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8일

잘 지내고 있다. 영양제를 매일 챙겨 먹고, 잠을 충분히 자고, 세 끼 밥도 잘 챙겨 먹고 있다. 누워서 핸드폰으로 애니메이션이랑 영화를 보고, 앉아 있을 기운이 생기면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을 읽는다.

다만 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럭저럭 괜찮은 기분'은 마치 생리통을 심하게 겪고 있는데 진통제가 잘 들어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데 어딘가가 마뜩찮고 불편한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그래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수전증이 생겼다. 오르가즘을 못 느낀다든지, 약효가 잘 듣지 않아 예민해지는 것보다는 수전증을 겪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손이 발발 떨리는 걸 보면 괜히 초조하고 불안한 기분이 든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처럼, 불안해서 손을 떠는 게 아니라 손을 떠니까 불안하다.

오늘은 애인과 만나는 날이었는데, 애인이 간밤에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데이트가 취소되었다. 그래서 좀 느긋하게 잤다가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병원에 들러서 약을 타고 독서실에 왔다. 독서실에 와서 백팩을 주문했고 (수납공간이 더 많은 가방이다) 곧 반납해야 할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있는데, 손이 덜덜 떨려서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초조한 기분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트북을 꺼내서 일기를 쓰고 있다.

요새는 누워서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흥미를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유리 온 아이스, 카케구루이) 뚜부가 추천해준 영화를 봤다(스카페이스). 영상을 보고 싶다는 욕구는 오랜만에 찾아온 것으로, 이 기회에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 둬야 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영상에 집중할 수 있는 때가 이제껏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비엘 애니메이션인 유리 온 아이스와, 미친 여자들이 잔뜩 나오는 레즈비언 페미니즘 애니메이션 카케구루이를 보고 든 생각이 있다. 일단 카케구루이를 보고 든 생각부터 적자면, 나는 미친 여자들이 너무 좋기 때문에 레즈비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또 깨달았다는 것이다. (정말 제대로 미치는 것은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렇게 제대로 돌아 버린 여자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유리 온 아이스를 보고 든 생각은, 이제 연애에 대한 낭만은 비엘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로맨스에 여자가 끼어들면 그것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고, 나는 그것을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읽게 되어 버린다. 나는 비엘적인 관계를 꿈꾸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비엘에 등장하는 남자애가 되고 싶다. 왜냐하면 걔네들은 결핍이 없는, 잘생기고 아름다운 단독자이기 때문이다. 그네들은 정말 낭만적으로 살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남근을 선망하는 레즈비언 같다. 진짜로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 동시에 진짜로 남자가 되고 싶기도 하다. 내가 선망하는 남성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서 그들을 선망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과 자고 싶다는 욕망도 동시에 들지만 말이다.

댓글

  1. 아~~~~~~~일기 넘 잼써요~~~~~~~~~~~~
    -남근선망똘추비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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