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9일
1. 미니마 모랄리아를 재밌게 읽고 있다. 아도르노가 안 죽으려고 미국으로 망명 가 있던 시절에 인터넷이 발달하고 블로그가 있었으면 블로그에다 쓸 것 같은 글들로 엮여 있는 책이다. 읽고 있으니까 왜 친구가 이제껏 아도르노를 안 읽은 게 신기하다고 타박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서실에 가서 햇볕이 잘 드는 카페테리아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다... 한두시간 정도 그렇게 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삶이 살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고 있으니까 햇볕이 얼마나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다. 오후 네시가 넘어가면 더 이상 집중을 하기 어렵고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마침 그때쯤 배도 고파져서 집에 갈 명분이 충분히 생긴다. 밖에서 밥을 사먹으면 돈이 드니까 집에 남아 있는 밥과 반찬을 먹자! 만약 성실하고 건강한 학생이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에 다시 독서실에 와서 밤까지 공부를 했겠지만 나는 건강하지 못하기에 저녁밥을 먹고 침대에 눕는다.
요새는 엄마 혹은 아빠가 매번 저녁을 차려줘서 먹는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부모님이 끼니까지 차려주니까 약간 내 자신이 식충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식충이 삶이 얼마나 편안한지, 죄책감으로 그 편안함을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충 언제까지 죄책감 없이 식충이 삶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20대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그 이전까지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살기가 싫어서 침대에만 누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언제 저녁밥을 퍼먹고 있는 내 옆에 아빠가 앉아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산다고 대답했다. 아빠는 지금도 이 나이 먹고 솔직히 앞이 안 보이는데 네 나이 때에는 더 했다고 말했다. 아빠 말에 맞다고 대답했다.
2. 엄마가 내 옷장에서 내가 아끼는 캐시미어 목도리를 꺼내 세탁기에 돌렸다. 안방 서랍장 위에 개어 놓은 내 팬티와 양말 아래에 깔려 있는 목도리를 보자마자 나는 혈압이 올랐다. 당장 거실에 있던 엄마한테 따졌다. 목도리 세탁기에 돌리면 안 돼, 이거 보고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어이 없어서 반어법적으로 질문한건데 엄마가 너무 천진난만하게 응,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 라고 대답해서 내가 제3자였다면 깔깔 웃었을 것이다. 엄마는 순순하게 사과하는 법이 없으므로 나는 기가 차기도 하고 한껏 경멸하는 눈초리로 엄마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엄마가 마지 못해 사과하면서 똑같은 거 사줄게, 라고 말했다. 엄마가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할 때마다 왜 이 사람은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씻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목도리 일화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등교길에 눌러 놨던 슬픔과 화가 일깨워져서, 울적했다. 너무 울적해서 한두시간 뒤에 온 친구한테 또 이야기할 정도였다. 심지어 하교길에도 그 슬픔과 화가 이어졌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방에 누워 있으니까 엄마가 왔다. 엄마랑 아빠가 거실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아침에 있었던 목도리 일화를 아빠한테 말하면서, '쟤가 개지랄 떨었잖아'라는 말을 해서 화가 나다가 피곤해졌다. 아빠는 자기가 고쳐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내 방에 들어와서 망가진 목도리를 가져가서 보풀을 제거하고 스팀다리미로 다려놓았다. 그러니까 완전 조져진 목도리가 나름 멀쩡해졌다. 아빠는 스팀다리미로 목도리를 다리면서 엄마도 엄마지만 너도 옷장 정리 잘하고 미리 세탁해서 이런 일 없게 하라고 타박했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3. 가장 살기가 싫고 죽고 싶을 땐 슬픔에 압도되었을 때다. 슬플 때마다 내가 느끼는 슬픔만이 유일무이하고 영원불변한 것처럼 느껴져서, 사람들은 이런 것을 겪고도 살고 싶은 걸까? 혹은 사람들은 이런 슬픔을 절대 겪지 않아서 살고 싶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 슬픔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혹은 나보다 질적으로 다르고, 그렇기에 더 고약한 슬픔을 겪는 사람을 떠올리며 울적해지곤 한다. 각자의 고단함을 이고 사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가 연민이 많은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독서실에 가서 햇볕이 잘 드는 카페테리아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다... 한두시간 정도 그렇게 하고 있으면 어느 정도 삶이 살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고 있으니까 햇볕이 얼마나 인간의 건강에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다. 오후 네시가 넘어가면 더 이상 집중을 하기 어렵고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마침 그때쯤 배도 고파져서 집에 갈 명분이 충분히 생긴다. 밖에서 밥을 사먹으면 돈이 드니까 집에 남아 있는 밥과 반찬을 먹자! 만약 성실하고 건강한 학생이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에 다시 독서실에 와서 밤까지 공부를 했겠지만 나는 건강하지 못하기에 저녁밥을 먹고 침대에 눕는다.
