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8일
1. 이 집안은 글러먹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친오빠 생일 이틀 전, 가족들은 동네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쿠팡에서 산 곳이고, 예상대로 그 곳은 좆같았다. 어중간한 맛이었고 피자는 맛이 없었다. 무엇보다 최악인 것은 저녁 먹는 시간이 지루했다는 것이다. 친오빠는 편입 공부를 하고 있고 부모님한테 토라진 상태라 말이 없다. 엄마나 아빠나 누구 하나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얘기해봤자 시덥잖은 과외 이야기 정도만 했다. 내가 가족한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다. 돈 버는 이야기, 또는 학업. 어쨌든 엄마는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피자를 4번 리필해서 마지막 피자는 포장해서 가져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각자는 방으로 들어갔고, 아빠는 거실에서 무협만화를 읽다가 혼자 술을 먹거나 했다. 물을 뜨러 거실로 나갔을 때 아빠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배가 고파서 라면 끓이려고 냄비에 물 올렸을 때 아빠는 뭐라고 타박을 했다. 그 때에는 이 사람은 존나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득 이 집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안 사람들은 서로 소원해졌고, 가까워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나는 그 사실이 몹시도 고맙지만 어쨌든 궁금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왜 같이 살아서 서먹한가.
2. 세상이 너무 지겹다. 무언가에 몰두했으면 했다. 그렇다면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고, 지리멸렬함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몰두한 상태에서 몰두하지 않은 상태로 내팽겨쳐졌을 때의 단절감이 무섭다. 그럴 때 나는 상당히 죽고 싶어진다. 어쨌든 총체적으로 좆같은 상황에 처해 있고, 나는 지금 강박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그러니까 덕질할 수 있는 것 말이다.
3. 세상이 너무너무 지겹고 죽도록 외롭다고 방금 위에서 썼지만 오늘 밤에는 활짝 웃어버렸다. 어제 다운받아 놓은 후죠만화가 나를 충만하게 했기 때문이다.
문득 정체성은 취미로만 즐긴다고 프로필에 써 놓은 후죠소녀 언니가 떠오른다. 음, 확실히 후죠시 정체성은 레즈비언 정체성보다 더 안정감을 준다. 후죠시 정체성을 입에 담을 때, 목구멍을 왔다갔다하는 망설임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후죠시나 해 버릴래. 이렇게 썼지만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후죠시 정체성 하니 방금 후죠만화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뭐냐하면 문득 만화 속의 내 취향인 남자한테 박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그들에게 박을 수 있는 것은 손가락이다. 그리고 얘네들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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