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8일
아주 화가 난 상태로 본가 근처의 정신병원으로 갔다. 놀랍게도 대기실에 엄마를 마주쳤다. 엄마는 수면제를 처방 받으러 온 거였고, 나한테 아직도 계속 힘든 거냐고 약 계속 먹으면 안 좋은데, 라는 소리를 해서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엄마한테 내가 진료할 때 들어 오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상태가 안 좋은지 직접 보라고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신병원은 풀방이었다. 엄마는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았고, 과외 문의 들어왔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학기는 끝났냐,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과외 문의 들어왔고 1월 1일 저녁에 시범수업을 하러 가야 하고 학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뭐가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모든 게 다 힘들다, 과외도 힘들고, 대학원도 힘들다고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라고 말했고 나는 화가 나서 그러면 어떻게 생활비를 버냐고 물었다. 엄마는 집으로 오라고 그랬다.
그러다가 엄마가 먼저 진료실에 들어갔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나오고 나서 또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들어가서 선생님께 저 진료 받을 때 엄마도 들어오라고 말했는데 혹시 그런 말씀 안 하셨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어머니가 진료받으면서 내가 당분간은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와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고 했는데, 원한다면 어머니 들어오시게 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뒤늦게 들어왔다.
엄마가 들어오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서 말이 뭉개질 정도였다. 말이 뭉개지는 건 오랜만이었는데, 아빠한테 체벌을 당할 때 말고는 울음이 말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아무튼 어떻게는 울음에 잡아먹히지 않는 말을 꺼냈는데, 당연히도 두서가 없고 유치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힘들었는데, 힘든 건 하나도 안 들어주고, 약 안 먹으면 병신이 되는데, 그런데 나는 서울대 나왔다는 이유로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이 없다고, 뭐 그런 식으로 말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울었고 선생님은 지금 버티는 것만으로도 용하다고 하면서 어머님께서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어떻게?"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졌고 선생님께서 뭐라 뭐라 말씀하셨는데 대충 딸의 힘듦을 이해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라 뭐 이런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무튼 약은 받던 대로 받았고 자낙스나 추가로 처방받았다. 진료실에서 나오니까 엄마가 내 병원비를 계산했다. 약국에서도 똑같이 내 약값을 계산했다.
엄마는 저녁을 먹자고 했다. 먹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데 너 먹고 싶은 거를 먹자고 해서, 먹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너 죽 좋아하잖아 하고 본죽에 들어갔는데, 거리를 걸으면서 도대체 너는 엄마나 아빠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니? 라고 물었고 그때 나는 악에 받쳐 있었기 때문에 일도 못하고 병신이 되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나를 평생 먹여 살리는 거라고 대답했고 엄마는 어이 없다는 얼굴로 내 나이가 이제 예순인데 너를 평생 먹여 살리라는 거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심이야? 이러길래 진심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거 알고 있고 내가 엄마 아빠한테 원하는 건 죄다 그런 불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본죽에 들어와서, 죽을 시키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엄마 아빠 세상 탓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말하자 엄마는 그럼 니 탓은 하나도 없는 거고? 라고 해서 응 이라고 대답하고 욱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럼 엄마가 생각하는 내 탓이 뭔데? 내가 왜 이렇게 된 건데? 라고 하니까 엄마는 약간 말을 말자 하고 침묵하다가 약간 톡 쏘듯이 "너는 너무 진지해!" 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어서 조금 놀랐다. 아무튼 나는 죽고 싶고 엄마나 아빠나 다 스트레스 받고 가족 여행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그냥 나 자식 취급 하지 말고 엄마 아빠 오빠 셋이서 살고 나는 죽어버릴 거다 뭐 이렇게 악에 받쳐 이야기를 했는데 건너편에 앉아서 테이크아웃을 기다리는 한 아주머니가 웃는 거 같았다. 엄마는 "니가 정말 악에 받쳤구나?" 라고 했고 나는 응 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해서 기분이 나아진다면야, 어렸을 때 이런 어리광을 받아 줬어야 했는데 내가 그때 못 받아준 업보를 이렇게 받는 거니까 마음껏 하라고 해서 마음껏 하기로 했는데 이미 다 털어 놓아 버려서 뭐라 할 게 더 남아있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의 이야기가 아침 드라마같은 구질구질한 그런 거라서 엄마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카운터를 쳐다 보기도 했고 그게 너무 웃겼다. 나도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웃는 것을 봐서 그런 거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엄마는 대학원이 뭐라고, 과외가 뭐라고, 너 사는 게 중요하지 진짜로 그냥 너 사는 것만 생각하라고 했다. 나도 네 나이 때 죽고 싶었는데 너랑 내가 완전 똑같지가 않으니까 너의 기분을 한 육칠십퍼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며, 아무튼 매사 진지해하지 말고 뭐라고 하지도 않을 테니까 쉬어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뭐랄까 처음부터 엄마 얼굴을 본 순간 아무 것도 감추지 않고 말해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엄마랑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엄마와의 대화에서 기분이 썩 괜찮아졌음을 깨달았다.
