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12일

저번 일기를 업로드한 게 4월 11일이니까 약 한 달 만에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를 안 쓰는 동안 잘 살았냐? 라고 한다면 못 살겠습니다 (사실 그럭저럭 살만합니다) 원한다면 죽여 주십시오 ㅋㅋ 상태였다. 어버이날 챙겨주려고 아빠한테 월요일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 기준으로 어제 말이다)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고 그 덕에 나는 부모님 집에 사흘이나 머물렀는데 엄마는 다시 조심스럽게 사근사근해졌고, 그걸 보면서 엄마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거 같아 다행이다 라고 생각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는 사실에 은근슬쩍 또 열이 받았다. 이렇게 엄마에 대한의존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어 이것도 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범사에 감사 (그만) 어쨌든 엄마랑 설 즈음에 송도에 갔던 삼계탕집이 동네 근처에 가맹점이 생겼다고 금요일 저녁에는 거기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그리고 집에서 누워 있는 동안 엄마가 수시로 챙겨주는 딸기와 오렌지를 먹고 거의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먹었다 (이유: 엄마가 차려준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집 근처 이디야에 가서 계몽의 변증법 발제문을 완성했는데 내가 바보같이 노트북은 들고 왔는데 노트북 어댑터는 안 들고 와서 (어댑터 없으면 밧데리 접지에 문제가 있는지 노트북 화면이 미친듯이 깜빡거린다) 아이패드 워드로 작성했다. 아이패드로는 '글'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예쁘게 편집은 못 했고 그냥 에버노트에 썼던 초안을 긁어다가 ~했음. 등의 문장을 ~한다 라는 식으로 고쳐 쓰고 칸트 윤리에 대한 주판치치의 입장 부분은 아예 뺐다. (너무 설명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귀찮아서) 그리고 더 추가로 쓴 건 9문단 요약 부분이었고 나머지는 그냥... 뭐 지웠다가 뺐다가 해서 뭔가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요약이 된 발제문이 되었는데 더 보충하기 귀찮아서 그냥 집으로 갔다. (안 그래도 비 와서 기분 재기) 본문을 읽은 사람이라면 내 발제문 읽고도 괜찮겠지... 안 괜찮은 사람은 본문을 대충 읽은 사람일텐데 그건 뭐 오늘 설명을 하거나 교수님한테 쿠사리를 먹으면 된다. 

아무튼 과외도 했고 대부분의 시간은 누워 있었는데 부모님 집에 있는 싸구려 메모리폼 베개가 너무 별로라서 계속 목과 어깨가 결렸다. 파스를 덕지덕지 붙은 나에게 엄마는 방에 있는 한방파스를 가져가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안 가져왔다)

월요일 오후 즈음에 아빠가 왔다. 확실히 캠핑장 관리인 일이 육체적으로 힘든지 안색이 시커멓고 많이 피로해 보였다. 아빠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친구한테서 받은 폐기처분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왔고 그것들을 냉장고에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나는 아빠한테 생일 선물을 안방에 두었다고 말했다. (그건 이마트에서 한 장에 만원 정도 하는 드로즈 두개였다) 그리고 카네이션 화분을 가리키며 늦었지만 어버이날 축하해 라고 말했고 아빠는 고맙다고 했다. 

월요일에 저녁 외식을 일찍 할 줄 알고 아빠가 오기 전까지 그냥 우유 한 컵만 마셔서 배가 무척 고팠는데 생각해보니 엄마가 오늘 일이 늦게 끝날지도 모르고 어쩌면 우리가 외식한다는 것도 까먹었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 언제 오지, 나 내일 발표라서 빨리 가야 하는데, 하고 중얼거리니까 아빠가 그냥 먼저 가라고 했다. 밥은 나중에 먹자면서. 그래서 나는 집에 있는 밥을 데워먹고 남은 스팸이랑 그걸 같이 먹었는데 아빠가 거실에 앉아서 '돈 많이 부족하냐? 솔직히 말해봐' 라고 물어봤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아무튼 지금은 괜찮다는 거지? 라고 아빠는 되물었고 내 비쩍 마른 몸을 보면서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냐고 물어서 학교 밥 먹고 친구랑 공부하면 친구랑 같이 외식한다고 말했다. (반만 진실이다) 아무튼 밥을 꾸역꾸역 넘기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억지로 참았고 빨리 짐을 챙겨 나갔다. 다행히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는 금방 왔고 나는 버스에 앉아서 울었다. 얼마 전에 가슴이 미어지려고 산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주인공 애비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난 먹여살리고 팰 자식은 없다... 아무튼 가족 중에서 내가 제일 안 나가서 (내가제일잘나가) 집에 들렀다 기숙사로 돌아갈때면 이렇게 서러움에 목이 메인다. 사실 그렇게까지 안 나가는 건 아니고 나름 잘 살고 있는데 부모를 볼 때마다 괜찮은 척 하기가 너무 힘들고 눈물을 참아야 해서 너무 힘들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효 사상에 물든 김치인간이란 걸까...

