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7일
1. 과외를 마치고 집에 들러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기숙사로 출발하려는데, 아빠가 “천원의 아침/저녁” 이야기를 꺼냈다. 라면이라든지 씨리얼 같은 거 더 필요 없어? 라고 물은 아빠한테 “요새 학교 밥을 많이 먹어서”라고 대답하자 나온 이야기였다. 천원의 어쩌구는 처음 생겼을 때부터 엄마한테서도 듣고 그 이후에도 가끔씩 듣는 이야기다. 기숙사로 가면서 아빠가 꺼낸 천원의 어쩌구를 상기하면서 ‘님아 제가 씨발 그걸 모를까요?’라는 날 선 생각이 들었다. 엄마나 아빠가 천원의 어쩌구를 이야기하는 것에 그리 열 낼 필요는 없지만, 뭐 나는 어제 오늘 병적으로 잠이 쏟아지고 피곤하고 할 일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예민하게 굴 이유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리고 굳이 이유가 없어도 속으로 짜증을 내는 게 뭐 어떠랴.
그 누구보다 천원의 아침과 저녁이 필요한 건 엄마랑 아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돈을 아끼라는 말과 동시에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함께 하기 위해 꺼내진 ‘천원의 식사’를 가끔씩 먹으면서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이것만 매일 먹으면 영양실조 걸리겠다 따위의 말을 하는데, 엄마 아빠는 이것만 매일 먹어도 살 수 있는 사람 같아 보여서이다. (2주 전부터 집에 가니까 아빠의 친구의 딸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폐기 도시락과 삼각김밥과 김밥 따위가 냉장고에 쌓여 있었고 엄마랑 아빠는 식사를 차리는 대신 그걸로 끼니를 때운다고 한다. 그런 고로 2주 전부터 나 또한 집에 와서 먹는 식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편의점 도시락이다)
아무튼 그놈의 천원의 식사 이야기는 내가 학교를 떠나지 않는 한 부모에 의해 ‘돈을 아끼고 건강도 챙기라는’ 요구의 상징으로 계속 언급될 것이다. 물론 천원의 식사 자체에는 절대로 유감이 없다. 앞으로도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 학생은 돈이 없고 학생의 목구멍은 포도청이다.
2. 저번 목요일에 뚜부가 주최한 이반영화제에 가서 ‘바운드’를 봤다. 보고 나서 97년에 이런 미친 레즈비언 갓 영화가 나왔다니 하면서 내면의 팬티가 축축해졌다(지려서). 그리고 그날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뚜부, 망트, 댜른이랑 어떤 한 카페 겸 바에서 미친듯이 수다를 떨었는데, 5시간동안 떠드는 내내 정말 하나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아서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할 정도였다. 댜른과 뚜부는 술을 마시고 밤이 깊어가면서 좀더 이야기가 ‘격해지고’ ‘감정적’이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았는데, 댜른과 뚜부한테서 “에쎌은 농담 뒤에 무서운 표정을 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즉 농담을 농담으로 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주 진지하게 하기 때문에 가끔씩은 섬뜩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왠지 내 ‘원대한’ 꿈을 말하게 되었다. “나는 예수가 되고 싶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걸 내 입으로 뱉으면서 내가 한 치의 의심 없이, 정말로 간절하게 그 불가능한 꿈을 미치도록 원한다는 것을 깨달아서 무섭고도 웃겼다. 내 친구들은 경악하면서 깔깔 웃었는데 뭔가 뿌듯하고도 즐거웠다. 내가 그런 식의 ‘꿈’을 이야기하고 애들한테 차례로 네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들의 꿈도 하나같이 내 것처럼 불가능하거나, 가능해도 아주 이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들의 꿈을 듣자 나는 더 행복하고 내 친구들이 사랑스러웠다. 지금 일기를 쓰며 그 시간을 회상하니 다시 행복해졌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