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17일

늘 고질적으로 앓던 불면증을 도저히 못 견디겠는지 엄마가 자꾸 나한테 정병약을 물어봐서, 내가 다니는 정신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거기서 받은 약이 잘 듣는 모양인지, 약을 먹으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잤다며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정신병원 의사 선생님이 참 호감형이라는 말도 했다. 그분은 곰돌이 인형처럼 푸근하게 생긴 젊은 남자 선생님인데, 아무튼 계속 이 분이 내 주치의가 돼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으신 분이다. 아무튼 엄마한테도 좋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엄마가 타온 약이 뭔지 궁금해서 엄마의 약 봉투를 들여다 보았다. 내가 먹는 수면진정제 한 알과 항우울제 계열의 약 두 종류였다. 항우울제는 꾸준히 먹는 게 좋으니까 엄마한테 매일 먹을 것을 권하니까, 엄마가 그럼 약에 의존성이 생기면 어떡하냐고 거절했다.

며칠 뒤 병원에 가는 날이 되어서, 의사 선생님께 엄마를 언급하면서 엄마가 너무 잠이 안 올 때만 약을 먹겠다고 한다, 그런데 항우울제는 중간에 거르고 그러면 안 좋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의사 선생님은 매일 먹는 게 좋은건 맞는데 그 나이대 어르신들은 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고, 복약지도를 충실히 따르지 않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치료의 과정 중에서 겪는 거라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참고해서 다음에 어머님 오실 때 그런 것 관련해서 잘 말씀드려 보겠다고 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고 병원에서 나와 늘 그랬던 대로 약국에 가서 약을 타 왔다.

그러고 나서 한 며칠 지났던가, 엄마는 다시 약을 받으러 병원에 들른 모양이다. 의사 선생님이 먼저 말을 꺼냈는지, 아니면 엄마가 먼저 물어봤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는 별로 우울하지 않다, 우울함에 대해서는 인지적으로 혹은 의지 등등으로 극복하고 있다, 단지 자기는 불면이라는 신경증적인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자기는 너무 잠이 안 올 때만 약의 도움을 받고 싶다, 그리고 정신병약은 의존성이 있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나한테 말했다. 아무튼 정신병약 중에서 항우울제 등등의 경우엔 의존성이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의사가 약에 의존성이 있는 건 맞고 그럼 OOO 님 처방하는 약 중에서 의존성 있는 건 뺄게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는 내가 걱정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엄마가 정신병약, 특히 항우울제에 의존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내가 몇 년 동안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약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리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약 없이는 못 사는 몸은 맞는데, 그 이유가 내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를 마약 같은 정신병약에 의존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을 비롯하여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본래적으로 타고난 예민한 성향 등등으로 약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라는 요지의 말을 돌려서 했다. 어쩌면 뭉뚱그려 말하는 바람에 더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아무튼 약 없으면 난 일어나지도 못 할 거고 일도 못 할 거고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정신병원을 다니게 된 거다,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엄마가 그렇게 힘드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난 늘 죽고 싶다고 대답했다. 엄마도 자기 또한 그렇다고 말했다. 네 나이 때는 더 심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웃겼다. 그런 주제에 의사한테 자기는 우울하지 않다고 말했단 말인가?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우울증의 가족력 같은 것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아버지, 즉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도 우울증 환자 비슷한 거였을 거다. 조금이라도 힘든 것을 못 견디고 맨날 누워만 있었다는 외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의 엄마를 우울하게 만든 주요한 요소 중 하나였는데, 사실 그게 외할아버지의 '잘못'이 아닐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진실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진짜로 자기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중증 우울증자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엄마의 말대로 '의지가 나약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고. 어찌 됐든 외할머니는 공장에 나가 일해야 했고 외할아버지는 누워 있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뻑뻑 피우거나 그러면서 살다가 죽었다. 그래도 외할아버지는 (심하게 말하자면) '주제파악'을 잘 해서 담배값과 술값 빼고서는 극도로 절약했기 때문에 외할아버지가 생전에 어찌저찌 아껴둔 돈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사는 허름한 빌라를 리모델링하는 데 쓰였고...리모델링해서 깔끔해진 집에서 외할머니는 혼자 살게 되었고....그러다가 척추신경에 문제가 생겨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외할머니는 입원을 하게 되었고...등등등... 너무 주제 밖을 벗어나는 것 같아 이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자. 아무튼 외할아버지는 우울증 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더 쓸 말이 없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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