본죽에서 나오고 엄마가 카페에 가자고 해서, 나는 지쳐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엄마가 네가 그렇게 계속 누워 있으니까 축 처지고 그러는 거야 아무튼 카페 가서 나랑 이야기 해 하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럼 그러자고 대답했다. 병원 근처 이마트에 주차를 해 뒀는데 이제 일정 금액 이상 이마트에서 뭘 사야 주차비가 들지 않는다고, 이마트에 들어가서 너 필요한 거 좀 사자고 말했다. 당장 필요한 게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팬티나 몇 장 사달라고 했다. 무난한 면 팬티를 세 장 집어들고 엄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더 필요한 게 있는지 살펴보는 거냐고 내가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계산을 하고 이마트에서 나와서 전에도 와 봤던 카페에 갔다. 엄마는 커피 마시면 잠 안 올거라고, 나는 밀크티가 좋다고 그래서 나도 그거를 시켰다.
밀크티를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고 대충 진로 이야기 돈 이야기 등등을 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 (약 1, 2년간)을 견디면 내가 걱정하는 것들이 대충 사라진다는 거여서 안심이 많이 됐다. 진로에 대해서는, 엄마가 전보다는 훨씬 더 내가 공부하고 싶어한다는 꿈을 인정해 주었는데, 그래도 너도 지금 대학원이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걱정이 된다,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 보자, 이러면서 엄마가 자신의 소중된 사연을 이야기 해 주었는데 뭐냐면 자기가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거랑 외할아버지 이모랑 같이 살던 시골집 이야기였다.
엄마가 말하기로 자기 집은 비포장도로 옆에 있는 시골집이었고, 차가 지나가면 비포장도로의 흙먼지가 풀풀 집 안으로 날리는데, 자기는 그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누워 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누워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고 한다. 그리고 공장에 가서 일하는 엄마가 집에 오기를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못 왔다고 한다) 손 꼽아 기다렸는데 엄마는 사랑에 굶주려서 어쨌든 가끔 오는 엄마한테 계속 찡찡댔고 자기 언니는 그러지 않아서 엄마의 엄마 입장에서 일하고 겨우 집에 왔는데 오면 투덜대는 자기 같은 자식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엄마한테 지랄하는 게 마치 그때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지랄했던 거의 업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늘 외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나를 어렸을 적의 엄마로, 외할머니에게 불효를 한 죄를 벌하는 대법관으로 둔다.
그러다가 엄마는 이 나이 먹고도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나 또한 친구들 중 가장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엄마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그 부끄러움에 같이 공감했다. 그때 정말로 모녀관계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 부끄러움으로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뒤따랐다. 엄마가 곧 예순인데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나도 예순이 되어서도 그러겠구나 하는 예감 말이다.
그리고 결혼 이야기... 엄마는 아무튼 남자가 싫었고 (이유: 아버지로 인한 남혐) 불우하고 아무튼 주변에 괜찮은 사람도 없고 그래서 자존감이 무척이나 낮은 상태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번탈녀로 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으로 덕을 볼 생각을 전혀 안 하고 그냥 상대가 사지멀쩡 멘탈건강한 남자라면 자기 혼자 열심히 노력하면 결혼 생활이 잘 될 거라고 믿어서 아빠랑 결혼했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대고 아니 당연히 결혼 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양쪽이 하는데 엄마 혼자 노력한다고 잘 될리가 없잖아, 라고 말했고 엄마는 그때는 그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튼 엄마는 충동적인 사람이었고 엄마의 결혼도 다분히 충동적인 거라는 걸 알자 내가 대학원을 그만 두려고 하는 것도 그런 충동의 일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엄마한테 내 친구들은 다 내가 재능이 있고 정신만 차리면 잘 될 거라고 대학원 그만 두는 것을 말린다고 이야기했더니 친구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 하는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약간 놀랐다.
