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3일

가슴이 뻥 뚫린듯 아프다. 뻥 뚫린 곳의 상처가 덜 아물어서 진물이 나는 듯이 아프다. 아무 생각이 없는데 가슴이 답답해서 표정이 울적하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온 몸이 뻐근하다. 저녁 때면 엄청 피곤한데, 그 피곤한 몸이 익숙해져서 그냥 피곤한 채로 산다. 담배에 의존한다. 담배가 타들어가면 괜찮아 질 거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엄마한테 왜 그때 낙태를 하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다. 위에서 말했던 가슴의 고통은 자책이 심해지면서 찾아왔다. 모든 일이 나의 잘못으로 느껴지고 모든 말이 나를 향하는 것 같다. 이렇게 힘들어 하는 것도 나의 잘못이고 이것을 가까운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것도 나의 잘못이고 친구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도 내 잘못이다. 늘 같은 문제로 힘들어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를 자꾸 친구들한테 얘기하는 게 잘못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내 잘못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런 나한테 답답함을 느낄 것이고, 왜 답답함을 느끼는지 나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게 내 잘못이다. 늘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데 고치질 못하니까 더 이상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말하는 게 잘못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고 나한테 해주는 말들이 다 잘못한 나를 꾸짖는 말 같다. 침묵조차도 꾸짖음 같다. 그냥 그들 곁에 내가 있는 것이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애인을 만나는 날인데 애인 앞에서 몇 번 눈물을 보였다. 애인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면 나아져야 하는데, 애인이 화장실에 간다거나 해서 잠시 자리를 비우면 금세 울적해지며 가슴의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도 내 문제를 더 잘 직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괴롭다.
 모든 말이 꾸짖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내가 평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평가에 대한 두려움은 고소공포증 수준이 된 것 같다. 평가를 받아들이면 되잖아, 그것은 너에 대한 공격이 아니야, 라는 말을 들어도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을 알게 되니까 죄책감은 더 심해진다. 짜증도 난다. 왜 알아버렸을까. 나는 어떤 평가도 받아 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내가 진짜 내가 아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아 버려서 괴롭다. 자기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완전 바닥이다. 내가 믿고 있던 게 다 무너졌다.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도 지금 이 순간에는 없다. 그냥 하루하루 버틸 뿐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잘못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서.
 부모가 원망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잘 못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면 그들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힘들어하면 그들이 걱정을 하게 되고 걱정은 그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 살아야 그들이 행복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을 하지 못한다. 말을 해도 나는 그것이 곧 지나갈 것이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단서를 달아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안심한다. 죄책감이 심해진다. 내가 없었더라면 이 가족은 완전해졌을 텐데. 나는 지나치게 예민해서 그들을 피곤하게 한다. 미안하고 원망스럽다.  
 타인에 의해 잘 훼손되는 나의 연약함이 싫다. 타인이 싫다. 그들의 얼굴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는 얼굴들이다. 나는 그들의 기대를 들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죄가 많다. 이것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용서받는 방법은 내가 멀쩡해지는 것인데 나는 옛날보다 더 멀쩡하지 못하다. 미안하다. 왜 나는 연약할까? 나는 왜 제대로 살지 못할까?
 자해를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다. 애인이 슬퍼하기 때문이다. 애인과 친구들의 존재가 밉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랑 가까워서. 가깝기 때문에 상처를 주면 더 미안해진다. 그들의 애정이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다. 왜 죽게 내버려두지 못하나.
 아니 사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죽고 싶고, 죽고 싶은 게 싫다.
 미안하다.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내일 일어나서 하루를 제대로 살고, 내 할 일을 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그들을 즐겁게 해 주면 된다. 나는 멀쩡하니 너네가 힘든 것을 다 들어줄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면 된다. 이 우울함은 일시적인 것이고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 된다.
 나는 그렇게 해야 한다. 어떻게든 할 것이고… 일단 그러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상담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생활문화원 개인상담 접수 방법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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