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2일
오늘 낮에 엄마가 옷을 사준대서 집 근처에 있는 아울렛으로 갔다. 며칠 전에 엄마한테 홈플러스에서 산 천원짜리 초콜릿을 줬는데, 그때 엄마가 언제 시간나냐고 옷 사주겠다고 해서 나는 엄마가 면접용 정장을 사 주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울렛으로 가면서 엄마가 면접용 정장이 아니라 평소에 입을 옷 사 주려고 했었다면서, 나한테 일주일 뒤에 면접이야? 라고 물어봤다. 어쨌든 그래서 면접용 정장을 사러 가는 것으로 되었다.
20대 여성이 정장을 사러 가는 곳은 뻔하다. 로엠이나 수프 이런 곳이다. 집 근처에 있는 아울렛은 다 망해가는 곳이었는데, 그래서 20대 여성의류를 파는 곳이 로엠밖에 없었다. 그래서 거기로 갔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게에 들어가면서 엄마는 나한테 사람들이 너 남자인 줄 알겠다고 말했다. 이 소리는 대충 백만번쯤 들은 소리이다. 엄마는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남자애 같죠?"라고 부러 먼저 할 필요 없는 소리를 하곤 했고, 옷가게 같은 데를 들어가기 전에 꼭 나한테 "사람들 너 남자애인줄 알겠다"라는 소리를 주지시켜 주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짜증이 났고, 오늘도 짜증이 나서 "엄마만 그렇게 생각해"라고 대답했고 엄마는 전혀 동의를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가게에 들어가서 정장을 골랐다. 나는 요새 여성복 시장에 부는 오버핏 유행이 참 다행이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정말 허리가 달라붙고 어깨가 껴서 팔을 반 이상 못 올리는 불편한 옷을 못 참기 때문이다. 그 가게에서 입은 자켓도 오버핏으로 나와서 불편하지 않았다. 바지도 마음에 들었다. 옷을 고르면서 가게 점원은 어디 면접을 보냐고 했고, 엄마는 회사 면접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점원 분이 대학원? 이라고 물었다. 점원 분은 50대 여성이셨는데, 자기 아들도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논문을 쓰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보다는 애들이 고생이죠 하면서 나한테 힘 내시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면접용 정장을 사는 목적이 구체적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엄마는 뭔가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 같았고, 나는 뭔가 웃기다고 생각했다. 탈의실에 들어가면서 그 점원 분은 나한테 과가 어디냐고 물었고 나는 철학과라고 대답했다. 철학과라니까 그 점원 분은 그러면 대학원 갈 수밖에 없겠네- 라는 이야기를 해서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엄마는 네이비색이 마음에 든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게 맞는 사이즈의 네이비색 정장 바지 재고가 떨어져서 다음주 수요일에 가게에 들러서 찾기로 했다. 가게 점원분은 수요일에 자켓이랑 바지를 잘 다려서 금요일 면접 때 잘 입을 수 있게 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한테 대신 찾아다 달라고 부탁했다. (왜냐하면 이 아울렛은 자가용이 없으면 무척 오기 힘든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면서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사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으니까 자기가 짠해서 무언가를 사 줘야 할 것만 같다고 말했다. 엄마는 어렸을 적 내가 무언가를 사 달라는 생떼를 부려서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런 생떼가 지쳐서 포기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걸까? 어쨌든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한테 무언가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대신 내가 돈을 벌어서 필요한 것을 직접 사게 된 것은 맞다. 나는 그래서 엄마한테 "그럼 앞으로는 막 사달라고 해?" 라고 말하니까 그건 아니란다. 아직 취직을 하지 못한 친오빠가 엄마한테 칭얼대면 엄마는 아주 질색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부모한테 의지를 안 하려고 하는 것도 엄마에겐 섭섭한 것이다. 그런 모순된 점을 느낄 때마다 나는 정말 엄마가 애새끼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요새 스트레스 받아서 아무 것도 못하고 밥도 잘 안 먹고 의욕이 없는 것에 대해 엄마는 죄책감과 연민을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다음주에 면접이 있는 바람에 엄마가 나한테 면접용 정장을 사 줄 이유가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죄책감과 연민을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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