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즈음이면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우울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걸을 수도 있고 책도 읽을 수 있으니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기분은 울적하고, 나를 울적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도처에 널려 있으니, 그 많은 것들을 일일이 하나 하나 구체화하여 따지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 그냥 '환절기 탓이야'로 퉁치기로 했다. 오늘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는 날이라 의사 선생님한테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차차 나아질 거라는 말을 했다. 그냥 더 나빠져도 그러려니 할 것입니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예 라고 대답했는데, 곧바로 작년 이때 즈음을 생각하니 의사 선생님의 말에 정말로 동의했다. 물론 정말로 동의할 수 있었어도 별로 희망찬 기분은 들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랬다. 이제 기숙사에 살게 되어 병원에 자주 오기 힘들고, 또 온다 하더라도 토요일 오전밖에 시간이 안 되니 약을 넉넉하게 처방해주실 수 있겠냐고 부탁했고, 선생님은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한달치 약을 타 왔다. 일기를 써야지, 라고 마음 먹으면서 쓸 거리를 많이 생각해 두어도 결국 하던 말만 하게 되는 것 같다. 역시 관성을 이기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일기를 아예 안 쓰는 것보다는 관성에 젖어서 뭐라도 기록하는 게 낫겠지. 관성적으로 내가 쓸 수 있는 것은 우울증 투병일지, 가족에 대한 것, 이 정도이다. 가족에 대한 것을 쓰려다가 가족이 정말 나를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는 듯 해서 오늘은 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우울증 투병일지만 썼다. 관성을 이기기 위해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며칠 전에 랙돌님을 만나서 자주 가는 찻집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타쿠 이야기, 창작에 대한 이야기, 병에 대한 이야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등. 랙돌님한테 빨리 상태가 좋아져서 그림 많이 그릴 수 있었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랙돌님은 나한테 글 좀 써주세요 라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영업은 연성으로 해야 하는데, 2차창작 글을 쓴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