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9일

1. 고통이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하는가? 최승자는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으면 시를 쓸 수가 없다, 비명을 지르듯 시를 쓰는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세상 어딘가에는 긍정적인 감정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전업작가는, 당연히 일이기 때문에 그냥 글을 쓸 테고.

나의 경우, 고통이나 고민이 없으면 딱히 일기를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레포트 같은 건 의무적으로 써야 하니까 논외로 친다면, 내가 자유롭게 쓰는 글은 현재 일기뿐이다) 고통스러울 때는 비명을 지르듯 쓰는 거니까 '필요해서'가 아니라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자연스럽게 쓰는 거고, 고민? 이라든지 문제의식 같은 경우는 메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쓴다.

행복하다, 만족한다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굳이 일기로 기록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너무나 행복에 겨워서 쓸 수도 있겠지만, 행복이라든지 만족 같은 긍정적인 감정은 아주 순간적이고, 그런 감정은 사람들이랑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2. 오늘 애인이랑 데이트를 했는데, 점심을 먹으면서 요새 부모님 사이의 불화를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 너무 지쳐서 점심만 먹고 좀 걷다가 집으로 와서 계속 누워서 쉬었다.

이야기를 해서 지친 이유는, 내가 부모님 사이의 불화로 고통 받고 있고 혈연에게 원초적 공포까지 느낄 정도로 예민해져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나는 혈연으로 고통 받고 그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정말 자존심이 상한다. 고통은 고통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괴롭히는데, 거기에 더해 '고통 받는 나약한 자신'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말 지긋지긋하고 악질적이다.

그래서 나는 부정한다. 최대한 타인에게 힘든 이야기는 잘 안 하려고 하는데, 특히 애인한테 그렇다. 나 자신을 최대한 억누르고 애인에게 온 신경을 쏟는 게 나의 관계맺기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걸 오늘 깨닫고, 애인에게 나의 이런 성향까지 털어 놓았다. 그래서 완전히 지쳐버렸다. 지쳐버렸고 후련하기도 하다.

집에 오자마자 누워서 잤고 엄마가 저녁 즈음에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나한테 아빠에게 좀 술 먹고 늦게 들어오면 들락날락거려서 온 가족 다 깨우지 말라고 말 좀 하라고 부탁했다. 나는 취침약의 효과가 아주 잘 들었는지 간밤에 그런 소란이 있었는지 몰랐다. 어쨌든 빨리 가족에게서 벗어나는 게 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는데, 그 다짐을 한 지 몇시간 뒤에 엄마에게서 무언가의 요청을 받으니 웃겼다. 아무튼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엄마의 부탁대로 아빠한테 '기분이 상하지 않게 사근사근' 부탁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오면 강아지도 짖고 친오빠는 일찍 일어나서 일 나가야 하는 직장인이니까 좀 조용히 하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나서 엄마는 신나게 아빠를 향해 대거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럴 거면 나한테 왜 대신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는지 모를 정도로) 아빠는 이제 지쳤는지 별다른 큰 대꾸도 안 하고 저녁을 후딱 먹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이런 것들을 일기로 적고 있는이 와중에도 너무 지친다. 가족한테 너무 많이 시달린 것을 정말 많이 외면하고 속으로 억눌렀던 것 같다.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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