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31일
1. 감히 사는 게 무섭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감히'라는 부사를 붙인 것은 내게 삶을 무서워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체력과 정신력 모두 약하다. 그렇기에 조급해서는 안 되고 내 약함에 맞는 페이스대로 살아야 한다. 내가 당장 먹고살 돈이 없어서 억지로 혹사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나는 부모 집에 얹혀 살고 있고, 내가 얹혀 산다고 해서 부모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는 것도 아니다. 집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침대는 푹신하고, 맛있는 흰쌀밥은 부족하지 않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화하며, 전혀 초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되뇌어도, 이 글을 쓰는 나는 계속 불안해서 손이 떨리는 것이다. 나의 인식이 왜곡되는 것을 이성으로써 교정해도, 몸은 불안을 호소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무고한데 부당한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2. 삶이라는 형벌로 괴로운 와중에는 (정말로 철학충이 좋아할 법한 표현을 쓰게 되어 부끄러운데, 내가 철학충이라 어쩔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의 말에 정말로 고마움을 느끼고 그것들에 계속 목 마르게 된다. 내 글이 좋다는 말, 에쎌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죠 같은 말... 이런 말들에 기쁨을 느끼는 게 가끔은 내가 죽지 않으려고 그 말에 엄청나게 의미 부여를 하고 거기에 매달리는 게 아닐까 싶다. 죽고 싶지는 않다... 나를 알게 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 무섭다. 무서움과 버거움과 피곤함이 나를 갉아 먹는데 나는 그 고통에 나 자신을 내어주면서 자연사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