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1일~15일
3월 11일
학자금 및 생활비 대출을 받으려는데 저번 학기 성적이 개씹좆망이어서 바로 퀵 거부 당했다. 나는 성적이 학자금 대출 자격 요건에 들어가는지 몰랐기 때문에 잠시 당황했다가 무슨 특별교육이수? 라는 것을 받으면 예/외/적으로 2번에 한해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약 10분 가량의 영상 교육을 받고 학기 전에는 학업 계획을 짜고 학기 중에는 학업 계획을 성실히 수행하여 학점 관리를 잘 하라는-나 너 우리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공부 잘 하는 법-조언을 듣고 대출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대출 받는 일 자체도 킹받는데 성적 어쩌구로도 대출에 차질이 생기니 킹받음이 더블 되어서 트위터에다가 온갖 비꼬는 트윗을 싸지르며 화를 내다가 진한 현타가 왔다.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석사과정을 강행하는 게 맞는지? 내 살 깎아먹는 짓이 아닌지?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가는 빚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이렇게 할지 저렇게 할지 정하지도 못한 채 하루가 갔다.
3월 12일
쑥쑥이님 집에 놀러 갔다. 이번에도 택시를 타고 갔다. 대중교통비보다 10배 더 비싼 돈을 주고 편안하게 노원구의 쑥쑥님 집에 도착하여 점심에는 쑥쑥님의 남편 타타님과 함께 닭한마리 요리를 먹었고 집에 가서는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하다가 쑥쑥님 집의 홈메이트이신 홍차님이 마침 퇴근하고 오셔서 그분이 해주신 클램차우더와 식빵 및 베이글을 먹으면서 내가 가져온 보드 게임을 했다.
그리고 이 날의 성과: 드디어 고스톱 치는 법을 배웠다!
옛날에는 씨발 친척이든 반 애들이든 모두 다 “고스톱 그냥 그림 맞추기 놀이야”라는 설명만 하고 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점수를 먹고 어떻게 이기는지 그런 설명은 1나도 들을 수 없고 그냥 하다 보면 알게 된다는 개 무책임한 설명만 들었기에 고스톱 치는 법 정도는 몰라도 인생에 지장이 없겠지 하고 살았다가 쑥쑥님과 홍차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화투의 그림이 뜻하는 게 뭔지 그리고 고스톱 뿐만 아니라 화투로 치는 포커라고 할 수 있는 섰다 라는 카드게임도 배울 수 있었다. 그냥 보드게임 설명하듯 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스물여덟 먹어가면서 이걸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니! 오히려 설명은 세븐 원더스 듀얼이 더 복잡한데 말이다 (일반 사람들은 보드 게임에 관심이 없고 화투는 그냥 소셜 게임으로 즐기는 것 뿐입니다) 아무튼 고스톱도 치고 텍사스 홀덤도 하고 아주 재미 있었다.
야식 먹을 시간대에 그분들이 차린 저녁을 먹었는데 삼겹살과 순두부 없는 순두부찌개(ㅋㅋㅋ)와 잡곡밥을 먹었는데 아주 맛이 있었다. 그리고 쑥쑥님 집 부엌에는 등이 없었는데 이분들이 손수 등불을 설치하겠다고 시킨 레일과 전등과 기타등등이 도착해서 새벽 한시 즈음 쑥쑥님과 홍차님 둘이서 열심히 전선을 끌어와서 어쩌구 저쩌구 해서 드라이버로 레일을 설치하고 그 와중에 손이 필요하면 내가 나서서 도와주고 뭐시기를 해서 멋지게도 부엌에 등불이 생겼다. 생긴 건 약간 스튜디오에 있을 법한 검은색 레일에 전구는 화장대 전구 같은 백열전구였다. 설치하고 나서 불을 키니까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하더라... 시선을 조금이라도 위로 올리면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환했고 쑥쑥님과 홍차님은 아주 만족하셨다. 나도 같이 박수를 쳤다.
3월 13일
쑥쑥님 집에서 자고 일어나니 대략 한 시 정도가 되었다. 쑥쑥님이 토스트를 구워 주셔서 그것을 맛있게 먹었다. 그 와중에 홍차님은 출근하셔야 하는데 늦게 일어났다며 아주 급하게 나가셨다. 베란다에 있는 커피테이블에 쑥쑥님과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햇볕을 쬐었다. 늘 쑥쑥님과 만나면 그랬듯이 그분과 정신병 환우로서의 고통을 나누고 앞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공부할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나는 쑥쑥님께 “일단 석사과정을 수료하는 건 제 욕심이 맞아요. 만약 석사과정을 자퇴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거예요” 라고 말했는데, 말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되었다. 아무튼 빚을 내서라도 다니고 싶은 게 내 바람 혹은 욕심이고 석사수료 이후에 다른 것을 하더라도 그 선택에 후회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빚으로 고통 받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쑥쑥님 및 타타님과 헤어지고 택시를 타서 당산역으로 가서 본가로 가는 버스를 탔다.
