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4일

혼자 있는 게 너무 불안해서 미친듯이 친구들과 같이 있으려고 한다. 뭐 하니? 나랑 놀자 집에 있니 밥 먹을래 등등으로. 요새 다시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몽롱한 약기운이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오늘 하루도 아무 것도 못 할 거 같다는 기분.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무력감의 기운이 나를 덮칠까봐 두려워하며 어떻게든 끼니를 때우고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어서 강박적으로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누구랑 같이 있으면 피곤하고 졸리다. 그래서 자취방이 있는 친구들 집에 놀러가려고 한다. 힘들면 친구의 누울 자리를 뺏기 위해.

내가 이 불안을 의식화한 건 어제였다. 어제 랙돌님 집에 있다가, 신림 쪽에 있는 파스타집에서 동교랑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너무 가기 싫었는데 갈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동교에게 이 불안을 말하고, 이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 때문에 메타적으로 더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혼자 있을 시간이 더더욱 많아질 테고, 나는 영원히 홀로 그럭저럭 잘 살아갈 준비가 되지 않아서 걱정된다고 했다. 동교는 그 무서움에 공감하며, 그렇지만 아직은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동교랑 이야기를 하면서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동교에게 아비탈 로넬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아오노 군에게 닿고 싶으니까 죽고 싶어 라는 만화를 보여주면서 수다를 떠니까 즐거웠다.

자정이 지나서 취침약을 먹고 오전 10시 즈음 눈을 떴다. 어제 짐을 뺀 룸메이트가 청소를 하러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서 치즈돈까스김밥을 사고, 옆에 있는 문구점에서 멜라민 스펀지를 샀다. 샤워실 거울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로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얼룩은 그대로였다. 아무튼 이렇게 된 김에 나도 내 침대 주변과 창문에 생긴 결로 때문에 덕지덕지 핀 곰팡이를 닦아내고 쓰레기를 버렸다. 그리고 룸메이트는 갔다. 그 즈음 시간은 두 시였고,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 하는 무게에 짓눌려서 허겁지겁 카톡을 켜서 아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지나치게 많이 하려고 해서 나는 아무 것도 못 한다.
과도하게 공부 하려고 해서 나는 누워 있기만 한다.
강박적으로 괜찮아 보이려고 해서 전혀 괜찮지 않다.

일기를 쓴 지 오랜만이다. 준호는 나한테 요새 살 만하냐고 물었다. 보통 우울하거나 일이 안 풀릴 때 일기를 쓰기 때문에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나는 잘 살았다. 매일매일 놀고 하고 싶은 것만 했다. 나한테서 이런 활력이 도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푸름이랑 독일어 스터디도 같이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읽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하는 법을 모른다. 나는 무조건 그것을 해야만 하며, 하지 않으면 안 되며, 해야 좋은 것이다. 어제 동교랑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가 책을 책처럼 안 읽고 참고서처럼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페이지가 안 넘어가는 것이다.

분명히 18살까지는 책을 책 읽듯이 읽었는데.

그런 생각이 드니까 서러워졌다. 나는 뭐 하러 대학원에 왔는가? 공부하러 온 게 아니라 외로워서 온 것 같다. 대학원에 다니면 대학교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다. 내 친구들이 거기에 있다. 얼마든지 누워 있을 수 있다.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다. 백수가 되어도 그걸 할 수 있지만, 나는 ‘대학원생’이니까 소속된 곳이 있다. 백수는 없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울적했다.

울적한 것과 별개로 아비탈 로넬의 어리석음이 재미 있게 읽혀서 좋았다. 이런 느낌을 항상 느끼고 싶다. 어렵지만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싶다. 내가 읽어 온 많은 철학책들한테서는 이걸 느끼지 못했다. 자꾸 남은 페이지 수를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집중해서 독파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한 페이지도 읽지 못 한다.

싫다. 즐겁게 살고 싶다.

페잉으로 하도 일기 언제 올리시나요 라는 일기 맡겨 놨나 싶은 질문들이 많이 들어와서 확 포스타입에 500원에 올릴까 보다 싶다가 일기에는 그러고 싶지 않단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판다면 읽고 싶은 사람만 읽게 될 것이다. 별 생각 없는 사람도 그냥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나한테 있다. 그리고 일기인데, 자유롭게 쓰는 글인데, 그냥 내가 싫었다. 돈을 걸게 된다면 나는 일기를 한 글자도 못 쓰게 되리라. 

엄마가 자꾸 괜찮냐고 카톡을 보낸다. 한 달 반 전의 나를 봤기 때문에 계속 걱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답을 한다. 그건 나한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즐거움과 활력을 맛 보았기 때문에 다시는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숨 쉬는 공기가 무거워질까봐, 그래서 내가 나를 죽일까봐, 나는 너무너무 무섭다. 나는 괜찮아야만 한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외로워
들어보내조드러보내조드러보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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