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2일: 동아리 운영위원을 은퇴하며
동아리 운영위원을 은퇴하며
운영위원을 공식적으로 그만둔 건 저번 금요일 동아리 종강총회 때였지만, 운영회의 단체카톡방을 나간 건 오늘이었다. 짤막하게 인사를 남기고는 미련 없이 카톡방 나가기를 눌렀다.
동아리 운영위원을 처음으로 하게 된 때는 내가 1학년 2학기를 다니고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1학년 2학기에 교류팀장을 하게 된 건 악몽과 같았다. 나의 경험 부족과 총체적인 동아리 운영의 똥망 때문에) 그 이후로 2학년 1학기만 빼놓고 계속 동아리 업무에 관여했다. 내 친구들이 다들 동아리 업무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동아리 일을 안 할래야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저번 학기 퀴플 편집장까지 맡게 되었다. 편집장 일은 아주아주 고되고 나를 피폐하게 했다. (왜냐하면 퀴플 편집장마저도 처음 맡는 일이었고, 나는 끊임없이 나의 자격미달 여부를 고민했다) 편집장 일을 끝내고 나는 정말로 업무 같은 데에 질려 버려서, 그 이후로 명목상으로 계속 동아리 운영위원이긴 했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왜 운영위원 일을 하게 되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동아리에 더 깊이 발을 딛어서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가입하게 된 동아리는 신기한 거 투성이었고 동아리방에 가는 일은 즐거웠지만 생각만큼 거기 있는 사람들과 친해지진 못했다. 그러니까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았고 인사를 받게 되는 일이 많았지만 학교가 끝나고 맛있는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하거나 술자리에 끼어들거나 등등의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조인트에 나가도, 술을 마시지 않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하는 여자 이야기에 도통 흥미가 없다보니 큰 행사에 나가도 친구를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동아리 운영위원 일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게 만드는 촉매가 되어 주었다. 어떤 사람과 일정 시간을 보내면 당연히 친해지게 마련이며, 친해지기까지 보내야 하는 시간의 임계점을 넘길 수 있는 수단 중 많은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술자리’ 수단은 내가 쓸 수 없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생각대로 1학년 1학기 때보다는 친해진 사람이 많았고 특별한 친구도 몇몇 생겼다.
그러나 운영위원 일이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운영위원 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한데, 뭐냐하면 나 말고 여자 회원이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이는 일이 드물었으며 아주 소수의 여자 회원만 동아리 운영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냥 애초에 여자 회원이 동아리방에 나오지 않는다… 꼬꼬마 시절의 나는 내가 운영위원 일을 열심히 하게 된다면 여자 회원들과 가까워질 수 있고 동아리 운영에 관심을 보이는 여자 회원의 수도 늘어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아리방에 나오는 여자 회원이 많아질 거라고 믿었었고 당연하게도 그 믿음은 깨져버렸다.. 여성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보수성과 여성 성소수자의 종족화의 부진함과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현실이 아직 시궁창임에도 불구하고 성정체성을 라이프스타일로만 사유하는 개인주의화라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 때문에 내 믿음은 깨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씩은 빡이 치는 것이다. 특히 내가 퀴플 편집장 일을 했었을 때 나는 여러 곳에다가 필진 참여 독려를 했는데 여자 회원 단톡방의 싸늘한 반응은 아직도 생각난다…
나는 그리 열정적이지도 않고 성실하지도 않으므로,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흥이 식게 되어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만사가 귀찮아져버렸고 심지어 지루해졌다. 그래서 동아리 운영위원으로 소소하게나마 무언가의 업적을 내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고 나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허드렛일만 맡게 되었다. 이제는 그냥 여러 문제로 골머리 썩히고 싶지 않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동아리방이나 동아리 행사에 나가고 싶어서 아예 운영위원을 은퇴하게 된 것이고.
엄청나게 이제껏 운영위원 경험을 뒷담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 이것은 운영 업무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실망하게 될 지라도 동아리 운영위원 일을 아예 하지 않는 길을 택했으면 동아리에 정을 붙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나의 소중한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베리 언니한테서는 내가 동방에 자주 나왔기 때문에 자기 또한 동아리방에 나갈 수 있었다는 말도 들었고. 내가 동아리에서 여러 일을 하면서 아예 삽질만 한 것은 아닌 것이다.
어쨌든 이제 나는 동아리 운영을 지켜만 보는 입장이 되었다. 점점 동아리의 맨파워는 줄어들 것이고 언젠가 동아리가 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수일지라도 동아리에 열정적인 사람이 들어올 것이고 그들이 동아리를 어떻게든 굴려갈 것이다. 오래오래 동아리가 번영하기를.
이렇게 다 끝나서 두서 없게 소회를 푼다. 더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이걸 쓰는 시간이 새벽 2시다. 귀찮아져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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