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일
일기를 안 쓴 지 한 달 쯤 됐다. 일이주 전에 준호가 요새 사람들이 개강해서 그런지 일기를 잘 안 쓴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준호에게 본인부터 실천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는데 준호는 뻔뻔하게도 자기에겐 쓸 만한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일기를 쓴다면 추석 때 아빠가 울었던 일을 쓰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데, 추석 전날 굉장히 자리가 불편한 (마치 힙한 카페처럼 테이블이 무릎께에 오는 그런 이상한 오리고기 집이었다) 곳에서 아빠는 돌이켜 보니 너희(나와 친오빠)에게 좋은 모습도 보이지 못하고 옛날에 ‘그런 식’으로 굴었던 것에 대해 모든 것을 후회한다며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울었다. 60줄이 가까워진 한 중년 남성이 자신이 제대로 된 가부장이 되는 데 실패했음을 한탄하며 엄청나게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그렇게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며, 나는 생리적으로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가족과 선을 그으며 살았고, 더 이상 당신들이 필요 없다는 태도를 취했는데, 그 순간에는 아빠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 보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친오빠와 엄마는 울지 않았다. 나중에는 나만 울게 되었는데, 내 옆에는 아빠가 앉아 있었고 아빠는 내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밥을 다 먹을 즈음에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어제부로 3회기 째였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래서 oo씨는 어떻게 느꼈어요?”라는 식의, ‘다른 사람의 평가 말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느냐’를 ‘집요하게’ 물었다. 내 감정? 내 생각? 그런 것을 다시 살려내려고 하면 괴성과 같은 울분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상담이 끝날 즈음 선생님은 오늘 어떤 기분이 드셨냐고 묻는데, 어제는 슬프다고 대답했다. 저번 주에도 슬프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 나를 억누르고 살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으며, 한편으로는 선생님께 상담에 대한 불신, 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이미 답이 정해져 있고 이건 더 이상 상담이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오롯이 내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 아닐까요, 같은 것을 물었다. 선생님은 웃으면서 그래도 세 번밖에 안 했는데 조금만 더 해 보죠, 하고 대답했다. 다음 주에도 또 상담을 받으러 갈 것이다.
나는 요새 추악한 감정에 휩싸여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배부른 사람들’을 분류해놓고 그들이 SNS로 징징거리는 것을 보면서 질투와 분노가 들고, 나 빼고 다른 대학원 친구들은 모두 장학금을 받는다는 사실에 질투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며 생활비를 벌러 과외를 가고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보게 되는 사실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사실이 싫고, 부모에게 편하게 지원을 받고 응원을 받는 또래의 사람들을 질투한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싶다. 나는 정말 오만하다. 오만하니까 남의 고통 같은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예전에는 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 빼고 모든 게 가치가 없으니까 타인을 멋대로 재단하고 무시하고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이다. 나는 겸손해져야 한다. 겸손해져서, 필요하면 도움도 요청할 줄 알아야 하고 타인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야 한다. 나는 이제껏 혼잣말만 했다. 혼잣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면 건성으로 대답했다. 내가 힘드니까 더 이상 남들을 배려하고 싶은 마음이 눈꼽만큼도 없어지니까 내가 참 오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구는 그런 추악한 감정도 ‘있는 그대로’ 흘려보내라고 했다. 아무튼 인정은 하되, 거기에는 빠져들지 말고, 보내라고. 그걸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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