본가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는데 엄마와 아빠가 등록금과 생활비 이야기를 꺼냈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고 이야기했고 생활비 대출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엄마는 머뭇거리며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과외를 하나 더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했는데 그건 내가 전에 4월에나 과외를 할 수 있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고 소극적으로 거절한 과외 건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는 그냥 침묵했다. 그래,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과외 일 하나 더 하는 것은 그렇게 학업에 지장이 가는 일도 아닐 터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덜 누워 있으며 그렇다고 모두가 과로를 하는 건 아니고 아무튼 나보다 일을 많이 한다. 그러나 나는 아무튼 과외를 더 하기는 싫었다. 실제로 과외를 하게 되면 가끔은 즐겁고 성취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과외 아르바이트라는 일에 질려 버린 건 맞았다. 물론 그것은 편의점 유니클로 올리브영 기타 등등 알바보다는 더 편할 것이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일을 하게 된다면 과외보다는 학교에서 조교 일을 맡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조교 일은 보장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내일이면 개강하지만 비대면 강의를 하게 되며, 나는 미리 학과 사무실에 가서 조교 일을 부탁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남는 강의 공고가 나오는 일은 보장된 것도 아니거니와 그 강의 조교 일이 다른 스케줄과 겹쳐서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냥 구구절절하게 길게 썼는데 사실 한줄 요약: 일하기 싫다 입니다
일하기 좋아하는 건 극히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 누구보다 일하기가 싫다 아니 사실 일하고 싶은데 일을 못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 누구보다 일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월 14일
과외 학생에게 수학 숙제 폭탄을 날렸는데 역시 학생은 내가 내준 것을 대부분 하지 못했다... 그건 학생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냥 학생이 수학을 못 하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쏟아도 문제를 몇 개 밖에 풀 수 없었던 것이었고 나는 그걸 예상하면서도 과외 학생이 수학을 잘 했으면 하는 바람에 숙제 폭탄을 날렸고 그 결과를 보자 아무튼 내 욕심을 억누르고 학생에게 맞는 숙제 양을 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이 학생을 1년 넘게 가르쳤고 이 학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그 과정에서 이 학생은 대학과 상관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지만 나의 본분(즉 돈을 받고 이 학생 옆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은 수학 성적을 올리는 일이기 때문에 늘 하던 훈계 (수학은 어쩌구 저쩌구. 꾸준히 공부. 힘들지만 이러쿵저러쿵. 모두들 아는 이야기. 마치 학자금 특별구제 영상처럼 학업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하라는 종류의 대충 그런 이야기)를 하고 코로나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아무튼 그렇게 세 시간을 가르치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리고 푸름이네 집에 가서 푸름이는 책상에 앉아 책을 필사했고 나는 푸름이 침대에 누워서 아이패드로 섹슈얼리티 수업 리딩 자료를 읽다가 중간에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푸름이한테 세븐 원더스 듀얼을 하자고 졸랐다. 푸름이는 난 졸리고 그런 머리 쓰는 게임은 싫다! 라고 해서 그럼 공포게임 실황 보자! 라고 했는데 그건 괜찮다고 해서 대체 게임은 왜 안 되고 영상은 되는 것이냐 가벼운 항의를 했고 아무튼 푸름이도 나도 배가 고파서 야식을 시켰는데 야식을 시키는 동안 나는 내 멋대로 세븐 원더스 듀얼 게임 룰을 푸름이에게 설명했고 (마치 인강 강사처럼) 푸름이는 그걸 들었다. 대충 설명이 끝나갈 무렵 야식이 도착했고 우리는 지코바 순살치킨 및 떡볶이를 먹으며 아웃라스트를 봤다. 아웃라스트에서 처음으로 깜짝 놀래키게 하고 무서운 장면이 나왔을때 거의 옆 방에 들릴 정도까지 푸름이가 비명을 질렀는데 차츰차츰 익숙해졌는지 무서운 장면 때마다 그냥 적당히 놀라고 나랑 같이 낄낄거리면서 봤다. 끝까지 다 봤더니 이미 새벽 세 시 였다. 결국 나도 세븐 원더스 듀얼을 하기엔 너무 지쳐버려서 그냥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택시를 타서 기숙사에 왔다. 그리고 한 새벽 다섯시 즈음에 잠든 것 같았다.
3월 15일
준호는 옆에서 전기가오리 일을 열심히 하고 있고 나는 섹슈얼리티 리딩을 좀 하다가 일기를 쓰고 있다. (현재 시각: 오후 5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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