아무튼 뭐 진로 이야기... 기타 등등... 이야기하고 나는 엄마한테서 해결책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위로를 받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우쭈쭈 그랬어요? 하고 나를 갑자기 끌어 안았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내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이야기... 엄마 왈 자기가 40대까지는 계속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랬는데, 이제 곧 예순을 앞두는 나이가 되니까 놀랍게도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피어날 수 없고 저물어갈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게 축복 같기도 하고 저주 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들뢰즈의 자살을 떠올렸다. 그 사람 그럼 대단한 거네, 싶어서.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가면서 엄마는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했다. 나는 먹는 게 싫다고 했다. 엄마가 "무의식 중에 너가 널 말려 죽이고 싶은 거지? 나도 옛날에 그랬어" 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고 엄마가 정말 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ㅋㅋ됐다.
토요일 과외는 취소되었고, 나는 오늘 낮에 일어나고 씻고 기숙사로 갔다. 엄마는 아무튼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 밝고 긍정적으로, 이런 이약를 수없이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대충 써서 내라는 레포트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래서 하는 것조차 안 하고 있다. 하려고 하면 늘 열심히 하려고 들어서. 그리고 밝고 긍정적이 되지는 못했다. 당분간 못 할 것이다. 친구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꼴 보기 싫고 동시에 그들이 너무 그립다.
나는 연명하듯이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멋지게 계획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늘 어떤 것을 회피하거나 대충 수습하거나 연명하듯이, 추레하게 살게 되고, 그런데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연명했다. 할 일을 회피하고, 먹다 남은 피자를 먹어서 영양분을 공급하고, 일기를 썼다. 이렇게 산다.
정신병원은 풀방이었다. 엄마는 자연스레 내 옆에 앉았고, 과외 문의 들어왔냐는 이야기를 하다가, 학기는 끝났냐,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과외 문의 들어왔고 1월 1일 저녁에 시범수업을 하러 가야 하고 학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엄마가 뭐가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모든 게 다 힘들다, 과외도 힘들고, 대학원도 힘들다고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 라고 말했고 나는 화가 나서 그러면 어떻게 생활비를 버냐고 물었다. 엄마는 집으로 오라고 그랬다.
그러다가 엄마가 먼저 진료실에 들어갔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나오고 나서 또 한참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들어가서 선생님께 저 진료 받을 때 엄마도 들어오라고 말했는데 혹시 그런 말씀 안 하셨냐고 물었고, 선생님은 어머니가 진료받으면서 내가 당분간은 약을 먹어야 하는 이유와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말씀을 드렸다고 했는데, 원한다면 어머니 들어오시게 해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뒤늦게 들어왔다.
엄마가 들어오자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아서 말이 뭉개질 정도였다. 말이 뭉개지는 건 오랜만이었는데, 아빠한테 체벌을 당할 때 말고는 울음이 말을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아무튼 어떻게는 울음에 잡아먹히지 않는 말을 꺼냈는데, 당연히도 두서가 없고 유치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힘들었는데, 힘든 건 하나도 안 들어주고, 약 안 먹으면 병신이 되는데, 그런데 나는 서울대 나왔다는 이유로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어이 없다고, 뭐 그런 식으로 말하려고 애를 썼다. 나는 울었고 선생님은 지금 버티는 것만으로도 용하다고 하면서 어머님께서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어떻게?"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졌고 선생님께서 뭐라 뭐라 말씀하셨는데 대충 딸의 힘듦을 이해하고 격려하고 응원하라 뭐 이런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무튼 약은 받던 대로 받았고 자낙스나 추가로 처방받았다. 진료실에서 나오니까 엄마가 내 병원비를 계산했다. 약국에서도 똑같이 내 약값을 계산했다.
