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7일
1. 2주만에 본가에 왔다. 본가에 오면 엄마랑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보통은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고 나에 대한 엄마의 관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함이다. 엄마는 잊을만하면 꼭 꺼내는 이야기 “나는 네가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를 시전하였고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엄마가 알게 되면 엄마가 걱정할 거고 싫어하니까 솔직하게 말하기가 싫다” 라고 대답한다. 엄마는 며칠 전에 카톡으로 “언제나처럼 외로움과 권태에 빠져있는 우리 친구 조미지~처럼 보내고 있는 건 아니지?” 라고 말했었다. 그 카톡에 대한 나의 답장은, “응 늘 그렇게 지내고 있어 미지처럼” 이 아니라 “친구 만나고 과외 갈거야” 였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로 나는 “사실 외로움과 권태에 늘 젖어 있어"라고 실토해버렸다. 나의 이야기로 엄마는 내가 긍정적이고 행복한 고급인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고 약간 더 불행해졌을 것이다. 어쨌든 엄마는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며 나의 예전 불행과 내가 가족에게 쌀쌀맞아진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쩌다보니 가족에게 징징대지 않게 되었으며 나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멘탈이 튼튼하고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인간으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내가 부모의 안정적인 애정 없이 혼자 자랐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엄마 스스로 인정하였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무덤덤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으나 어쩐지 목소리는 떨리고 눈시울은 붉어졌다. 한 2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했으면 펑펑 울었을텐데, 그것을 생각하면 내가 패밀리 이슈를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것은 확실하였다. 무언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물이 날 뻔 했다. 빨리 운동 가라고, 엄마를 그렇게 내보내고 설거지를 하면서 열심히 참았던 눈물을 좀 쏟았다. 가슴을 저미는 슬픔을 오랜만에 느껴서 답답했다. 그런데 묘하게 무덤덤했다. 내가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이 익숙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어쩄든 그렇게 설거지를 끝내고 눈물을 닦고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웠다.
2. 자크 랑시에르의 이미지의 운명을 노트정리하면서 읽었다. 거의 필사하는 수준이었다. 필사라도 하니까 문장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론서는 어렵다. 그런데 나는 대학원에 가서 이 어려운 짓거리들을 평생 하려고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좀 미친 건 확실하다. 하지만 평범하게 취직해서 평범한 소리 들으며 ("OO은 시집 안가나~ 허허~” 같은) 살기에는 내가 너무 부적응자라서 5년 내로 자살할 것임이 확실해서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죽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대학원에 간다 해서 자살을 하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그때에는 생활고로 자살하고 싶을 것이다. 예전에는 (한달 전 정도?) 대학원 가서 겪을 생활고를 생각하면 막 불안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다.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요새는 뭐라도 읽으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안정적인 삶이라면 안정적인 삶인가.
3. 슬퍼서 일기를 쓴 것이다. 이래서 구강기에 욕망을 잘 채워야 했다. 하지만 구강기에 욕망을 충족하지 못한 것은 내 탓이 아니다. 결론은 정신병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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