요새는 엄마 혹은 아빠가 매번 저녁을 차려줘서 먹는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부모님이 끼니까지 차려주니까 약간 내 자신이 식충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죄책감이 들지는 않았다. 식충이 삶이 얼마나 편안한지, 죄책감으로 그 편안함을 깨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충 언제까지 죄책감 없이 식충이 삶을 보낼 수 있을까 생각했다. 20대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그 이전까지는 일이 잘 안 풀리고 살기가 싫어서 침대에만 누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한다는 초조함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언제 저녁밥을 퍼먹고 있는 내 옆에 아빠가 앉아서 행복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산다고 대답했다. 아빠는 지금도 이 나이 먹고 솔직히 앞이 안 보이는데 네 나이 때에는 더 했다고 말했다. 아빠 말에 맞다고 대답했다.
2. 엄마가 내 옷장에서 내가 아끼는 캐시미어 목도리를 꺼내 세탁기에 돌렸다. 안방 서랍장 위에 개어 놓은 내 팬티와 양말 아래에 깔려 있는 목도리를 보자마자 나는 혈압이 올랐다. 당장 거실에 있던 엄마한테 따졌다. 목도리 세탁기에 돌리면 안 돼, 이거 보고 세탁기에 돌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어이 없어서 반어법적으로 질문한건데 엄마가 너무 천진난만하게 응,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 라고 대답해서 내가 제3자였다면 깔깔 웃었을 것이다. 엄마는 순순하게 사과하는 법이 없으므로 나는 기가 차기도 하고 한껏 경멸하는 눈초리로 엄마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엄마가 마지 못해 사과하면서 똑같은 거 사줄게, 라고 말했다. 엄마가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할 때마다 왜 이 사람은 제대로 사과하는 법을 이렇게 모를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씻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다가 목도리 일화를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니까 갑자기 등교길에 눌러 놨던 슬픔과 화가 일깨워져서, 울적했다. 너무 울적해서 한두시간 뒤에 온 친구한테 또 이야기할 정도였다. 심지어 하교길에도 그 슬픔과 화가 이어졌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방에 누워 있으니까 엄마가 왔다. 엄마랑 아빠가 거실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다가 엄마가 아침에 있었던 목도리 일화를 아빠한테 말하면서, '쟤가 개지랄 떨었잖아'라는 말을 해서 화가 나다가 피곤해졌다. 아빠는 자기가 고쳐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내 방에 들어와서 망가진 목도리를 가져가서 보풀을 제거하고 스팀다리미로 다려놓았다. 그러니까 완전 조져진 목도리가 나름 멀쩡해졌다. 아빠는 스팀다리미로 목도리를 다리면서 엄마도 엄마지만 너도 옷장 정리 잘하고 미리 세탁해서 이런 일 없게 하라고 타박했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피곤하게 느껴졌다.
3. 가장 살기가 싫고 죽고 싶을 땐 슬픔에 압도되었을 때다. 슬플 때마다 내가 느끼는 슬픔만이 유일무이하고 영원불변한 것처럼 느껴져서, 사람들은 이런 것을 겪고도 살고 싶은 걸까? 혹은 사람들은 이런 슬픔을 절대 겪지 않아서 살고 싶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 슬픔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혹은 나보다 질적으로 다르고, 그렇기에 더 고약한 슬픔을 겪는 사람을 떠올리며 울적해지곤 한다. 각자의 고단함을 이고 사는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내가 연민이 많은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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