엄마는 저녁을 먹자고 했다. 먹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데 너 먹고 싶은 거를 먹자고 해서, 먹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너 죽 좋아하잖아 하고 본죽에 들어갔는데, 거리를 걸으면서 도대체 너는 엄마나 아빠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니? 라고 물었고 그때 나는 악에 받쳐 있었기 때문에 일도 못하고 병신이 되어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누워 있는 나를 평생 먹여 살리는 거라고 대답했고 엄마는 어이 없다는 얼굴로 내 나이가 이제 예순인데 너를 평생 먹여 살리라는 거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진심이야? 이러길래 진심 아니라고 대답했다.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거 알고 있고 내가 엄마 아빠한테 원하는 건 죄다 그런 불가능한 것들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쨌든 본죽에 들어와서, 죽을 시키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엄마 아빠 세상 탓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말하자 엄마는 그럼 니 탓은 하나도 없는 거고? 라고 해서 응 이라고 대답하고 욱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럼 엄마가 생각하는 내 탓이 뭔데? 내가 왜 이렇게 된 건데? 라고 하니까 엄마는 약간 말을 말자 하고 침묵하다가 약간 톡 쏘듯이 "너는 너무 진지해!" 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어서 조금 놀랐다. 아무튼 나는 죽고 싶고 엄마나 아빠나 다 스트레스 받고 가족 여행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하고 그냥 나 자식 취급 하지 말고 엄마 아빠 오빠 셋이서 살고 나는 죽어버릴 거다 뭐 이렇게 악에 받쳐 이야기를 했는데 건너편에 앉아서 테이크아웃을 기다리는 한 아주머니가 웃는 거 같았다. 엄마는 "니가 정말 악에 받쳤구나?" 라고 했고 나는 응 이라고 대답했다. 그래, 네가 그렇게 해서 기분이 나아진다면야, 어렸을 때 이런 어리광을 받아 줬어야 했는데 내가 그때 못 받아준 업보를 이렇게 받는 거니까 마음껏 하라고 해서 마음껏 하기로 했는데 이미 다 털어 놓아 버려서 뭐라 할 게 더 남아있지 않았다.
어쨌든 우리의 이야기가 아침 드라마같은 구질구질한 그런 거라서 엄마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카운터를 쳐다 보기도 했고 그게 너무 웃겼다. 나도 건너편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웃는 것을 봐서 그런 거일수도 있겠다. 아무튼 엄마는 대학원이 뭐라고, 과외가 뭐라고, 너 사는 게 중요하지 진짜로 그냥 너 사는 것만 생각하라고 했다. 나도 네 나이 때 죽고 싶었는데 너랑 내가 완전 똑같지가 않으니까 너의 기분을 한 육칠십퍼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며, 아무튼 매사 진지해하지 말고 뭐라고 하지도 않을 테니까 쉬어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뭐랄까 처음부터 엄마 얼굴을 본 순간 아무 것도 감추지 않고 말해야겠다 이 생각을 하고 엄마랑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엄마와의 대화에서 기분이 썩 괜찮아졌음을 깨달았다.
본죽에서 나오고 엄마가 카페에 가자고 해서, 나는 지쳐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엄마가 네가 그렇게 계속 누워 있으니까 축 처지고 그러는 거야 아무튼 카페 가서 나랑 이야기 해 하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고, 그럼 그러자고 대답했다. 병원 근처 이마트에 주차를 해 뒀는데 이제 일정 금액 이상 이마트에서 뭘 사야 주차비가 들지 않는다고, 이마트에 들어가서 너 필요한 거 좀 사자고 말했다. 당장 필요한 게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팬티나 몇 장 사달라고 했다. 무난한 면 팬티를 세 장 집어들고 엄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더 필요한 게 있는지 살펴보는 거냐고 내가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계산을 하고 이마트에서 나와서 전에도 와 봤던 카페에 갔다. 엄마는 커피 마시면 잠 안 올거라고, 나는 밀크티가 좋다고 그래서 나도 그거를 시켰다.
밀크티를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고 대충 진로 이야기 돈 이야기 등등을 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 (약 1, 2년간)을 견디면 내가 걱정하는 것들이 대충 사라진다는 거여서 안심이 많이 됐다. 진로에 대해서는, 엄마가 전보다는 훨씬 더 내가 공부하고 싶어한다는 꿈을 인정해 주었는데, 그래도 너도 지금 대학원이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걱정이 된다,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 보자, 이러면서 엄마가 자신의 소중된 사연을 이야기 해 주었는데 뭐냐면 자기가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었던 거랑 외할아버지 이모랑 같이 살던 시골집 이야기였다.
