일
1. 생리 이틀째, 무더운 한낮에 빨빨 돌아다닌 탓인지 엉덩이가 접히는 부위가 짓물렀다. 어제는 걷기 힘들 정도로 쓰라렸고, 지금은 긁고 싶다는 마음을 참느라 다리를 떨 정도로 가렵다. 몇 년 만에 면 생리대를 꺼내 쓰고 있다.
2. 내일부터 내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계속 집에 있는다. 기숙사 침대보다 훨씬 푹신하고 좋은 침대에 누워 있으면, 이렇게 핸드폰을 볼 게 아니라 책을 읽어야 하는데, 글을 써야 하는데, 아니면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데, 따위의 생각이 든다. 상담과 약물 치료를 통해서 우울과 불안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발적으로 책이 잡히진 않는다. 읽을 순 있다. 퀴어이론 세미나 때문에 젠더 트러블 1장을 읽는데, 옛날에 읽었던 것보다 훨씬 이해가 잘 되고 집중도 잘 되었다. 그저 책을 읽겠다는 마음이 안 든다. 아마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실패할까봐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러는 것일수도 있다. 억지로 어디에 나가 있어야지. 돈이 있었으면 독서실 가듯 카페에 갔을 것이다. 돈이 없으므로, 카페 대신 도서관에 가는 게 좋을 듯 하다.
3. 과외는 번번이 짧게 끝난다. 저번 주에 맡았던 일은 딱 한번 수업하고 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과외 학생 어머니에게 입금 독촉 문자를 보냈다. 하루 수업 나가서 62500원을 벌었다. 수수료를 떼이지 않았으므로, 나쁘지 않은 벌이다. 이걸로 현재 내 잔고는 10만원 남짓이다. 내일은 용돈 30만원이 들어오고, 9월달은 약 40만원의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이 중 15만원은 데이트 통장에 넣는다. 그리고 8월달 교통비는 11만원이 나왔고, 월초에 빠질 것이다. 핸드폰비는 대략 3~4만원이다. 이렇게 되면 용돈은 똑 떨어진다. 십만원 남짓으로 기타 등등의 유흥비와 필요한 것들을 사야 할 것이다.
집에서 살게 되니까 밥 굶을 걱정은 없다. 하지만 답답함은 가시지 않는다. 집에만 있게 되는 게 싫다.
다행히 모종의 사은품으로 자전거를 얻게 되어서 이 동네 돌아다닐 때 드는 교통비는 절감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조립에 실패해서 자전거포에 들고 가기로 했다. 당장 내일 자전거포에 들고 가서 조립 맡기고 싶다. 할 게 없으면 자전거 타면서 시간을 죽이고 싶어서.
4. 시간을 죽이는 게 나의 시급한 과제이다. 애초에 휴학을 건설적으로 보낼 계획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휴학한 것이다. 책을 읽는다든지, (우스갯소리로) 호모 소설을 쓴다든지, 알바를 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무엇보다 휴학 시간을 죽이기 위해 생각한 것들이다.
하지만 책은 잘 집히지 않고, 호모 소설은 아직 구상도 못했고, 알바는 하고 싶어도 마땅한 일이 없어서 못 한다. 그래서 요새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유튜브로 게임 실황을 보고, 조아라 등이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호모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문제는 이것들이 쉽게 질린다는 것이다.
간신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싫증나는 기분, 나는 그런 기분을 정말 싫어한다. 따분함을 견딜 수가 없다. 그런 기분을 느끼면 결국 누워서 핸드폰으로 미친듯이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보게 된다. 어찌어찌 그렇게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일이 두렵다. 친구들은 학교 다니느라 바쁘고, 통장 잔고는 바닥났고, 나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제발 내가 어떤 일에 몰두할 수 있기를, 그 몰두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
5. 이런 무기력함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런 무기력함이 마냥 무용한 것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외로운 것은 싫다. 나 빼고 사람들이 충실하게 사는 게 싫다.
못생긴 마음이지만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 나와 같은 따분함과 무기력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책을 안 읽었으면 좋겠다. 알차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따위의 생각을 하고 나면 내가 바보같다. 그런데 나는 바보가 맞다. 바보라서 대략 2년간 같은 말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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