누워 있으면서 닌텐도 스위치 라이트로 모동숲도 하고 아이패드로 로오히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그래서 엄청난 안구건조증에 시달렸다. 그래서 잠깐은 아무 것도 안 보고 눈을 감고 있어야 했다. (진짜 눈이 쩍쩍 갈라질 것 같아서) 눈을 감고 있을 때 문득 엄마와 아빠 그리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쓸까 그래 편지를 쓰자 라고 생각했다. 이건 내가 트위터에서 얼마 전 게이레즈 싸움 붙이면서 레즈들은 고상하게 방에서 편지 쓴다를 조롱했다가 그 편지가 얼마나 의미 있고 현직 작가가 썼고 고작 방구석 편지로 그것을 칭하다니 어쩌구저쩌구 이런 새끼도 지 아프면 병원 가겠지 등등의 욕을 처먹어서 그런 건 아니다.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쓰고 나니까 그렇게 보일 것 같아 두려운데 그냥 욕 먹은 것의 억울함과 편지를 쓰겠다는 마음이 아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이기 위해 이 편지는 런던에서 시작되ㅇ) 

그리고 그건 부모 집에서 할 게 없어서 너무 심심해서 든 생각으로 밝혀졌고 어제 기숙사에 오니까 갑자기 편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래도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니까 차근차근 써야겠다 그런데 손글씨로 수많은 사람에게 편지는 못 쓰겠다 그냥 워드로 쓰고 인쇄해서 보낼까)


그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뜬금)

민규랑 매일매일 공부를 하기도 했고 민규랑 보드게임을 하기도 했고 준호랑도 그렇게 했고 푸름이와도 만나서 공부를 했고 다혜랑 놀기도 했고 어쩌다보니 다른 친구들을 소개시켜줘서 내 기준으로 꽤나 큰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기타 등등.

그 많은 일들을 겪는 동안 나는 밥을 못 먹었고 다시 작년의 사이클을 반복하게 될까 두렵고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서 외식을 하고 돈을 펑펑 썼는데 슬슬 잔고를 보니까 그런 짓은 그만 둬야겠고 어쩌구저쩌구. 

모동숲은 그나마 눈을 떴을 때 눈떠보니 헬조선 오늘도 불행 시작 이라는 생각을 좀 덜어준다. (오늘 무슨 이벤트가 있을까. 오늘은 무슨 가구랑 무슨 옷을 팔고 있을까. 등등.)

돈...돈벌고싶어요... 이유는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어서입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알루토루님을 뵈었고 나는 알루토루님이 머학원생이 아닌 직장인인 줄 알았다는 오해를 말하고 석사 졸업해서 영 길이 안 보이면 저랑 같이 취업준비해요 같은 시시껄렁한 농담따먹기를 했다.

언제 한영이가 나한테 계란볶음밥을 해 주겠다고 해서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밖에서 담배를 피웠을 때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아무튼 석사를 수료하고 졸업 논문을 쓸 것인지 아니면 취직을 준비할 것인지 아니면 바로 학원 강사로 뛰어들 것인지 빨리 정하고 싶다고 한영이한테 말했다. 한영이는 8월에 좆같은 공익 일이 끝나 2학기부터 다시 석사과정생이 된다. 

다들 잘 사는 것 같아서 슬플 때가 있다. 그 슬픔이 너무 심해져서 나도 모르게 뒷계에 우울트윗을 쓰면 마음을 찍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 잘 사는 게 '다들'은 아니겠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걸 꿋꿋이 하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부럽다. 나는 칼을 내려놓고 나랑 같이 울 사람을 찾으러 다니곤 하는데, 그래도 같이 울 친구 몇 명이 있어서 다행이다. 같이 울지는 않더라도 함께 있어주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다.

정말정말 다행이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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