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3일

요새 끼니를 전적으로 백종원 님한테 의존하고 있다. 맨날 홍콩반점 짬뽕만 처먹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방금은 역전우동 가서 우동 한그릇 뚝딱 순삭하고 왔다... 여기는 새로 생긴 시간제 스터디 카페이며 영문과 리딩에 힘겨워하는 푸름이를 마주하고 헤겔 과제를 끝마치고 남은 한 시간을 적당히 때우기 위해 일기를 쓴다.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홍콩반점 가게의 직원들과 미스사이공 쌀국수 주방 직원들과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편의점 직원들과 온갖 직원들 돈을 벌기 위해 서 있거나 말을 하거나 움직이고 온갖 것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렇게 볼 때 가끔 울적해지는데 이유는 그들에 대한 동정은 아니고 (완전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냥 내가 슬픈 사람이라서 그렇다. 그들에게 개좃같이 굴 소시민들과 그 소시민들도 어디선가 일을 하며 빌어먹고 살고 있을 터이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또 개좃같이 구는 소시민들과 기타 등등의 무한의 연쇄를 상상하며 슬퍼진다. 

이제 개인사업가 -> 백수 -> 비정규직 노동자 가 될 아빠와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엄마를 보며 이들은 이제 나랑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큰 차이가 있는데 그들은 수도권의 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들은 월 이백도 못 버는 사람이 되었지만 나는 월 백도 못 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9급 공무원으로 살고 있는 롤인벤롤트위치인셀한남 친오빠가 우리 집에서 제일 잘 사는 사람이 될 거라는 사실에 세월의 흐름 (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감상이다) 을 느끼고 있다. 어쨌든 가족 중에서는 내가 제일 못 산다. (하하! 새삼스럽지만 그걸 깨닫고 너무너무 어이가 없었다! 10대 때는 야망보지힘조프로젝트열공개빡공해서 엄마아빠 다 패버리고 짱이 될 거야 암튼 짱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엄마아빠 팰 힘도 없고 본가 가면 과외 일 두세시간 하고 흐물텅해져서 침대에 늘러붙는 그런 한심한 대학원생일 뿐이다)

음 돈이 안 돼도 뭔가 의미 있는 일 그런 것을 하고 싶은데 누워 있는 나 자신...
개씹떡파오후방이 된 내 기숙사 방에서 도뽀 히후미 빅망 껴안고 유튜브로 게임 실황 보거나 비엘소설 로판소설 읽는 나...
과제 마감 세시간 전에 과제를 개 좆같은 퀄리티로 겨우 끝마쳐서 제출하는 나 (이건 그래도 좀 뿌듯하다 저번 학기에는 아예 제출 자체를 못 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 도림천 달리기 모임에 참석해서 10초 뛰고 체력 0되는 나...
할 일 하기 모임에 가서 허이모가 끓여준 차 혹은 커피를 마시고 두 시간 정도 의미 있는 일을 하다가 지쳐 떨어지는 나...
나...

그 놈의 나 타령은 언제 끝날까!
얼마 전에 푸름이랑 준호랑 다혜랑 이렇게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내가 정말 타인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언가 내가 크게 잘못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나가타 카비 님의 감동실화 만화 중에 ‘이제까지 사랑 받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사랑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어’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도 그런 거 같다...

나도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타인에게 지독한 열정을 느끼고 싶다 (이유: 그러면 지금보다 인생이 괴롭겠지만 재미는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나는 내 밖으로 헤어나오지를 못 한다 그 이유는 나는 나를 엄청 사랑하고 그만큼 엄청 싫어하고 그만큼 엄청나게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다 ~나는 나와 연애한다~

내가 무려 7년간 연애를 했다는 사실이 어이 없다..
분명 두 달 전까지는 그랬는데...
이제는 번탈녀가 될 지도 모르는 나의 미래의 가능성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려 애 쓰고 있다. (이유: 타인에게 열정이 없고 타인에게 잘 할 생각이 없음 일단 죽고 싶다는 생각을 멈춰야 가능할 것 같음)

번탈녀 될 거라는 자조에 친구가 너는 뭘 원하니 라고 물어서 나는 죽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 (진짜 원하는 것을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철학을 내 삶이 끌어들인 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 어이없다
술 마약 넷플릭스에 의존한 브래드 피트
신림 단칸방에서 담배 커피에 찌든 발터 벤야민
밥을 먹고 시를 쓰면 된다고 말한 최승자님
오늘도 바람에 별빛이??? 이거 맞나 ㅈㅅ

과외 할 때마다 못 해 먹겠다 진짜 죽고 싶다 속으로 생각하지만 몸은 착실히 과외를 하러 가는 사람...
마음 맞고 취향 맞는 오타쿠 친구를 사귀고 싶다
실존하는 인물 말고 가상에 진심인 인간들과 파오후 쿰척쿰척하고 싶다
삶이 즐겁고 싶다
심심해 죽는다


죽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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