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6일: n십년 뒤의 한심의 아이콘으로서의 삶
1. 우연히 동아리방에서 40대의 나를 상상했다. 망트는 메코의 4, 50대 시절이 궁금하다고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을 듣자 나도 그것을 상상해 보았다. 일단 내 머리 속을 스쳐간 상상은 이렇다. 나를 뺀 나머지 친구들은 어떻게 해서든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중년의 나는 끔찍하지만 어떻게든 숨을 쉬고 살 것이라는 것. 나를 뺀 친구들은 잘 살고 있을 거라는 것은 대책 없이 낙관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내가 끔찍하게 살 것이라는 생각은 나의 지나친 비관주의에서 나온 생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 내가 예상하는 내 40대의 삶이 끔찍한 이유는 내가 계속 공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을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 잡는 대신, 늙어서도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는 선택은 아주 똑똑한 사람 혹은 굳이 돈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에게 적합한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반드시 적절하고 적합한 선택을 매번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격언이 괜히 있겠는가… 그리고 나는 내가 아주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또한 앞으로 나는 더더욱 돈이 부족해서 허덕일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 따위로 흔들릴 결심은 결심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므로 하루빨리 그 결심이라는 애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난한데 대학원 가면 망해요 라는 소리에 흔들린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가지 말아야 한다 라는 요지의 트윗을 기억하며) 그런데도 나는 계속 부모님한테 대학원 가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뻥을 소극적으로 치고 있고,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있고,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가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도 안 잡힌 채 이렇게 살고 있다.. 아빠한테서는 씀씀이를 줄이라는 말을 꾸준히 듣고 있으며 (밖에서 사 먹는 밥은 얼마나 비싼지 그들은 알고 있을까..) 엄마한테서는 유학 준비를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을 꾸준히 듣고 있으며 트위터에서는 멍청한 사람들을 실컷 구경하고 있다..
3. 문득 지금 내가 너무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몇십년 후에도 만날 수 있을런지 의문이 들었다. 나 빼고 다들 바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만날 시간과 이유가 없게 될지도 모르고. 그냥 지금의 내가 희망하는 것은 그네들의 소식만이라도 꾸준히 접했으면 하는 것이다.. 간간히 만날 수 있으면 더욱 좋고.
생활 공동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냥 존나 다들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아니면 적어도 한 동네에 살았으면 좋겠다. (판타지임) 너무너무 친구들한테 집착하는 거 존나 알고 있는데. 얘네들 좋은 거 어떡하라고… 몰라..
4. 결론은 내가 과연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지, 그럴 깜냥이 있을지. 이러다 주화입마 당해서 이론으로 힐링하다 흙이나 퍼먹을지.. 돈과 시간과 정념을 투자해서 거름조차 되지 못하는 똥이나 만들게 될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르겠고.. 당장 내년에 어떻게 학교를 다닐지 엄청나게 걱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 존나 좋다. 내가 얘네들 친구인 게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너무 좋다. 요새 친구들한테 계속 죽고 싶다 힘들다 나 너무 무기력하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공부에 집중 안 된다 아무 것도 집중할 수 없다 지껄이는데, 얘네들은 그래도 나를 친구로 여겨줘서 그런 소리들 다 받아 주고 있다. 응… 그렇다고..
5. 글 잘 쓰고 싶다. 책도 많이 많이 읽고 싶다. 자꾸 밖으로 싸돌아다녀서 돈만 쓰지 말고 도서관에 틀어 박혀서 책이나 열심히 읽고 어디 가서 멍청하단 소리 안 듣고 싶고 존나 똑똑해지고 싶다. 그래서 내 머리를 믿고 아무 불안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 <- 결국 이 말을 쓰기 위해 이토록 쓸 데 없는 문장들을 나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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