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6일: 나와 나, 자기혐오

나와 나, 자기혐오

나는 나를 사랑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악의는 거의 대부분 나 이외의 것을 향해 있었다. 물론 나한테 실망하게 되는 일도 많고, 내가 싫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품는 와중에도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싫어해,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라는 소리를 깊이 공감하지 못했었다. 어쩔 때에는 ‘왜 나를 싫어하는 거지? 어떻게 나를 싫어할 수가 있는 거지? 나잖아.’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최근에야 이러한 생각은 내가 싫어하던 혈연가족 짱짱맨들이 하는 소리에서 주어만 바뀐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가족을 싫어하는 거지? 어떻게 가족을 싫어할 수가 있는 거지? 가족이잖아.” 무척이나 똑같은 소리였다. 나는 반성했다. 그리고 자기 혐오에 대한 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나를 타인으로 생각하면 자기 혐오를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을 혐오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여러 명이다. 한 몸에서 살고 있다. 마치 혈연 가족이 한 집에서 사는 것처럼. 혈연 가족과 다른 점은, 혈연 가족에게서는 독립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의절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는 나한테서 독립할 수 있는가? 나와 의절하고 살 수 있나? 그러니까 자기 혐오는 치 떨리게 싫은 혈연 가족과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하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싫어하는 나한테서 독립할 수 있다면. 싫어하는 나와 의절할 수 있다면. 싫어하는 나를 쫓아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도무지 나라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편해질 수 있을텐데. 싫어하는 나를 쫓아내는 방법은 싫어하는 나를 죽여버리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밖에 나는 상상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이후에 살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지만.
결국 도무지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택할 방법은 죽음 혹은 싫어하는 나와 불화하면서 사는 것 혹은 적당히 싫어하는 나와 타협하며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을 한 달여 전에 했었다. 이제서야 간략하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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