엄마가 말하기로 자기 집은 비포장도로 옆에 있는 시골집이었고, 차가 지나가면 비포장도로의 흙먼지가 풀풀 집 안으로 날리는데, 자기는 그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항상 누워 있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누워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고 한다. 그리고 공장에 가서 일하는 엄마가 집에 오기를 (한 달에 한 번씩밖에 못 왔다고 한다) 손 꼽아 기다렸는데 엄마는 사랑에 굶주려서 어쨌든 가끔 오는 엄마한테 계속 찡찡댔고 자기 언니는 그러지 않아서 엄마의 엄마 입장에서 일하고 겨우 집에 왔는데 오면 투덜대는 자기 같은 자식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내가 엄마한테 지랄하는 게 마치 그때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지랄했던 거의 업보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늘 외할머니 이야기를 할 때면 나를 어렸을 적의 엄마로, 외할머니에게 불효를 한 죄를 벌하는 대법관으로 둔다.
그러다가 엄마는 이 나이 먹고도 엄마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토로했다. 나 또한 친구들 중 가장 엄마 이야기를 많이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엄마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그 부끄러움에 같이 공감했다. 그때 정말로 모녀관계를 떠나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 부끄러움으로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이 뒤따랐다. 엄마가 곧 예순인데 엄마의 엄마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나도 예순이 되어서도 그러겠구나 하는 예감 말이다.
그리고 결혼 이야기... 엄마는 아무튼 남자가 싫었고 (이유: 아버지로 인한 남혐) 불우하고 아무튼 주변에 괜찮은 사람도 없고 그래서 자존감이 무척이나 낮은 상태에서 이대로 가다가는 계속 번탈녀로 살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으로 덕을 볼 생각을 전혀 안 하고 그냥 상대가 사지멀쩡 멘탈건강한 남자라면 자기 혼자 열심히 노력하면 결혼 생활이 잘 될 거라고 믿어서 아빠랑 결혼했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대고 아니 당연히 결혼 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양쪽이 하는데 엄마 혼자 노력한다고 잘 될리가 없잖아, 라고 말했고 엄마는 그때는 그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튼 엄마는 충동적인 사람이었고 엄마의 결혼도 다분히 충동적인 거라는 걸 알자 내가 대학원을 그만 두려고 하는 것도 그런 충동의 일환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뭐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엄마한테 내 친구들은 다 내가 재능이 있고 정신만 차리면 잘 될 거라고 대학원 그만 두는 것을 말린다고 이야기했더니 친구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어 하는 당연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친구들의 말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약간 놀랐다.
아무튼 뭐 진로 이야기... 기타 등등... 이야기하고 나는 엄마한테서 해결책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위로를 받기를 원했다는 이야기를 하자 우쭈쭈 그랬어요? 하고 나를 갑자기 끌어 안았는데 순간적으로 나는 내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죽고 싶다는 이야기... 엄마 왈 자기가 40대까지는 계속 그렇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랬는데, 이제 곧 예순을 앞두는 나이가 되니까 놀랍게도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피어날 수 없고 저물어갈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자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게 축복 같기도 하고 저주 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들뢰즈의 자살을 떠올렸다. 그 사람 그럼 대단한 거네, 싶어서.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가면서 엄마는 밥을 잘 챙겨 먹으라고 했다. 나는 먹는 게 싫다고 했다. 엄마가 "무의식 중에 너가 널 말려 죽이고 싶은 거지? 나도 옛날에 그랬어" 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고 엄마가 정말 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ㅋㅋ됐다.
토요일 과외는 취소되었고, 나는 오늘 낮에 일어나고 씻고 기숙사로 갔다. 엄마는 아무튼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 밝고 긍정적으로, 이런 이약를 수없이 했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대충 써서 내라는 레포트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래서 하는 것조차 안 하고 있다. 하려고 하면 늘 열심히 하려고 들어서. 그리고 밝고 긍정적이 되지는 못했다. 당분간 못 할 것이다. 친구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꼴 보기 싫고 동시에 그들이 너무 그립다.
나는 연명하듯이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멋지게 계획적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늘 어떤 것을 회피하거나 대충 수습하거나 연명하듯이, 추레하게 살게 되고, 그런데 사는 게 원래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오늘도 연명했다. 할 일을 회피하고, 먹다 남은 피자를 먹어서 영양분을 공급하고, 일기를 썼다. 이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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