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1일

가르치던 한 학생이 과외를 그만두었다. 이유는 학원에 가고 싶다는 것인데, 과외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미리 선불로 받은 과외비를 어떻게든 더 많이 환불받으려는 속셈으로 과외 학생의 어머니는 구구절절 나에게 미안함을 가장한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 때문에 나는 내 고등학교 시절을 입 아프게 떠들어야 했으며 (어제 오늘 30분씩해서 총 1시간이었고 나는 참고로 현재 목감기에 걸려있다) 이번 주 일요일까지 내가 과외 학생을 위해 시간을 빼 놓았기 때문에 4회분만 환불하겠다고 말하자 학생의 어머니는 확 돌변하여 나를 후려쳤다.

학생 어머니는 그간 나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나를 감복시켜 내가 흔쾌히 돈을 많이 돌려줄 것을 기대했으나 (그래서 시험 전 2번 수업을 제하고 30만원을 돌려 받고 싶어한 것이다, 내가 바로 어제 학생을 위해 30분을 초과하면서 수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20만원만 돌려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굳이 가식을 떨 필요가 없어 그 학생 어머니는 나의 칼같음(과외학생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고 과외학생에게 일일히 문자를 하면서 학생의 공부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하지 않고 오로지 주 2회 수업만 열심히 한 것)을 욕하고 선생님처럼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훈계를 받았다. (친엄마한테 훈계 받아도 짜증나는 상황에!) 나는 독서실에서 책을 읽다가 이 어머니의 전화를 받느라 팔자에도 없는 산책을 하면서 30분간 학생 상담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결국은 돈을 많이 환불받고 싶어하는 속셈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애초에 그 용건부터 말해서 깔끔하게 일을 마무리지을 것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갔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각설하고, 그럼 3회 수업 한 것으로 치고 나머지 5회분 환불할게요" 라고 그 어머니의 말을 끊자, 그 어머니는 10초간 침묵하다가 코웃음을 치더니 "그럼 3회분 수업한 걸로 하고 그렇게 하세요"라는 대답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방금 일어난 상황에 어이 없는 분노를 느껴서 (아니 왜 내 노동을 후려친단 말인가? 내가 이번 일요일 수업을 안 한 주제에 그 수업료까지 받으려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한데 말이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나의 분노를 들어 주면서 그런 엄마를 앞으로 상대했으면 더 좆같은 일을 겪었을 것이기에 좋게 생각하라고, 그리고 그런 이상한 엄마들이 정말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한테 전화로 화내면서 그 학생 어머니가 나를 후려치는 과정에서 "선생님을 소개해준 사람한테도 항의를 해야겠다" 라는 식으로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 학생 어머니께 나를 소개한 사람은 엄마였기에, 엄마도 이런 좆같은 전화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론 실천으로 옮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그냥 나를 협박하는 일의 일환이었겠지만) 더더욱 화가 났다.

독서실에서 바로 짐을 싸고 은행이 있는 번화가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애인한테 전화를 걸어서 방금 당했던 어이 없는 일을 토로했다. 돈을 환불하고 나서도 계속 화가 풀리지 않아 내 전화번호부에 등록되어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방금 내가 겪은 일을 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다들 바쁠 평일 오후기에, 그러한 욕망을 꾹 참고 멍을 때린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목감기 때문에 오늘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 마음 먹었는데, 화가 가시질 않아서 집 앞에서 결국 한 대를 피우고 말았다. 담배를 피우면서 트위터로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자살 안 하고 살기에도 너무 힘이 들어서 누군가에게 돈을 받는 일로부터 예상치 못한 액땜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망각했다. 나는 이렇게 좆같은 일을 당하고 나서야 돈에 얽힌 일에는 온화한 사람도 상당히 좆같게 군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 어머니가 어제도 선생님께 정말 죄송하지만 어쩌구 저쩌구 전화를 걸었을 때 이 어머니가 양식이 있는 분이고 미안해서라도 최대한 관대하게 돈을 환불 받을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돈을 덜 환불해주겠다는 말 한 마디가 그런 예상을 박살내고 내가 부당하게 겪어 버린 좆같은 후려침을 불러 왔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고 어이 없었다...

그리고 내일 토요일엔 새로운 학생을 만나러 가는데, 오늘의 경험을 통해 시범 수업 때 미리 환불 규정을 명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료 절반 이상을 환불할 수는 없다는 말을 미리 해야 이런 좆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 그런 분이실 줄 몰랐는데 돈을 안 돌려주시려고 하다니 괘씸하군요 라는 식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생계인은 인간을 불신하게 되고 성격이 상당히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경제적으로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아직 부닥치지 않아서, 그만 험난한 세상이 아닌 온화한 연구실에서 공부만 하는 사람들이 가지기 쉬울 법한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다'라는 가치관을 돈에 얽힌 일에도 적용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인간의 선량함은 친구 사이에서나, 돈이 직접적으로 얽히지 않은 사이에서나 찾자고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리고 내 노동을 후려친 그 어머니는 저주를 좀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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