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3일

대학원 삼수에 성공했다... 한시름 덜었다. 그리고 과외 일 하나 성사됐고 학부모님이 화끈하게 당일 입금을 해주셔서 통장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일타쌍피로 좋은 일이 생겨서 기분이 묘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아 기쁘고 삼수 기간동안 내가 자살할까봐 걱정했던 친구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게 되어 또한 기쁘다.

그간 긴장을 많이 했는지 어제부터 계속 몸에 힘이 없다. 약간 바람 빠진 공기인형처럼 정신이랑 몸이 흐물거린다... 어제는 하필 엄청나게 추워가지고 이러다 몸살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 아직까진 괜찮다. 이왕 흐물거린 김에 푹 쉬어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고 하면서 카페에 왔지만 퀴플글을 안 쓰고 인터넷 서핑만 하고 있으니 이것도 휴식의 일부겠지)

오늘 점심에는 엄마랑 추어탕 먹고 카페에 갔다. 합격 겸 과외 성사 축하 기념으로 내가 다 샀다. 아무튼 엄마랑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석사과정 등록금 이야기와 생활비 마련 등등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푸닥거리도 듣고 그랬다. 아무튼 엄마와는 참 복잡한 관계다.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심하게 상처 입히면서 그 누구보다 가장 나를 잘 위로한다... 어쩔 때는 그 누구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아주 가끔이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지. 서로를 가장 연민하다가 빡이 쳐서 머리통 뽑힐 정도로 머리채 쥐어뜯고 싸우고 그러다가 다시 화해하고...

그러고보니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서 재미 있는 일화가 나오는데 일기를 마무리하면서 여기다 복붙하도록 하겠다.

--------

비화와 전설에 현혹되지만 않는다면 프란츠 카프카의 정치적 관심 어디에도 의미 있는 흔적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막스 브로트, 프란츠 베르펠, 에곤 에르빈키슈 같은 그의 프라하 친구들이나, 역사의 의미를 알려고 한다면서 미래 모습을 그려 내기만을 즐겼던 다른 전위주의자들과 구별된다.

그렇다면 이들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만 집중된 내향적 예술을 펼처보인 고독한 친구의 작품이 사회-정치적인 예언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이로 인해 지구 많은 곳에서 금서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날 나는 오래 알고 지내던 한 여자 친구의 집에서 사소한 광경을 목격하고 나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1951년 프라하에서 숱하게 벌어졌던 스탈린식 재판 과정에서 체포되어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한 재판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녀뿐만 아니라 공산당원들 수백 명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 그들은 살아 오면서 줄곧 자신과 당을 동일시해 온 사람들이었다. 갑자기 당이 자신들에 대한 고발자가 되자 그들은 요제프 K를 본받아 자신들의 숨겨진 죄를 찾기 위해 "아주 자질구레한 것들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삶을" 샅샅이 돌이켜 보고는 마침내 상상의 죄를 자백했다. 내 여자친구는 그녀의 비범한 용기 덕택에 이들이나 시인 A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기"를 거부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사형 집행인을 도와주기를 거부한 그녀는 최종 재판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리하여 그녀는 교수형을 면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십오 년 후 그녀는 완전히 복권되어 풀려나왔다.

그녀가 체포되었을 때 그녀의 아들은 한 살이었다.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아들은 이미 열여섯 살이었고 그들은 둘이서 오붓하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그녀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이해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그들을 만나러 갔을 때 아들은 벌써 스물여섯 살이었다. 어머니는 상심하고 화가 나서 울고 있었다. 사연인즉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아들이 늦잠을 잤거나 뭐 그와 비슷한 일이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왜 이런 하찮은 일에 그렇게 마음이 상했어요? 그게 울 만한 일이에요? 좀 심한 것 같군요!"

어머니 대신 아들이 대답했다.

"아니에요. 어머니가 심하신 게 아니에요. 어머니는 아주 용기 있는 훌륭하신 분이에요. 어머니는 어느 누구도 끝까지 버티지 못한 곳에서 끝까지 저항하신 분이에요. 어머니는 제가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그래요, 제가 늦잠을 잤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저를 나무라시는 것은 더 깊은 이유에서랍니다. 어머니는 제 태도, 저의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꾸짖으시는 겁니다. 저는 어머니가 바라는 사람이 될 겁니다. 이 자리에서 어머니께 약속할게요."

당이 어머니에게서 끝내 얻어 내지 못했던 것을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얻어 낸 것이다. 그녀는 아들에게 터무니없는 고발에 동의할 것을 강요했고,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기"를 강요했으며 공공연하게 자백하기를 강요한 것이다. 나는 멍한 기분으로 이 작은 스탈린식 재판을 지켜보다가 문득 (겉으로는 믿을 수 없고 비인간적인) 커다란 역사적 사건의 내부에서 움직이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매우 일상적이고 더할 수 없이 인간적인) 친숙한 상황을 지배하는 메커니즘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샤오미 게임패드 리뷰 및 샤오미 pc에 연동하는 방법

2022년 2월 10일

2021년 1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