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일

기숙사 이사를 끝냈다. 이번에는 동인지도 바리바리 싸갖고 가져갔기 때문에 이삿짐 무게가 상당했다. 그래서 신발이라든지, 옷이라든지, 폼클렌징 등의 생활용품들은 최대한 적게 가져갔다. 그냥 일요일 밤이나 월요일 아침에 학교 근처에서 생필품 쇼핑이나 할 생각이다.

기숙사 방에 들어가자 이미 살고 있는 누군가의 집에 무단침입한 기분이었다. 사람은 없었고, 룸메이트가 될 사람은 방 고정을 한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이미 자기의 방식대로 자신의 것들을 배열한 곳에, 내게 남겨진 빈 공간을 내 것으로 채우면서 ‘역시 사람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본가에 있을 땐 가족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방문을 닫으면 그곳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었다. 기숙사에 살면, 혈연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덜하겠지만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울적함을 한켠에 두고 살아가야 할 터였다. 침대와 서랍 밑에 쌓인 먼지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고, 왠지 부산스러운 욕실과 화장실을 간단히 청소하고 나오면서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룸메이트에게 이미 적대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순전히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울분이 애꿎은 룸메이트에게 튄 것이다. 적대감, 원한 감정, 그런 것들이 애먼 사람에게 향할 때마다 나는 섬짓 놀라곤 한다. 물론 속마음으로 우리는 뭐든지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그런 속마음에 가둬 놨던 적대적인 것들이 바깥으로 튀어 나올까봐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사람이 청소를 안 하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나의 숙면을 방해하는 그런 사람이면 어떡하지? 내가 이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런 강박적인 불안함을 애써 외면한 채 빠르게 짐을 풀고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주말 동안만 내 방일 곳, 평일에는 엄마의 방이 될 곳, 그곳은 ‘깔끔했다’. 휑했다는 표현도 적확할 것이다. 나랑 아빠가 서울에 간 사이 엄마가 데스크탑 책상을 내 놓고 방을 다시 정리한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계속 이 곳에서, 방문을 닫고, 오래도록 누워 있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사 후유증으로 생긴 전신 근육통을 느끼며 저녁까지 푹 자고,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콜라를 사 가지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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